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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55화 (75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55화

“으악! 놀래라! 왜 갑자기 소리를 질러?”

음악의 신 뒤에 서 있던 친구가 비명을 지르자 깜짝 놀란 여자가 물었다.

“눈, 눈, 눈 떴어!”

친구가 손을 덜덜 떨며 맞은편에 있던 연기의 신 조각상을 가리켰다.

“뭐? 무슨 소리야?”

친구의 말에 여자가 맞은편에 있는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

조금 전까지 눈을 감고 대본을 보고 있던 연기의 신 조각상이, 두 눈을 뜨고 대본을 읽고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조각상에서 눈동자는, 새하얀 한지에 떨어진 먹물처럼 아주 잘 보여서 모를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대본을 보고 있던 석상의 검은색 눈동자가 데굴 굴러, 음악의 신 석상의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생기가 넘치는 눈동자와 여자의 눈이 마주쳤다.

으아아아악!!

처음 조각상과 눈이 마주친 사람들부터 조금 후 이변을 알아차린 사람들까지. 그들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신전의 중앙.

아직 눈을 감고 있는 서준은 그 경악과 놀람이 가득한 비명에 웃음을 꾹 참았다. 아마 조각상으로 분장하고 있는 후배들도 웃음을 참고 연기하느라 아주 힘들 터였다.

‘재미는 있지만……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다음 순서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조각상으로 분장한 서준의 손목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서준만이 볼 수 있는 빛이었다.

[(선)차분해지는 사과꽃 향기가 발동됩니다.]

향기로운 사과꽃 내음이 서준으로부터 흘러나와, 빠르게 신전과 울타리 밖까지 퍼져 나갔다. 눈을 뜬 조각상들의 모습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그 향기를 맡고 하나둘 진정했다. 비명 소리도 이내 잦아들었다.

그러자 비명에 가려졌던 잔잔한 오케스트라의 곡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차분해지자,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 조각상들, 사람이었구나…….”

누군가의 혼잣말이었으나 조용하던 상황에서 구경하던 모든 이들에게 들렸다.

그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 한번 조각상들을 살펴보기 시작할 때, 신관으로 분장한 미술팀 팀원이 뎅- 하고 종을 울리며 준비한 대사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신이시여. 부디, 당신들에게 기도한 이들에게 축복을 내리시옵소서.”

그 말이 끝나자, 조각상들이 동시에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움직인다!”

허억!

진짜 움직여!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진짜로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되니, 여기저기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앞으로 오른발을 내디딘 조각상들은 기름칠 덜된 로봇처럼 딱딱한 움직임을 보이며, 천천히 몸을 뒤로 돌렸다. 자신의 등 뒤에서 기도했던 사람들을 볼 수 있도록.

그렇게 뒤로 도는 동작들도 합을 맞춘 듯 똑같았다.

미술의 신으로 분장한 연기과 1학년은 자신의 뒤에서 파리가 들어가도 모를 정도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

25분 동안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이렇게 놀라는 사람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참았다.

서준 오빠의 지옥 트레이닝은 이 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

다시 해볼까? 한 번만 더 해보자. 다시. 한 번만 더.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던 서준 오빠의 얼굴을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부르르 몸이 떨렸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한 조각상들은 들뜨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정해진 대본대로 연기를 이어나갔다.

신전 안쪽을 바라보고 있던 여섯 개의 하급 신 조각상이 180도로 돌아, 뒤에 서 있던 신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듯 고개를 살짝 내렸다 들어 올렸다. 사람처럼(사람이지만)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그에 뒤에 서 있던 사람들도 반사적으로 꾸벅 인사를 했다.

뭐랄까.

정말로 신비롭고 묘한 기분이었다. 정말로 신화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울타리 밖 사람들도 조금쯤 그런 느낌을 받았다.

뎅-

또다시 종이 울렸다.

“그럼 모두 주신께 기도를 올립시다.”

신관의 말에 신전 입구와 가장 가까이에 서 있던 건강의 신이 몸을 돌려 성큼성큼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는 입구 쪽으로 가 맨 오른쪽에 섰다. 그런 조각상의 모습에 어, 어? 하던 건강의 신의 신도들(?)에게 신관들이 친절히 말했다.

