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66화
빛나는 별들로 가득한, 광활한 우주.
그곳을 가로지르는 소행성 무리가 있었다.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그저 우주의 법칙에 따라 빠르게 이동하는 돌덩이들.
그때 그 많고 많은 돌덩이 중 하나가 무리를 이탈했다.
무언가에 부딪혀 튕겨 나온 것인가. 아니면……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홀로 무리에서 벗어난 돌덩이는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도착 장소는, 지구였다.
[이상 에너지 포착.]
지구로 다가오는 돌덩이의 모습이 거대한 모니터 화면에 나타났다.
카메라가 돌아갔다.
그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지구 방위 기관, 퍼스트의 테일러 워런 국장과 그 요원들이었다.
“추락 지점은?”
“네바다주입니다.”
대략적인 위치가 잡히고 테일러 국장은 요원들을 출동시켰다.
그리고 본부에 있는 연구원들과 함께 ‘이상 에너지’와 비슷한 부류의 에너지가 포착된 적은 없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퍼스트의 감시 아래.
정체불명의 돌덩이는 마치 혜성처럼 긴꼬리를 남기며 미국 네바다주로 떨어졌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퍼스트 요원들의 손에 무사히 회수되었다.
이번 사건의 원인이 될 게 분명한 저 ‘돌덩이’가 무엇인지, 송유정과 임예나, 그리고 사람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하려고 할 때, 스크린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뉴욕주]
밝은 음악과 함께, 어디에서나 볼 법한 이층집이 나타났다.
“아직 멀었니?”
“잠시만요! 엄마!”
들려오는 목소리에, 관객들은 귀를 쫑긋 세우며 눈을 반짝였다.
“먼저 드세요!”
우당탕탕!
2층에서 들려오는 큰소리에 엄마 아빠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 일로 늦잠을 잤대?”
“곧 야구 시합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아빠의 말에 엄마가 대답했다.
어느 가정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모습에, 관객들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감격의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야구 하는구나. 윌리엄!’
장하다. 아주 장해.
그렇게 관객들이 감동을 느끼고 있을 때, 아빠가 켠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네바다주에 떨어진 운석에 관한 뉴스였다.
아. 그랬지.
영화는 이제 시작했을 뿐이었다.
저절로 예고편들이 떠올라, 관객들은 다른 이유의 눈물을 찔끔 흘렸다.
왜 우리 윌리엄은 행복해질 수가 없는 거야.
그때, 1층을 카메라가 계단 쪽으로 향했다.
[쉐도우맨 시리즈]를 봤다면 모두가 기억할 수밖에 없는 지하 신전의 장면과 같은 구도.
긴장감을 자아냈던 ‘진 나트라’의 모습이 떠올라 반사적으로 관객들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지만, 그 무거웠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가벼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실내화를 신고 있는 남자는 가볍지만, 어쩐지 기품 있는 발걸음으로 2층 계단을 내려왔다. 고정된 카메라 화면으로 실내화를 신은 발, 캐주얼한 바지, 그리고 편하게 입은 상의가 보였다.
아래에서 위로.
조금만 더 있으면 얼굴이 보일 것 같았는데, 카메라는 곧바로 남자의 뒷모습으로 위치를 옮겨갔다.
남자의 한쪽 어깨에 매달린 백팩이 달랑달랑거렸다. 잘 정돈된 머리카락과 큰 키, 그리고 듬직한 뒷모습만 봐도 잘생김이 느껴졌다.
그렇게 남자의 뒷모습을 찍고 있던 카메라가 천천히 옆으로 돌아, 남자의 얼굴을 화면에 담았다.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부드러운 검은 머리칼에, 소년미가 넘치는 미모, 쾌활하고 그늘 한 점 없는 밝은 미소까지.
환하게 웃는 윌리엄의 모습에,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소리 없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게다가 이렇게 밝게 웃는 윌리엄이라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관객들은 하나둘 주섬주섬 휴지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 * *
당연한 이야기지만,
윌리엄은 고등학교에도 다녔다.
그것도 딱 봐도 교내 인싸들로 보이는 학생들과 아주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고, 꺄아악! 하고 들려오는 여학생들의 환호성에 윌리엄의 인기도 알 수 있었다.
‘우리 애가 학교를 다녀요! 친구들도 있어요!’
그렇게 외치고 싶었던 송유정과 임예나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
윌리엄은 야구부 친구들과 함께, 2주 후에 있을 시합에 대해 이야기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상대 팀 투수가 그렇게 잘한다며?”
윌리엄의 물음에 투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 이번에 LA에서 전학 왔는데 곧바로 주전이 될 정도로 대단하다고 하더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윌리엄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식당 한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윌리엄의 시선이 향한 식당 구석, 한눈에 봐도 범생이와 괴짜 같은 두 학생이 앉아, 점심을 앞에 두고 제 나름대로 격렬하게, 그러나 다른 사람이 들을까 싶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나 잠시만.”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윌리엄 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딱 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와 긴장감이 흐르는 음악에, 관객들의 눈동자도 불안해졌다.
……윌리엄이잖아? 진 나트라 아니지? 그치?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범생이와 괴짜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고개를 들었다. 학교의 인기인인 윌리엄 리가 두 사람에게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새 조용해진 학생식당.
그걸 인식하지 못한 윌리엄 리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쉐도우맨을…….”
……응?
“……봤다고?”
……뭐라고?
