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69화
[쉐도우앤나이트]는 마린사의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들처럼 전 세계 동시개봉 중이었다.
때문에 날짜는 다르지만 미국에서도 개봉한 상황.
가장 첫날 보기 위해 온 사람들로 상영관이 가득 찼다.
그 자리에, 세 사람이 있었다.
[쉐도우앤나이트]의 촬영감독, 제임스 랜던.
[쉐도우앤나이트]의 감독, 조나단 윌.
그리고,
[쉐도우맨]의 감독, 라이언 윌.
‘……어쩌다 이렇게 됐지?’
조나단 윌은 멍청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삼촌과 함께 보러 올 생각은 없었는데. 따로 보려고 했는데!
조나단 윌은 마치 고장 난 인형처럼 고개만 돌려 옆자리에서 낄낄대는 제임스 랜던을 바라보았다. 영화표 세 장을 예매했다고 집으로 쳐들어온 이 삼촌이 원흉이었다.
뜨겁다못해 불타오르는 조나단 윌의 눈빛에 제임스 랜던이 크흠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삼촌의 뒤를 이어 조카가 만든, 기념할 만한 영화니까 같이 봐야지.”
암. 그렇고말고.
자신이 한 말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제임스 랜던. 하지만 흐흐흐 웃는 얼굴이, 그게 진심이 아닌 것 같았다.
[쉐도우앤나이트]의 촬영을 감독했던 제임스 랜던은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저 조나단 윌을 놀릴 마음이 가득한 것이었다.
“제임스 삼촌……!”
“조용. 시작한다.”
타이밍도 더럽게 안 맞는다.
라이언 감독의 말에 입을 다문 조나단 윌은 눈빛으로 온갖 험한 말을 하며 제임스 랜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조나단.’
어두워서 안 보여.
불이 꺼진 상영관에, 제임스 랜던은 소리 없이 낄낄 웃으며 고개를 돌려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조나단 윌 감독의 생지옥이 시작되었다.
윌리엄에게 정체가 밝혀지는 쉐도우맨이나 그림자 친구 제이의 등장에 들썩이는 관객들을 살펴볼 여유는 없었다. 온 신경이 옆자리에 앉은 라이언 삼촌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이 나왔다.
윌리엄을 탈출시킨 쉐도우맨이 눈을 감는 장면이었다.
“……죽었어……?”
누군가가 뱉어낸 혼잣말이 들려왔다.
정말 작은 목소리였지만, 충격을 받은 관객들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상태였는 데다, 심각한 장면이라 에반 블록의 연기에 집중시키기 위해 배경음악도 넣지 않은 터라 아주 잘 들렸다.
‘왜 그랬을까!’
그냥 슬픈 음악을 크게 삽입할걸!
하지만 저게 가장 좋은 연출인걸!
조카 조나단 윌과 감독 조나단 윌이 머릿속에서 싸워댔다.
조나단이 옆자리에 앉은 삼촌을 슬쩍 바라보았다.
“…….”
라이언 삼촌은 아무 말도 없이 언제나 그렇듯 담담한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는 게 더 무서웠다.
‘준은 모르겠지. 내가 지금 이런 상황이라는 걸…….’
왠지 알았어도, 위로는커녕 제임스 랜던처럼 낄낄 웃었을 것 같았다.
-제이…… 제발……!
스크린 속에서 울고 있는 윌리엄과, 그걸 보며 펑펑 우는 관객들.
조나단 윌은 다른 의미로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한고비.
아니, 무수한 고비를 넘기고.
‘넘긴 건지 뒤로 미룬 건지 모르겠지만…….’
마치 하루 치씩 쌓여 있는 숙제를, 마지막 날에 몰아 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반쯤 해탈한 조나단 윌이 조용히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하여튼.
시간은 흘렀다.
……흐르긴 흐르더라.
마린사의 요청으로 삽입한 [어셈블 시리즈] 다음으로 나올 시즌2 히어로들의 영화인 [일레귤러스 시리즈]의 예고편 격인 쿠키영상이 흘러나오며,
영화가 끝났다.
스태프들의 이름과 CG팀, 사운드팀, 미술팀 등의 이름이 나오며 나머지 엔딩스크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영화 내내 최대한 조용히 하려고 노력했던 관객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진짜 죽은 거야?”
