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48화
친구들과의 회의 덕분에 축제 때 무얼 할지 대강의 계획이 세워졌다.
“그럼 먼저 의상이랑 배경이랑 소품을 준비해야겠지.”
집으로 돌아온 서준은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서준의 인맥이라면 할리우드에 있는 전문인력들을 데리고 올 수도 있었지만, 대학 축제 아닌가. 최대한 학생들로 팀을 만들고 싶었다.
서준의 미술과 친구들은 졸업작품이며 유학이며 군대며, 바빠서 이번에는 후배들과 함께할 생각이었다.
‘복학생이라서 대부분 후배인 느낌이지만.’
전화 연결음이 이어지는 사이,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안녕, 민형아.”
서준이 가장 먼저 연락한 후배는, 연극 [거울]에서는 잔심부름을 했지만 연극 [MOEB-436]에서는 서준의 의상을 직접 만들 만큼 실력 있는 미술과 1학년, 박민형이었다.
마침 작년 한예대 미술과에 입학하고 올해 미술과 2학년이 되었다.
-네! 서준이 형! 잘 지내셨어요? 쉐앤나 촬영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에요!
“고마워. 있잖아, 민형아. 내가 이번 축제에서…….”
-할게요! 할래요! 하게 해주세요!
어. 음.
아직 이야기도 제대로 꺼내지 않았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일단 이야기 먼저 들어보지 않을래?”
-넵!
그러고는 숨도 쉬지 않는 듯, 조용했다.
“숨은 쉬고.”
-흐하아아.
진짜 숨을 안 쉬었나 보다.
서준이 웃으며 축제 때 무엇을 할지 설명했다.
-와! 재미있겠어요!
“그래서 미술팀의 일이 중요해. 의상이 하늘하늘한 느낌이면서도 바람에 날리면 안 되거든.”
아무리 부드러운 천이라고 해도 조각이 움직일 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같이 할 만한 친구들 있으면 부르고. 선배나 후배도 괜찮아.”
-서준이 형이 팀장이라는 건 비밀이죠?
“응. 일단 첫 미팅까지는 비밀로 할 생각이야.”
함께 서 있을 동상들도, 서준이 팀장이라는 걸 밝히지 않고 뽑을 예정이었다.
‘아무래도 내 이름을 대면 너무 경쟁률이 치열해지니까.’
서준의 이름값 없이 천막 아래에서 3, 40분 동안 움직임 없이 서 있어야 하는 역할에 지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명도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친구들이 도와주기로 했다.
-알겠어요! 재미있어할 사람들로 모아볼게요!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재미있어할 사람. 그게 서준의 기준이었다.
“하하. 그래. 고마워.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그럼 치수 좀 알려주세요!
“알았어.”
서준은 곧바로 1팀에 연락해서 자신의 몸 치수를 알아내 박민형에게 전달했다.
<최근에 잰 거니까 큰 차이는 없을 거야.
>박민형: 넵!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서준이 작게 웃으며 지인 목록을 살펴보았다.
“의상 쪽은 해결했으니까 소품이랑 배경.”
신전의 기둥을 만들어야 하니, 나무 등 단단하고 무거운 것을 사용하는 무대미술과 쪽이 괜찮을 것 같았다.
“이 형 아직 졸업 안 했지?”
영화 [화]를 촬영할 때, 함께했던 무대미술과 막내(지만 2학년이었던) 형의 연락처가 보였다.
-어, 서준아.
“안녕하세요, 형.”
메시지로 가끔 연락했던 형의 반가워하는 목소리에 서준의 목소리도 밝아졌다.
* * *
“그래서 의상은 그리스로마 신들 옷처럼 팔랑팔랑한 느낌이 드는 걸로 하고, 배경은 신전으로 할 예정이에요. ┬ 모양으로 신전 가는 길도 만들 건데 그 양 옆에 다른 동상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서 있을 예정이고요.”
결정되자마자 학교 게시판에 [신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공고를 붙여놓았는데, 연락도 세 명 왔다. 8명을 채우면 좋을 것 같았다.
“오! 뭔가 판타지소설에 나오는 신전 같겠다.”
“맞아요. 그런 느낌으로 만들려고요.”
코코아엔터 소속 배우, 유고은의 탄성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상의 탈의는 안 해?”
김찬희가 히죽히죽 웃으며 묻자, 유고은이 김찬희의 등짝을 내려쳤다. 언제나와 같은 모습에 서준과 배우들이 하하하 웃었다.
