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46화
“……계절학기를 듣겠다고?”
음료를 마시던 대학생 한지호가 입을 쩌억 벌렸다. 눈빛을 보니 ‘얘가 미쳤…… 아니, 어디 아픈가?’라고 말하고 싶어 보이는,
“너 어디 아파?”
“말했네.”
“말했어.”
서준과 친구들이 킬킬 웃었다.
오늘은 친구들과 노는 날.
기말고사와 촬영 등으로 다들 바빴는데 오늘 시간이 딱 맞아 모이게 되었다.
“근데 나도 지호 마음 이해해. 여름 방학에도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거잖아.”
“맞아! 여름방학인데 학교라니! 강의라니!”
김주경의 말에 한지호가 외쳤다. 강재한과 박시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계절학기를 듣는 애가 있었구나.”
“그게 내 친구.”
“넵. 접니다.”
손을 드는 서준의 모습에 아이들이 아하하 웃었다.
“무슨 수업 들을 건데?”
전성민의 물음에, 양주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추천해 줄까?”
“우리의 데이터베이스.”
“우리의 빅 데이터.”
“우리의 마당발!”
그와 동시에 양주희의 별명이 쏟아져 내렸다.
으하하하.
무슨 말만 해도 즐거운지, 서준과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연기과 현장 수업 위주로 들으려고.”
서준의 말에 우리의 검색엔진, 양주희의 입에서 정보가 차르르 나왔다.
“아. 그거 평이 괜찮아. 강의를 담당하시는 교수님이 인맥이 넓으셔서 실제 공연하는 연극 무대의 뒷모습도 볼 수 있고, 연기 연습하는 것도 볼 수 있대.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 촬영에도 견학 가는데, 가끔 학생들이 엑스트라로 참여할 때도 있다고 하더라고. 거기에서 감독 눈에 들어서 대사 있는 조연으로 캐스팅되는 경우도 있대.”
양주희의 입에서 정보가 술술 나오는 모습이 익숙한 서준과 아이들은 편안한 얼굴로 정보를 습득했다.
“오. 그런 수업이 있었어?”
다른 친구들도 흥미로운 얼굴이었다.
물론 여기 있는 배우들은 다들 제법 유명해서 엑스트라로 참여하는 것보다는 주조연 오디션에 나가는 일이 더 많았지만 말이다.
“근데 왜 학기 중에는 그런 강의가 없었어?”
전성민의 물음에 양주희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학기 중에는 밖으로 나가기 힘들잖아. 그래서 학교 내에서만 수업하는데, 계절학기 강의는 시간을 꽤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까.”
“하긴.”
다음 강의가 있는데, 밖으로 나갔다가는 학교로 돌아오기도 전에 다음 강의가 끝날지도 몰랐다. 그럼 결석 처리가 되고 성적에 영향이 가겠지.
“전 교수님 수업만 듣는 게 아니라구요!”
으하하핳.
박시영의 절절한 연기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서준이가 그 강의를 듣는다니, 촬영 현장 난리 나겠네.”
“이서준 엑스트라 데뷔인가!”
“아니, 나 진 아니야?”
“오. 그럴지도.”
슈퍼스타 이서준의 부캐 ‘나 진’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졌다.
“나 진이 마지막으로 나온 게 화였지?”
“독립영화 다음에 상업영화 엑스트라라…… 정석적이네.”
“아니, 거기서 끝나면 이서준, 아니, 나 진이 아니지. 그러다 감독님의 눈에 드는 거야! ‘저 배우 누구지?!’ 하고!”
“대사를 주니까 너무 잘해.”
“그렇게 씬스틸러가 돼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 거지.”
“그리고 결국 세계로 진출!”
친구들의 입에서 벌써 부캐 ‘나 진’의 인생이 뚝딱 만들어졌다.
그에 본캐 서준이 웃음을 터뜨리자,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던 아이들도 빵 터졌다.
“뭐, 수업 중에 엑스트라 출연은 땜빵할 때나 하는 거니까, 거의 가능성 없지만 말이야.”