움찔.
“아니겠지. 아닐 거야…….”
움찔.
“쉐도우맨이 죽었어어!”
움찔!
나이가 어린 팬도 있었나 보다.
그 솔직하고도 직설적인 목소리에, 다른 관객들도 하나둘 외면하던 사실을 마주했다.
쉐도우맨이 죽었다.
쉐도우맨이 죽었다!
순식간에 상영관이 시끄러워졌다.
스크린에서는 엔딩스크롤이 올라가고, 스피커에서는 오늘 영화에 나왔던 음악들이 흘러나오고, 관객들은 함께 온 일행들과 격하게 이야기를 하거나 휴대폰을 들고 무언가를 두드리고.
“감독…… 조나단 윌……!”
앞자리에서 들려오는, 한 글자 한 글자 씹어먹을 듯한 원망 서린 목소리에, 조나단 윌 감독이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여기서 정체가 밝혀지면, 유럽 축구 광팬인 훌리건 못지않은 쉐도우맨의 팬들을 만나게 될 것 같았다.
“너 당분간 인터넷 보면 안 되겠다. 나갈 때도 조심하고.”
“……안 볼 거예요.”
그렇게 대답한 조나단 윌이 옆자리를 살폈다.
라이언 삼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엔딩스크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지.’
아직 더 남았는데.
조나단 윌 감독은 편집하던 과거의 자신을 찾아가 목을 졸라버리고 싶었다.
으아아아! 너!(나지만) 왜 그랬어!
“뭐가 나와요! 아직 안 끝났나 봐요!”
누군가 외쳤다.
그에 모두 동시에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무서운 반응속도였다.
그 외침대로 엔딩 스크롤이 올라가고 있던 스크린이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두 번째 쿠키영상인가?”
“그래! 이렇게 끝나면 안 되지!”
제발! 제발!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검은 바탕 위로, 새하얀 글자가 나타났다.
[SHADOW & KNIGHT]
이번 영화의 제목이었다.
그 제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SHADOW &(/) KNIGHT]
‘SHADOW 쉐도우’와 ‘KNIGHT 나이트’의 사이를 사선(/)으로 나누고 있던 ‘&’이 길쭉하게 늘어나며 옆으로 눕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SHADOW 쉐도우’라는 글자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
관객들이 눈과 입을 크게 벌리고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아니, 잠깐만?
저게 왜 사라져?
뭐라고 반응할 틈도 없이.
조금 전까지 ‘SHADOW’라고 적혀 있던 글자는 사라지고, ‘&’은 나이트 진이 사용하는 검 디자인으로 변해 제목의 위( ̄)에 올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시리즈의 이름이 나타났다.
←―――――┼
[KNIGHT JIN]
타이밍에 맞춰 두두둥! 나이트 진의 OST가 흘러나왔다.
모두 넋을 잃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이야.”
이건 미처 몰랐던 제임스 촬영감독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주 확인사살을 해버리는구만.”
조나단 윌 감독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 * *
←―――――┼
[KNIGHT JIN]
글자가 사라지고, 스크린에서는 다시 엔딩스크롤이 올라가기 시작했지만, 관객들의 분위기는 이미 상영관을 나간 것 같았다.
아니, 영혼이 몸을 나간 것 같았다.
“쉐도우맨이…… 쉐도우맨이…….”
“쉐도우가……!”
여기가 영화가 상영되는(물론 다 끝났지만) 상영관인지, 아니면 떠들어도 되는 바깥인지 모를 정도로 감상을 나누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감독. 감독이 누구야?”
“조나단 윌 감독이래!”
“재미있긴 했지만 결말이 왜……!”
“준도 같이 만들었다는데?”
“배우가 얼마나 힘이 있겠어! 다 감독이 하는 거지!”
아닙니다. 아니에요.
의견을 낸 건 준이에요.
하지만 동의한 이상 공범인 조나단 감독은 변명할 말이 없었다.
“흐음.”
화들짝!
처음으로 반응을 보인 라이언 감독에 조나단 윌이 몸을 떨었다.
그에 이 상황을 만든 제임스 랜던 촬영감독이 낄낄 웃었다.
