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59화
[-그대들에게-축복이 있으리-]
[(선)천신 제루엘의 축복이 발동됩니다.]
온 세상에, 서준의 눈에만 보이는 축복과 함께 침묵이 내려앉았다.
주신상이 움직일 때부터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눈만 동그랗게 뜨며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장에서 직관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휴대폰과 컴퓨터, 그리고 TV(새싹들: 좋은 건 크게 보자)로 보고 있던 사람들까지.
예외는 없었다.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사람들의 소리 없는 탄성 속에 축복을 내린 주신은 다시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를 향해 걸어가 앉았다. 주신상의 옆에 서 있던 두 호위상도, 여섯 하급신들도 일어나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눈앞에 펼쳐졌던 모든 상황이 꿈 같았을 정도로, 움직이기 전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뎅- 뎅- 뎅- 세 번의 맑은 종소리가 들렸다.
신관이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
“지금까지 연기과, 미술과, 무대미술과의 협동 프로젝트, 신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첫 공연부터 세 번째 공연인 지금까지 운 좋게 볼 수 있었던 두 예고생과 미술과 후배들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상기된 얼굴로 짝짝! 하고 박수를 쳤다. 보면 볼수록 더 대단해지는 것 같은 공연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박수 소리에 정신을 차린 사람들 또한 두 손바닥이 따가울 정도로 마주쳐댔다. 그리고 한예대가 들썩일 정도의 커다란 환호성도 빠지지 않았다.
카메라 건너도 마찬가지였다.
-미쳤다!! 미쳤어!!
-으아아아!! 직관했어야 하는 건데ㅠㅠ
=라이브로 보는 것만 해도 어디야!
-/한국인들만 이런 걸 보고 지냈다니!/
=ㅅㅂ/우리도 못 봐!/
주신상이 움직일 때부터 차곡차곡 쌓아놨던 감탄과 탄성, 그리고 울부짖음으로 너튜브 채팅창이 순식간에 가득해졌다. 공연 전에도 대단한 화력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의 몇 배나 되는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마치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오, 터졌다.”
너튜브 채널 [JUN]을 보고 있던 황도윤의 말에, 대기 천막 안으로 들어온 [신전]팀이 몰려들었다. 모두의 눈에 아예 새까맣게 변해버린 너튜브 화면이 보였다.
생수로 목을 축이던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공연 끝나고 나서 터져서 다행이네요.”
“그러게.”
“아슬아슬했지.”
황지윤과 황도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웃을 때가 아니지 않아요?”
“복구 안 되면 큰일인 거 아니에요?”
[신전]팀이 허둥지둥대는 모습에, 서준과 함께 일해본 [화]팀은 하하하 태평한 얼굴로 웃었다.
‘얘들은 아직 서준이의 영향력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나.’
정확히는 서준의 공연의 보는 팬들과 관객들의 반응을.
당황하는 후배들의 모습이, 마치 [화]를 상영한 후 밀려들었던 온갖 인터뷰와 촬영 요청, 영상수입 제안과 지인들의 연락 등에 허둥지둥 댔던 과거의 자신들처럼 보여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 너튜브가 알아서 할 거야.”
전에는 [화]의 소품팀 팀원이었고 지금은 [신전]의 소품팀 팀장인 오동윤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그쪽은 벌써 난리 났을 거예요.”
연극 [거울]과 [MOEB-436]을 함께 했던 미술팀 팀장, 박민형도 동의했다.
그말 그대로.
너튜브 공식 SNS에는 다양한 언어로, 수많은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복구하라고./
-2시까지 시간 있으니까 가능하겠지?
-/당연하지. 30분이나 남아있는 걸/
-딱 30분은 안 돼. 한 2-3분 전에는 끝내야 두근두근하면서 기다리지!
-/오! 맞는 말이야!/
-복구복구복구복구
-/복구복구복구복구/
“다 다른 언어인데…… 잘도 말이 이어지네.”
