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70화
고요하다.
조나단 윌 감독은 마치 사방을 경계하는 미어캣처럼 (뒷자리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목을 쭉 빼고 상영관 내부를 살펴보았다.
적막하다.
새하얀 글자가 사라지고, 상영관이 밝아지고, 출구가 열렸는데도 다들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뭐지? 뭔가 잘못된 건가?’
역시……!
‘죽이든 살리든, 하나만 해야 했나 봐!’
준이 처음에 쉐도우맨을 죽이자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얼마나 경악했는가.
‘준! 미쳤어?!’
‘그래도 그 정도가 아니면 관객들이 윌리엄이 흑화한 걸 납득 못 할 것 같단 말이에요. 새로운 시리즈로 넘어가는 거니까, 세대교체도 확실하게 될 거고요. 그리고 다음 이야기에서도 좋은 소재가 되어줄 거예요.’
‘그, 그건 그렇지만…….’
조나단 감독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쉐도우맨 좋아하지 않았어?’
‘좋아해요. 그래서 더욱 쉐도우맨다운 끝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라며 인자하게 웃는 준에,
너 사실 진 나트라지! 하고 외치고 싶었던 조나단 감독이었지만 이내 납득하고는 시놉시스를 써 내려갔-
‘아무래도 안 되겠어.’
‘네?’
‘쉐도우맨 못 죽이겠어. 살릴 거니까 말리지 마, 준.’
‘안 말려요. 대신-’
준이 빙그레 웃었다.
그 눈빛은 라이언 감독과 혈연관계인 조나단 윌 자신보다 더 라이언 감독과 닮은 냉정한 눈이었다.
‘저부터 납득시켜봐요.’
‘……옙!’
아주 눈물겨운 싸움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히어로와 빌런의 대결이었다고나 할까.
빌런이 너무 대단해서 히어로가 몇 번이고 당하고 또 당했지만, 여느 히어로영화가 그렇듯 결국 히어로, 조나단 감독은 승리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준과 함께 고민하며 만든 쿠키영상과 마지막 문구가 추가되며, 되살아나게 된 쉐도우맨.
‘하지만…….’
조용한 상영관에 조나단 윌 감독은 초조해졌다. 너무 어이없게 되살렸나 싶었다.
‘그냥 준의 말대로 하는 편이 나았을까.’
자신의 생각이 틀렸나 싶어 조나단 감독의 고개가 아래로 내려가려던 순간.
짝-
하고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어, 조나단 감독이 고개를 들려던 찰나.
짝짝짝짝!!
휘이익-!! 휙!!
와아아악!!
미국인다운 격한 리액션들이 상영관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박수를 보내자, 다른 사람들도 벌떡 일어나 손바닥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열렬히 박수를 쳤다. 쉐도우맨이 죽었어! 하고 소리치던 어린 팬도 신이 나서 방방 뛰면서 와아악!!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조나단 감독이 멍하니 그런 관객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여긴 영화관인데, 무슨 영화제에서나 볼 법한 반응들이었다.
박수 소리는 조나단의 바로 앞자리에서도(감독을 찾으며 이를 갈던 그 관객 맞다.),
“조나단 윌 감독님! 사랑합니다!”
옆에서도 들려왔다.
“이야.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이런 건 언제 찍었대?”
제임스 랜던 촬영감독이 짝짝! 박수를 치며 조나단에게 물었다.
“아, 그게. 비밀리에 촬영하느라 시간이 안 맞아서 다른 감독님이랑 찍었어요.”
“그래? 아쉽네. 이건 내가 찍었어야 했는데.”
아쉽다는 제임스 랜던의 얼굴은 진심인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도 박수가 들려왔다.
바로 오른쪽.
라이언 삼촌이 앉아 있는 곳이었다.
……설마?
조나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는 조금의 기대와 조금의 의심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곧 조나단의 얼굴은 놀람과 기쁨으로 가득 찼다.
짝짝.
정말로 라이언 삼촌이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었다. 라이언 삼촌의 얼굴에는 미소도 지어져 있었다.
“잘 만들었구나. 조나단.”
“으헤헤헤.”
칭찬이 뇌를 스치기도 전에, 먼저 몸이 반응해 버렸다.
한평생 존경해왔던, 지금도 존경하는, 앞으로도 존경할 라이언 삼촌의 칭찬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응?”
삼촌조카의 대화를 웃으며 바라보던 제임스 랜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이언. 너 울어?”
“헤헤……엑?”
제임스 삼촌의 말을 듣고, 자세히 보니 라이언 삼촌의 눈가가 반짝이는 것 같기도 했다.
다른 관객들처럼 펑펑 우는 건 아니었지만, 진짜로 삼촌의 눈동자가 조금 벌겋게 변해 있었다.
놀라는 친구와 조카의 모습에 라이언 윌이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쉐도우맨의 팬이니까.”
그것도 코믹스가 나온 초창기 때부터의, 그리고 결국 직접 메가폰을 들어 영화화까지 해버린 아주아주 열성적인 팬이었다.
