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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81화 (78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81화

그런 생각이 제루엘의 머릿속을 채울 무렵.

누군가 제안했다.

채앵-!

제루엘의 창과 마족의 검이 부딪쳤다.

“시X! 넌 왜 죽지도 않냐!?”

“음.”

이름도 모르는 마족.

인정하긴 싫지만, 실력만큼은 자신 못지않은 녀석.

그래서 가끔 전장에서 마주치게 되는 녀석.

채앵-!

다시 한번 창과 검이 부딪혔다.

그 강렬한 파동에 천족들과 마족들이 얼른 멀찍이 물러났다. 이 두 존재가 싸울 때 괜히 옆에 있다가는 말려들어 개죽음당하기 십상이었다.

언제나처럼 비등비등한 실력 탓에 제대로 결판을 내지도 못하고 이만 으드득 갈고 있을 때.

그 녀석이 조용히 속삭였다.

“이 전쟁, 이만 끝내는 건 어떻겠나?”

“……뭐?”

“언제부터 시작된 전쟁인지도 모르고, 왜 싸우는 건지도 모르고,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지 않나. 우리도. 너희도.”

그의 말에 제루엘의 눈이 커졌다.

이 녀석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마족이 입꼬리를 작게 올리며 말을 이었다.

“어때. 생각 있나?”

제루엘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마족을 믿을 수는 없지만,

“……X발. 계획이 뭔데?”

전쟁에 피해를 당한 수많은 천족들의 모습이 제루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더 이상 전쟁을 이어나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천족과 마족의 시간 개념으로 생각하면 아주 짧은 시간.

하늘에서 찬란하고 성스러운 빛이 쏟아졌다.

모든 천족들이 고개와 몸을 숙이며 경의와 존경을 표했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그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자를 축복하는 것 같았다.

그는 제루엘.

일개 천족에서 천신이 된 존재.

탕!

여덟 개의 백색의 날개를 활짝 펼친 천신 제루엘이 자신의 주무기인 창을 바닥에 내려치며 선언했다.

“이제 전쟁은 끝났다!”

그렇게 왜 싸우는 건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된 천계와 마계의 전쟁이 끝을 맺었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

“시X! 할 일이 이렇게 많다고는 안 했잖아!!”

천신 제루엘이 금색 실 같은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런 천신의 모습에도 보좌관들은 익숙한 듯 별 반응 없이 결제가 필요한 서류들을 천신 제루엘의 책상으로 옮겼다. 오랜 세월 이어졌던 천마 전쟁의 뒤처리와 천계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서류들이었다.

“으아아악! 그 새X 다음에 만나면 죽여 버린다!!”

성격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집무실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다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환하게 웃는 천족들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서류를 결재하며 평화로운 천계를 만들어 나가는 천신 제루엘이었다.

참고로.

천계와 마계 사이에는 그 누구도 통과하지 못하는 경계를 만들었기 때문에(그 녀석과 합의한 사항이다), 전쟁이 남긴 후유증이 악화되어 죽을 때까지, 천신 제루엘이 그 마족 녀석을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음.”

서준이 [천신 제루엘]의 책을 덮었다.

다시 봐도 전생의 자신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거친 성격이었다.

뭐, 전생이라고 해봤자 아주 오래된 기억이고, 환생할 때마다 전생과는 다른 ‘새로운 나’지만 말이다.

“전생의 영향을 받을 때도 있지만.”

지휘봉의 요정이나 미식가 오크 같은.

어깨를 으쓱인 서준이 [천신 제루엘]의 책을 책장에 꽂고,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삶의 책을 펼쳤다.

삶의 책 속에서 전생의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모습도 성격도 성향도 다르지만 모두 전생의 ‘나’.

“지금의 삶도 언젠가 책으로 읽어보겠지?”

그때의 ‘나’는 어떤 기분으로 ‘이서준’의 삶의 책을 읽을까.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라면 즐겁게 읽을 테고, 제루엘 같은 상황이라면 ‘이게 뭐야?’ 하면서 던져 버릴지도 몰랐다.

그런 상상을 하며 서준이 작게 웃을 때였다.

[(선)티아프의 빛 가루가 중하급에서 중급으로 상승합니다.]

[(선)플록스의 불꽃이 중하급에서 중급으로 상승합니다.]

[오버 더 레인보우2]에서 사용했던 두 개의 능력의 등급이 상승했다는 알림이 나타났다.

당시에는 변형만 되었던 두 개의 능력이, 지금 막 경험치(?)를 모두 채워 등급이 상승한 것이었다.

갑자기 뜬 알림에 조금 놀랐던 서준이 이내 차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꽤 빠르네.”

[오버레2]에 나왔던 곡들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어, 등급이 상승할 것 같다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지만.

“그럼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러 가 볼까.”

언젠가 사용할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

읽고 있던 삶의 책을 책상 위에 올려둔 서준은 [굿 애프터눈]을 허밍으로 부르며 두 개의 삶의 책을 찾아 책장으로 향했다.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을 제외하고는.

