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53화
조금 전.
학교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기 전, 축제에 참여하는 한예대 학생들이 마무리를 하고 있을 무렵.
[신전 프로젝트]팀은 손에 종이를 쥐고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는 어때요?”
“괜찮은데?”
두세 사람씩 모여 사람들의 손이 닿을 만한 곳에, 그리고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만한 곳에 명함만 한 종이, [축복권]들을 숨기고 있었다.
“보통 친구들이랑 같이 오니까 여러 개씩 숨기자.”
“그래!”
그래서 두 개를 숨길 때도 있고, 세 개를 숨길 때도 있었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팻말 뒤…….”
그리고 나중에 확실하게 회수하기 위해 [축복권]을 숨겨둔 위치도 확실히 기억해 두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배정받은 [축복권]을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넓은 한예대 캠퍼스 여기저기에 숨기고 온 [신전]팀이 천막으로 복귀했다.
“팸플릿 안에도 두 장 넣어뒀어요!”
“누군진 몰라도 제일 쉽게 찾겠네.”
후배의 말에 서준이 웃었다.
그 ‘누군가’가 [축복권]을 버리고 뒤따라가던 고등학생들이 줍는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근데 역시 수상한 것 같아. 축복권이라는 이름.”
“팸플릿에 적어뒀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팀원 중 하나가 마치 작은 책자처럼 생긴 ‘한예대 축제 팸플릿’을 들어 보였다.
아무래도 3일 동안 한예대 내에서 진행될 공연과 전시가 많은 만큼 팸플릿의 페이지 수도 제법 되었는데, 그중 한 페이지에 [신전 프로젝트]에 대한 안내가 짧게 적혀 있었다.
<신전 프로젝트>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올 듯한, 창작된 인물들의 조각상을 전시 중입니다. [축복권]을 가지고 오시면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25분부터 5분 동안 참여 가능)
전시 시간: 11:00-11:30 / 12:00-12:30 / ……
전시 시간 아래로 전시 장소와 [축복권]은 1인 1매만 사용 가능하다는 점도 적혀 있었다.
“그래도 자세히 안 보면 모를 것 같지?”
“다른 행사들이 재밌어 보이니까.”
다른 행사들의 소개에는 일반인 관객들과 캐스팅하러 온 관계자들이 혹할 만한 (연예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학생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주연: 양주희, 김주경, ……’처럼.
“내일 보러 갈까?”
“그럴까요?”
여기 혹한 사람들 추가요.
서준의 말에 연기과 후배들이 눈을 반짝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연기과뿐만이 아니라, 음악과와 미술과 등 타 과의 행사에서도 유명한 인물들을 앞세워 자신들의 공연과 전시를 알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조그맣게 적혀 있는 [신전 프로젝트]는 눈에 띄지 않을 게 분명했다. 첫 타임은 관객도, 참여자도 별로 없을 터였다.
“뭐, 서준이가 있다는 게 밝혀지면 게임 끝이지만.”
“흐흐흐흐.”
소품팀 오동윤 팀장의 말에 팀원들이 일제히 악당처럼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물론 서준의 정체가 밝혀진 후, 쓰나미처럼 구경하러 올 사람들을 관리할 걸 생각하면 바짝 힘이 들어갈 정도로 긴장되지만, 다행히 코코아엔터에서 보내준 경호원들이 있어 큰 문제는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서준아, 촬영팀은 언제 온대?”
“곧 올 시간이에요.”
오동윤 팀장의 물음에 서준이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실례합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
그에 오동윤 팀장이 반가운 얼굴로 천막을 열어젖혔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촬영팀이 보였다. 영화 [화]를 함께 찍었던 ‘화 필름’ 촬영팀이었다.
“선배님! 다들 오셨네요!”
“오동윤, 잘 있었냐?”
“우리 동윤이가 벌써 4학년이라니!”
촬영팀만 올 줄 알았는데,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전부 온 모양인 것 같았다. 반가운 얼굴들에 전前 [화]팀 팀원이었던 오동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후배님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아!”
미리 설명을 듣긴 했지만 대선배님들의 등장에 [신전]팀이 바짝 굳어 인사했다. 그러면서도 눈동자는 초롱초롱했다. 온전히 학생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독립영화 [화]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서준아! 오랜만!”
“안녕하세요. 지윤이 누나.”