예상도 못 한 말에 벙쪄 있는 관객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크린 속 윌리엄은 어느새 상기된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진짜?! 어디서 봤어?! 실물은 어땠어? 나도 쉐도우맨 만나보고 싶은데 한 번도 못 만났거든! 목격자들이 찍은 영상도 너무 빨리 지나가서 잘 못 봤어. 와! 근데 진짜 쉐도우맨을 본 사람을 만날 줄이야! 그림자를 조종한다던데 그것도 봤어?”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열정적인 윌리엄의 모습에, 어디서 봤지? 하고 갸웃하던 송유정과 임예나는 금세 답을 알아차렸다. 덕토크를 나눌 때의 자신과 친구의 모습이었다.
……윌리엄. 쉐도우맨 팬이었구나.
그것도 아주 열정적인.
묘한 기분이 들면서도, 신나게 쉐도우맨에 대해 이야기하는 윌리엄의 모습에 급 친근함을 느끼게 된 두 사람과 관객들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 * *
그렇게 윌리엄이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무렵.
퍼스트 본부, 중앙연구실.
퍼스트의 테일러 국장이 몇 주 전 네바다주에 떨어진 운석의 분석 자료를 살펴보며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때, 일하다 불려온 맥이 나타났다.
크으! 쉐도우맨!
이게 몇 년 만의 쉐도우맨이냐!
관객들은 상기된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윌리엄과 쉐도우맨이 함께 등장하는 영화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죠? 테일러?”
“며칠 전 운석이 떨어졌다는 소식은 들으셨죠, 맥.”
“그렇습니다만.”
맥이 테일러 국장이 가리키는 운석을 향해 다가갔다.
“벨 나트라에게 도움을 요청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주는 아무래도 그분이 자세히 알고 계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벨 나트라!? 벨 나트라도 등장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 쿠키영상에서도 나왔다. 목소리뿐이었지만 말이다.
나트라 패밀리가 모이는 건가!
생각하며 관객들은 들뜬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 * *
배경이 공원으로 바뀌었다.
[매드해터] 쿠키영상을 여러 번 본 사람들은 금방 알아차렸다. 그곳이었다.
푸른 잎이 가득한 나무들과 파릇파릇한 잔디, 넓은 호수와 호수를 둘러싼 러닝트랙이 있는 공원. 이 동네에는 ‘그 아이’가 살고 있었다.
잘 지내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자신의 일에만 전념하려고 해도 어느새 이 근방을 떠돌고 마는 맥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그 아이가 가족과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모습을, 아주아주 가끔 친구와 싸우고 우는 평범한 모습을 볼 때면 머나먼 곳에 있는 ‘그 아이의 잊혀진 가족’에게 전하고는 했다.
맥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서준과 서은혜, 이민준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들이 윌리엄의 부모(멜리사 월튼과 조성환)의 얼굴로 합성되어 과거 회상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는 꼬마 윌리엄(서준)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 때문에 관객들도 윌리엄이 행복하게 자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그 아이가 주말 오전마다 이 공원에서 러닝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맥이었다.
“……나는 산책 나온 거야.”
읽지도 않을 책을 들고 벤치에 앉은 맥이 변명하듯 중얼거릴 때, 통신기로 벨 나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랑 나는 나트라에 있으니까 나트라 시간으로 계산해야지. 그러니까 자주 와. 올 거지, 맥? 매액?! 뭐야. 또 끊어진 거야?
“잠깐만.”
탁탁탁-
발소리는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맥은 미소를 지으며 무릎에 올려두었던 책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그 아이의 잊혀진 가족’에게 말했다.
“그 애가 오고 있어.”
-……오…….
이어폰에서 조금 늦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물기가 섞여 있는 듯했다.
송유정과 임예나도 벨 나트라와 같은 마음으로 탄식했다.
He′s coming.
쿠키영상 때부터 들었던 대사였지만, 이렇게 들으니 느낌이 전혀 달랐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란 윌리엄. 다가갈 수 없는 맥과 벨 나트라.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기뻐하고 만족스러워하며, 또 그리워하는 둘이었다.
어둠은 전혀 없고 햇살만이 아이를 비추고 있는 듯한 모습에 맥은 숨 쉬는 것도 잊고 바라보았다.
윌리엄이 지나가고.
잠시 가볍고도 무거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그 애는 어때?
“잘 지내고 있어.”
어느새 사라져 버린 윌리엄의 뒤를 바라보던 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 야구 쪽으로 진로를 정한 모양이야. 다음 주에는 다른 학교랑 경기도 하는데 스카우트들도 많이 올 거라는 모양이더라. 나도 구경하러 가려고.”
야구장에서의 윌리엄은 얼마나 행복한 모습일지.
상상만 해도 미소가 지어졌다.
-맥…… 있잖아…….
벨 나트라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너 완전 스토커 같은데……?
“?! 아니야! 이건 꽤 유명한 이야기라고! 네가 지구, 아니, 미국인들이 야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재능 있는 선수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프로에서 노리고 팬들도 있을 정도야! 기사도 나고!”
-어…… 음…….
“네가 여기 하루만 있어도 알 수 있는 정보라니까!”
미국인들의 야구 사랑에 대해 전혀 이해 못 하는 외계인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지구인(사실은 외계인).
그 모습에 아련한 눈빛으로 나트라 패밀리의 만남 아닌 만남을 보던 관객들이 빵 터지고 말았다.
* * *
야구 시합날.
응원석에서 유독 눈에 띄는 막대풍선들과 부모님을 보며 웃던 윌리엄은 경기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4회 말][0-0]
팽팽하다.
“저쪽 투수가 잘하긴 해.”
“LA에서 왔다고 했지? 우리 학교로 오지…….”