‘자기 삼촌을 그렇게 보고도 모르나.’
물론, 라이언 감독이 어렸을 때부터 영화화하고 싶어 했고, 소중하게 생각해온 [쉐도우맨]이긴 했지만, 시리즈를 완성시키고 난 이후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낸 느낌이랄까.
지금도 오히려 ‘조나단 윌’이라는 감독이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는지만을 신경 쓰고 있을 터였다.
‘만족한 것 같지?’
오랜 친구다.
라이언 감독이 만족했다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평소의 조나단 윌도 알아볼 수 있는 표정이었지만, 너무 쫄아서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제임스 랜던이 킬킬 웃고 있을 때.
조나단 윌이 쫄고 있을 때.
라이언 감독이 만족스러워하고 있을 때.
마린사의 로고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엔딩스크롤까지 모두 끝났다.
“……진짜 이렇게 끝난다고?”
어디선가 허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의 마지막에라도, 두 번째 쿠키영상이 나올 거라며 끝까지 남아있던 관객들(한 명도 나가지 않았다.)이 아득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미련이 남아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던 그때였다.
그에 답하듯 스크린이 밝아졌다.
툭툭.
운동화 앞부분으로 바닥을 두 번 두드리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으아…… 읍!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려던 관객들이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상영관을 나가려던 사람들도 얼른 자리에 앉았다. 자신의 자리까지 갈 수 없었던 사람들은 계단에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모두 그렇게 스크린만을 바라보았다.
카메라가 천천히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
익숙하게 스트레칭을 하는 소년. 그리고 소년의 움직임에 맞춰 자신들도 스트레칭하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는 두 개의 그림자.
윌리엄과 제이, 파트너였다.
“그럼 출발해 볼까. 제이, 파트너?”
그래!
하고 대답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윌리엄이 앞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앞에는 오른쪽 길과 왼쪽 길이 있었다.
항상 가던 오른쪽 길은 맥과 만나던 벤치가 있는 길이었다.
“……왼쪽 길로 가자.”
아직 조금 힘든 듯한 표정으로, 윌리엄이 발을 옮기려던 그때.
“오른 길로 가야지.”
뒤에서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였다. 그에 윌리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환청인 듯했다.
죽은 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환청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빌런이 나타나 자신을 현혹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바로 나이트 진이 되어…….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윌리엄은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거기에.
“……맥!!”
환하게 웃고 있는 쉐도우맨, 맥이 있었다.
자신이 너무 그를 그리워해서 보이는 환상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든 윌리엄을 그대로 달려가 맥을 껴안았다.
따뜻하다. 온기가 느껴진다. 숨소리가 들린다.
살아…… 있다.
으아아아!!
저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온 윌리엄과, 그런 윌리엄을 토닥여주는 맥이었다.
* * *
항상 앉던 벤치에 앉은 윌리엄과 맥.
“몸은 괜찮으세요?”
“괜찮아. 다친 곳은 다 나았어. 이제 쉐도우맨으로 활동하기 힘들겠지만.”
“아…….”
들떠 있던 윌리엄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계승으로 자신에게 힘을 넘겨주는 바람에 이제 쉐도우맨은 거의 일반인이 되어버렸다.
그때, 윌리엄의 그림자에서 제이와 신나게 움직이던 파트너가 또 사고를 쳤다.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그림자를 길게 늘여 맥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파트너. 그런다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건 아니…… 아닐 텐데, 왜 힘이 돌아왔지?”
말을 하던 맥이 원래대로 돌아온 자신의 힘에 눈을 크게 떴다.
“맥! 제 힘이 줄어들었어요!”
윌리엄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계승으로 생긴 능력은 그대로인데, 파트너만 빠져나간 것 같아요!”
다른 때라면 기뻐할 일이 아니었지만, 그 이유가 쉐도우맨 때문이라면, 쉐도우맨이 힘을 되찾은 것이라면 충분히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인지.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는 맥에게 소년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제 쉐도우맨으로 활동할 수 있는 거죠?”
그에 소년의 영웅이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계속해야지.”
카메라가 벤치에 앉아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이내 새까맣게 변하며, 새하얀 글자가 나타났다.
[Hero is forever]
[영웅은 영원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