“같이 가시면 됩니다.”

신관들의 안내에 따라 건강의 신의 신도들이 입구 쪽에 서서 주신 조각상을 바라보고 있는 건강의 신 뒤쪽에 옹기종기 모여 섰다.

그다음으로는 건강의 신과 마주 보고 있던 사랑의 신.

꽃다발을 품에 들고 있던 사랑의 신은 길다란 옷자락을 한 손으로 잡고 부드럽게 단상 위를 걸어갔다. 그리고 건강의 신의 반대편인 왼쪽 끝에 섰다.

그에 눈치 빠른, 빨리빨리의 민족, 한국인들은 신관의 안내가 있기도 전에, 이동하는 사랑의 신 조각상의 뒤를 따라가 섰다. 두 손을 모으고 경건한 움직임으로, 정말로 사랑의 신의 신도가 된 것처럼.

몰입도 200%인 사람들의 모습에 아직 이동하지 않은 다른 신도들(?)의 볼이 상기되었다.

“이거 재밌다!”

“그러게!”

다음으로는 미술의 신이 건강의 신의 옆으로 이동했다. 두 예고생과 네 명의 미술과 후배들이 들뜬 얼굴로, 그러나 경건한 발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학문의 신, 음악의 신, 연기의 신이 새하얀 단상 위를 마치 런웨이처럼 걸어, 신전 입구에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주신 조각상 쪽을 바라보며 일렬로 선 새하얀 조각상들과 그 뒤에 선 신도들.

울타리 밖에서 봐도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이제 끝인가?”

“저 가운데 조각상들은 진짜 조각상인가?”

아무리 봐도 저 끝에 있는 세 개의 조각상은 정말 조각상 같았다. 특히, 가운데 있는 주신 조각상은 진짜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처럼 차갑고 서늘하게만 보였다.

그때였다.

뎅- 하고 울리던 맑은 종소리 대신 잔잔하게 배경음으로 깔리고 있어서 눈치채지도 못했던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귀에서 선명하게 들렸다.

“이건?”

“이번에 나온 제이슨 무어의 곡이야. 제목은 브레이크고 중간에 변화하는 바이올린 솔로가 아주 인상적인…….”

설명하던 음악과 학생이 말을 멈추었다. 설명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은 더 설명해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BREAK]에서 가장 극찬받는 바이올린의 솔로가 신전과 밖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주신상의 양 옆에 위치한 두 개의 조각상이 눈을 떴다. 드러난 눈동자가 아주 매서웠다.

눈을 뜬 두 호위상은 다른 조각상들과 마찬가지로 로봇처럼 뻣뻣한 움직임으로 보이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쿵- 하고 석상의 무거운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창과 방패를 점검하듯 천천히 움직여보던 두 호위상은 이내 주신상 쪽으로 몸을 돌려,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와 함께 입구 쪽에 일렬로 서 있던 여섯 하급 신들도 주신상 쪽을 바라보며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어? 어?”

“뭐지?”

여덟 개의 조각상이 고개를 숙인 모습에, 신도들과 울타리 밖 사람들이 당황할 때.

환한 빛이 주신 조각상을 비추었다.

[BREAK]의 바이올린 솔로의 하이라이트 부분도 들려왔다. ‘깨다, 부수다’라는 제목 그대로, 바이올린 선율은 아주 강렬하고 자유로우며 화려한 연주로 오케스트라라는 틀을 깨부수고 있었다.

마치 지금의 주신 조각상처럼.

주신 조각상의 새하얀 속눈썹과 눈꺼풀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 아래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닮은 검은색 눈동자가 나타났다.

묘한 분위기에 모두 숨을 죽였다.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에서 벗어난 블루문의 앵콜 무대에서 영감을 받은 제이슨 무어의 [BREAK]의 바이올린 솔로가 점점 더 강렬해졌다.

주신상의 새하얀 발이 앞으로 나왔다.

왠지 모르게 쿵- 하고 무거운 조각상이 옮겨진 것 같은 묵직하고 둔한 느낌이 느껴졌다. 여섯 하급신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무게감이었다.

