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56화
“와씨. 넋 놓고 보느라 사진도 못 찍었어.”
“연기과라고? 그럼 동상들 전부 연기과 학생이라는 거잖아?!”
“이런 행위예술 하는 사람 본 적 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의상이랑 소품도 진짜 조각 같은 느낌이더라.”
“밖에서 봤는데도 이 정도면, 안에서 보면 어떤 느낌일까?”
“안이랑 밖이랑 별로 다르지도 않을 것 같은데? 겨우 울타리 하나 차이잖아.”
“거리가 다르잖아. 거리가!”
사람들의 목소리로 천막처럼 변한 신전 앞이 시끄러워졌다.
그에 그리스 양식의 고풍스러운 접수대에 앉아있던 신관(소품팀 팀원)이 싱글벙글 웃었다. 열심히 신전과 소품들을 만든 보람이 있었다.
그사이, 두 예고생과 네 명의 미술과 후배, 그리고 24명의 체험자들은 연신 탄성을 내뱉으면서도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속을 빠져나왔다.
왜냐하면,
“이 이벤트 어떻게 참여하는 거예요?”
“교내에 이렇게 생긴 축복권을 여기저기 숨겨뒀습니다. 찾아오시면 참여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팸플릿에 적혀 있는 시간마다 30명 한정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축복권을 찾으셔도 일찍 참여하시려면 빨리 오셔야 할 거예요.”
축복권을 찾아 다음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또 신들 만나고 싶어!”
“나도!”
진짜 신들이 있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축복 의식.
너무나도 멋지고 황홀하고 대단하고 가슴 벅차고 감격스럽고……!
하여튼, 한 번 더 참여하고 싶었다.
그때였다.
들려오는 질문에 축복권을 찾으러 가려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조각상을 연기한 학생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멈출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맞아. 누구지?”
“특히, 그 주신 조각상!”
시끌벅적하게 감상을 늘어놓던 사람들도 모두 쥐죽은 듯이 조용해져, 접수대에 앉아 있는 신관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신관이 고개를 갸웃했다.
“조각상을 연기한 학생들이라뇨?”
“네? 아까 연기과 학생들이랑 같이 협동 프로젝트라고 하셨잖아요?”
신관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저희 신전에 있는 신상들은 모두, 아주 신실하신 신도님들께서 기부해 주신 기부금으로 만든 것들입니다.”
신관이 어깨를 으쓱했다.
마치 우리 신전이 이렇게 잘나간다, 는 듯한 모습. 아주 자랑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그 기부금으로 티끌 한 점 없는 대리석들을 구해서, 신의 계시를 받은 아주 유명한 조각가와 그 제자들이 주신님과 주신님을 보필하시는 여덟 신님들을 똑 닮은 조각상들을 만들었죠.”
그런 신관의 말과 행동에 사람들이 눈을 끔벅였다.
“저희가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조각상들인 데다가, 축복 의식이 있을 때마다 주신님과 여덟 신님들께서 조각상에 직접 강림하시긴 하시지만…….”
서준의 특훈을 받은 신관이 아주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연기하는 학생들이라니요. 불경한 일입니다.”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신관의 모습에 사람들은 입만 뻐끔뻐끔 댔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아니, 아까 축복권은 제대로 대답해 줬잖아?”
“그건 이벤트에 꼭 필요한 설명이니까 그런 게 아닐까?”
“아…… 그럴지도.”
“축복 의식 때에만 강림한다니…… 그런 설정인 건가?”
“과몰입 미쳤네.”
“근데 뭔가 게임 퀘스트하는 기분이라서…… 재미있는 듯?”
연기과 학생들이 누구냐는 질문에 돌아온 것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엉뚱한 대답이었지만, 그게 더욱더 사람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마치 게임 속 신관 NPC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저기…….”
“네. 편하게 물어보세요.”
“30명 제한에 선착순이면 축복권을 찾아도 참여 못 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요?”
이번에도 과몰입 200%의 엉뚱한 대답이 들려올까?
하고 조금 기대했지만 그런 류의 대답은 신전이나 조각상에 대한 것에 한정된 듯, 신관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축제 팸플릿에 적힌 대로 저희는 11시부터 3시까지 총 5번의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한 타임에 30명씩 총 150명이 참여할 수 있죠. 그래서 축복권도 150장만 만들어 숨겨 두었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친절하지 않았지만.
