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60화
화려하고 호화로운 신전.
반짝이고 빛나는 분수.
눈부시고 사치스러운 금장식.
그리고 섬세하게 조각된 신상(神像)들.
한눈에 봐도 감탄이 나오는 모습이었지만, 그 안에 있는 조각상들의 지치고 고민하는 모습은 화려한 신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묘하게 바라보게 된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생방송으로 보고 있던 사람들도 그랬다.
-이전처럼 막 멋지다! 예쁘다! 이런 느낌은 아닌데(멋지긴 함.) 계속 보게 되네.
-화려한 모습만이 예술은 아니니까.
=22 등장인물들이 괴로워하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조각하거나 그리는 예술가들도 있으니까.
=33 뭉크의 절규 같은?
=44 일리야 레핀의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같은.
=급 미술강의……ㅎ
=난 조각이라 로댕의 지옥문이 생각남.
=신들의 회의 끝에 지상은 지옥이 되고……ㅋ
-그것보다 저거 설정상으로는 신관들이 의뢰한 신전 조각상이잖아? 근데 왜 저런 모습으로 신들을 조각했지?
=그러게? 보통이라면 더 멋진 모습, 더 화려한 모습으로 조각하려고 했을 텐데.
=저런 모습으로 조각가에게 의뢰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누가 물어봐 줬으면!
=22 누가 신관에게 물어봐 줘!!
-오! 25분이다!
3시 25분.
[신전 프로젝트]의 마지막 퍼포먼스가 시작되었다.
[축복권]을 찾은 30명이 차례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화면에는 최대한 얼굴이 찍히지 않게, 뒷모습 위주로 그들의 모습이 담겼다.
[축복권]을 손에 쥔 두 예고생과 언니는 신관의 안내에 따라, 기묘한 분위기의 신전에 발을 내디뎠다.
[(선/제작)제갈세가의 초급 환영진이 발동됩니다.]
울타리를 넘자, 다른 세계가 나타났다.
신전 안으로 처음 들어온 언니는 저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신없이 신전을 둘러보고 있었다.
고작 울타리 하나 차이인데, 이렇게 신기하고도 전혀 다른 분위기일 줄이야.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정신을 차린 언니는 커다란 렌즈가 달린 카메라가 무겁지도 않은지 정신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조각상들을 열심히 찍어댔다. ‘축복 의식’까지 생각한다면 사진을 찍을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언니를 포함해 28명의 사람들이 (조각상의 분위기가 무거워 입 밖으로 감탄을 내뱉지는 못하고 조용히) 감탄하면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사이, 첫 퍼포먼스에도 참여했던 두 예고생은 침착하게 신전의 분위기와 조각상들을 살펴보았다.
“분위기는 첫 번째랑 비슷한 것 같은데?”
“그러게.”
조각상들의 모습이 저러니 신전의 분위기도 무거울 줄 알았는데, 처음 들어왔을 때랑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돌아다니면서 설명을 하는 신관들의 분위기도 그랬다.
“저기…….”
“네. 무슨 일이시죠?”
예고생은 인터넷에서 열심히 ‘물어봐! 물어봐!’ 외치고 있는 질문을 하기 위해 신관을 불러 세웠다. 이제 알았지만 새하얀 복장의 신관의 가슴에도 황금빛 장식이 달려 있었다.
-파.국.
=ㅋㅋ이렇게 한 종교가 타락하고.
마침 인터넷에서도 신관들의 복장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던 중이었지만, 휴대폰을 보고 있지 않은 두 예고생은 알지 못했다.
신관이 부드럽게 웃으며 예고생의 말을 기다렸다.
“주신님과 하급신님들의 조각상을 왜 저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앞자리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에게는 다 들렸다. 사람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휴대폰을 들었다.
-누가 질문했다!
=오오오!
=신관은 뭐라고 말해?
=헐…… 미친…….
=왜왜왜왜!?
=자기들만 재미있는 거 보고ㅠㅠ나도 보고 싶다고ㅜ
신관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두 예고생도 고개를 갸웃했다. 듣고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힘들고 고민하는 모습으로 앉아 계시잖아요. 이런 모습으로 조각을 의뢰한(어느새 과몰입한 예고생이었다.) 이유가 있을까, 궁금해서요.”
신관이 눈을 깜빡이더니, 작게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예?
“주신님과 여덟 신님들은 여전히 자애로우신 모습이신데요.”
……저 모습이요?
두 예고생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주신상을 한 번 바라보았다가 다시 눈앞에서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신관을 바라보았다.
“저희가 특별히 유명한 조각가분들을 모아서 더욱 화려하고 기품 있는, 멋진 모습으로 조각했는데, 신도님의 마음에는 차지 않는 모양이군요. 안타깝네요. 다음 신상은 더 고상하고 품격 있게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러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두 예고생은 참고, 인사를 하는 신관에게 마주 인사했다.