첫 걸음을 내디딘 주신 조각상은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마치 두꺼운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는 새처럼.

조각상이라는 두터운 껍데기를 깨고, 거칠 것 없이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 앞에는 작은 분수가 있었다.

그걸 알아챈 사람들이 ‘그대로 걸어오면 물에 빠질 텐데?’라고 생각할 때, 신전 가운데에서 샘솟고 있던 분수가 잦아들었다.

주신은 거리낌 없이 새하얀 두 발을 잔잔해진 물에 담갔다. 그리고 평지를 걷듯 물 위를 걸었다. 주신의 뒤로 발자국처럼 파문이 일었다.

점점 다가오는 주신에, 사람들은 어쩐지 다른 조각상들처럼 몸을 숙여야 할 것 같은 압박감과 함께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을 느꼈다.

만약 정말로 신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저도 모르게 경외감이 들었다.

그렇게,

주신은 하급 신들과 신도들을 곁으로 내려왔다.

* * *

가까이에서 주신 조각상을 보게 된 사람들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넋을 놓고 있었다.

진짜 미의 신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외모였다. 멀리서 봐도 잘생김이 느껴졌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잘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생겼냐. 그냥 진짜 조각 아니야?’

게다가 아우라도 대단했다. 그저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데도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진짜 신인가? 아니, 신은 없을 텐데? 근데 여기 있잖아. 어라, 그럼 신은 있는 건가?

그런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 것 같은 묘한 상태였다.

그래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BREAK]의 바이올린 솔로 연주가 멈추었다는 걸,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표정하던 주신 조각상이 무릎을 꿇고 있는 하급 신들과 넋을 놓고 올려다보고 있는 신도들(?)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들에게-”

그건 한국어였지만, 한국어가 아닌 것처럼 들렸다.

“-축복이 있으리-”

미리 녹음한 목소리에 효과음을 더한 것에, 서준의 능력을 추가한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선)천신 제루엘이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선)천신 제루엘의 축복(최상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선)천신 제루엘의 축복(중상급)이 발동됩니다.]

[(선)천신 제루엘의 축복(중상급)]

천신 제루엘이 내리는 축복입니다.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올바른 일일 때, 이루어질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노력한다면 더욱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기분 탓인가.

따뜻한 것이 몸 안으로 스며들어와, 충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벅참과 설렘이 마음 속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었지만, 시간을 멈추지 않았다.

뎅-

맑은 종소리가 들리고 스피커에서 다시 [BREAK]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이올린 솔로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연주였다.

그에 맞춰, 축복을 내린 주신은 몸을 뒤로 돌려 물 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주신이 연못을 통과하자 분수의 물이 다시 샘솟았다.

마치 동영상을 뒤로 재생한 것 같았다.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 도착한 주신은 몸을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언제 움직였냐는 듯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서서 살포시 눈을 내려감았다.

다시 조각상이 된 것이었다.

주신뿐만이 아니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두 호위상도, 일렬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섯 하급 신 조각상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주신 조각상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똑같은 모습으로 서서 눈을 감았다.

아마 축복 의식 전에 찍은 사진과 지금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완전히 똑같은 모습일 것 같았다.

뎅- 뎅- 뎅-

세 번의 종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올라가 있던 새하얀 커튼이 아래로 내려와 신전의 내부를 막기 시작했다. 빈틈없이, 신전의 입구까지 모두 가려지자 신관이 웃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지금까지 연기과, 미술과, 무대미술과의 협동 프로젝트, 신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가시는 문은 이쪽입니다.”

신관들이 웃으며 울타리 안에 있던 30명의 체험자들을 울타리 바깥으로 안내했다.

멍한 정신으로 신관들이 이끄는 대로 쫄래쫄래 따라나온 체험자들과 바깥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간 표정으로 굳게 닫혀 버린 신전을 바라보다가, 헉! 하고 숨을 내뱉으며 정신을 차렸다.

“……와, 미쳤다……!”

“진짜 이게…… 와…… 뭐지!?”

“우리 꿈 꾼 거 아니지?!”

굉장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정신없이 저마다의 감상을 뱉어내기 시작하자, 잔디밭 앞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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