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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43화 (74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43화

“어쩌다?”

최태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한 번 망해본 경험이 있으니, 원작자든 감독이든 제작사든 최대한 주의해서 리메이크 이야기를 꺼내고 제작할 텐데 말이다.

그에 서준이 서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돈이 되는 일엔 벌레가 꼬이는 법이잖아요.”

* * *

다음 날.

한국의 인터넷이 [쉐도우앤나이트 촬영 끝! 배우 이서준, 귀국!], [할리우드 스타, 이서준 귀국!!], [쉐도우앤나이트 언제 개봉?!]이라는 기사로 도배되고 있을 때.

베스트셀러 [이클립스]의 작가, 로라 웰튼과 그 여동생 그레이스 웰튼은 뉴욕에 위치한 한 건물의 입구에 서 있었다.

뉴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무실이 가득한 빌딩.

빌딩을 올려다보는 로라 웰튼은 비장한 얼굴로 어깨에 멘 가방을 꽉 쥐었다.

“또 그런 게 나오면…… 진짜…… 다 엎어버릴 거야.”

제목을 말하기도 싫은 그 망할 영화를 떠올리며 로라 웰튼은 이를 갈았다. 그런 언니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그레이스 웰튼이 이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회의는 잘 마무리됐으면 좋겠는데…….’

물론, 언니가 이기는 쪽으로 말이다.

“잘하고 와.”

“그래!”

그렇게 동생의 배웅을 받으며 로라 웰튼은 영화제작사, ‘뉴에이지’로 발을 디뎠다.

* * *

영화제작사, 뉴에이지.

제법 오래된 영화제작사이지만 ‘마린’처럼 일반인들에게까지 이름이 알려진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뉴에이지에서 제작한 영화들의 이름을 대면 ‘오, 그 영화도 만들었어?’ 하고 반응할 정도로, 만드는 영화마다 제법 좋은 성적을 내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번 [이클립스]의 리메이크 버전도 좋은 성적을 내야 했다.

‘망할 생각으로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는 없겠지만.’

아니, 있나?

영화 [이클립스]를 만든 제작사?

흐흐흐…….

로라 웰튼은 이를 꽉 깨물고 웃었다.

안내하던 직원이 걸음을 멈춘 로라 웰튼을 의아한 듯 바라보자, 로라 웰튼은 심호흡을 하며 진정했다. 아직 전투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똑똑-

노크와 함께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회의실 안에는 뉴에이지의 이번 리메이크 프로젝트 담당자와 감독, 그리고 각본가가 앉아 있었다. 먼저 도착한 모양이었다.

“어서 오세요. 작가님.”

담당자의 인사를 시작으로 모두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몇 번 만난 적 있는 사이지만, 긴장감이 흘렀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조용하고 삭막한 분위기에 담당자가 애써 허허롭게 웃으며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아냈다.

‘살려줘……!’

누가 [이클립스]의 리메이크 영화를 내자고 제안했는지, 왜 자신이 담당자가 됐는지 정말 원망스러웠다.

‘아, 나지?’

하.하.하.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팀장으로 자원했던 담당자가 쓰게 웃고 말았다.

하지만 로라 웰튼의 다른 작품, 소설 [클라우드]가 영화화되어 흥행한 것을 보면 제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작이 인기 있으니까 말이야.’

소설 [클라우드]도 인기가 있긴 했지만, [이클립스]보다는 못했다.

소설의 인기도로 간단하게 계산을 해보면 [이클립스]의 영화화가 성공하면 영화 [클라우드]보다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소설 [클라우드]를 성공적으로 영화화한 뉴에이지는, 담당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로라 웰튼에게 [이클립스]의 리메이크를 제안했다.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이제 회의를 시작할 때였다.

“그럼 먼저 각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전 좋았습니다. 각 캐릭터의 개성이 살아 있고 일어나는 사건들도 적절한 데다가 영상으로 만들면 멋지게 나올 것 같더군요.”

담당자가 입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감독이 대답했다. 그에 각본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열심히 고쳐 쓴 보람이 있네요.”

“각본가님이 잘 쓰신 거죠. 역시 경력이 있으신 분이 쓰시니 다르더군요. 게다가 왠지 제 연출 스타일하고도 비슷한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어떻게 연출해야 할지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느낌이었어요.”