이제 히어로들의 세대교체로 더 이상 쉐도우맨을 보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그렇다고 죽여 버릴지는 몰랐지만.’
내색은 안 했지만 조금, 아니, 많이 움찔했던 라이언 윌이었다.
‘아마 준이 제안한 부분이겠지.’
그 아이는 설령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죽는다고 해도,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니까 말이다.
‘조나단은 겁이 많아서 못하지만.’
조카에게 박한 삼촌의 평가였다.
하여튼.
그렇게 쉐도우맨이 끝을 맞이하고 흑화했던 윌리엄이 히어로가 되며, 기존의 히어로의 이야기는 끝나고 새로운 히어로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Hero is forever]
[영웅은 영원하다]
‘……그걸 보고 울지 않을 팬이 있을까.’
라이언 윌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런 라이언 윌을 보며 제임스 랜던은 나중에 놀릴 생각이 가득했고(그냥 무시할 라이언 윌이었지만), 조나단 윌은 얼른 서준에게 이 굉장한 사실을 알리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런 와중에도,
으아아아악!!!
상영관 안은 미친듯한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 * *
그렇게 마지막 쿠키영상까지 모두 본 상영관들의 관객들이 영화관 직원들의 제지에도 광란의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 때.
새싹 송유정과 임예나가 있는 상영관의 관객들은 첫 번째 쿠키영상으로 넋이 나간 상태였다. 아니, 전국적으로 상영을 시작했으니 첫 상영을 본 전국의 관객들은 모두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엔딩 스크롤이 올라가니 이제 조용할 필요도, 휴대폰을 꺼놓을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관객들은 함께 온 지인들과 이야기하거나 [쉐도우&나이트] 게시판에 들어가 지금의 패닉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니. ㅅㅂ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오오! 다음 히어로팀 공개는 좋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새 팀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어셈블 해체라는 건가?
=그렇겠지. 쉐도우맨이 죽었으니까.
=아니! 진짜 왜 쉐도우맨이 죽냐고!?
-근데 납득은 감.
=ㅅㅂㅅㅂ 납득이 가서 반발도 못하겠음……!
=윌리엄 살리고 죽은 쉐도우맨ㅠㅠ진짜 한결 같다ㅠ
=빌런한테 당한 이유도ㅠㅠ이상웜홀 피해자란 걸 알아서 그런 거 아니야ㅠㅠ
=그냥 일반 빌런이었으면 이겻을 텐데ㅠ
-쉐도우맨이 쉐도우맨이라서 좋은데…… 이번엔 좀 비겁(?)해도 되지 않았나 싶다아아아아!!
=22 캐해석 너무 잘해서 내가 죽을 것 같음.
=33 그냥 캐릭터 붕괴해주라.
=44 눈 감고 있을게. 캐붕해줘ㅠㅠ
게시판에 붙은 ‘스포주의’라는 문구에도, 스포일러를 봐도 영화 관람에 지장이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게시판에 들어온 사람들 또한 공황상태에 빠졌다.
-누가, 누가 죽어요??
=쉐도우맨 죽음.
=……예? 뭐라고요?
=(쩌렁)쉐도우맨 죽었다고!(쩌렁)
-ㅅㅂ 갑자기 왜 쉐도우맨이 죽냐고오!!
=나도 몰라! 빌런이 죽였다고1!!
=게시판 들어오자마자 본 글>> 쉐도우맨 살려내
=난 >> 쉐도우맨이 죽었다ㅎ 여긴 꿈 속인가ㅎㅎ
=ㅎㅎ에 가득 담긴 해탈이 느껴짐.
-ㅅㅂ진짜 쉐도우맨 죽었어요?
=네^^ 퍼스트 국장이 ‘아주 친절하게’ 생명 반응 없다고 확인사살까지 해줘요^^
=ㅁㅊ????
-쿠키영상은요??
=일레귤러스라고 어셈블 다음 시리즈 예고하고 지금 엔딩스크롤만 올라가고 있어요^^ 아주 기네요^^
문장은 상냥한데, 그 안에 담긴 글쓴이들의 감정은, 단단한 철근까지 아작아작 씹어먹을 듯이 아주 거칠었다.
-이번에도 영화객이 영화객했구나.
=ㄴㄴ 영화객도 이건 예상 못 했을 듯.
=22 누군가 죽을 거라는 건 알았지만, 그게 쉐도우맨일 줄이야!
-쉐앤나 리뷰 때 그랜절부터 박고 시작할 것 같다.
=22 이건 그랜절 박고 시작해야 한다.
=33 섣부른 영화객의 말이 이런 후폭풍을 불러온 거야!
=……시간상으로 따지자면 영화가 먼저 완성됨.
=아니다! 이놈아! 영화객 잘못이다!! 다 영화객 잘못이야!!
=그래 봤자 죽은 쉐도우맨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ㅠㅠㅠ
=으아아아ㅠㅠ
-잠깐. 뭐 나오느넫?
오타를 낸 것도 모르고, 관객들은 변화하는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래!
여기에서 끝내진 않겠지!