친구들의 말에 벤치에 앉아 있던 윌리엄이 마운드에 서서 모자를 매만지고 있는 투수를 바라보았다. 프로라고 해도 될 법한 큼지막한 체격에 솜씨도 그에 못지않았다.
“윌리엄!”
“예.”
감독의 부름에 대답한 윌리엄이 가볍게 몸을 풀고 걸음을 옮겼다.
팡! 팡!
타석에 들어서자, 어쩐지 관객석에서 들려오는 응원 소리가 더욱 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윌리엄!”
“4번 타자! 파이팅!”
……기분 탓이 아닌가 보다.
유난히 크게 들리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가볍게 미소를 지은 윌리엄이 배트를 들어 올려 자세를 바로잡았다. 미소를 짓고 있던 얼굴이 진지해졌다.
화면이 바뀌었다.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오던 드론 카메라가 마운드 위의 투수를 비추었다.
그때 투수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모자를 들어 올렸다.
!!!
투수의 얼굴을 본 송유정과 임예나, 관객들이 눈을 부릅뜨며 입을 쩌억 벌렸다.
이서준의 팬이라면 모를 수 없는, 서준의 친구이자 유명한 메이저리거 선수.
잭 스미스였다.
아니, 잠깐만.
여기서 왜 진짜 야구 선수가 나와?!
하지만 경악은 잠시.
배트를 들어 올리는 윌리엄의 모습에 관객들은 빠르게 영화에 집중했다.
집중하는 윌리엄의 시선에서 보는 듯, 상영관의 스피커도 조용해지고, 스크린으로 보이는 투수의 움직임도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느릿하게 보였다.
투수의 오른팔이 힘껏 뻗어졌다.
새하얀 공이 빠르게 날아오고,
윌리엄은 배트를 힘차게 휘둘렀다.
따앙-!
시원하다 못해 통쾌한 소리가 상영관을 울리고. 그와 함께,
와아아악!!!
야구장을 울리는 관객들의 환호성이 스피커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홈런!!”
홈런이었다.
벤치에 있던 베이런 고등학교의 선수들과 코치, 감독이 나와 홈으로 들어오는 윌리엄을 격렬하게 반겼다.
영화를 보던 관객들도 시원한 홈런이 주먹을 꽉 쥐었다.
야구 영화를 보는 것처럼 몰입한 상태였다.
그때였다.
파아아악!!!
검은색 무언가가 야구장 사방에서 기둥처럼 위로 쏟아 올랐다. 그리고는 그물처럼, 거미줄처럼 서로를 이어붙이기 시작했다.
“저게 뭐ㅈ……?”
하늘을 새까맣게 물들이 그것에 누군가 의문을 같기도 전에, 사람들은 또 다른 것을 발견했다.
하늘 저편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그것.
회색의 비행물체가 뒤꽁무니에 새까만 연기를 내뿜으며 야구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꺄아아악!!
상황을 이해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도망쳐라!”
감독님의 외침에 야구팀 친구들과 함께 대피하던 윌리엄의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두근거렸다.
그게 불안과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그림자를 조종하는 누군가 때문인지.
윌리엄만이 알 터였다.
* * *
주위가 어두웠다.
조금 전까지 팀원들과 움직이고 있던 윌리엄은 어렴풋이 들리는 여린 울음소리에 홀로 떨어져나와, 그 울음소리를 낸 아이를 구해 탈출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또 다른 미아를 안고 있는 상대팀 투수도 만나게 되었다.
“……일단 탈출부터 하자.”
윌리엄의 말에 상대팀 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두 소년이 두 아이를 안고 탈출구로 향하던 그때,
쿠구구궁-
커다란 소리와 진동과 함께, 상대 팀 투수와 윌리엄 사이로 천장과 벽이 무너져내렸다. 어른은커녕 어린아이도 통과할 수 없는 조금의 틈들만 남기고.
“너 혼자서는 힘들어! 아이도 있잖아! 일단 너부터 나가! 아까 왼쪽으로 돌았던 곳 있지? 거기서 직진하다가 왼쪽으로 가면 좀 돌아가겠지만, 출구가 있을 거야!”
윌리엄의 말에 상대 팀 투수가 외쳤다.
“……젠장! 기다려! 사람들 불러올 테니까!”
타다닥!
뛰어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영화가 끝난 후 돌이켜보면 [생존자들]이 떠오를 만한 장면이었지만, 지금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면과 외면 모두 강하고 든든한 ‘윌리엄 리’의 굳세고 강인한 분위기와 눈빛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히어로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흐으응…… 무서워…….”
“괜찮아.”
무너져내린 틈으로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만이 비치는 어둠 속.
무서움과 불안함에 자신의 유니폼 자락을 구명줄처럼 꽉 잡는 아이를, 윌리엄은 미소를 지으며 토닥였다.
“내가 꼭 엄마 아빠한테 데려다줄게.”
윌리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단했다. 믿음직스러웠다. 정말로 그렇게 해줄 것만 같아, 훌쩍이던 아이는 진정해갔다.
“제…….”
툭-
바닥을 보며 무어라 말하려던 윌리엄은 돌이 떨어져 내린 듯한 소리에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막혀 있던 오른쪽 길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쉐도우맨이었다.
윌리엄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 쉐도우맨.
물론 그림자 같다고 생각한 검은 기둥들이 쏫아 오를 때부터 짐작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어쩐지 가면을 쓰고 있는 쉐도우맨도 매우 놀란 듯 보였다. 충격을 받은 듯 그대로 굳어버려 숨 쉬는 것까지 멈춰 버린 듯했다.
자신이야 히어로인 쉐도우맨을 봐서 그렇다지만, 쉐도우맨이 그저 일반인일 뿐인 자신을 보고 놀랄 이유가 있을까?