“번역 기능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근데 댓글 달리는 속도를 보면 왠지 번역 버튼을 안 누르는 것 같아서요. 그냥 통하는 것 같은 느낌?”
“……그런 것 같기도 하네.”
정말로 다른 나라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감으로 때려 맞추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밑으로도 본인 나라의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이어지는 대화들을 보면, 여러모로 대단한 것 같았다.
-/너튜브 본사를 폭파하자!!/
=/22 제대로 대비도 안하냐!?/
-ㄴㄴㄴ안돼!! 3시 공연까지 봐야지!!
=/맞아! 아직 2시, 3시 공연이 남아있어!/
=/그다음에 너튜브를 폭파해도 늦지 않아!/
-아니, 잠깐만! 너튜브를 폭파하면 서준이 영상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성장기록은!?
=/222 너튜브 폭파는 무리. 준의 영상은 지켜야지./
-다행이다. 살아남았네. 너튜브.
=/쯧. 다음에 보자./
서준은 당장에라도 너튜브 본사를 폭파시키려는 댓글들과 지금은 안 되고 3시 공연이 끝나면 폭파하자는 댓글들, 그리고 너튜브 안에 있는 서준이 영상은 어쩌라고?! 하며 폭파 반대!를 외치는 댓글들을 보며 웃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다들 2시 공연까지 편하게 쉬자.”
“넵!”
서준의 말에 씩씩하게 대답하는 [신전] 팀원들.
활활 타오르는 밖의 분위기와는 달리, 화기애애한 천막 안이었다.
* * *
“1시 공연도 좋았지?”
“응응.”
한예대 학생들이 연 간이카페에서 음료수와 간식을 사온 두 예고생과 언니가 가까운 벤치에 앉아 배를 채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사람은 1시 입장권만 있어서 남은 두 공연을 보지 못했지만, 대신 [축복권] 3장이 있어 마지막 공연인 3시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다 내 덕분인 줄 알아.”
“내가 언니를 안 불렀으면 언니는 서준 오빠 보지도 못했어!”
의기양양한 동생이 얄미워 보였지만.
맞는 말이었다.
‘그래도 서준이를 볼 수 있었으니까!’
블루문의 팬이었지만, 서준이 참여했던 곡 [블루문] 이후로 새싹이 된 언니였다.
물론, 행사가 많은 아이돌이 아닌 배우라서 대포(카메라)가 있어도 못 찍지만 말이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 같아, 블루문의 팬이자 새싹인 언니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언니! 사진 찍은 거 보여줘!”
“그래.”
언니는 동생과 동생 친구의 휴대폰으로 사진을 전송해 주었다.
“역시 프로는 다르네요!”
사진들을 보자마자 와! 하고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구도며 연출이며, 자연광까지. 보정도 없이 즉석에서 찍은 거라고 하기에는 너무 잘 찍었다.
“모델이 워낙 좋아서 말이지.”
“하급신분들도 되게 잘 찍었는데? 그리스 신전 관광 홍보 사진이라고 해도 되겠어.”
동생의 감탄에 언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 근데……?”
동생 친구가 눈을 깜빡였다.
“신전 모습이 전이랑 조금 다르지 않아?”
“응? 뭐가?”
동생과 언니가 동생 친구 쪽으로 얼굴을 쭉 뺐다. 자매라 그런지 그 모습이 꼭 닮아 있었다.
“이것 봐. 첫 공연에서는 이렇게 기둥만 세워져 있었는데, 세번째 공연에서는 기둥에 장식이 달렸잖아.”
“어, 그러네?”
친구의 말대로 신전의 기둥에 자그마한 장식들이 달려 있었다. 작지만 기둥에 어울리는 느낌의 장식들이었다.
“신들의 의상도 점점 화려해지는 것 같고.”
“그러고 보니 양피지도 새로 등장했지? 호위신도 한 명은 아예 양피지만 들고 있었고.”