하고 다들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달리,
[SHADOW &(/) KNIGHT]
[──&(/) KNIGHT]
▼
←―――――┼
[KNIGHT JIN]
또 하나의 확인사살이었을 뿐이었다.
사라진 글자, ‘SHADOW’에 모두 영혼이 날아간 듯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두드렸다.
-이거 감독이 누구냐?
=조나단 윌. 33살. 미국인. LA태생. 현재 직업 영화감독. (조나단 윌 사진)
=그렇군.
=그래.
=오케이.
-;;;갑자기 다들 뭔가 달라진 듯?
=아ㅎㅎ별거 아니에요. 그냥 아침, 점심, 저녁으로 누가 죽어도 모를 만한 음식을 먹이고 싶은 사람이 생겨서요ㅎㅎ
=겸사겸사 같이 격한 스포츠도 좀 하고. 인원수가 많아서 1 vs 8520만 명쯤 될 것 같은데.
=조나단 감독이라면 괜찮아! 이런 영화를 만든 아주 배짱 있는 감독인걸!
=22 팔다리 부러져도 내가 고칠 수 있으니까 걱정마셈.
-뭔데? 무슨 일인데???
=……쉐도우맨이 죽었어ㅠ진짜 죽었어ㅠㅠ쿠키영상으로 아주 땅땅땅! 결론 내버림ㅠㅠㅠ
=ㅅㅂ 이제 더 나올 쿠키영상도 없다고요ㅠ
=??진짜 쿠키영상 끝이야??
=몰라. 기사도 안 냈는지 이런거 밖에 없어ㅠㅠ(링크)
[제목: 쉐도우앤나이트 쿠키영상은 몇 개?]
안녕하세요!
마린사의 쿠키영상은 모두 꼭 챙겨볼 만큼 중요한 영상들이죠? 그래서 오늘은 쉐도우앤나이트의 쿠키영상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먼저 쉐도우맨1의 쿠키영상은……
(중략)
지금까지 신작 영화 ‘쉐도우앤나이트’의 쿠키영상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ㅅㅂ그래서 쿠키영상은 몇 개냐고.
=저주한다! 블로그!
=이모티콘 보자마자 껐다.
=ㅋㅋㅋㅋㅋ(안웃김)
-이제 생각난 건데ㅋㅋ조나단 감독 인터뷰에서 ‘시놉시스는 준이 함께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것도 엄청 많이. 전 세계 인터뷰에서 빠짐없이.
=……서준아?
=……서준이 네가 여기서 왜 나와???
-납득.
=납득하지 말라고ㅠㅠ
=근데 생존자들 감독판이랑 MOEB 보면……
-왜 그렇게 ‘준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하고 외치고 다녔는지 알겠다.
=22 다 살기 위한 발버둥.
=이제 2 vs 8520만 명의 싸움인가.
=ㄴㄴ새싹들을 들이부어.
=새싹들이 몇 명이더라?
=그냥 우리가 진다고 생각하면 됨ㅎ
-감독이랑 배우가 친하니까 서로를 칭찬하는 이렇게 훈훈한 장면도 나오는구나. 하고 웃으면서 인터뷰 봤는데…… 그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던 장면이었을 뿐이고요.
=이제 인터뷰 보면 다르게 보일 것 같다ㅋㅋㅋㅋ(안웃김)
=그렇게 인터뷰할 거면 왜 쉐도우맨을 죽였냐고ㅠㅠ
-근데 영화가 잘 만들어지긴 했어ㅠ
=22그래서 더 미치겠다고ㅠㅠ
=33 N차 뛰면서도 계속 울 것 같다.
=44 평생 울면서 정주행하겠지.
=55 쉐도우맨1만 봐도 쉐앤나 생각나서 눈물이 줄줄 흐를 것 같음.
-……근데 왜 불이 안 켜지지?
누군가의 글에 상영관의 관객들이 모두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송유정과 임예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게.
왜 불이 안 켜지지?
“아직 뭐가 남아 있나?”
“……그런 거 아닐까? 지금까지 기다리다니, 영화는 이미 끝났단다. 하고 말하는, 되게 허무한 쿠키영상.”
아…… 차라리 없는 게 나은, 그 허무한 쿠키영상.
잠시 기대했던 게 바보 같았다.
모두 코를 훌쩍이며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눈물에 젖은 휴지도 챙기고, 우느라 못 먹은 팝콘과 음료수도 챙기고. 움직임 하나하나에 영혼이 없었다.
관객들이 거의 좀비처럼 움직이던 그때.
마린사의 로고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엔딩스크롤이 끝났다.
“……갈까?”
누군가 그렇게 미련이 가득 남은 얼굴로 의자에서 일어날 때.
스크린이 밝아졌다.
“……어?”
소중한 이를 잃은 소년은 달릴 준비를 시작했다.
“어어?”
죽었다고 생각한 남자는 살아돌아와 소년의 옆에 섰다.
“어어어?!”
그리고,
[Hero is forever]
[영웅은 영원하다]
끄아아아악!!!
상영관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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