“나도 왔지!”
“도윤이 형도요.”
감독 황지윤과 배우 황도윤도 있었다.
연기과 후배들은 황도윤과, 미술과 후배들은 화 필름의 미술팀과, 무대미술과 후배들은 화 필름의 소품팀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과는 없네…….”
영화과 출신인 화 필름의 촬영팀이 아쉬운 얼굴로, 귀여운 후배들과 정답게 이야기하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에 서준이 웃으며 답했다.
“원래는 촬영할 계획이 아니었거든요. 왜 이렇게 커졌는지 모르…….”
서준이 잠시 멈췄다 말을 이었다.
“……진 않네요.”
서준과 팀원들이 하고 싶은 걸 다 집어넣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말에 황지윤과 촬영팀 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알아. 알아. 원래 하다 보면 추가하고 싶은 장면이 계속 생기지.”
“영화 촬영도 그렇잖아.”
“저번에도 그래서 분량 늘었죠.”
촬영팀, 그러니까 지금은 독립영화 감독으로 화 필름에서 여러 작품들을 만들고 있는 영화과 선배들이 동의하며 떠들었다.
“전시 준비 시작합시다!”
그렇게 전설적인 [화]팀 선배들과 잠시 만남의 시간을 가진 [신전]팀은, 시간을 확인한 서준의 말에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배우들은 의상을 갈아입고, 미술팀은 배우들을 분장하고, 소품팀은 마지막으로 무대와 소품들을 점검했다.
화 필름 촬영팀도 의뢰받은 내용대로 일하기 시작했다.
천막 밖에 카메라들을 설치하고, 천막 안에서 [신전]팀이 준비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황지윤도 카메라를 들었다. 지금 찍는 장면들은 편집되어, [신전 프로젝트] 영상과 함께 메이킹 필름으로 채널[JUN]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카메라 앵글에 의상을 갈아입은 서준의 모습이 담겼다.
화장품 모델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깨끗한 서준의 피부에 흰색 물감이 칠해지기 시작했다.
의상 밖으로 보이는 발부터 손가락, 팔, 어깨에 목과 얼굴까지.
색이 보이는 곳들은 전부 박민형의 손에 의해 붓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말로 대리석 조각처럼 새하얗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검은색 눈썹은 흰색 물감으로 뒤덮여 새하얗게 변했고, 짧은 머리카락 위로는 서준의 허리까지 오는 흰색 가발이 씌워졌다.
흰색 가발은 마치 왁스를 듬뿍 바른 것처럼, 흰색 찰흙으로 만든 것처럼 딱딱했다. 바람이 불어도 한 올 한 올 흩날리지 않고, 진짜 조각처럼 움직임 하나 없을 것 같았다.
“끝났어요.”
미술팀 팀장 박민형이 마지막 붓칠을 끝내고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주신과 그를 보필하는 여덟 하급신.
총 아홉 개의 조각상이 완성되었다.
* * *
“어때요?”
조각상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촬영팀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솜씨가 뛰어났다.
누군가의 상상이나 그림으로만 볼 법한 환상적인 외모에, 그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미소까지. 과거에 이름을 날린 위대하고 천재적인 조각가가 혼신의 힘을 바쳐 조각한 것 같은…….
‘……아니, 잠깐. 이거 서준이지……?’
넋 놓고 있던 촬영팀이 그 사실을 깨닫고 숨을 뱉어냈다. 저도 모르게 숨까지 참고 감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완전…… 대단해……!”
“진짜 조각상인 줄!”
“너희도 되게 잘 어울린다!”
터져나오는 탄성에 [신전]팀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축제 때 해볼걸.”
“오빠가 하면 그냥 미대생이 만든 습작이지.”
아쉬워하는 황도윤에, 황지윤이 진심으로 말했다.
“……그래도 미대생이라고 해줘서 고오맙다.”
유치원생의 작품이 아닌 게 어디야.
이어진 황도윤의 말에, 촬영팀과 [신전]팀이 웃음을 터뜨렸다. 친남매라서 황지윤의 평가가 박했지만, 황도윤의 외모는 괜찮았다.
천막 안을 가득 채우던 웃음소리가 잦아들고 [신전 프로젝트]의 팀장, 서준이 팀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이렇게까지 크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다들 의욕이 너무 넘치셔서…… 좋았어요.”
