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45화
배승원의 출연이 확정되자, 코코아엔터로 드라마 [새벽]에 대한 자료들이 쏟아지듯 도착했다.
조승환의 음주운전 사고로 아직 방송되지 못한 6화의 대본부터 이후 촬영할 완성된 대본들, 그리고 결말이 적힌 메모, 배승원이 연기할 캐릭터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감정 변화까지.
컴퓨터를 탈탈 털어 보내줄 수 있는 자료는 전부 보낸 것 같았다.
“거의 울먹이시면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촬영은 준비가 되는 대로 바로 진행할 수 있으니까, 언제든 준비되는 대로 말해달라고 하셨어요.”
메일로 도착한 자료들을 프린트해서 서준과 배승원에게 전해준 배우 2팀 직원이 안타까운 듯한 얼굴로 말했다. 휴대폰으로 전해지는 피디의 목소리만 들어도 현장 분위기는 어떤지 잘 알 수 있었다.
“아, 그리고 대본을 보시면요.”
2팀 직원의 말에 서준과 배승원이 대본을 펼쳤다.
“승원 씨가 맡을 배역에 표시가 되어 있죠? 같은 세트장에서 촬영할 부분들은 표시를 해뒀다고 하셨어요.”
“하긴, 한 번에 촬영하는 게 편하니까요. 음? 이건 뭐죠?”
대본에는 배승원이 맡은 배역이 나오는 장면이 아주 눈에 띄게 표시되어 있었는데, 그 페이지의 구석에 마치 롤링페이퍼처럼, 또는 교과서의 구석 편에 적혀 있는 추가자료처럼 무언가 적혀 있었다.
배승원의 물음에 2팀 직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코멘터리인데, 작가님과 피디님이 승원 씨가 연습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적으셨대요.”
오.
서준과 배승원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것만 봐도 작가와 피디가 얼마나 이 드라마에 애정을 쏟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좋은 드라마가 되겠네요.”
웃으며 말하는 서준에 배승원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드라마에 뒤늦게나마 참여하게 되어 기뻤다.
“그럼 분석 시작할까요?”
물론, 고생길이 훤히 보였지만 말이다.
연습실 하나를 차지한 서준과 배승원은 각자 대본을 펼쳐 읽어 내려갔다.
“아직 5화까지만 방송된 상태라서 다행이에요.”
“그렇지. 슬슬 캐릭터들의 서사가 깊어지기 시작할 테니까.”
일단 가장 급한 건 곧 방송해야 하는 6화였다.
두 배우는 캐릭터의 과거사를 읽고, 1화부터 5화까지의 대본을 읽고, 조승환이 연기했던 영상들을 살펴보았다.
“일단 두 주연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 성격은 그대로 유지해야 해요. 아무래도 시청자분들은 이미 익숙해져 있을 테니까요.”
“그럼 조승환 배우가 연기했던 걸 그대로 따라 해야 할까?”
배승원의 물음에 서준이 답했다.
“처음에는 비슷하게 연기하다가, 천천히 승원이 형만의 캐릭터로 변화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갑자기 캐릭터의 해석이 달라져도 배우가 바뀐 이유를 아는 시청자들은 이해해 주겠지만, 그래도 드라마의 흐름이 부드럽게 이어지길 바라는 서준이었다.
‘그렇다고 승원이 형이 카피캣이 될 필요는 없지.’
배우가 중간에 바뀐 것을 시청자들이 최대한 느끼기 힘들게 드라마의 흐름을 이어가면서도, 배승원의 매력이 드러날 수 있는 연기가 필요했다.
‘어려운 일이지만, 연습하면 돼.’
승원이 형이라면 잘할 거다.
서준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배승원이 웃으며 말했다.
“어려울 것 같지만…… 해볼까?”
그에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준의 친구들이 봤다면 ‘도망쳐요!!’ 하고 외쳤을,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미소였다.
“그럼 제가 남자주인공 연기를 해볼게요. 처음에는 조승환 배우가 연기했던 것과 완전히 똑같이 해봐요.”
“그래. 알았어.”
그렇게 서준과 배승원의 연기 연습이 시작되었다.