‘착각인가?’
윌리엄은 가면을 쓰고 있는 쉐도우맨과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든 것 같았다.
묘하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분.
심장이 느리게 뛰었다가 빠르게 뛰었다가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무언가의 기억이 수십 개의 자물쇠로 굳게 잠긴 듯한…… 아니, 아닌가? 자물쇠로 잠길 만한 기억이 나한테 있을 리가. 그럼…… 데자뷔?
정적과 함께, 윌리엄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물들 때였다.
“쉐도우맨!”
윌리엄이 안고 있던 아이가 외쳤다.
“……이쪽으로 가면 된다.”
정신을 차린 쉐도우맨이 왼팔을 들어 올려, 조금 전 막혔던 복도 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길이 막혀서…… 와아……!”
“와아아!”
윌리엄의 말과 동시에, 쉐도우맨의 발밑에서 뻗어 나온 검은색 그림자가 카펫처럼 바닥에 펼쳐졌다.
마치 그림자로 터널을 뚫는 듯한, 그야말로 그림자로 만들어낸 통로였다.
“그림자를 쭉 따라가렴.”
“네! 감사합니다. 쉐도우맨!”
“고마워요!”
꾸벅 인사를 한 윌리엄이 아이를 안고 그림자 통로로 발을 디뎠다.
타다닥!
잠시 아이를 안고 달려가는 윌리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쉐도우맨은 몸을 돌려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꼭 엄마 아빠한테 데려다 줄게.’
그말이 쉐도우맨의 가슴에 깊게 남았다.
* * *
쉐도우맨을 뒤로한 윌리엄은 아이를 안고 달렸다.
쉐도우맨의 그림자로 만들어진 통로는 빛 한 점 비치지 않아 어두웠다.
윌리엄의 품에 안긴 아이는 그 어둠을 두려워하는 듯했지만, 윌리엄은 전혀 달랐다. 두려움은커녕 믿음과 신뢰가 가득한 얼굴로, 거칠 것 없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통로를 달렸다.
윌리엄이 아이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이 그림자 통로가 자신을 밖으로, 부모님에게로 무사히 데려다 줄 것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봐라.
어두운 그림자 통로 끝.
환한 빛과 함께, 야구장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이 보이지 않나!
“윌리엄!”
자신을 보며 놀라는 부모님의 윌리엄이 환하게 웃었다.
“엄마! 아빠!”
부모님을 만난 윌리엄은 자신이 안고 있던 아이의 부모를 찾아주었다.
“형아! 고마워요!”
아이와 아이의 부모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은 윌리엄은 고개를 돌려 야구장을 바라보았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야구장. 건물 입구에 가득한 구급차와 소방차들.
윌리엄은 아직 남아 있을 사람들과 쉐도우맨이 무사하길 바랐다.
* * *
일주일 후.
맥은 여느 때의 주말처럼 공원 벤치에 앉아, 벨 나트라와 연락하던 중이었다.
타닥타닥!
그때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언제나처럼 달리고 있는 윌리엄이 보였다.
“……몇 주 동안 외출 금지라도 받을 줄 알았더니…….”
용케도 부모님께 허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진이야!? 진이 왔어? 나도 진 목소리 듣고 싶어!
벨 나트라의 애절한 목소리에 맥은 이어폰을 조작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점점 다가오는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내가 꼭 엄마 아빠한테 데려다줄게.’
야구장에서 아이를 구하던 윌리엄의 모습이 떠올랐다.
“……넌 이렇게 자랐구나.”
동시에 자신마저 파괴하려던 아이가 떠올랐다.
“……이렇게 자랄 수 있었구나.”
어쩐지 가슴이 뻐근해지고,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맥의 혼잣말에, 관객들도 같은 생각을 하며 저도 모르게 글썽이는 눈물을 닦아냈다. 어쩌면 진 나트라도 이렇게 잘 자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앞을 지나가는 윌리엄에, 맥은 언제나처럼 책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가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뛰어가던 윌리엄이 멈추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운동화끈을 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행운인가.
맥의 시선이 윌리엄에게로 향했다. 다친 곳은 없다고 보고받았지만 자신의 눈으로 이곳저곳 살피게 된다. 물론 의심하지 않게 생수 뚜껑을 따면서…… 자연스럽게……
하는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윌리엄이 맥이 앉아 있는 벤치 쪽으로 다가왔다.
……응?!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맥의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렇게밖에 윌리엄을 바라보지 못하는 맥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던 관객들도 갑자기 다가오는 윌리엄에 맥처럼 얼어붙었다.
아니? 갑자기? 왜?
“……혹시…….”
윌리엄이 맥에게 말을 걸었다.
말을 걸었다!
윌리엄과 맥이 어떻게 만나게 될까, 설마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히어로 vs 빌런으로 만나는 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던 관객들이 눈을 빛냈다. 만세 삼창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드디어!
드디어 윌리엄과 맥이 만났……!
“쉐도우맨이세요?”
“푸웁!!”
-콰당!!
……크읍?!
당황한 맥과 벨 나트라와 마찬가지로, 상영관 여기저기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다들 이해했다. 이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입에서도 그런 괴상한 소리가 나왔으니까.
입을 쩌억 벌린 송유정과 임예나는 거의 넋을 놓고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안타까움의 눈물을 닦던 휴지는 어느새 두 사람의 무릎 위에 떨어져 있었다.
스크린 속 윌리엄만 빼고, 모두 당황했다.
-도대체 어쩌다 들킨 거야! 맥!
나도 몰라!