신관과의 대화는 맨 앞자리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 금세 인터넷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니까……저 모습은 우리 눈에만 저렇게 보인다는 거지?
=22 (타락한)신관들 눈에는 다른 때랑 똑같이 화려하고 멋진 모습의 조각상인데, (타락하지 않은)우리들 눈에는 저렇게 ‘진실된’ 모습이 보이는 건가 봄!
=……설정 미쳤다…….
=와. 그냥 이야기 하나를 뚝딱 만들었네.
-역시 서준이.
=학교 축제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찐 배우.
=아니, 이건 배우라서 그런 게 아닌 것 같은데;;;
=22 그냥 ‘이서준’이 ‘이서준’ 한 듯.
-연기 빼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ㅋㅋ 서준이 머릿속이 궁금하다ㅋㅋ
=그래서 더 좋아!
=서준이 최고!
=서준아 사랑해!
-내가 저기 있어야했는데ㅠㅠ
=22 직접 보고 싶다ㅠㅠ
-그럼 이제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인가!(두근두근)
=저주냐, 축복이냐!
=저기 있는 신도(?) 분들은 무슨 죄를 지어서ㅠㅠ
=학교 축제니 저주를 내리지는 않겠지ㅋㅋ
=22 다 같이 즐거운 축제니까 해피엔딩……이겠지??
=왜 물음표냐고ㅋㅋㅋ
=모두가 의심하는 해피엔딩.
=서준이의 업보다ㅋㅋ
모두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신전을 바라보았다.
뎅- 하고 여전히 맑은 종이 울리고, 타락한 신관이 이전과 다름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축복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신관의 말에 30명은 각자 신들의 뒤에 섰다.
그러자 의자에 앉아 있던 여섯 하급신들이 눈을 떴다.
몇 번 봤던 모습이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놀랄 일은 아니었으나, 맞은 편에서 바라보는 하급신의 눈빛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이거 괜찮은 거 맞아?”
“튈까?”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내릴 것 같은 기분에 사람들이 속닥거렸다.
“신이시여. 부디, 당신들에게 기도한 이들에게 축복을 내리시옵소서.”
의자에서 일어선 하급신들이 뒤를 돌아, 자신의 뒤에 선 신도들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매서웠지만, 안타까움과 야속함이 조금 남아 있는 눈동자였다.
그에 신도들까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미안해졌다.
뎅-
그런 신도들의 마음은 전혀 모르는 신관은 계속해서 의식을 이어갔다.
“그럼 모두 주신께 기도를 올립시다.”
신관들만이 평온한 분위기 속.
하급신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도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신들의 발밑에 버려진 황금빛 꽃다발과 검, 팔레트와 붓, 책과 대본, 리라가 처량하고 쓸쓸하게만 보였다.
그렇게 하급신들이 일렬로 서자, 스피커에서 [BREAK]의 바이올린 솔로가 들려왔다.
♪-♬--
한없이 자유롭고 밝았던 원곡과 달리, 알에서 깨어났지만 밖은 결코 밝은 세상은 아니라는, 그런 느낌이 드는 축 늘어지면서 무거운 느낌의 연주였다.
두 호위상이 눈을 떴다.
원래도 주신을 보호하기 위해 날카로운 눈빛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냉담하고 차가운 눈빛이었다.
두 호위상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여섯 하급신들도 이전과 달리 아주 느릿하게 무릎을 꿇었다. 마치 이제 세상의 끝을 결정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움직임 하나하나가 묵직하고 엄숙하며,
슬펐다.
그런 분위기 속, 이마를 짚고 있던 주신 조각상이 눈을 떴다.
황금빛 월계수관이 빛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의 주신은 이전의 따뜻했던 눈빛과 달리 차가운 눈빛이었다. 마치 얼음으로 만든 것 같은 눈동자가 하급신들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선/제작)제갈세가의 초급 환영진이 발동됩니다.]
[감각: 무거움]
[(선/제작)제갈세가의 초급 환영진]의 감각을 바꾸면서 서준은 마기도 적당히 흘려보냈다.
‘공포나 두려움은 학교 축제에 어울리지 않으니까. 가볍게.’
그러고는 들고 있던 양피지들을 조금 강하게 내팽개치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데굴-
바닥을 구르는 양피지가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이 세상의 운명처럼 보였다.
모두 숨을 죽였다.
저벅-
주신이 발을 내디뎠다.
분수가 멈추었다.
이전 축복 의식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주신의 두려움에 몸을 사린 것 같았다. 분수뿐만이 아니었다. 새와 벌레, 나무들과 바람, 그리고 저 높이 떠 있는 태양마저도 모두 소리를 죽이고 몸을 움츠리는 듯했다.