“네. 그랬죠.”
뭘까?
의아해하는 세 사람처럼 인터넷상에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1시 공연 사진)(12시 공연 사진)(1시 공연 사진)
=장식들이 작아서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지만 점점 달라짐. 주신이랑 하급신들 옷차림도.
=22 뭔가 있는 건 확실함.
=33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음. 대충 짐작 가는 게 있는데……
=오? 뭔데?
=2시 공연 보면 확실해질 것 같음.
그리고 너튜브가 복구되고, [신전 프로젝트]의 2시 공연이 시작되었다.
1시 공연으로 제법 익숙해진(그래도 저절로 감탄이 나오지만) 사람들은 영상 속 신전과 신들을 살펴보았다.
신전은 이제 눈에 띄게 화려해져 있었다.
작았던 장식들도 커졌고 몇몇 부분에서는 금색 장식도 보였다. 분수도 주위가 조금 화려해진 것 같았고 신들이 앉아있는 의자의 장식들도 더욱더 호화로워졌다.
그런 풍경과 달리 하급신들은 들고 있던 각자의 상징물을 무릎 위에 두고, 의자에 앉아 손에 든 양피지들을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호위상도 이제는 둘 다 마치 보좌관처럼 동그랗게 말린 양피지가 가득 쌓인 쟁반을 들고 있었다.
그 가운데 주신 조각상.
주신은 세 번째 공연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그때보다 조금 더 굳고 진지한 표정으로 손에 든 양피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신 조각상의 주위에는 펼쳐지거나 돌돌 말린 새하얀 양피지들이 엉망진창으로 널려 있었다.
그리고 뎅-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지상으로 강림한 주신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신도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었다.
-알 것 같다.
=뭔데?
=+)신도가 점점 늘어나서 신전이 번성하고 있는 듯함.
=?
=+)보통 만화나 소설에서는 신도가 늘어나면 신의 힘도 강해진다는 설정이 있거든? 그러니까 저기 있는 사람들하고 너튜브로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이 저 주신의 신도들인거지. 그 수가 점점 많아지니까 신전이랑 신상도 번성해서 화려해지는 거고.
=+)아마 기부금도 많이 들어온다는 설정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스 신화도 그렇긴 함. 그래서 막 전쟁도 일으키고 공양물 올리고 제사도 지내잖아. 자기가 지배하는 도시도 있고.
-그럼 양피지는 뭔데? 되게 일에 치이는 현대인 같은 모습이던데?
=+)일에 치이는 게 맞을 거임. 신도들이 워낙 기도를 해대니까 그거 하나하나 처리하려면 힘들겠지.
=앜ㅋㅋ 나도 모르게 기도 해버렸는데ㅋㅋ 아기 천사님 사진 볼 때처럼ㅋㅋ
=나도ㅋㅋㅋ내 이름도 저 양피지에 올라가 있겠군ㅋㅋ
=갑자기 죄송해진다ㅋㅋㅋ
-아,아,아니! 잠깐만! 내 소원을 서준이가 본다고?!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원을?!
=소원 취소하겠습니다!! 취소!취소! 퉤퉤퉤!!
=빨리 양피지에서 내이름 지워줘요ㅠㅠ
=새싹들 단체 멘붕
=도대체 다들 무슨 소원을 빈거얔ㅋㅋㅋ
-난 괜찮아. 쉐앤나 보고 눈물만 안 나오게 해달라고 빌었어.
=주신: (심각한 표정) 이건 나도 들어줄 수가 없는데.
=ㅅㅂㅠㅠㅠㅠ
-그럼 11시 공연은 신도가 1명도 없었던 때였고 지금은 신도가 너무 많아서 힘든 때구낰ㅋㅋㅋㅋ
=22 그런 듯.
-그럼 3시 공연은 뭐려나?
=+)더 번성해서 화려한 모습이거나, 타락해서 망한 모습일듯.