통신기 건너 벨 나트라가 허둥지둥대는 사이, 콜록대던 맥이 진정했다.
“괜찮으세요?”
“그, 그래.”
어쩔 수 없다.
그냥 아니라고 잡아떼는 수밖에.
-확실한 증거도 없으니까! 그냥 아니라고 해!
벨 나트라의 외침을 들으며, 맥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려고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미안.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라 깜짝 놀랐어. 쉐도우맨이면 퍼스트의 슈퍼 히어로를 말하는 거지? 야구장 사고 때 나타난. 글쎄, 나도 그 야구장에 있었지만…….”
-멍청아! 야구장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그러니까!
벨 나트라의 외침에, 하나둘 정신을 차린 관객들도 같은 마음으로 소리쳤다.
하여튼 맥은 이런저런 변명을 쏟아냈다.
“정말 아쉽게 됐어. 멋진 경기였는데. 상대 고등학교랑 다시 경기를 한다며……?”
그러던 중 맥은 아무 반응이 없는 윌리엄에 말을 멈추었다. 우리 착한 윌리엄이라면 뭐라도 대답해 줄 텐데, 이상했다.
……근데 윌리엄?
왜 고개가 아래로 향해 있는 거니……?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맥은 천천히 윌리엄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내렸다.
아래로.
아래로.
왠지,
엄청나게,
어마어마하게,
불길했다.
[쉐도우맨 시리즈]와 [어셈블 시리즈]를 봐왔던 관객들도 이쯤에서 예상했다. 그리고 다들 쉐도우맨에게 빙의된 듯 이마를 짚었다.
아…… 그 녀석이…… 또.
윌리엄의 시선을 따라 향한 곳은 맥의 두 발이 놓인 곳이었다.
정확히는, 맥의 새까만 그림자.
보통이라면 태양의 빛에 따라서, 그림자 주인의 움직임에 따라서 가만히 고정되어 있어야 할 그림자가,
쿡- 쿡-
장난을 치듯 윌리엄의 발밑에 있는 그림자를 이리저리 찔러대고 있었다.
……야!
맥은 절망했다.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자신의 그림자를 쿡쿡 찔러대는 맥의 그림자를 보고 있던 윌리엄이 고개를 들었다. 절망하고 있던 맥도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맞죠? 쉐도우맨!’이라고 말하는 듯, 윌리엄의 검은 눈동자에 확신이 서려 있었다.
* * *
서로 인사를 나눈 (벨 나트라의 목소리는 안 들렸겠지만) 윌리엄과 맥.
맥이 물었다.
“근데 어떻게 날 알아봤는지 물어봐도 될까?”
“제이가 가르쳐 줬어요!”
어쩐지 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윌리엄은 고민도 없이 단번에 대답했다.
“제이?”
-제이?
쉐도우맨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또 있다는 건가?
관객들도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눈을 끔뻑였다.
제이라니.
윌리엄의 친구? 아니면 흑막?
어쩌면 우리 착한 윌리엄을 ‘진 나트라’로 흑화시킨 범인일지도……?
다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제이’라는 인물에 대해 추측하려던 그때.
“여기 아래요.”
윌리엄이 환하게 웃으며 손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아래?”
맥(과 관객들)의 시선이 윌리엄의 손을 따라 아래, 땅바닥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여전히 장난을 치고 있는 맥의 그림자, 사고뭉치 파트너가 있었는데, 윌리엄의 그림자도 거기에 어울리듯 파트너를 툭- 툭- 치고 있었……?
“……아니, 쟨 왜 움직여?”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고만 맥이었다.
그러게. 쟨 왜 움직여?
맥과 관객들의 경악을 아는지 모르는지, 윌리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제 그림자 친구, 제이예요.”
따뜻한 햇빛이 비치는 벤치 아래.
자아를 가진 두 그림자가 투닥대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 * *
“…….”
맥은 윌리엄의 설명을 들으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관객들도 넋을 놓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윌리엄이 자신을 소개해 준 것을 들은 듯, 윌리엄의 그림자 친구 ‘제이’는 손(?)을 삐죽 빼서 휙휙- 휘젓듯 인사를 했다. 마치 관객들에게도 인사하는 듯했다.
……이건 꿈인가?
쉐도우맨이라는 정체를 들켰을 때부터, 아니, 윌리엄을 봤을 때부터 자신은 꿈을 꾸는 중이 아니었을까?
-뭐야? 제이라니, 그림자 친구라니?! 설마…… 지금 진의, 아니, 윌리엄에게 나트라인의 능력이 남아 있는 거야? 게다가 자아까지 생겨서!?
아, 그런 거였구나.
벨 나트라의 말에 관객들도 ‘제이’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윌리엄에게 나트라인의 능력이, ‘진 나트라’ 또는 ‘튤 나트라’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던 거다. 그것도 자아까지 생겨서.
‘……미쳤다. 이런 떡밥을 남겨뒀을 줄이야!’
‘쉐앤나 끝나면 집에 가서 쉐도우맨3 복습해야지!’
송유정과 임예나가 감탄한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왜 남아 있어?! 타임스톤을 쓰면 그림자가 사라진다며! 완전한 지구인이 된다며?!
벨 나트라의 말에 마음속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맥은 어떤 리액션도 하지 못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윌리엄이 눈을 반짝이며 맥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눈빛이었다.
맥이 그게 어디서 본 눈빛인가 생각에 잠기려고 할 때, 이어폰으로 벨 나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맥. 일단 자리를 피해. 대처 방법을 생각하고 움직이는 편이 낫겠어.
벨 나트라의 말에 동의한 맥은 윌리엄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상황에 영혼이 탈출한 듯한 걸음으로.