“미친…… 150장……?”
축복권 150장이라는 말에, 사람들의 머리 위로 번쩍 번개가 쳤다. 모두 재미있게 즐기던 게임 속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아니야. 지금 한 타임 끝났으니까 120장 남았어…….”
누군가 더듬더듬 말했다.
남아 있는 축복권 수가 120장이라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경악하는 모습에도 친절하고 상냥한 신관은 빙그레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축복권을 못 찾아 참여 인원이 모자랄 일은 있어도, 축복권을 찾으시면 마지막 타임에라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찾기만 하시면요.”
……찾기만 하면!
그 말이 신호탄이 되어버렸다.
“축복권!!”
마치 사방으로 날아가는 참새 떼처럼 사람들이 교내 여기저기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첫날부터 시끌벅적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축제가 시작한 첫날이라서 그런지, 학교에 활기가 넘쳤다.
즐거워 보이는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표정에 미술과 교수들이 흐뭇하게 웃으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수요일인 오늘 원래는 강의 스케줄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연극이나 음식점 등의 행사에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다들 축제 동안에는 강의를 쉬기로 했다.
“수업 들으러 오는 학생도 없으니까요.”
“그렇죠. 다들 열심히 노느라 정신이 없죠.”
매년 그래서 익숙한 교수들이었다.
“먼저 어디를 가 볼까요?”
“미술 전시회는 어떻습니까.”
“연극도 괜찮죠.”
“연기과 학생들 실력이 그렇게 좋다고 하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학생들 못지않게 즐거운 표정으로 축제를 즐겼다.
“김 교수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아, 오랜만입니다.”
재능 있는 학생들을 발견하기 위해 찾아온 업계 전문가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제 제자 말로는 요즘 그쪽에 문제가 좀 많다고 하던데…….”
“하.하.하.”
마주 잡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자, 업계 전문가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조소과 교수라서 그런가.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조소과 김 교수가 악수하던 손을 놓자마자, 업계 전문가, 아니, 사기꾼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수준이 많이 떨어진 남자가 도망치듯 모습을 감추었다.
“크흠.”
“역시 김 교수님. 악수 한 번으로 제압해 버리시네요.”
“조소과의 기본이 체력, 근력이긴 하죠.”
농담 같지 않은 회화과 교수의 농담에, 하하하 웃으며 세 교수는 축제를 즐겼다.
“축복권…… 축복권…….”
“어디 있니? 축복권아~?”
뜻 모를 단어를 중얼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듯한 이상한 사람들을 보며 의아해하기도 하고, 음악과 학생들의 연주를 감상하기도 하고.
그러다 세 교수는 미술과 학생들이 ‘교수님! 이거 드세요!’ 하고 건네준 음식을 먹기 위해 잠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했다.
“음?”
그때, 동양화 교수가 벤치 구석에 꽂혀 있는 새하얀 종이를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곳에 쓰레기를 버리다니…….”
그런데 자세히 보니 마구잡이로 버린 쓰레기인 것 같지는 않았다.
[축복권]
고급 재질의 종이에, 정성껏 그린 양 날개 그림.
다행히 딱 세 장이 있었던 터라, 교수들은 하나씩 나눠 살펴볼 수 있었다.
“아까 그 이상한 사람들이 찾던 종이 아닌가요? 뭐라고 중얼거리는가 싶었는데, 축복권이라는 말이었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입장권 같은 걸지도 모르겠어요.”
“이 그림체…… 익숙한데…….”
회화과 교수가 날개 그림을 진지하게 살펴보고 있을 때, 두 교수는 팸플릿을 살펴보았다.
“이거 같네요. 신전 프로젝트.”
“조각이라…….”
조소과 김 교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자들에게서 이런 전시를 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리스로마 신화라니.
당장 떠오르는 작품들만 봐도 학생들의 수준으로는 만들기 어려웠다.
점토를 붙이고 다듬어 만드는 소조로 만들었다면 괜찮은 작품이 나왔을지도 모르겠으나, 팸플릿에는 소조가 아니라 깎아서 만드는 조각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 번 삐끗하면 작품 전체가 망해버리는 그 조각 말이다.
‘그래서 창작 인물인가?’
기존 작품과 똑같이 만들기는 어려우니, 아예 새로운 인물들로 설정한 것인지도 몰랐다.
“한번 구경 가 볼까요?”