그렇게 저벅- 저벅- 무겁고 슬픈 발걸음을 옮긴 주신이 무릎을 꿇은 여섯 하급신의 앞에 섰다. 주신을 향해 고개를 숙인 여섯 하급신들은 무슨 명령이든 받들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
주신이 세상의 운명을 결정짓기 위해 새하얀 입술을 열려던 찰나.
다다다-!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멀리 있는 관객이라도, 화면으로 보고 있던 사람이라도.
그 누구라도 확실히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새롭게 등장한 인물의 모습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린아이였다.
그리스 시대의 옷, 그러나 조금 낡아 보이는 새하얀 옷을 입은 일곱 살쯤으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손에 무언가를 쥐고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는 단상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의 맨 앞에 멈추어 섰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숨이 차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나 표정만큼은 환하고 밝았다.
아이는 새하얀 단상 위.
여섯 하급신이 무릎을 꿇고 있는 그 중앙.
냉담한 표정으로 서 있는 주신의 앞에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올려두었다.
그건,
조금 엉성한 모양의 들꽃 화관이었다.
마치 아이가 직접 만든 것 같았다.
“감사해요! 주신님! 앞으로도 저희를 지켜주세요! 이건 선물이에요!”
환하게 웃으며 외치는 아이의 모습에, 냉혹하던 주신의 표정은 풀어지고 말았다.
흰색, 주황색, 노란색, 빨간색, 보라색 등등.
색 조합도 꽃 모양도 제각각이었고 힘을 너무 줬는지 짓뭉개진 꽃잎들도 있었다. 게다가 엮인 줄기들은 금방이라도 풀어질 것처럼 엉성했다.
하지만 자기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꽃들을 모아, 여러 번 실패하면서도 열심히 만들었겠지.
주신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황금으로 만든 월계수관을 벗어 옆에 내려놓고, 그보다 빛나는 화관을 조심스럽게 들어 천천히 머리에 올렸다.
딱 맞는 화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만큼 열심히 조각상의 크기를 쟀을 아이가 귀여웠다. 사랑스러웠다. 소중했다.
주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를 둘러보았다.
아이와 자신을 바라보는 신도들, 그리고 울타리 너머에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저 머나먼 어딘가에도.
아아-
여전히 사랑스럽고 소중한 이들이 가득한 세상이었다.
주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인자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들에게-축복이 있으리-”
서준에게만 보이는 능력의 빛이 사람들의 위로 떨어졌다.
축복을 내린 주신은 황금 월계수관을 바닥에 그대로 놓아둔 채, 뒤를 돌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갔다.
저벅- 저벅-
발끝까지 새하얀 발로 하얀 단상 위를 걷는 모습은 무게감 있었지만, 조금 전처럼 어둡지 않았다. 숨죽였던 모든 생명들이, 모든 존재들이 축복하는 것처럼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물 위를 지나가자 분수가 다시 샘솟기 시작했고,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스피커에서도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 도착한 주신은 바닥에 내팽개친 양피지를 주워 다시금 펼쳤다.
지금까지의 퍼포먼스대로였다면, 삐딱한 자세로 앉아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차가운 표정으로 양피지를 바라봐야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주신은 부드럽고 자비로운 미소를 입가에 띄고, 양피지를 소중하게 들고서 의자에 바르게 앉았다.
곧 생기가 넘치던 주신의 모습이, 순식간에 딱딱해졌다.
따뜻한 온기가 흐를 것 같았던 피부도 차가워졌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움직이던 팔의 근육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두근두근 뛸 것 같았던 심장도 멈춰 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주신은 다시 조각상이 되었다.
오직 머리에 쓴 아이가 만든 엉성한, 그러나 그 어느 황금보다 빛나는 들꽃 화관이 주신이 이 세상에 강림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주신 조각상을 보좌하는 두 호위상도 일어나 다시 조각상으로 돌아갔다. 그 둘의 입가에도 작지만 흐뭇한 미소가 맴돌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여섯 하급신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전까지였다면 곧바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겠지만, 주신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달랐다.
여섯 하급신은 몸을 돌려 뒤에 서 있는 30명의 신도들과 울타리 너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차가웠던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각자 캐릭터에 맞게 부드럽고, 유쾌하고, 활기차고, 생기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사람들을 바라보던 하급신들은 걸음을 옮겨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한 손엔 사람들의 기도가 적혀 있는 양피지를.
한 손엔 바닥에 버려져 있던 자신의 상징물을 들고서.
뎅- 뎅- 뎅-
맑은 종소리가 울리고,
신전의 새하얀 커튼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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