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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42화 (74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42화

“물건이 꽤 늘었네.”

서준은 촬영을 하던 몇 개월 동안 지냈던 방 안을 둘러보았다.

침대와 가구들만 놓여 있었던, 처음에는 휑했던 방은 어느새 서준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새싹들이 (팬미팅에서) 선물해 준 장식품부터 걸려 있는 영화 포스터들, 그리고 여기서도 존재감을 뽐내는 몬스터 사의 인형들까지. 서준의 취향이 가득한 방이었다.

물론 [쉐도우앤나이트]의 촬영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갈 서준은 딱히 짐을 늘릴 생각은 없었지만, 서준의 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집 샀다며!’ 하고 이것저것 선물한 것이었다.

‘특히, 나라 이모가.’

저택에 놀러 와서 스캔하듯 보고는, 저택에 어울리는 가구들과 편리한 전자제품들을 한 아름 선물해 준 나라 킴을 떠올린 서준이 작게 웃었다. 그 선물들 덕분에 이 집에 더욱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정리해 볼까.”

서준이 캐리어와 상자들을 꺼내 펼쳤다.

캐리어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올 때 가지고 왔던 것이었고, 상자는 택배로 보낼 나머지 짐을 넣을 예정이었다.

“이건 챙겨가고…….”

서준은 방 안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옷이나 소지품들을 정리해, 활짝 펼쳐진 캐리어와 상자에 마치 테트리스를 하듯 집어넣었다. 한국과 미국을 자주 오가다 보니 이젠 시간도 별로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전부 다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서준의 마음을 가볍게 했다.

언제든지 와서 머물 수 있는 장소가 생기니, 꼭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두고 갈 수 있어서 좋았다.

“집이 생기니까 편하네.”

정확히는 코코아엔터 배우들이 사용하는 숙소지만.

마지막으로 노트북까지 챙긴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얼른 다른 배우들도 미국에 진출해서 이 숙소에서 다 같이 지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 * *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오후 3시쯤, 공항에 도착한 서준에게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쏟아졌다.

한국(오전 7시)에 있는 지인들은 얼른 오라고, 미국에 있는 지인들은 잘 가라고.

배웅 나와주지 못한 미국 지인들의 메시지에 서준이 웃으며 괜찮다는 답장을 보냈다.

>리첼: 배웅 가고 싶었는데ㅠㅠ

<괜찮아요ㅎㅎ

<리첼이 오면 공항이 뒤집어졌을 거예요.

>리첼: 역시 준의 일코를 배워야겠어!

어쩐지 주먹을 불끈 쥐고 있을 리첼 힐의 모습이 떠올라, 서준이 작게 웃고 말았다.

>에반: 조심해서 가.

>리첼: 또 언제 봐ㅠㅠㅠ

>에반: ㅋㅋ이미 받는 거 확정인 거야?

<후보로 참석할 수도 있는 거죠!

<……받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요.

>에반: ㅋㅋㅋㅋ

>리첼: ㅋㅋㅋㅋㅋ

모자를 눌러 쓴 서준이 휴대폰을 보며 킥킥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

익숙한 목소리에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까지 안내한 태우 형의 뒤로, 시간이 되어 배웅 나와준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제이슨과 벤자민 교수님이었다.

“……백수는 아니죠, 제이슨?”

“아냐.”

블루문의 LA콘서트에도 서준과 함께 갔던 제이슨 무어가 한껏 미간을 찌푸렸다.

그에 벤자민 교수와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흠, 최태우도 웃음을 참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난 수속하러 갔다 올게.”

“네.”

최태우가 탑승 수속을 하러 떠나고, 서준은 제이슨 무어와 인사하고 벤자민 교수와 가볍게 포옹했다.

“리첼이랑 에반이랑 이야기하던 중이었어요. 쉐도우앤나이트랑 WTV 시상식에 대해서요.”

서준이 설명하자, 제이슨 무어와 벤자민 교수도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투표 때 너희 팬들이 대단하긴 했지.”

“내 생각에도 네가 받을 것 같구나.”

두 사람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영화 쪽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두 바이올리니스트도 그렇게 생각할 정도라니.

‘우리 새싹들. 대단해.’

가슴이 뿌듯해졌다.

“곡은 완성됐어요?”

시간이 남아, 서준과 제이슨 무어, 벤자민 교수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제는 블루문의 앵콜 무대에서 영감을 받은 제이슨 무어의 곡이었다.

“아직. 완성되려면 한참 멀었어.”

한참이라고는 말해도, 완성까지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다크서클이 조금 보이는 제이슨 무어의 얼굴이, 밤낮 가리지 않고 열중하고 있다는 것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준이 웃으며 선기를 흘려보내 주었다. 체력을 회복하고 피곤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들어보니 좋은 영감을 얻은 것 같더구나.”

아직 만드는 중인듯하지만, 먼저 들어본 벤자민 교수의 말에 서준이 눈을 빛냈다.

“들어보셨어요, 교수님?”

“그래.”

벤자민 교수가 작게 웃었다.

자신이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면,

‘아직 미완성입니다.’

‘그래.’

‘……미완성이라니까요, 스승님.’

‘알고 있다니까.’

‘……하아.’

미완성이라 들려드리기 민망하다고 말하던 제이슨 무어도 이내 두 손을 들고는 했다.

“어떠셨어요?”

“좋았단다. 제이슨이 그 무대를 보고 느낀 감정들이 곡에 잘 담겨 있더구나.”