다른 능력의 등급 상승은 기쁘게 받아들이는 서준이었다.

* * *

WTV시상식이 열리기 삼 일 전.

서준은 매니저 최태우와 함께 미국으로 향했다.

[배우 이서준, WTV 시상식을 위해 출국!]

[이서준, ‘잘 다녀오겠습니다! 모두 투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우 이서준, 공항 패션 화제!]

[이서준 공항 패션! 공개되자마자 품절 행렬!]

-끄아아아! 서준아! 상 다 받고 와!

=우리가 열심히 투표했으니까!!

=진짜 너무 열심히 해서 몇 번이고 WTV 홈페이지 다운시킨 새싹들.

=WTV: 살……ㄹㅕ……주ㅓ……

=새싹: 죄송합니다.(하지만 클릭은 멈추지 않는)

=ㅋㅋㅋㅋㅋ

-아니, 공항패션 사진 올라온 지 얼마나 됐다고 품절이야?

=서준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옷부터 검색함ㅎ

=22 옷 신발 악세서리 전부ㅎㅎㅎ

=33 서준이랑 커플룩이다!!

=ㅅㅂ조금 늦었다고 전부 품절ㅋㅋㅋ(안웃김)

-공항에서 찍은 영상 나노단위로 캡쳐 중.

=22 서준이는 평상복 입은 모습 완전 레어하다고ㅠㅠ

=33 서준이 귀엽고 예쁘고 멋있고 혼자 다함ㅠ

=44 웃는 거 왜 이렇게 귀엽냐고ㅠㅠㅠ

=55 여긴 천국. 천국이다……

-댓글은 이렇게 난리인데, 현장에서는 차분한 이서준 팬들.

=ㅈㄴ신기한데, 다들 너무 익숙한 모습이라 이젠 기사도 안 떠ㅋㅋ

=그러니까ㅋㅋㅋ

그렇게 한국을 뒤로하고.

미국에 도착한 서준과 최태우는 [쉐도우앤나이트]를 촬영하면서 머물렀던 저택으로 향했다.

“몇 달 만에 오는 건데, 되게 오랜만에 오는 것 같아요.”

“그러게.”

관리인이 청소해 둔 방에 짐을 푼 서준은 미국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WTV 시상식에 입고 갈 의상 후보들을 살펴보았다. 각 패션브랜드에서 보낸 많은 옷 중 한국에서 골라온 의상들이었다.

“이거! 준이랑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난 이거 추천.”

“으음…….”

그 회의에는 서준이 온다는 이야기에 달려온 리첼 힐과 에반 블록, 조나단 감독도 함께 있었다.

“시상식. 시상식이라니……!”

조나단 감독은 생중계로 진행되는 WTV시상식 때문에 넋이 나간 것 같지만 말이다.

그런 조나단을 내버려 두고.

시상식에 익숙한 세 배우는 열심히 서준이 입을 의상을 골랐다.

“리첼하고 에반은 입고 갈 옷 정했어요?”

패션 브랜드, 하이브가 보낸 정장으로 갈아입고 나온 서준을 이리저리 열심히 살피고 있던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이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야 벌써 골랐지!”

“맞아.”

그렇다면 다행이다.

씨익 웃은 서준이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고쳤다.

찰칵. 찰칵.

그런 서준의 모습을 최태우 매니저가 열심히 찍어댔다. 한국에 있는 1팀에게 보내기 위한 사진들이었다.

겨우 며칠 사이 옷의 사이즈나 모양이 변할 리는 없지만, 무려 4년 만의 시상식.

>역시 하이브. 괜찮네요.

>저도 하이브 한 표!

>전 레든 꺼도 좋았어요.

>아레시스도 괜찮지 않았습니까?

>머리 모양은 어떻게 한대요?

그러다 보니 한국과 미국 사이의 시차도 무시하고 아주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배우 이서준 전담 1팀이었다.

그렇게 짧은 패션쇼가 이어지고, 서준이 WTV 시상식에서 입을 의상이 정해졌다. 한국에서 가져온 5개의 의상 중 하나인, 하이브의 정장이었다.

“듣기로는 아레시스에서 이번 의상에 엄청 공을 들였다고 하던데, 아쉬워하겠네.”

헤어스타일까지 정해지고 미국 스태프들이 떠난 후, 서준과 지인들은 저녁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요?”

“응. 그렇다고 하더라. 수석 디자이너가 쉐앤나도 몇 번이나 보고 그랬대.”

리첼 힐의 말에 아레시스가 보내준 의상을 떠올려본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프로의 세계다.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시상식이니, 열심히 준비했다고 고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하이브 의상이 더 마음에 드는걸요. 저랑 더 어울리기도 하고요.”

“그거야 그렇지.”

아레시스의 의상도 괜찮았지만, 하이브의 의상이 더 서준에게 어울리긴 했다.

