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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80화 (78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80화

친구들의 말대로, 가장 먼저 정보를 입수한 [새싹부터]는 며칠 후부터 시작할 WTV 시상식 투표로 떠들썩했다.

서준이 [쉐도우맨2]로 이번 생 처음으로 상을 받았던 39회 WTV 시상식 때의 사진(만 7세)과 [쉐도우맨3]을 끝으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47회 시상식 때의 사진(만 15세)이 [새싹부터]의 메인화면으로 걸려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공지: 이번 주 금요일, 제54회 WTV 시상식 투표가 시작됩니다.]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WTV 시상식 노미네이트 명단이 발표됐습니다.

우리 이서준 배우님이 노미네이트된 부문은,

<영화부문 최고의 연기상>

<최고의 히어로상>

<최고의 전투상>

입니다.

칸 영화제 이후 무려 4년 만의 시상식.

그것도 우리 새싹들의 손으로 직접 이서준 배우님께 드릴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입니다!

제54회 WTV 시상식의 투표는 이번 주 금요일에 시작됩니다.

모두 소중한 한 표, 그리고 가족+지인들의 한 표 부탁드립니다.

>[공지: WTV 투표 주소]

>[공지: 나라별 투표 요일 안내]

>[공지: 투표 방법 안내]

-무려 4년만의 시상식 노미네이트라니!!

=쉐앤나 제작 소식 들을 때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22 히어로 영화하면 WTV 시상식이니까요!!

=33 투표! 투표! 오직 투표!

-화도, 오버레2도 충분히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할 만했는데ㅠ

=22 맞아요. 두 작품 다 진짜 좋았는데 말이죠ㅠ

-가족, 친구, 친척 아이디 전부 동원하겠습니다!

=전 남친도!

=전 남친ㅋㅋㅋ

와 같은, 기대와 각오가 가득한 공지글과 게시글들, 댓글들이 [새싹부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불타오르는 새싹들 중 더욱더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새싹들이 있었다.

마치 방해하면 지구라도 부술 수 있을 것만 같은 전투력을 온몸 가득히 품고 두 눈을 번뜩이고 있는 그들은 바로 [쉐도우맨 시리즈]가 막을 내리고 MBS 드라마 [봄이 돌아왔다]부터 서준에게 입덕한 새싹들이었다.

“엄마! 엄마! 엄마!”

바로 송유정처럼 말이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엄마를 불러제끼는 딸에 빨래를 개고 있던 엄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직장인이 되어도 학생일 때와는 다름없는, 그냥 나이만 먹고 정신연령은 그대로인 것 같은 딸이었다.

“왜?”

“엄마 휴대폰 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엄마가 송유정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매주 하는 음악방송에서 온 가족의 휴대폰을 들고 열심히 투표하던 전직 아이돌 팬 딸을 둔 엄마로서 익숙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송유정에게 휴대폰을 건네줌과 동시에 의문이 든 엄마였다.

배우가 아이돌처럼 투표를 할 일이 있던가?

“너 서준이 팬이라고 하지 않았어? 다시 아이돌팬이 된 거야?”

“아니!? 여전히 서준이 팬이야!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야!”

무슨 벼락 맞을 소리를 하냐는 듯한, 기겁한 표정으로 다다다 말하는 딸의 모습에 엄마가 눈을 끔벅였다. 딸의 반응을 봐서는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럼 엄마 휴대폰은 왜?”

“WTV 시상식이라고 투표로 상 받는 사람을 결정하는 미국 시상식이 있거든. 서준이가 후보에 올라서 그거 투표해야 돼. 투표는 금요일인데, 먼저 WTV 홈페이지에 가입해 놓으려고.”

어쩐지.

작게 웃은 엄마는 잘 마른 빨래를 개고, 송유정은 그 옆에 붙어 앉아 엄마의 휴대폰을 두드렸다. 두 사람 다 익숙하고 빠른 손놀림이었다.

“아이돌 음악 방송하고는 다르게 배우는 팬들이 투표하는 시상식이 거의 없단 말이야.”

이메일 인증을 기다리며 송유정이 재잘거렸다.

“연말에 방송국에서 하는 인기상 같은 거 빼고는.”

“아. 그렇겠네.”

아이돌팬이었을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 아빠 동생의 휴대폰을 바꿔 들어 가며 이거 투표하고 저거 투표하던 딸이, 서준의 팬이 됐을 때는 투표를 하지 않던 모습이 떠오른 엄마였다.

뭐, 그만큼 영화와 드라마를 챙겨보기는 했지만.

“그래서 투표할 일이 없었는데, WTV 시상식은 팬들의 투표로 상을 준다고 하잖아!”

그러니 안 할 수가 있나.

당장 집으로 달려와서 엄마 아빠 동생의 휴대폰을 두드리는 수밖에.

“친구들은 예나랑 같이 포섭했고, 다음은 사촌동생들이야. 용돈 준다고 하면 당장 휴대폰 내놓겠지. 으흐흐흐.”

역시 이래서 회사에 다녀야 했다.