윌리엄 또한 멍한 표정으로 그런 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앉아 있기를 한참.
제이의 토닥임에 정신을 차린 윌리엄이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살피고는, 벤치 아래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 제이.”
어쩐지 벅차오른 듯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였다.
“쉐도우맨을 만나게 해줘서.”
별말씀을.
말하지는 못하는 그림자 친구, 제이지만 상냥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싱긋 웃은 윌리엄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달이 떠 있는 밤.
-윌리엄의 능력을 알면 퍼스트 쪽에서 영입하려고 할 테니까.
“그렇겠지.”
쉐도우맨의 눈이 빛났다.
“하지만 윌리엄은 안돼.”
-맞아. 윌리엄은 충분히…… 괴로워했어.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의 대화에, 관객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퍼스트가 나쁜 기관은 아니지만, 윌리엄이 소속되는 건 다른 이야기지.’
‘고생만 하지.’
모두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 같은 팔불출이었다.
* * *
“왜 그렇게 쉐도우맨을 좋아하는 거야? 계기라도 있어?”
“계기라…….”
친구, 로건의 물음에 환하게 웃고 있던 윌리엄이 아래를 바라보았다. 로건이 따라 고개를 숙였다. 보이는 건 두 사람의 신발과 새까만 그림자뿐.
다시 고개를 든 윌리엄이 미소를 지으며 친구에게 말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어.”
어쩐지, 윌리엄의 미소가 조금 무거워 보였다.
집으로 돌아온 윌리엄은 책장에서 노트들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쉐도우맨]이라는 제목의 노트들은 인터넷 기사나 뉴스, 누군가 쉐도우맨 등 히어로에 대해 분석해 놓은 글들을 프린트해 붙여놓은 일종의 자료집이었다.
“벌써 7권째네.”
어렸을 때부터 만들었던 자료집이 벌써 7권째.
윌리엄은 그중 1권을 읽어보았다.
초등학생의 그림으로 쉐도우맨과 그림자가 그려져 있었고, 그 옆에 윌리엄 자신과 그림자 제이가 그려져 있었다.
귀여운 그림에 잠시 웃던 윌리엄은 그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어렸을 때 적었던 것이 분명한, 색연필로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혀 있는 문장.
[WHO AM I?]
[나는 누굴까?]
그 문장을 윌리엄은 아무 말 없이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가만히 있길 십여 분.
툭툭-
제이가 윌리엄의 팔을 두드렸다. 그에 윌리엄이 웃으며 자료집을 덮었다.
“숙제하라는 거지?”
끄덕.
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쉐도우맨 1권]을 덮은 윌리엄이 책상 옆에 놓아둔 백팩으로 손을 뻗었다.
“제이는 진짜 아빠 같다니까.”
윌리엄의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곧 타닥타닥 노트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다음 날 오후.
맥과 윌리엄은 조용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럼 이야기를 나눠볼까? 네 그림자 친구에 대해서 말이야.”
“네! 뭐든지 물어보세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아챈 듯, 윌리엄이 테이블 위에 올려둔 두 팔 아래의 그림자가 꿈틀꿈틀대다가 합쳐졌다. 그러고는 볼록 튀어나와 맥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윌리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제이도 잘 부탁한대요.”
“……참, 예의 바른 친구구나.”
윌리엄은 맥의 질문에 숨기는 것 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일곱 살 때부터 제이가 있었다는 것, 교통사고로 2년의 기억이 없다는 것, 제이를 자의로 조종할 수 없다는 것 등. 너무 솔직하게 대답해서 맥이 의아해할 정도였다.
“음. 윌리엄.”
“네.”
윌리엄이 맥을 바라보았다. 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내가 쉐도우맨이라고 해도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일곱 살 때부터 숨겨온 이야기잖아.”
그에 윌리엄이 웃었다.
“쉐도우맨이라서 말하는 거예요. 정말 팬이거든요. 그리고…… 궁금했거든요.”
조금 붉게 충혈된 두 눈동자와 테이블 위에서 꼼지락대는 두 손. 그리고 억지로 위로 끌어올리는 듯한 떨리는 입꼬리.
오늘 처음 보는 감정이 담긴 미소를 지은 윌리엄이 쉐도우맨을 바라보았다.
“쉐도우맨.”
그러고는 슈퍼히어로 쉐도우맨에 대한 팬심, 그 아래에 숨겨져 있던 본래의 마음을 토해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아주 무거운 의문이었다.
“저는 누구죠?”
Who am I?
그 질문에 쉐도우맨은 눈을 부릅떴다.
눈가까지 붉게 물든 소년, 윌리엄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그건 조금 전 이야기했던 밝고 귀여웠던 이야기의 뒷면.
달의 뒷면처럼 어두운 감정이 가득했다.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저처럼 그림자가 움직이는 사람은.”
눈을 부릅뜬 맥은 그대로 멈춰 버린 듯했다.
“엄마 아빠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마저도! 그 누구의 그림자도 제이처럼 움직이지 않았어요.”
윌리엄의 감정을 토내해는 듯한 목소리에 맥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윌리엄이 두 손을 마주 잡고, 새하얗게 변한 정도로 꽉 쥐었다.
“오직 나만! 오직 내 그림자만 이렇다는 걸…….”
그때의 놀랍고도 서러웠던 감정이 떠오르는지, 꽉 쥔 윌리엄의 두 손이 덜덜 떨렸다. 그 손을 그림자 친구, 제이가 토닥여주었다. 그에 윌리엄이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며, 울컥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죄송해요. 이런 이야기를 누구에게 한 적이 없어서…… 감정이 격해졌어요.”
