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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54화 (75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54화

♩-♪♬-

제목은 모르지만 들어본 적은 있는 클래식이 들린다. 여러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감미로웠다.

하지만 그런 연주에 귀를 기울일 여유는 없었다.

사람들의 모든 신경과 감각은 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숨도 쉬지 않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저도 모르게 배 속에서부터 우러러나오는 감탄도 내뱉지 못한 채 앞에 펼쳐진 풍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새하얀 신전이었다.

맨 뒤에는 (아마도 관계자들이 대기하고 있을)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새하얗지만 조금 금빛이 섞여 있는 그 천막은 신전의 뒷배경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 모양으로, 두 계단 정도 높은 단상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중앙에는 네모난 연못(?)이 있었는데, 평평했지만 뭔가 설치가 되어 있는 듯, 깨끗하고 투명한 물줄기들이 작은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사람들과 가까운 곳인 가장 앞쪽은 마치 신전의 입구처럼 텅 비어 있었고, 그 양옆으로 여섯 개 새하얀 조각상이 두 쌍씩 세 줄로 나란히 서로를 마주 보며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맨 끝.

빛과 만나 반짝이는 분수 너머.

가장 뒤쪽에는 세 개의 조각상이 일렬로 자리 잡고 있었다.

○☆○

○■○

○■○

○■○

모두 아홉 개의 조각상이 서 있었다.

새하얀 대리석(어쩌면 석고상일지도 모른다.)으로 만들어진 조각상들은 전부 살포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두 눈을 뜨고 사람들을 바라볼 것만 같은 생생함이 있었다.

경이로웠다.

마치 순식간에 고대 그리스로마 신전의 정원으로 이동한 듯한, 환상적이며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조각상이라고 해봤자, 뭐 별것 없겠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왔던 사람들은 모두 저절로 벌어지는 입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치 다른 감각들은 전부 사라지고 시각만이 몸과 마음, 머릿속까지 지배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입을 쩌억 벌리며 신전과 조각상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접수대에 있던 미술팀 팀원과 안내를 하러 나온 [신전]팀 팀원들이 작게 웃었다.

“……와……이게 뭐야…….”

누군가 저도 모르게 그 말을 토해내고 나서야, 넋을 놓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시각만 남아 있던 감각이 순식간에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귓속으로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이 들리고, 피부로 솔솔 부는 바람이 느껴졌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풀 내음과 함께 입안에서는 조금 전까지 먹었던 음료나 과자 등의 뒷맛이 느껴졌다.

그 감각들에, 현실 세계로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눈앞에 있는 신전을 바라보면, 다시금 아름다운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 발을 디딘 느낌이었지만 말이다.

“……그리스 안 가도 되겠는데?”

“그러게.”

고작 대학생들이 만든 작품에 이런 생각이 들지는 몰랐던 사람들이 최고의 감탄을 토해냈다.

시간 때우기로 왔는데, 어쩐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멍하게 앞에서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걸음을 옮겼다.

□ 모양으로 신전을 둘러싼 울타리가 신전보다 넓은 구역에 설치되어서 자세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멋진 조각상들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울타리 넘어오시면 안 됩니다.”

“앗, 죄송합니다.”

접수대의 학생처럼, 그리스 신관복(하늘하늘한 흰 옷)을 입은 학생들이 빙그레 웃으며 그런 사람들을 안내했다.

“그럼 안쪽으로는 못 들어가나요?”

“축복권이 있으시면 25분부터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축복권이요?”

그 말에 넋 놓고 보다가 정신을 차린 두 예고생이 눈을 반짝였다.

축복권!

조금 전까지는 수상하고 미심쩍었던, 하지만 지금은 신화 속 세상으로 가는 티켓인 그 종이가 두 사람의 손에 있었다. 그것도 두 장이나!

“이거 맞나요?”

두 예고생은 바로 접수대로 달려가 조금 구겨진 축복권 두 장을 내밀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 예고생과 접수대의 신관에게로 쏠렸다. 귀가 쫑긋 섰다.

신관(미술팀 팀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와악!”

저도 모르게 비명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슬금슬금 사람들이 접수대로 모여들었다.

“25분부터 신전이 개방되는데, 그때 들어가실 수 있는 입장권입니다. 한 번 사용하시면 이 도장이 찍히기 때문에 두 번은 사용 못 하십니다.”

“그럼 25분 전까지는 못 들어가나요?”

“네. 아쉽지만 조각상들이 워낙 귀한 것이라서요.”

특히, 중앙에 있는 주신 조각상(=서준 선배님)은 몸값이 어마어마해서 사고라도 났다간 큰일이었다.

미술팀 팀원이 뒷말을 삼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두 예고생과 사람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았어요. 진짜 사람인 것 같아요!”

“누가 조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세계적인 조각가가 되실 거예요!”

음.

세계적인 배우가 포함되어 있긴 했다.

“사인은 못 받겠죠?”

“네. 사인회 일정은 없습니다.”