지옥 트레이닝의 시작이었다.
* * *
그리고 며칠 후.
SBC 드라마 [새벽]의 세트장.
“오…….”
세트장 위에서 남자주인공 역의 배우와 연기를 하고 있는 배승원이 보였다.
“저만 이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는데…… 아까 6화 시작 부분에서는 조승환이랑 똑같이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던데 지금은 조금 다른 느낌이 들지 않아요?”
걱정이 되어 촬영장까지 직접 온 작가의 말에 피디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다른 분위기예요. 콕 집어서 어디가 다른지는 말할 수 없지만…… 배 배우님의 매력이 보인다고 할까요.”
“그렇네요. 왠지 조승환 때보다 캐릭터가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작가와 피디의 눈이 반짝거렸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배승원의 연기는 두 주연배우와도 잘 어울렸다.
게다가 미리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합도 잘 맞았다. 대본 리딩도 참여하지 못했던 배승원인데 말이다.
“역시 코코아엔터……!”
감격에 물든 피디의 말에, 작가는 물론이고 다른 스태프들마저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서준의 지옥 트레이닝에서 데굴데굴 구른, 살신성인의 모범 배승원 덕분에, 드라마 [새벽]은 무사히 6화의 촬영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
* * *
달칵.
연습실의 문이 닫혔다.
그 소리에 코코아엔터 소속 배우이자, 새로 들어온 신입 배우들 덕분에 막내 자리에서 벗어난 김찬희가 소름이 돋은 듯 흠칫, 몸을 떨었다.
난 그저 연기 천재인 서준이와 연기 연습을 하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제 발로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일까.
‘승원이 형 때문인가?’
김찬희는 며칠 동안 서준과 함께 연기 연습을 했던 배승원을 떠올렸다.
얼굴은 피부 관리라도 받은 듯 반질반질한데, 두 눈동자는 죽어 있던 승원이 형.
얼굴도 초췌했다면 ‘연습 엄청 열심히 했구나!’ 하고 생각했을 텐데, 얼굴도 멀쩡하고 몸도 건강해 보이는데 눈만 퀭해 있으니, 더 무서웠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찬희 형?”
“그, 그래. 그러자.”
행복하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묻는 서준. 그 반짝반짝함에 김찬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인계로 시작된 제2의 지옥 트레이닝이었다.
* * *
띵동-
연습실 문 옆에 설치된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누군가 밖에서 부르고 있다는 의미였다.
“누! 누가 왔나 봐! 서준아!”
왠지 살려주세요! 하고 번역되어 들리는 건 착각……이 아니겠지.
친구들과 함께 연습할 때도 자주 들으니까 말이다.
‘범인은…… 이서ㅈ…….’
‘제 친구가 어쩌다가……흐윽…….’
‘감식 결과, 과도한 연기 연습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범인은 바로……!’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뭐, 그러고 놀았다.
‘다들 연기력이 훌륭해서 재미있었지.’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김찬희의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선기를 적절하게 내뿜던 서준은 김찬희의 절절한 외침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쉬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런 서준의 생각도 모르는 김찬희는 살았다! 하는 표정으로 얼른 연습실의 문을 열었다. 누군진 몰라도 눈물이 날 정도로 정말 고마웠다.
“어? 누나?”
“연습 중에 미안한데…… 헉! 이서준 배우님도 계셨어!?”
종이뭉치를 들고 서 있던 배우 3팀 직원이 김찬희에게 말하다가 그 뒤에 서 있는 서준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네. 찬희 형이랑 같이 연기 연습 중이었어요.”
연기 연습?
아니, 연기 지옥이었다.
누나, 제발 나 좀 여기서 꺼내줘! 하고 김찬희가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랬군요! 찬희 너 엄청 좋았겠다!”
안타깝게도 3팀 직원은 그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곧 알 수 있을 터였다.
“그건 뭐예요?”
“아, 이거요? 찬희가 선택한 작품인데 이야기 좀 나눠보려고요.”
오호.
서준이 눈을 빛냈다.
“저도 같이 이야기해도 될까요?”
“……네?”
서준의 관심이 3팀 직원이 들고 있는 대본으로 향했으니까 말이다.