서준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마지막까지 긴장 풀지 말고 연습한 대로만 하도록 해요. 재미있고 즐겁게요.”
서준이 손을 앞으로 내밀자, [신전]팀들이 그 위에 손을 올렸다. 물감이 묻지 않게 조심하면서.
“신전 프로젝트!”
“화이팅!”
축제의 막이 올랐다.
* * *
“시간이 애매한데?”
“그러게.”
첫 번째 미술 전시를 보고 온 두 예고생이 벤치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으로 음악 공연을 보려고 했는데 공연 시작까지 조금 시간이 남아 있었다.
“짧게 볼 수 있는 거 없어?”
“으음…….”
보통 사람이라면 시간을 때울 겸 한번 훑어보고 나올 미술 전시회를 가겠지만, 두 예고생은 미술 전공이라 다양한 미술 작품이 걸려 있는 전시회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전시된 미술 작품들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팔랑팔랑-
팸플릿이 넘어갔다.
그때 예고생의 눈에 한 행사가 들어왔다.
<신전 프로젝트>
“조각은 어때?”
“조각?”
친구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 예고생이 가리키는 팸플릿 부분을 읽었다.
“괜찮을 것 같은데? 약간 PTSD가 생길 것 같은 느낌만 빼면.”
“그러게. 아그리파 같은 건 아니겠지?”
하.하.하.
미대 입시생이라면 기본 중의 기본인 석고상 그리기.
두 예고생은 열심히 그렸고, 그리고 있고, 그릴 예정인 석고상들을 떠올리며 해탈한 듯 웃었다.
“그래도 가 볼까?”
“그러자.”
시간 때우기에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장소가 어딘지 알아보기 위해, 팸플릿을 자세히 읽어보는데 희한한 점들이 있었다.
“어? 축복권?”
“우리가 아까 주운 그건가?”
두 예고생이 눈을 끔벅이며 가방에서 조금 구겨진 종이를 꺼냈다.
[축복권]
“오. 맞는 것 같아.”
“여기서 사용하는 거였구나. 조각 전시회인데 관객 참여라니 신기하네.”
“시간도 봐. 딱 30분씩만 해.”
조각품이라면 시간과 관계없이 계속 전시해도 될 텐데. 희한한 일이었다.
궁금증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가 볼까?”
“가 보자!”
궁금한 건 못 참지!
두 예고생이 신 나게 [신전 프로젝트]가 진행될 장소로 달려갔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새하얀 울타리가 둘러싸인 장소였는데, 울타리는 마치 그리스 신전의 기둥을 작게 만든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울타리 안쪽.
그곳에는 그리스 신전의 기둥처럼 커다란 기둥들이 직사각형으로 끝과 끝에, 2열로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사진으로만 봤던 그리스 신전 같은 모습이었다.
“아직 11시 안 됐어?”
“응. 1분 남았어. 딱 11시에 공개하나 봐.”
아직 11시가 되지 않아서 그런지, 기둥들을 빼고 마치 뻥 뚫린 공간 사이사이를 커튼을 내린 듯, 새하얀 천으로 가려놓고 있었다.
그 신전처럼 생긴 곳 옆쪽에는 접수대처럼 생긴 곳이 있었는데, 신청을 받고 있는 사람은 그리스인들이 입을 법한 새하얗고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있었다.
“신전 프로젝트라더니, 컨셉은 확실하네.”
“그러게.”
재미있는 풍경에, 두 예고생이 키득키득 웃으며 [축복권]을 들고 접수대로 향했다.
그때였다.
책상 위에 놓인 모래시계를 확인한 접수원이 접수대 옆에 있던 밧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 옆에 설치된 커다란 종이 움직이며 소리를 냈다.
댕-댕-
11시 정각을 알리는 맑은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신전의 기둥들을 막고 있던 새하얀 천들이 부드러운 주름을 만들며, 마치 커텐처럼 둥근 아치형으로 말려 올라갔다. 천장을 막고 있던 천도 치워졌는지, 밝은 빛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려져 있던 신전의 안쪽이 공개되었다.
접수대로 향하던 두 예고생과 조각들을 구경하러 왔던 소수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선명하고 깨끗한 빛 아래.
신성하고 성스러운 빛을 내뿜는 것만 같은 새하얀 조각상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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