맥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뜨거운 것이 목에 걸린 것 같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적, 사실을 알고 제이를 피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때, TV에서 쉐도우맨 당신을 보게 되었죠. 그림자를 조종하는 당신을요.”
윌리엄이 고개를 들었다.
물기로 젖은 윌리엄의 눈과 마주친 맥은, 공원에서 봤던, 그리고 지금도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윌리엄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알아차렸다.
그건 동질감과 안도감.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자신이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쉐도우맨에 대해서 조사하다가 당신의 팬이 됐고, 오래도록 당신과 만나기를 기다려왔어요.”
윌리엄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꼭 묻고 싶었어요.”
윌리엄은 오랜 슬픔과 눈물 속에 잠겨 있었던 질문을, 떨리는 목소리로 뱉어냈다.
“저는 도대체 누구죠?”
일곱 살 때부터 지금까지 참았던 눈물이,
“지구인이 맞나요?”
불안과 함께 터져 나왔다.
“……엄마 아빠의 진짜 아들이 맞아요?”
기억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진 나트라의 트라우마였다.
제이의 귀여운 인사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점점 더 무거워지다 결국 윌리엄의 오랜 고민에까지 이어졌다.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는 윌리엄에, 송유정과 임예나는 코를 훌쩍였다.
아…….
저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그냥 쉐도우맨을 좋아했던 게 아니었구나.
그리고 윌리엄의 고민이 ‘가족’이라는 것에, 송유정과 임예나, 관객들은 뭐라 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진 나트라가 떠올랐다.
윌리엄도, 진 나트라도 제 자신이 누구인지, 정말 이곳이 자신이 있을 곳이 맞는지 어린 시절부터 고민하고 또 고민했겠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자신의 속만 새까맣게 물들이면서.
그 두 사람이 결국 한 사람이라는 것에, 같은 사람이 두 번이나 같은 고민을 한다는 아이러니에 관객들은 목이 메이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진정하렴. 윌리엄.”
맥이 휴지를 건네주었다.
말간 얼굴이 눈물로 젖어가는 모습을 보니, 일곱 살이라는 그 어린 나이부터 얼마나 마음속으로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니?”
그에 진정한 윌리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붉어진 눈가만 아니라면 울었던 것을 전혀 모를 정도로, 빠르게 마음을 다스린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에서 또래답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제이랑 저를 조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퍼스트에는 일반인이 알지 못하는 정보도 많을 테니까요.”
“……그래. 알았어.”
그래 봤자 결론은 지구인이라고 나오겠지만.
아니, ‘제이’라는 존재가 있는 시점에서 조금 다르게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윌리엄은 가져온 백팩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주섬주섬 투명한 지퍼팩 두 개를 꺼냈다. 지퍼팩에는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으응?
훌쩍이며 휴지로 눈물을 닦아내고 있던 송유정과 임예나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무언가.
……설마? 아니겠지?
“유전자 검사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의 머리카락이에요.”
“……뭐?”
“아니면 칫솔 같은 게 필요한가요? 그럼 다음에 만날 때 가져올게요.”
“잠깐만, 윌리엄!”
말간 얼굴로 말하는 윌리엄을, 맥이 다급하게 불렀다.
“유전자 검사라니?”
“제가…….”
윌리엄은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쓰라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모님의 진짜 아들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직접 하고 싶은데 미성년자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말하는 윌리엄에 맥이 이마를 짚었다.
“그런 건 어디서 들었어?”
“한국 드라마에서 보고 조사해 봤어요. 다른 게 필요하다면 가지고 올게요. 꼭 부탁드려요, 맥.”
부모님의 친아들임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간절한 윌리엄의 눈동자에, 맥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관객들은 슬픔과 눈물이 모두 날아간 얼굴로, ‘지금 내가 뭘 본 거야?’라는 얼굴로 멍하니 스크린만 바라보고 있었다.
* * *
윌리엄이 부탁한 친자검사를 퍼스트 연구원에게 맡기기 전, 맥은 센트럴 파크로 향했다.
뉴욕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공원, 센트럴 파크.
그 안에는 여러 공간이 있었지만, 맥이 향한 곳은 그가 시간이 날 때마다 들르고 있는 이상 웜홀의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관이었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이상 웜홀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맥은 언제나 그렇듯 죄책감이 가득한, 착잡한 표정으로 추모관 안으로 발을 들였다.
“……여긴 변한 게 없네.”
이상 웜홀이 발생한 것으로부터 벌써 12년.
나트라인들도, 퍼스트도 노력했지만 돌아온 사람은 전혀 없었다.
아니.
한 사람.
돌아온 아이가 있었다.
맥은 꽃병이 장식된 장소 앞에 섰다.
추모관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그저 ‘꽃병이 놓여져 있는 곳이구나.’ 생각하는 이곳은, 원래 ‘윌리엄 리’의 사진과 한쪽 신발, 그리고 부모의 편지가 있던 곳이었다.
10년 전.
윌리엄이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면서, 퍼스트에서 윌리엄 리에 대한 정보를 모두 지워 버린 것이었다. 추모관의 기록도, 인터넷 자료들도.
윌리엄이 조용히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쉐도우맨도 동의했다.
그렇게 유일하게 돌아온 아이에 대한 정보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잠시 꽃병으로 장식된 공간을 바라보던 맥은 이내 걸음을 옮겨 추모관 밖으로 나왔다. 이제 윌리엄이 부탁한 일을 처리할 차례였다.
* * *
저녁 식사 시간.