* * *
“그, 그래서 이 작품은 좀 더 고려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
어쩌다 보니 서준의 앞에서 자신이 분석한 작품을 설명하게 된 3팀 직원은 아까 봤던 김찬희의 눈빛을 이해했다.
‘구해달라는 거였구나!’
작품의 단점들을 설명하는 내내, 마치 팀장님, 아니, 안 이사님과 사장님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3팀 직원이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조용히 설명을 듣고 있던 서준이 손을 들었다. 3팀 직원은 다시 바짝 긴장했다.
“네, 네!”
“그래도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이 있지 않을까요? 찬희 형도 그래서 선택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서준의 말에 김찬희가 눈을 빛냈다.
3팀 직원의 말대로 감독도, 작가도 신인에 스토리 흐름도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작품이었지만 캐릭터가 김찬희의 마음에 쏙 들었던 작품이었다. 놓치기 싫었다.
“아, 그래서 비슷한 성격의 캐릭터들이 나오는 다른 작품들을 찾아봤습니다.”
오.
3팀 직원은 마치 준비한 것처럼 다른 대본들을 꺼냈다.
유명한 작가의 드라마, 괜찮은 감독의 영화, 신인 감독의 작품이지만 믿을 수 있는 영화 제작사의 작품 등이었다.
서준은 그중 한 대본을 읽어보며 생각했다.
‘내가 있을 거라는 것은 몰랐으니, 평소에도 이렇게 후보 작품들을 가지고 온다는 거겠지.’
슬쩍 보니 (연기 지옥에서 벗어나 행복한)김찬희가 익숙하게 그중 가장 끌리는 대본을 읽는 모습이 보였다.
최대한 배우가 하고 싶어하는 연기를 존중하고 이루어주려고 노력하는 배우팀 직원들의 모습이 그려져, 서준이 작게 웃었다.
그렇게 나름 편안한 분위기 속.
띵동- 소리와 함께, 문 옆에 설치된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대본을 읽던 서준과 김찬희가 고개를 들었다.
“열까요?”
“네.”
서준의 끄덕임에, 3팀 직원이 빠르게 문을 열었다.
“어, 태우 형?”
최태우였다.
“안 이사님이 찾으셔서. 아직 안 끝났으면 좀 있다 오고.”
“그럼…….”
서준이 김찬희와 3팀 직원을 돌아보았다.
어쩐지 반짝이는 눈동자들을 시무룩하게 만들고 싶어졌다. 장난기가 스며든 얼굴의 서준이 이내 웃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 가요. 다 끝났어요.”
와아……!
어쩐지 닫히는 문 뒤로, 연기 지옥과 발표 지옥에서 벗어난 김찬희와 3팀 직원의 작은 환호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 * *
“뭐 하고 있었어?”
“찬희 형이랑 연기 연습하고 3팀의 작품 분석을 들었어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와 최태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연기 연습은 이해하지만, 작품 분석이라니?
그에 서준이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우리 배우팀이 일을 참 잘하는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 내가 관리하는걸.”
배우팀 관리자, 안다호 이사가 어깨를 으쓱이며 웃자, 그 능청스러움에 서준과 최태우도 웃고 말았다.
“근데 무슨 일로 불렀어요, 다호 형?”
출근 도장을 찍듯, 출근하자마자 보고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나.
서준의 물음에 안다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름 방학 어떻게 보낼 건지 물어보려고 말이야. 새 작품을 찾을 건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할 건지. 생각해 둔 거 있어?”
그에 서준이 미리 생각한 것을 말했다.
“저 계절학기 강의 들으려고요.”
“그래?”
“미리미리 학점 채워두면 학기 중에 촬영하기 편하잖아요. 사이버강의도 좋지만 역시 현장 강의가 더 좋은 것 같아서요.”
한예대 사이버강의의 질은 좋았지만,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연기하고 싶었다.
서준의 말에 안다호와 최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두 매니저의 머릿속에는 ‘여름, 더위, 체력, 보양식.’ 등의 단어가 떠올랐다.
“그러고요.”
음?
안다호와 최태우가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이번 학교 축제에도 참여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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