“안 해요. 어깨까지 오는 민소매에 길다란 치마형식의 옷을 입을 거라서요. 머리는 길게 내리고요.”
“흰색으로?”
배우들의 관심이 끊이질 않았다.
하긴 동상이라니.
서준도 다른 사람이 한다고 하면, 연신 물어봤을 것 같긴 했다.
“네. 대리석 조각처럼 보이게요.”
“흰색 머리카락이라니, 장산범 생각나네.”
색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를 거다.
“의상은?”
“옷은 아는 후배가 있는데, 걔랑 같이하기로 했어요. 함께할 사람도 꽤 모았구요. 지금은 몸에 바를 흰색 물감을 개량하느라 연구 중이에요. 배경이랑 소품은 무대미술과 형이 주도해서 만들 예정이고요.”
그에 유고은이 감탄했다.
“계획 며칠 전에 세웠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게. 벌써 그만큼 진행된 거야?”
“빠르네.”
배우들의 감탄에, 추진력 빠른 서준이 하하, 웃었다.
“다 여기 있었네요?”
“2팀장님!”
배우들이 있는 대형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배우 2팀 팀장이었다.
“서준이도 있었네? 잘됐다. SNS에 인증샷 좀 찍어도 되지?”
“네. 괜찮아요.”
2팀장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조금씩 떨어져 편하게 앉아 있던 배우들이 우르르 서준을 가운데로 몰려들었다.
“자, 그럼 찍습니다!”
하나, 둘, 찰칵-
하고 서준과 배우들이 모여 있는 사진을 찍은 2팀장이 떠나고 곧 있어 인터넷이 시끌벅적해졌다.
“지금 올라갔나 봐요.”
“역시 서준이가 있으니 화력이 다르네.”
[SBC 드라마 새벽, 다시 방영 시작!!]
[조승환 대신 배승원! 어떤 연기를 보여줄 것인가!]
[배승원의 소속사, 코코아엔터 배우들! 본방 시청 합니다!!]
[배우 이서준, 드라마 새벽 본방 달린다!]
[할리우드 스타도 시청하는 드라마 새벽!!]
-내 새벽!!
=오늘만 기다렸다!
-본의아니게 노이즈마케팅으로 오늘 시청률 꽤 나올듯.
=시작 시청률만 그렇지 않을까? 잘못하면 떨어질지도.
-코코아엔터 SNS에 소속배우들 나옴!
=헐. 이서준도 있네.
=저렇게 있으니까 되게 이상한 기분이다ㅋㅋㅋ
=기사도 이상한 기분ㅋㅋㅋ‘할리우드 스타도 시청하는 드라마’ㅋㅋㅋ
=22 틀린 말은 아닌데 말이야ㅋㅋ
배우들의 말대로, 서준이 나온 인증사진으로 실시간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오늘, 휴방 후 6화부터 다시 시작하는 SBC 드라마 [새벽]을 보기 위해 모인 서준과 배우들은 열심히 인터넷 반응을 살펴보았다.
“어쩐지 내가 다 긴장되네.”
“저도요!”
그런데 당사자인 배승원은 제법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권강민이 물었다.
“촬영 잘했어? 편안해 보이네?”
“어. 괜찮았어.”
동갑 친구인 두 배우가 이야기를 나누자, 다들 귀를 기울였다. 촬영장에서 어땠는지 궁금해하는 모습에 배승원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원래 배우 대신 들어간 거니까 촬영하기 전까지는 긴장했는데 말이야. 주연 배우들이 편하게 느껴져서 긴장이 금방 풀리더라고.”
“주연 배우들이요? 만난 적 있으세요?”
유고은의 물음에 배승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두 분 다 만난 적은 없는데…….”
배승원이 서준을 바라보며 웃었다.
“서준이가 연습할 때 보여줬던 연기랑 분위기가 주연 배우들이랑 똑같은 거야. 특히 남자주인공이.”
“오호…….”
배우들이 감탄하며 서준을 한 번, 배승원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렇게 편하게 느껴져서 그런지, 긴장도 풀리고 연습한 대로 할 수 있더라고.”
배우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서준이는 ‘봄이 돌아왔다.’ 대본 리딩 때 박도훈 배우랑 강태영 배우를 그대로 따라 했잖아요.”
“맞아. 그거 수업 시간에 꼭 보여주잖아. ‘이 정도로 관찰해야 하는 거다!’ 하고.”
“저도 봤어요!”