“거기다 서준이는 소속사도 있고.”
“맞아. 안 매니저님도 계시니까. 아, 이사님이지.”
아이들은 중학생 때부터 봐왔던 서준의 매니저, 안다호를 떠올렸다.
아이들에게는 항상 친절하고 다정했던 안다호이지만, 연예계에 떠도는 이야기로는 그렇게 냉정하고 철저한 분이 없단다.
“그래도 서준이가 하고 싶다고 하시면 안 말리시겠지만.”
“그렇지.”
“내 배우에게만 따뜻한 매니저님.”
강재한의 진심이 가득한 농담에 아이들이 빵 터졌다.
* * *
아이들의 다음 화제는 9월 중순에 있을 한예대 축제였다.
“배우, 스태프 모집 중이니까 얼른 신청하세요!”
“배우는 딱 한 자리 남았습니다!”
주도하는 건 4학년으로 이번 축제가 마지막인 양주희였다. 휴학 한 번 없이 4학년이 된 김주경도 함께였다.
박시영은 촬영 때문에 휴학으로, 남자애들은 군대 때문에 아직 졸업까지 꽤 남아 있었다.
“다들 연극 오랜만이지 않아?”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연기하는 거야!”
양주희와 김주경의 눈이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번뜩인다.
그에 전성민이 웃으며 물었다.
“당연히 오디션은 봐야겠지?”
“당연하지. 지원자들이 얼마나 몰려드는데!”
“서준이라도 봐주지 않을 거야.”
양주희와 김주경이 웃으며 말하자, 서준이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아. 난 따로 참여할 거니까.”
“……예?”
“……뭐라고요?”
“진짜!?”
아이들이 놀란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한 번 축제에 참여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이번 축제였다니…….”
“뭐할 건데? 연극? 영화?”
아이들이 눈을 반짝였다.
일반적인 연극, 영화도 재미있었지만, 서준과 함께할 때는 더욱 상황에 몰입되고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연습은 힘들지만.
이미 축제용 연극을 준비하고 있던 양주희와 김주경은 아쉬워하던 것도 잠시, 라이벌이 생겼다는 듯 눈을 번뜩였다.
“이겨보자! 이서준!”
“타도! 이서준!”
그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연극이랑 영화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예?”
“……뭐라고요?”
“우리 아까부터 되묻기만 하는 것 같은데…….”
강재한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지나갔다. 한지호가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뭐할 거임?”
한지호가 생각하기에는 연극이나 영화가 아니면 할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서준의 대학 첫 축제 참가인데, 연기와 관련 없는 것(가령 간이음식점의 웨이터나 요리사 등)을 할 것 같지는 않고.
“쉐앤나 촬영하다가 관광지에서 봤는데,”
……오!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쉐도우앤나이트]에 대한 이야기는 자제하고 있었는데, 서준이 먼저 꺼낼 줄은 몰랐다. 물론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서준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움직이는 동상이라고 알아?”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 사람이 동상처럼 분장하고, 정말로 동상인 것처럼 가만히 서 있는 거 말이야?”
“연기랄지, 행위예술이랄지…… 하여튼 그거?”
“동상인 줄 알고 사진 찍는 사람 있으면 움직여서 놀래키는?”
넋이 나간 얼굴로 자신이 아는 것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모습을 보던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맞아. 그거 하려고.”
* * *
“……신박해.”
“상상도 못 했어.”
“조각 같은 외모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본인이 직접 조각이 될 생각을 하다니…….”
서준의 아이디어에 감탄하던 아이들이 박시영의 말에 푸핫,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근데 진짜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긴 하네.”
한지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친구들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앞에 앉아있는 서준을 뚫어질 듯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도 잘생긴 이 외모가, 동상이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러게. 진짜 궁금해.”
“나도.”
아까부터 계속 탄성만 흘려대는 친구들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같은 반응을 보인 두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다호 형이랑 태우 형도 궁금해하더라고.”