언제는 회사가 덕질을 방해한다고 한탄했던 송유정은 이번 달 월급으로 두둑해진 덕질통장을 떠올리며 빙구처럼 웃었다.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각오를 다지는 딸에게 엄마가 눈을 끔벅이며 물었다.

“서준이 팬 많지 않아? 다른 나라에도 많다며. 이번 영화도 엄청 잘됐다고 뉴스에 나오던데?”

송유정에게서 새싹들이 얼마나 많은지 들어 알고 있던 엄마였기 때문에, 저렇게까지 열심히 투표를 할 일인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에 송유정이 한탄하며 엄마에게 몸을 기댔다.

“내가 서준이 팬이 됐을 때는 쉐도우맨3가 끝난 뒤였거든. WTV 시상식도 끝나서 이제 투표할 일은 없겠구나, 싶었단 말이지.”

[봄이 돌아왔다]로, 아니면 그 후에 입덕한 새싹들은 모두 땅을 치고 후회했다.

조금만 더 빨리 입덕할걸!

그러면 내 손으로 투표해서 서준이에게 상을 줄 수 있었는데!

물론, 전 세계 새싹들의 수를 생각하면 자신이 없었더라도 수상했겠지만. 거기에 자신의 표가 도움이 됐다는 사실은 팬들을 뿌듯하게 했을 터였다.

그런데 [쉐도우맨 시리즈]가 끝나면서, 서준의 WTV 시상식 노미네이트가 불투명해진 것이었다.

“물론 다른 작품들로 후보에 오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는 거거든.”

“그래?”

어느새 이메일 인증을 끝내고 WTV 회원가입을 끝낸 송유정은 엄마를 도와 빨래를 개고 있었다.

“그래서 나처럼 쉐도우맨3 이후에 서준이 팬이 된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투표를 홍보하고 있어.”

그런데, 다시 시작된 슈퍼히어로 시리즈.

그것도 서준이 주인공인 시리즈였다.

뒤늦게 입덕한 새싹들은 두 팔을 벌리고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2번 있었던 WTV 시상식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 한을 풀 듯, 두 배로 더 열심히 투표를 홍보하고 있었다.

그런 새싹들 중 하나인 송유정을 보며, 새싹 임예나(WTV 시상식 투표 모두 참여)는 과거의 자신에게 찬사를 보냈다. 역시 입덕은 최대한 빨리!

“그럼 이제 집에 가는 거야?”

“아니, 아빠랑 유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아빠와 동생에게도 휴대폰이 있지 않나.

빨래를 다 개고 소파 위에 드러누워 뒹굴거리며 으흐흐흐 웃는 송유정을 보며 엄마도 웃고 말았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엄마 된장찌개!”

계기가 무엇이 됐든.

딸이 집에 와서 기쁜 엄마였다.

* * *

[제54회 WTV 시상식, 배우 이서준 ‘영화부문 최고의 연기상’, ‘최고의 히어로상’, ‘최고의 전투상’에 노미네이트!]

[WTV 시상식, 최고의 히어로상에 이서준, 에반 블록 공동 노미네이트!]

[‘쉐도우앤나이트’로 가득한 WTV 시상식 후보 목록!]

[WTV 시상식, 미국 시각으로 오늘 자정부터 투표 시작!]

[WTV, 투표를 위해 만반의 준비!]

-이번 WTV 중계는 어디서 한대?

=?? WTV요.

=ㅋㅋWTV가 방송국임ㅋㅋ

=WTV: 내 시상식을 누구한테 줘?? 그것도 쉐앤나팀이 나오는데!!

=그러니까ㅋㅋㅋ

-오오. 이서준이랑 에반 블록 둘 다 노미네이트됐네?

=이번엔 둘 다 히어로라서 집안싸움이 되어버린ㅋㅋ

=쉐도우맨도 가능성 있지 않음? 쉐앤나 보고 어떻게 쉐도우맨이 최고의 히어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어?!

=근데 워낙 새싹들이 많다 보니. 게다가 나이트 진도 히어로 그 자체였잖아.

=ㅠㅠ누가 상 받아도 인정ㅠㅠ

-WTV 해석: 덤벼봐라! 새싹들아!!!

=오오오. 이번엔 홈페이지 안 터질 것 같은데?

=응. 아니야. 터졌어.

=옛날옛적, 작고 귀여운 새싹들의 공격에 WTV 홈페이지는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오늘, 절치부심한 WTV 홈페이지는 새싹들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다시 한번 터지고 말았답니다!

=ㅋㅋㅋㅋㅋ

-뭐야? 나라별로 투표일 다르게 하라고 지령…… 공지 내려왔잖아?

=ㅅㅂ지령ㅋㅋㅋㅋ

=이렇게 새싹부터의 본모습을 보고ㅎㄷㄷㄷ

-ㅇㅇ공지 떴는데도 북아메리카 새싹들 몰려서 터진거얌.