데굴데굴 눈만 굴리고 있던 새로 영입된 막내 배우가 번쩍 손을 들었다. 그 모습에 서준과 배우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보다 한 살 어린 배우였다.
배승원이 웃으며 말했다.
“하여튼 연기나 분위기가 똑같아서 그런지 서준이 생각도 나고 그러니까 촬영장이 편안해지더라고.”
“그냥 서준이랑 트레이닝을 했던 연습실보다 촬영장이 편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요, 승원이 형?”
“……그런가!”
배승원 다음으로, 서준의 지옥 트레이닝을 겪은 김찬희의 말에 배승원은 웃지도 않고 진지한 얼굴로 납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배우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서준도 하하 웃으며 김찬희와 배승원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
“!”
어쩐지 두 배우에게서 소리 없는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중, 광고가 끝났다.
코코아엔터 소속 배우의 합류 탓인지 광고의 수는 그대로였다. 아마도 6화 이후의 성적을 보고 늘어나든가 줄어들 터였다.
“분명히 늘어날 거예요.”
동료 배우들의 응원에 미소를 지은 배승원이 TV를 바라보았다.
드라마 [새벽] 6화가 시작되었다.
* * *
[드라마 ‘새벽’ 6화 시청률, 15.2로 훌쩍 상승!]
[걱정 NO! 조승환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대신한 배우 배승원!]
배승원이 드라마 [새벽]에 완전히 자리를 잡고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서준은 계절학기 강의를 들으며 한예대 축제 준비도 이어나갔다.
다행히 연기과에서 지원한 학생들이 8명이 되어 친구들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팀원들과 처음 만나게 된 미팅 날.
“이번 신전 프로젝트의 팀장, 연기과 이서준입니다. 축젯날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움직이는 동상들이 있는 신전이라니 재미있겠는데?
하고 왔다가 대선배님을 만나게 된 연기과 후배들은 물론이고, 슈퍼스타를 직접 보게 된 미술과, 무대미술과 학생들도 놀란 표정으로 자신들을 데려온 박민형과 4학년 선배를 바라보았다.
그 흔들리는 눈동자에, 박민형과 4학년이 으하하하 웃었다.
귀신에 홀린 듯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팀원들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라고 말한 서준이 자리에 앉았다. 엉덩이를 들썩이던 연기과 1학년이 번쩍 손을 들었다.
그 1학년은 여울예중, 미리내예고를 졸업했지만, 서준과 3살 차이라 한 번도 서준과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닌 적이 없었던 학생이었다. 1년만 일찍 태어날걸! 하고 한탄했을 정도로 서준을 존경하기도 했다.
“정, 정말로 저희 프로젝트의 팀장님이 이서준 선배님이신가요?”
“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말도 편하게 해요. 그래야 저도 편하게 하죠.”
서준이 빙그레 웃자, 다들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단히 자기소개를 할까요?”
“미술팀 팀장, 박민형입니다.”
“소품팀 팀장, 오동윤입니다.”
그렇게 모두 짧은 자기소개를 끝내고 [신전] 프로젝트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각자 팀장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디자인한 것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게 저희가 생각해 본 의상인데…….”
“이런 느낌으로…….”
그때 뭔가 부족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박민형이 번쩍 손을 들었다.
“아무래도 어떤 느낌의 신인지 궁금한데 예시로 보여주실 수 있어요, 서준이 형?”
박민형의 말에 다들 잠깐 놀랐다가 반짝이는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이서준이 하는 신 연기라니.
궁금하지 않을리가 없었다.
“그럼, 아직 완성된 건 아니지만 보여줄게.”
“넵!”
그리고,
빛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민형아. 우리 옷 디자인 바꾸자.”
“그래! 우리가 한 걸로는 부족해!”
“영감이 샘솟는다아!!”
들썩거리는 미술과 친구들에 어쩐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박민형부터,
“선배님. 우리 세트장 디자인도 바꿔야 할 것 같은데요?”
“좀 더 경이롭게 만들죠.”
“조각도 하고! 크고! 화려하게!”
열정적인 무대미술과 후배들에 어쩐지 자신이 더 자랑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4학년,
“우리가 선배님을 모시는 동상이라니……!”
“미쳤다…….”
“난 오늘을 평생 기억할 거야.”
“서준 선배님과 함께 연기하다니……!”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입을 틀어막고 감격하는 여덟 명의 후배들까지.
‘이 프로젝트……괜찮을까.’
팀원들의 반응에, 서준은 좀 더 적당히 내뿜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반짝이는 선기를 주섬주섬 몸 안으로 챙겨 넣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