동양화 교수가 웃으며 말하자, 생각에 잠겨 있던 김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어떤 작품인지 궁금하네요.”
어떤 조각이든 도전 그 자체로도 칭찬해 줄 만했다.
“이거…….”
두 교수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회화과 교수는 날개 그림을 보며 제작자를 추측하고 있었다.
“민형이 그림인 것 같은데…….”
날카로운 추리였다.
* * *
학생들이 준 음식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운 세 교수는 [신전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장소로 향했다.
“어쩐지 사람이 많군요.”
축제를 즐기러 한예대에 온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이 한 곳으로 이동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움직일 수는 있어, 12시 25분쯤에 [신전 프로젝트]가 열리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뎅-
딱 신전이 개방되어 체험자 30명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 시간이었다.
교수들은 울타리 밖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 말 그대로 신전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신전이 교수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2열로 늘어져 서 있는 여섯 개의 조각상과 분수 너머 서 있는 두 개의 호위상.
그리고 가운데 있는, 홀로 특별해 보이는 조각상.
교수들은 몰랐지만, 아홉 조각상은 11시 때와는 다른 자세로 서 있었다.
그에 두 예고생과 미술과 후배들, 그리고 첫 타임에 왔던 사람들은 ‘미쳤다! 미쳤어!!’를 연신 중얼거리며 자세를 바꾼 조각상들의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신전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매 타임마다 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멋지네요. 학생들이 조각했다고요?”
“와. 우리 학교 애들 실력이 이렇게 좋았나?”
동양화 교수와 회화과 교수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에 잠시 새하얀 조각상들을 자세히 살펴보던 조소과 김 교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사람의 눈은 속여도 조소과 교수의 눈은 못 속인다.
조각의 표면과 사람의 피부에 물감을 칠한 것은 전혀 달랐다.
“조각이 아닙니다.”
“네?”
“전부 사람이네요. 학생들인가 봅니다.”
학생들이 준비한 행사이니만큼, 분위기를 망치지 않게 목소리를 낮추어 설명하는 김 교수였다.
“행위예술 중에 저런 게 있잖습니까. 움직이는 동상 같은 거 말입니다.”
“아하!”
김 교수의 말에, 두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신전 쪽을 바라보았다. 사진을 찍거나 말을 거는 30명의 체험자들 속에서도 움직임 하나 없이 앉아 있는 조각상들이었다.
“그래도 대단하네요. 진짜 조각상 같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전부 다 학생인가요?”
“저기 가운데 조각상만은 진짜 조각입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아주 잘 만들었어요. 피부 표현도 아주 좋고, 힘줄이나 의상의 부드러운 느낌도 잘 살렸습니다. 머리카락도 그렇고요.”
조소과 김 교수의 눈이 번뜩였다.
우리 과에 저런 재능을 가진 학생이 있었다니. 당장 대학원으로 불러와야…….
“안녕하세요. 교수님!”
그에 세 교수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회화과 교수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부른 1학년은 아차 싶었다. 대학교에서 교수님이라고 부르면 모든 과 교수님이 돌아본다는 걸 깜빡했다.
놀라는 1학년에, 회화과 교수가 웃으며 물었다.
“축제 구경 중이니?”
“네. 여기가 박민형 선배님이 참여하시는 프로젝트라서요.”
“역시 이거 민형이 그림이었구나!”
회화과 교수가 손에 들고 있던 [축복권]을 꺼냈다. 그에 1학년과 그 주위에 있던 미술과 학생들이 눈을 빛냈다.
축복권! 축복권이다!
먹이를 노리는 매와 같은 눈빛이었다.
그걸 알아차린 세 교수가 웃으며, 아마도 저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인 [축복권]을 학생들에게 주려고 하려던 찰나,
뎅-
하고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이제부터 축복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제이슨 무어의 [BREAK]의 오케스트라가 들려왔다.
“신이시여. 부디, 당신들에게 기도한 이들에게 축복을 내리시옵소서.”
곧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BREAK]의 바이올린 솔로와 함께.
조소과 김 교수가 조각상이라고 장담했던 주신 조각상이,
눈을 떴다.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팔과 손이 흔들렸다.
부드럽게 웃었다.
새하얀 입술이 열렸다.
“-그대들에게 축복이 있으리-”
축복이 내려졌다.
* * *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교수들은 학생들 쪽으로 내밀었던 [축복권]을 자신의 주머니 안으로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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