두 예고생들의 질문 세례에도 신관은 웃으며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축복권을 가지고 계셔도 선착순 30명까지니까 주의해 주세요. 아무래도 다 들어가시면 복잡해져서 제한을 뒀거든요.”

“못 들어가면 어떻게 하죠?”

“다음 타임에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여러 번 들어갈 수 있나요?”

“도장이 찍히지 않은 축복권이 있으시면 가능합니다.”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힘든 일이니까 말이다.

그에 두 예고생이 활짝 웃었다. 사람들도 일행들과 속닥거렸다.

“축복권은 어디서 구할 수 있어요?”

누군가의 물음에 두 예고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둘도 누가 버린 축복권을 주운 것이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에 신관이 웃으며 대답했다.

“한예대 안 여기저기에 숨겨뒀습니다.”

“……네?”

다른 과들의 가게에서도 그랬듯, 돈을 내고 축복권을 구입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뻥진 얼굴로 신관을 바라보았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보물찾기 같은 겁니다. 학교 건물 안에는 없고 건물 밖에만 숨겨두었습니다. 다른 과 행사에 방해가 안 되는 곳에요.”

그사이 네모난 울타리를 따라 돌며 조각상들을 구경하며 있던 사람들도, 마치 정말로 신전 안을 돌아다니는 신관처럼 울타리 안을 돌아다니고 있던 [신전]팀 팀원들에게 설명을 듣고 있었다.

하늘하늘한 복장을 입은 신관들이 웃으며 말했다.

“축복은 간절한 사람에게 내려져야 하는 거니까요.”

아니.

그건 그렇지만.

이건 대학 축제잖아……?

하고 다들 잠깐 생각했지만, 무료라니 나쁠 건 없었다.

그저…….

잠시 신전 주위에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의 눈알이 데굴데굴 움직였다. 그리고 동시에 다들 사방으로 달려나갔다.

여기 있는 모두가 경쟁자일 뿐.

으아아아악!!

대 축복권 찾기 시대의 시작이었다.

* * *

그렇게 클래식 음악을 따라왔거나 팸플릿을 보고 시간 때우기로 왔던 사람들이 넋을 놓고 조각상들을 바라보다가 신관들에게 설명을 듣고 ‘축복권 찾기’를 시작하러 달려가길 여러 번.

“이제 개방까지 2분 남았어요.”

신관인 양, 울타리 안을 돌아다니던 소품팀 팀원들이 조각상을 연기하고 있는 서준과 배우팀에게 속삭였다.

“벌써 30명 꽉 차서 다들 줄 서서 기다리고 있어.”

두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는 터라, 주변을 구경하지 못하는 배우팀에게 딱 알맞은 도움이었다.

신관(팀원)들의 말대로 신전 바깥에는 축복권을 손에 들고 있는 30명이 나란히 줄을 서 있었다. 그리고 아쉽게 바로 앞에서 줄이 끊긴 사람들과 몰려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우와. 이걸 민형 선배님이랑 친구분들이 만들었다고?”

30명 중에는 예고생 둘과 미술팀 팀장, 박민형을 도와준 네 명의 미술과 후배들도 있었다.

“미쳤다……!”

눈알이 뱅글뱅글 돌아갈 정도로 멋있었다.

“역시 미술과 에이스!”

“……근데 민형 선배님 조각도 하셨나? 그림과 디자인을 주로 하셨던 것 같은데?”

“그러게?”

의아함도 잠시.

후배 중 하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여름 방학 동안 조각을 배우신 게 아닐까! 천재들은 막 두 달 사이에 외국어도 배우고 실사화도 프로급으로 그리고는 하잖아.”

“그럴지도!”

그 대화에 접수대에 있던 소품팀 팀원(교대했다)이 작게 웃고 말았다.

그렇게 시끌벅적하던 때.

25분짜리 모래시계의 모래가 모두 떨어졌다. 시간을 살펴보던 사람들도 얼른 카메라를 준비했다.

겨우 5분.

조각상을 보고 함께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뎅-

하고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그럼 입장하겠습니다. 모두 축복권을 꺼내주세요.”

신관의 말에 가장 앞에 서 있던 두 예고생이 환한 얼굴로 축복권을 내밀었다.

축복권 버려주신 분들! 정말로 고마워요!

종이에 그려진 펼쳐진 양 날개 중앙, 축복권이라고 쓰여진 글씨 위로 도장이 찍혔다.

그리스신전처럼 생긴 도장이었다.

“단상에 올라가시면 안 되고, 조각상도 만지시면 안 됩니다.”

“넵!”

신관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인 두 예고생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그저 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통과했을 뿐인데, 마치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디딘 기분이 들었다.

[(선/제작)제갈세가의 초급 환영진(하급)이 발동됩니다.]

새로운 세계가 맞았다.

[(선/제작)제갈세가의 초급 환영진(하급)]

제작자가 원하는 감각을 대상자가 약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감각: 신비

진법으로 유명한 제갈세가의 진법 중 하나로, 세가의 어린아이들이 다양한 감각을 훈련할 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 진법이 울타리 내부에 설치되어 있었다.