=파국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이서준이 이서준했다’를 다른 뜻으로도 써도 될 듯.
=어차피 엔딩은 절망.
=어차피 엔딩은 슬픔.
=어차피 엔딩은 눈물.
=단합력 쩌는 거 보니 영화객 시청자들이구나?
=사실 지금 설명하고 있는 거 영화객 아님?
뜨끔.
열심히 키보드를 치던 설명자(A.K.A 영화객)가 두 손을 떨었다.
눈치 빠르긴.
하여튼.
그런 설명이 퍼지고 3시 공연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가 커져갔다.
그저 행위예술일 줄 알았던 이서준의 공연에 깊은 뜻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니, 기자들은 신나게 기사들을 써 내려갔고, 그 기사들이 사람들을 모았다.
-너튜브: 살……려줘……!
=영어로 해야지.
=너튜브: H……ELP……!
=영어로 해야짘ㅋㅋ라니ㅋㅋ
너튜브가 버벅거리면서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신전 프로젝트]의 마지막 3시 공연이 시작되었다.
뎅-
하고 맑은 종소리와 함께, 커튼이 올라갔다.
우와!
누가 봐도 확실하게 느낄 정도로 신전이 화려해졌다.
신전의 천장 위에서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알록달록한 색색의 빛이 쏟아져 내렸고, 신전 내부는 금색 장식으로 가득했다. 화려한 장식이 달린 신전 기둥과 기둥 사이를 잇는 금색 줄이 아름답게 늘어져 있었고 분수 또한 금가루가 섞인 듯한 반짝이는 물을 위로 뿜어대고 있었다.
하급신들이 앉아 있는 의자들도 금색 장식이 달려 있었고, 주신이 앉아 있는 의자와 그 주변도 번쩍이는 금색 장식품들이 가득했다.
신들의 의상도 그러했다.
어깨와 가슴께에는 황금빛 브로치가 꽂혀 있었고 머리카락에는 금색 장식이 달려 있었다.
게다가 하급신의 상징물들도 금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사랑의 신의 꽃다발, 미술의 신의 팔레트와 붓, 힘의 신의 검, 학문의 신의 책, 음악의 신의 리라, 연기의 신의 대본.
모든 것이 빛나고 아름다웠다.
-타락은 아닌가?
=ㄴㄴ자세히 봐.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달랐다.
하급신들의 상징물은 아예 바닥에 놓여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그 상징물들이 있던 손과 무릎에는 양피지가 산처럼 가득했다. 표정도 지치고 힘든 듯이 보였다.
하급신들이 그러하니, 주신은 어떻겠나.
황금빛 잎과 줄기가 정성스럽게 꼬아 만든 아름다운 월계수관을 쓰고, 새하얀 천에 황금빛의 섬세한 수가 놓여진 의상을 입은 주신은 한 손을 이마에 댄 채로,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든 양피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세도 앞선 공연에서보다 더욱 삐딱하게 등받이에 기댄 모습으로, 심각하게 무언가를 고심하는 것 같았다. 조각이라 차가워 보이긴 했지만, 어쩐지 차갑다 못해 싸늘해 보이기까지 한 분위기였다.
-주신: (타락한 인간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는 중.)
=진짜 그런 것 같잖아ㅋㅋㅋ
-눈 감고 있어서 다행. 눈 떴으면 진 나트라 엔딩.
=ㅋㅋ진 나트라 엔딩ㅋㅋ
-하악하악. 근데 나만 저 모습에 치임?
=ㄴㄴ나도 그럼.
=서준이에게서 어른의 냄새가 풍긴다…… 원래 어른이긴 했지만!
=저 조각상 팔아달라고!!(땡깡!!)
=222 콬아아아!!(안 팔면 집에 안 갈 거야!!)
-이번엔 축복 대신 저주를 내릴 것 같은데…….
=222 저기 30명 괜찮나?
-역시 파국……!
=절망!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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