평소의 차분하고 밝던 윌리엄과는 다른 모습에 부모님이 의아해했다.
“무슨 고민 있니, 윌리엄?”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부모님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님이 윌리엄은 정말로 좋았다.
뜨거운 것이 가슴속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그건 감격이기도 했고, 불안이기도 했다. 윌리엄은 자신이 엄마 아빠의 친자식이기를 정말로 간절히 바랐다.
“……저 먼저 올라가 볼게요.”
눈물을 찔끔 나올 것 같아, 윌리엄은 얼른 2층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오르는데, 거실에서 도란도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진실을 알게 되면 저곳에 자신의 자리가 없을까 봐 씁쓸해졌다.
대사 없이도 표정과 눈빛으로 전해지는 감정이, 관객들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유전자 검사’라는 한국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전개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게 납득이 되는 상황과 연기력이었다.
자신의 방으로 향한 윌리엄은 제이와 함께 가족 사진들을 보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맥 브라운]
휴대폰을 들고 있던 윌리엄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제이가 응원하듯 윌리엄의 손을 감쌌다.
“후우.”
윌리엄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림자일 뿐이라 제이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그 접촉만으로도 팔딱거리던 심장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고마워, 제이.”
별말씀을.
어깨를 으쓱한 것 같은 제이가 휴대폰을 가리켰다.
윌리엄은 각오한 표정으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화면을 누르는 손가락이 조금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윌리엄?
“네, 네. 저예요. 맥.”
낮고 다정한 목소리에, 허리를 반듯하게 세워 앉은 윌리엄이 얼른 대답했다.
-저녁이긴 한데, 결과가 나와서 말해주려고 연락했어. 네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맥의 말에 제이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윌리엄이 얼마나 이 연락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먼저 윌리엄 네가 궁금해했던 유전자 검사, 그러니까 친자검사 말인데…….
온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몸을 울리는 심장 소리가 너무 큰 것 같았다. 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윌리엄은 최대한 모든 소리를 죽였다.
들이마시고 내뱉던 숨도 멈추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떨리던 손도 멈추었다. 그대로 얼어버린 것 같았다.
침묵으로 가득 찬 방.
휴대폰 건너 맥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네 친부모님이 맞아. 몇 번이고 검사했으니까 확실해.
쉐도우맨이 단언했다.
한 치의 의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목소리로.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인지할 틈도 없이 펑펑 쏟아졌다.
그 눈물 안에는 일곱 살 때부터 지금까지 윌리엄이 가지고 있던 불안과 걱정, 서러움과 외로움이 모두 담겨 있었다.
자신은 엄마 아빠의 친아들이었다.
두 분을 속이고 있는 게 아니었다.
흐읍. 흐윽…….
소리를 죽인 윌리엄의 울음이 휴대폰 건너 맥에게까지 전해졌다.
-…….
맥은 조용히 그 울음을 들어주었다.
어쩐지, 이렇게 울지도 못했을 진 나트라가 생각나는 것 같았다.
“감, 감사합니다. 맥. 정말로요.”
울음을 그치고 진정한 윌리엄이 다시 한번 감사를 전했다. 그 목소리에는 기쁨만이 남아있었다.
-아니야. 도움이 됐으면 다행이야.
“정말,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윌리엄이 미소를 지었다.
불안을 날려 버린 완전한 미소였다.
전화를 끊은 윌리엄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든 고민이 해결되자 마음이 가벼웠다. 너무너무 가벼워져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을 열고, 타타닥-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올라갈 때와는 전혀 다르게, 생기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윌리엄?”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엄마 아빠.
윌리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 아빠에게 다가가, 꼭 껴안았다. 진짜 자신의 엄마 아빠였다.
“응? 무슨 일 있었어?”
“아뇨. 그냥 우리 가족이 너무 좋아서요.”
갑작스러운 아들의 포옹에, 잠시 놀랐던 엄마 아빠가 하하 웃으며 윌리엄을 마주 앉았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는 엄마 아빠의 손에,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던 윌리엄은 어째선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자신의 그림자 친구, 제이도 손짓으로 불러 껴안았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정말로 가족이었다.
* * *
그렇게 가족애가 넘치는 장면에 관객들이 감동의 눈물을 닦아낼 때.
화면이 바뀌였다.
오직 컴퓨터 모니터에서 나오는 빛만 유일한, 어두운 방 안.
산악인이 쓸 것 같은 배낭부터 세계 각지의 물건들, 그리고 붉은 펜으로 이 나라 저 나라 체크되어 있는, 벽에 붙은 세계지도까지.
마치 탐험가의 방처럼 정리되지 않은 방 안은, 마치 소스가 폭발해 버려 엉망진창이 된 전자레인지의 내부처럼, 천장부터 벽, 바닥까지 검녹색의 액체들로 가득했다.
그 지저분한 공간 중앙, 신문이 가득 쌓여 있는 테이블 앞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상체는 인간처럼 보였지만, 하체는 슬라임 같은 모습의 그 인물은 오래되고 낡은 신문들을 빠르게 헤집고 있었다. 그가 만지는 것마다 진득한 검녹색의 점액이 묻고 넘쳐흘러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 흉한 모습에 관객들이 미간을 찌푸리던 찰나.
타앙!
하고 그가 반쯤 검녹색의 점액으로 변한 거친 손이 테이블 위를 강하게 내려쳤다. 카메라가 테이블 위를 비추었다.
그에 관객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낡은 오래된 신문지에 인쇄된, 곰인형을 안고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아이의 사진과 작은 신발 사진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적혀 있는 이름.
William Lee
“……윌리엄 리……!”
낮고 거친,
그러나 환희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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