“우와아…….”

예고생들 뒤를 이어 들어온 사람들도 그 묘한 감각을 느꼈다.

거기에 가까이서 본 신전의 모습과 처음 듣는 멋진 곡, 그리고 훌륭한 조각상들까지 어우러져 있으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앗! 빨리 가서 사진 찍자!”

“그래!”

넋 놓고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이럴 시간이 없었다.

겨우 5분. 조각상 하나만 자세히 봐도 모자랄 시간이었다.

움직이는 예고생들의 모습에 다른 사람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각상들은 다 테마가 있는 것 같았다.

“여기 꽃다발을 안고 있는 조각상은 사랑의 신을, 여기 검을 허리에 차고 있는 조각상은 힘의 신을 뜻합니다. 건강의 신이라고도 하지요.”

신관의 설명이 더해졌다.

책을 펼치고 있는 조각상은 학문의 신, 리라를 연주하고 있는 조각상은 음악의 신, 붓과 팔레트를 쥐고 있는 조각상은 미술의 신이었다.

“이건…… 연기의 신인가요?”

예고생이 빼꼼 고개를 내밀어, 마치 대본을 들고 팔을 쭉 내밀어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조각상을 가리켰다.

“네. 맞습니다. 이서준 배우님이 다니는 학교인데, 연기의 신을 빠뜨릴 수는 없죠.”

그건 그렇지.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을 찍었다.

정말로 관광객들 같은 모습에 바깥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쪽 세 조각상은 뭘 뜻하나요?”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 두 조각상과 그 가운데에 있는 중앙의 조각상을 가리키며 누군가 물었다.

“특히, 가운데 있는 조각상이요.”

모두의 시선이 가운데 조각상으로 향했다.

다른 조각상들의 옷보다 좀 더 화려한 장식이 달린, 하늘하늘한 느낌의 옷을 입고 서 있는 조각상은 누가 봐도 감탄할 정도로 멋지고 아름다웠다.

반듯한 이마에 오똑한 코. 살포시 닫혀있는 눈꺼풀과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조각한 것 같은 눈썹과 속눈썹. 대리석이지만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과 피부. 그리고 손등으로 보이는 핏줄과 팔의 근육 등.

금방이라도 살아서 움직일 것만 같은, 섬세하게 조각된 조각상이었다.

“가운데 있는 조각상은 주신으로, 여기 있는 하급신들의 다스리는 신입니다.”

그에 누군가 저도 모르게 말했다.

“미의 신인 줄.”

동의의 뜻이 담긴 웃음소리가 신전을 가득 채웠다.

“확실히 저 조각상이 특출나게 잘생기긴 했어.”

“분위기도 다른 것 같고.”

다른 조각상들처럼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는 것뿐인데도, 정말로 ‘주신(主神)’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민형 선배님이 저 조각상을 만들 때 제일 집중했나 봐.”

“그러게.”

미술과 후배들이 속닥거렸다.

“그럼 양쪽의 조각상은요?”

신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주신을 지키는 하급 신들입니다. 들고 있는 창과 방패가 그들의 주 무기죠.”

“오…….”

스토리도 있는 조각상들에 사람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게 신관의 짧은 설명이 끝나고 자유시간이 되었다.

30명의 사람들은 조각상들 주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댔다. 조각상만 찍기도 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장 인기 있는 건 역시 ‘미의 신’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잘생긴 주신 조각상이었다.

“근데 안쪽에 있어서 사진 찍기 불편하네.”

“그러게.”

줌 기능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그러던 중, 뎅- 하고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벌써 끝났어!?”

5분은 너무 짧았다고 한탄하려던 그때, 신관이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축복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에 울타리 안의 30명도, 울타리 밖의 사람들도 웅성웅성댔다.

“……축복 의식?”

“사진 찍는 게 끝이 아니었어요?”

신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 아직 이벤트가 남아 있습니다. 모두 자신이 받고 싶은 축복의 신 뒤에 서주세요. 사랑을 이루어지길 바란다면 사랑의 신의 뒤에, 건강을 원한다면 힘의 신 뒤에 말이죠.”

눈을 끔뻑이던 사람들이 이내 흥미로운 얼굴로 이동했다. 두 예고생과 미술과 후배들도 마찬가지로 들뜬 얼굴이었다.

“이런 이벤트가 있었구나!”

“구경하는 게 끝인 줄 알았는데!”

그들이 향한 곳은 당연하게도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있는 미술의 신의 뒤였다.

“미술의 신님, 부탁드립니다! 꼭 여기 입학하게 해주세요!”

“민형 선배님만큼, 아니, 그 반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게 해주세요!”

단상 위에 우뚝 서 있는 미술의 신의 뒤에서 진지함 반 장난 반의 마음을 담아 기도한, 두 예고생과 미술과 후배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건너편에 서 있던 학문의 신 조각상과 눈이 마주쳤다.

……응?

조각상과……눈이 마주쳤다고……?

……!

으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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