=WTV는 7년 전을 떠올리며 홈페이지 보강했으나, 새싹들은 7년 전보다 엄청나게 늘어나있었다ㅋ

=ㅋㅋ미쳤나봐ㅋㅋ

-새싹부터에 지령 올라옴. 이제 시간대별로 나눈대!

=지령ㅋㅋ이젠 아예 숨기지도 않는구만ㅋㅋ

=시간대별이라니. 인원 수가 얼마나 많으면;;;

=또 저걸 지키는 단합력이 쩔어.

=이제 새싹들은 작고 귀여운 ‘새싹’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야 한다.

=22 나무나 숲이나 산이나 정글이나 산맥이나 로키산맥이나 알프스산맥이나 히말라야산맥 같은 걸로.

=ㅋㅋㅋ산맥ㅋㅋㅋ

-근데 진짜 화력 쩌네;;;

=22 단체로 보약이라도 먹었나?

* * *

‘보약 대신 다른 걸 먹었지…….’

생의 도서관.

댓글 중 하나를 떠올린 서준은 이번 뜨거운 투표 대란의 원인 중 하나라고 추측하는 삶의 책을 바라보았다.

[천신 제루엘]

표지에 네 쌍의 흰 날개가 백금색의 날카로운 창을 감싸듯 그려져 있는 삶의 책이었는데, 예전에 서준이 읽었던 [황금인어]와 [리치왕]처럼 최상급의 능력이 담긴 책이었다.

“신전 프로젝트를 하면서 사용한 능력이기도 하고.”

[(선)천신 제루엘의 축복(중하급)]

천신 제루엘이 내리는 축복입니다.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올바른 일일 때, 이루어질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노력한다면 더욱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라는 능력으로, 학교 축제 때 썼었다.

물론, 최상급 버전은 달랐다.

[(선)천신 제루엘의 축복(최상급)]

천신이자 전쟁의 신 제루엘이 내리는 승리의 축복입니다.

진심으로 이기길 원한다면, 그것이 올바른 일일 때, 모든 능력이 아주 크게 상승합니다.

노력한다면 더욱 전투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전쟁의 신.

진심으로 이기길 원한다면.

해당 문구를 읽은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역시 이거 때문이겠지…….”

중하급으로 등급을 낮추면서 사라진 문장들이었지만, 아무래도 현재의 상황과 어우러지면서 새싹들에게 조금이나마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싶었다.

‘투표도 전투라면 전투니까.’

작게 웃은 서준이 새하얀 책을 팔랑팔랑 넘겨보았다.

천신이자 전쟁의 신인 제루엘.

심심해서 검색해 봤는데, ‘여기’에서도 ‘힘을 관장하는 천사’로 나오더라.

원래 제루엘은 신이 아니라 일개 천족으로 태어났다.

제루엘이 태어났을 때는 천계와 마계의 전쟁이 한창이었을 때였다. 아주 많은 생을 살았던 서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로, 아주 기나긴 시간 동안 말이다.

제루엘은 천족으로서 그 전쟁에 나섰다.

책 표지에 새겨져 있는 날카로운 창이 제루엘의 주 무기였다.

제루엘은 한 쌍의 순백의 날개를 활짝 펴고 금속으로 만든 창을 들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있는 새까만 마족 무리들을 보며 외쳤다.

“다 덤벼! 이 새X들아!”

……천족이라고 말투가 착한 건 아니었다.

“저 X끼! 어느 부대야!?”

그리고 전투 중에는 개인행동도 금지였다.

내 전생이지만 참.

군필 서준이 마른세수를 했다.

하여튼.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첫 전투가 시작되었고, 머릿속에 싸움만 들었지만 실력은 뛰어난 제루엘은 공을 세웠다.

“너…… 진짜 실력만 아니었으면……!”

두 쌍의 날개를 가진 부대장의 말에 제루엘이 바짝 굳어 외쳤다.

“죄송합니다악!”

“……대답은 잘해요. 가 봐.”

그렇게 처음으로 전쟁터에 발을 디딘 제루엘은 빠르게 날개를 늘려나갔다.

두 쌍의 날개의 은색 창을.

세 쌍의 날개에 금색 창을.

마족을 죽일수록 제루엘은 찬란해져 갔다.

삶의 책의 대부분이 싸움과 피, 저주와 상처, 슬픔과 괴로움이 가득할 정도로 천족 제루엘의 삶은 치열했다. 어제 함께 웃었던 동료가 죽고, 가르치고 있던 후배가 불구가 되고, 마족의 마법으로 한 부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자신 또한 온전한 상태가 아닐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행복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전쟁 중에도 생명은 태어났고, 우정이 있었으며, 기쁨도 있었고, 즐거움도 있었다.

‘하지만…….’

생명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황량하고 메마른 천계와 마계의 중간지역.

마족의 피가 흥건히 묻어 있는 금색 창으로 땅을 짚고 선 제루엘은 일렁이는 검은 연기들과 불꽃들, 매캐한 냄새,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천족들과 마족들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싸움밖에 없는 제루엘이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괜찮은 건가.’

마법 공격에 그을린 여섯 장의 날개가 바람에 힘없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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