“오히려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네.”

“뭐가?”

“뭐가요?”

에반 블록의 말에 리첼 힐과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쉐앤나를 많이 봐서 윌리엄의 이미지가 박혀 버린 거지. 시상식에 가는 건 배우 이서준인데 말이야.”

“오호.”

“그러네요.”

‘윌리엄’이 아레시스의 의상을 입었다고 생각해 보니, 다섯 개의 옷 중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분위기까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게 준의 연기니까요.”

조나단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서준이 하하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도 준의 팬들 엄청났지?”

의상에 대한 이야기는 흘러가고, 리첼 힐이 눈을 반짝이며 새로운 주제를 꺼내 들었다. ‘새싹들의 투표 전쟁’에 대한 이야기였다.

“투표하려는데 사이트가 안 뜨더라.”

“저도요. 컴퓨터 고장 난 줄 알고 라이언 삼촌 서재에 가서 했는데, 그래도 안 되더라고요.”

에반 블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조나단 윌.

“나도! 가족들 이메일로 가입까지 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말이야! 그래도 결국 했지만!”

뉴스에까지 나온 ‘WTV 홈페이지 마비 사건’을 직접 겪은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서준과 최태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WNET, 오늘 WTV 시상식 생중계!]

-기다렸다ㅠㅠㅠ

-서준이 의상 뭐 입고 나올까?

=뭐든 어울리겠지ㅠ

=220.01초 단위로 캡쳐해야지ㅠㅠ

-와. 이걸 다시 생중계로 볼 줄은 몰랐는데.

=나도. 쉐도우맨3 끝나고는 안 봤으니까.

=22 한국 배우가 안 나오니까 볼 필요도 없었지.

=근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앞으로도 계속 보겠지?

=ㅇㅇ시리즈 끝날 때까지는 이서준 계속 나올 테니까!

-오…… 그럼 그거 하려나?

=그거?

* * *

빨간 레드카펫 위로 스타들이 지나가자, 번쩍이는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다.

와아아아! 여기까지 스타들을 보러온 팬들의 함성소리도 들렸다.

차 안에 타고 있던 서준과 리첼 힐, 에반 블록, 조나단 감독. 그리고 커크 로렌스까지 그 함성에 마음이 들떴다.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그럼요! 저희 쉐앤나팀이잖아요!”

걱정스러워하는 커크 로렌스의 말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목소리만 출연한 저도 가는데요, 뭘.”

리첼 힐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 * *

검정색 리무진이 레드카펫 앞에 멈춰 섰다.

“누구지?”

고개를 빼 들고 바라보던 팬들의 눈에, 리무진의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내리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멋진 미소를 짓고 있는 우리의 영원한 영웅, 쉐도우맨.

에반 블록이었다.

꺄아아악! 쉐도우맨!! 에반 블록!

모두 쉐도우맨의 죽음과 다시 나타난 쿠키영상을 떠올리며 거의 울듯이 쉐도우맨을 불렀다.

그다음으로 나타난 배우는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레드카펫에 선 커크 로렌스.

끄아아아! 제프 맥케이!

커크 로렌스가 연기한 빌런의 과거에 몰입한 팬들은 그가 행복하길 바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다음으로 내린 스타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리첼 힐.

벨 나트라!! 리첼 힐!!

목소리만 나왔어도, 아니, 목소리만 나와서 더욱더 다음 영화에서의 모습이 기대되는 벨 나트라에, 팬들이 함성을 질렀다.

다음으로 차에서 내린 사람은, [쉐도우앤나이트]의 감독, 조나단 윌.

야아아아악!!

환호인가, 울분인가, 분노인가.

하여튼 온갖 감정이 뒤섞인 함성에 조나단 윌이 어색하게 웃으며, 얼른 쉐앤나팀 옆에 섰다.

그 필사적인 움직임에 먼저 내린 배우들이 작게 웃었다.

그리고,

동시에 환호성이 멈추었다.

여기에 있는 모두가 마지막으로 내릴 스타를 숨죽여 기다렸다.

어쩐지 카메라 너머, 생중계를 보고 있던 사람들까지도 조용히 소리를 삼켰다.

바깥이 조용해지자, 리무진 안에서 눈을 데굴 굴리던 서준이 웃었다.

‘팬들이 기대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하는 게 스타 아니겠어?’

그래서 서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한 선기를 뿜으며, 레드카펫 위에 발을 내디뎠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무언가에 홀린 듯,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움직였다.

반질반질한 구두, 핏이 딱 맞는 바지, 몸매를 돋보이는 상의와 재킷, 왼쪽 손목을 장식한 시계, 단정한 헤어스타일. 그리고 그 모든 담백함을 단숨에 화려하게 만드는 빛나는 얼굴과 분위기.

근사하고 완벽한 서준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

그에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벅참으로 가득해진 팬들의 입에서 환호성인지 굉음인지 모를 것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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