“역시 감독님. 알아보셨네요. 제가 감독님 영화를 좋아해서 많이 봤거든요. 전작에서 보여주셨던 연출이 너무 인상 깊어서 비슷한 장면을 넣어봤어요.”

하하하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감독과 각본가.

이쪽만 보면 꽃이 활짝 핀 봄 같은 분위기였지만, 반대편은 회사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눈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원작자, 로라 웰튼이었다.

“작, 작가님의 의견도 들어볼까요?”

이제 곧 여름인데 한기가 드는 것 같았다.

담당자가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자, 로라 웰튼이 기다렸다는 듯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탁- 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두툼한 종이뭉치였다.

“……이건?”

담당자와 감독, 각본가의 시선이 쏠렸다.

“각본을 읽고 설정 오류를 고쳐봤습니다.”

그 종이뭉치의 정체는 로라 웰튼의 다크서클을 짙어지게 한 원인인 각본이었다.

담당자가 손을 뻗어 슬쩍 종이뭉치를 촤르르 넘겨보았다.

원래는 새하얀 종이에 알파벳만 새까만 잉크로, 깨끗하게 프린트되어 있었을 각본이, 붉은색 펜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마치 치명상을 입고 온몸에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각본가과 감독의 얼굴이 한껏 찌푸려졌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도, 얼마나 각본이 난도질 되어 있는지 보였다.

각본을 받자마자 매일 밤을 늦게까지 눈물을 삼키며 직접 그 상처들을 낸, 원작자 로라 웰튼이 입을 열었다.

“먼저 캐릭터 설정 오류부터 설명하도록 하죠.”

눈물이 굳어져 얼음이 된 듯, 단단한 표정과 목소리였다.

그렇게 로라 웰튼의 지적이 이어졌다.

한 장 한 장 붉은 색이 가득한 종이가 넘어갈 때마다 각본가와 감독의 얼굴이 굳어지다 못해 일그러졌다.

“정말 여기에 이 연출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감독님의 전작과는 전혀 다른 배경인데요?”

아주 단단히 분석을 해온 듯 로라 웰튼의 일방적인 맹공격에, 입술을 깨물던 각본가가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말했다.

“……작가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각색은 달라요.”

로라 웰튼이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듯 말을 멈추었다.

“각색은 말이죠. 영화의 시간에 따라 중요한 부분과 중요하지 부분을 골라야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를 관객들이 이해하려면 설정이 조금 바뀌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그런 설정을 조금 바꾼 것뿐입니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죠.”

“연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에서는 지문으로 표현하면 되는 법이지만, 영화에서는 그걸 연기로, 배경으로 표현해야 하죠. 감독인 제가 다 알아서…….”

각본가와 감독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다 맞는 이야기였지만, 로라 웰튼에게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뭐, 어차피 이 말도 안 통하고 돈과 명예만 바라는 각본가와 감독을 설득하려고 긴 시간 떠들어 댄 게 아니었다.

로라 웰튼의 시선이 앉아 있던 담당자에게로 향했다. 로라 웰튼이 가방에서 각본을 꺼낼 때부터 안절부절못하던 담당자는 체념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전 충분히 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잘 알았습니다.”

담당자가 포기했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그에 각본가와 감독이 의아한 듯 담당자를 바라보았다.

담당자는 차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두 사람을 이 자리에 앉혀준 뉴에이지의 윗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아무리 영화계가 친분과 인맥으로 돌아간다고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너무 인맥만 믿고 뻗대는 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둬야 할 터였다.

“두 분께서는 잊으신 모양이시지만, 전에 말씀드린 대로 이클립스의 영화화에 대한 대부분의 권한은 웰튼 작가님께 있습니다.”

“……네?”

그저 배경인 것 같았던, 사람 좋은 얼굴로 ‘네, 네.’ 하던 담당자의 말에 각본가와 감독이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각본가와 감독을 이 자리에 앉게 해준 뉴에이지의 윗분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건 그냥…….’

원작자에 대한 예의 정도의 말이 아니었던가?

“물론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뉴에이지의 중요한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담당하고 있는, 능력자인 담당자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붉은 펜으로 뒤덮인 각본을 바라보았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겠네요.”