서준의 아이디어를 듣고 안다호와 최태우도 감탄하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해했다.
“안 궁금해할 사람이 있을까.”
전성민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김주경이 물었다.
“어떤 캐릭터로 할 생각이야?”
“그것까진 아직 못 정했어. 천천히 골라보려고.”
“그럼 같이 골라보자!”
양주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박시영과 김주경도 흥미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것도 좋지.”
서준의 흔쾌한 대답에, 양주희는 신 난 얼굴로 가방에서 파인패드를 꺼내 ‘움직이는 동상’에 대한 이미지들을 검색하고는 친구들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으면서도, 정말로 금속으로 만든 것 같은 동상들의 이미지가 화면에 잔뜩 떠 있었다.
서준과 아이들은 하나씩 살펴보았다.
“출근하는 회사원 동상도 있고, 갑옷을 입은 기사 동상도 있네.”
“기사라…… 쉐앤나랑 이어지는 의미에서 기사도 괜찮지 않아?”
강재한의 말에 여자애들이 빠르고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돼. 투구 때문에 서준이 얼굴이 안 보이잖아.”
“얼굴이 제일 중요하지.”
“얼굴 가리면 무슨 재미로 봐.”
아, 넵.
박력 있는 여자애들의 분위기에 얌전히 입을 다문 강재한. 그런 친구의 모습에 서준과 한지호, 전성민이 킬킬 웃었다.
“뭔가 좋은 거 없을까?”
“서준이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모습으로…….”
“보자마자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느낌의…….”
어느새 여자애들만 머리를 맞대고 굉장히 열정적으로 의논하고 있었다.
“넌 안 끼어도 돼?”
“음. 어차피 선택은 내가 하는 거니까.”
전성민의 물음에 서준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게다가 새싹분들 마음은 쟤들이 더 잘 알 것 같아서.”
학교 축제이기는 하지만 사진이나 영상은 인터넷에 올라가 새싹들에게 전해질 테니까 말이다. 모두가 즐거운 축제니, 기왕이면 새싹들의 마음에도 쏙 드는 분장이면 좋을 것 같았다.
“그건 그렇겠다.”
강재한과 한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아니야.”
“이것도 좀…….”
여자애들이 심각하고 진지하게, 마치 전 세계의 새싹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겠다는 의지로 이미지들을 살펴보고 있는 동안, 남자애들은 음료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래는 뭐 하려고 했는데? 생각해 둔 후보는 있을 거 아니야?”
한지호의 물음에 오렌지 주스를 마시던 서준이 눈을 데굴 굴렸다.
“그냥 평범한 거?”
“서준이 네가 평범한 거라고 하면 전혀 안 평범할 것 같은데…….”
강재한의 말에 전성민과 한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서준의 기준에서 ‘평범’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면서 깨달았다.
그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아까 잠시 봤던 것 중에 있었잖아. 지팡이만 땅에 닿고 있고 허공에 떠 있는 사람이나 투명의자에 앉아있는 사람 같은 거 하려고 했지. 공중부양이나 물구나무도 서고 서커스 같은 느낌으로.”
금색이나 은색, 하얀색 등, 하나의 색으로 통일한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의상을 입고, 푸르른 학교 잔디밭 중앙에 미술과 학생이 만든 졸업작품인 듯, 시간마다 자세를 바꾸고 가만히 있을 생각이었다.
“공중부양…….”
“물구나무…….”
“거봐. 하나도 안 평범하지.”
그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친구들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그럼 이걸로 결정!”
열심히 토론하고 있던 여자애들이 드디어 파인패드에서 고개를 들었다. 서준과 남자애들이 흥미로운 얼굴로 여자애들을 바라보았다.
“꼭 이걸 하라는 건 아니고 추천하는 거야.”
김주경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결정은 내가 할게.”
박시영이 들뜬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추천하는 캐릭터는……!”
두구두구두구!
한지호와 전성민이 입으로 효과음을 내주었다. 그에 짧은 웃음소리가 지나가고 양주희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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