“그럼 제 요구 들어주시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이 정도면 작가님이 각색을 하시더라도 막을 수가 없겠네요.”

그말에 로라 웰튼이 기쁨의 한숨을 삼키며 담당자를 바라보았다.

직접 각색할 생각은 없었다.

저 각본가의 말대로 각색은 전문가의 영역이었으니까 말이다. 연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클라우드를 제작했던 각본가와 감독님을 이클립스 리메이크 프로젝트에 불러주세요.”

성공적으로 영화화했던 [클라우드].

이번 [이클립스 리메이크]도 그 두 사람에게 맡기고 싶었지만, [클라우드]를 멋지게 만들어준 뉴에이지에서 추천할 만한 인물들이 있다길래 믿고 맡겼더니…….

‘이렇게 돼버렸지.’

저절로 이가 갈렸다.

마치 [이클립스]의 남자주인공(종족: 늑대인간)처럼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원작자의 모습에 담당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식은땀을 흘려댔다.

“그, 그럼 바로 섭외하겠습니다.”

“네. 꼭. 데려오세요.”

어? 어?

어느새 배경이 된 각본가와 감독은 멍한 얼굴로, 대화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어떻게 됐어?!”

카페에서 기다리다가 연락을 받고 온 그레이스의 물음에 로라 웰튼이 씨익 웃었다. 환한 언니의 표정에 꺄아아! 그레이스가 팔짝 뛰었다.

“그 두 사람이라면 믿을 만하지!”

로라 웰튼 작가의 빅팬인 [클라우드]의 감독과 각본가를 떠올리며 그레이스가 활짝 웃었다.

“축하파티다! 케이크 사 가자!”

“그래!”

커다란 케이크를 사서 집으로 가는 길.

그레이스는 시원한 마음으로 투덜거렸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들을 붙여줬으면 마음고생 할 일도 없었을 텐데! 언니도 좀 더 베스트셀러 작가에, 원작자로서의 힘을 쓰지 그랬어. 이건 내 작품이다! 하고 말이야. 이번에는 계약도 잘했잖아.”

어영부영 계약했던 옛날과는 달리, 최대한 원작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쪽으로 말이다.

“클라우드를 잘 만들어줬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지.”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어.”

그런데 설마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처음 각색된 대본을 읽고 받은 충격을 떠올린 웰튼 자매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잘못하면 [망클립스2]가 나올 뻔했다.

“그래도 잘 됐으니까!”

“그래! 그 두 사람이면 믿을 수 있지!”

[클라우드]를 멋지게 영상화해 준 두 사람을 떠올린 웰튼 자매가 활짝 웃었다.

* * *

아침부터 그레이스에게서 온 메시지로 단톡방의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기쁨으로 흥분한 그레이스의 심박수를 보는 것 같았다.

쌓여 있는 메시지들을 읽어보니, 회의를 아주 성공적으로 끝냈나 보다.

>찰리: 잘 끝나서 다행이네.

<그러게.

<그 담당자분도 말이 잘 통하는 분이라서 다행이야.

>그레이스: ㅇㅇ

>그레이스: 클라우드 때도 담당했던 분인데,

>그레이스: 일 잘하시는 분이야:)

>찰리: 그런 분이 이번엔 왜……?

<원래 사내정치랑 인맥이란 게 그런 거지, 뭐.

<이쪽 세계는 더 그렇고.

‘누구 하나가 사고 치면 작품이 날아가니까.’

오랫동안 봐왔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섭외할 수밖에 없는 연예계였다.

‘그래도 사건 사고가 나니…….’

한국에 오자마자 본 어떤 배우의 음주운전 기사를 떠올린 서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찰리: 하긴.

>찰리: 요리사들도 추천으로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가 많으니까.

>찰리: 못하면 둘 다 욕먹지.

>그레이스: 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친구들과 즐겁게 메시지를 주고 받은 서준이 거실로 나왔다.

창을 통해 비치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와 아빠.

“잘 잤어, 아들?”

“서준이가 오니까 집이 가득 찬 것 같네.”

편안한 집과 포근하고 따뜻한 부모님.

언제나와 다름없는 풍경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촬영도 좋았지만, 이런 일상도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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