미완성의 곡임에도 제이슨 무어가 이전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에서 우러나온 새로운 감정이 잘 담겨져 있었다.

벤자민 모튼 교수는 제이슨 무어가 들려준 미완성 곡의 선율을 떠올리며 말했다.

“듣는 사람까지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랄까. 한 곡인데도 전혀 다른 느낌의 곡처럼 느껴졌단다. 그런데도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졌지.”

오오!

서준이 눈을 빛내며 제이슨 무어를 바라보았다.

“저도 듣고 싶어요, 제이슨!”

“안 돼.”

단호하다.

스승님 때와는 다르게, 절대 들려주지 않을 것 같은 단호함이었다.

쳇.

서준의 얼굴이 부루퉁해졌다.

“치사하게…… 좀만 들려주면 어때서 그래요?”

“그럼 넌 시놉시스 보여줄 수 있어?”

“으으으…….”

애제자와 반쯤 제자인 것 같은 배우가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벤자민 모튼 교수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런 게 행복이지.’

그리고 새로운 제자도 있고.

“빈이 여름방학 때 미국에 온다는 이야기. 들었니, 준?”

‘쩨쩨한 제이슨, 치사한 제이슨……’ 하고 가볍게 투덜대던 서준이 벤자민 교수의 말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 수빈이에 대한 이야기에, 제이슨 무어와 투닥거리던 것도 잊어버린 눈치였다.

“네. 수빈이한테 들었어요.”

그런 서준을 제이슨 무어가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이내 제이슨 무어 역시 수빈이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번 여름방학 때 그 부분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수빈이라면 잘할 거예요.”

“빈이라면 좀 더 진도를 나가도 될 것 같습니다.”

형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김수빈이었다.

* * *

‘귀가 간지러워.’

머나먼 이국땅에서, 팔불출 같은 스승과 두 사형이 열심히 자신의 이야기(인지 칭찬 세례인지 모르겠지만)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김수빈은,

‘연주를 하려면 체력이 제일 중요하지.’

하던 서준의 조언에 따라, 열심히 아침 스트레칭을 하던 중 한쪽 귀를 만지작거렸다.

“누가 내 이야기를 하나?”

그런 성실한 아들을 보며 ‘나는 안 저랬는데……’ 하고 생각하고 있던 김희상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서준이가 네 이야기 하고 있는 거 아니야? 지금쯤 공항에 있을 텐데.”

“아, 오늘 서준이 형 오지!”

김수빈이 신이 난 얼굴로 말했다.

“서준이 형 오면 그동안 연습했던 곡 들려줘야지!”

동생바라기 형 못지않게, 형바라기인 동생이었다.

* * *

“수빈이 잘 부탁드려요. 교수님. 제이슨.”

“그래. 걱정 마렴.”

“알았어.”

배웅을 하러 온 건지 수빈이에 대해 이야기하러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바탕 즐거웠던 이야기 시간이 끝나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조심해서 가렴. 도착하면 연락하고.”

“미국에 올 때 연락해.”

“네. 그럴게요. 교수님도 제이슨도 건강히 지내세요.”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와 작별 인사를 한 서준은 최태우와 함께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비행기가 오기 전까지 기다리는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

최태우가 마실 것을 가지러 간 사이, 모자를 눌러쓴 서준이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

그러고는 뭔가를 떠올린 듯 얼른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 * *

>준: 나 곧 있으면 비행기 타.

>준: 내일 회의, 잘되길 기도할게.

LA에서 날아온 메시지에 그레이스 웰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답장을 보냈다.

<고마워:)

<조심해서 가!

저녁으로 먹을 요리들을 테이블에 올려두던 웰튼 부부가 휴대폰을 두드리는 딸, 그레이스를 보며 물었다.

“누구니?”

“준이요. 조금 있으면 비행기 탄대요.”

“그래? 영화 촬영이 끝났나 보구나!”

[내의원]을 시작으로 서준 리의 팬이 된 웰튼 부부가 눈을 반짝였다. 장르는 다르지만 서준이 나왔던 작품들은 모두 재미있고 감동이며 가슴이 벅찼다.

“생존자들 감독판은 좀, 많이 달랐지만…….”

“그건 그래.”

가족들과 함께 보다가 대성통곡을 했던 기억을 떠올린 웰튼 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지막 요리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레이스. 로라한테 내려오라고 하렴.”

“언니 안 먹으려고 할 텐데…….”

“잘 먹고 힘내야지.”

웰튼 씨의 말대로 잘 먹이기 위해서인지, 식탁은 평소와 다르게 부부가 만들고 그레이스가 도운 요리들로 가득했다. 그 메뉴들이 대부분 로라 웰튼이 좋아하는 요리들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그레이스가 이층으로 올라가, 굳게 닫혀 있는 방문 앞에 섰다.

똑똑-

“언니, 저녁 먹어.”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마치 판다처럼 다크서클이 짙어진 로라 웰튼이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쓰고 있는 안경이 삐뚤했다.

“안 먹을래…….”

힘이 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언니의 모습에 그레이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먹어. 오늘 한 끼도 안 먹었잖아. 내일 미팅 가려면 체력 비축해 둬야지. 체력이 없으면 싸움도 못 해. 이번에도 지면 큰일이잖아.”

“먹을게.”

그레이스의 말이 제대로 먹혔는지, 로라 웰튼이 눈알을 번뜩였다.

또 지다니……!

그럴 수는 없었다.

“언니 왔어!”

“자, 로라. 여기 앉으렴.”

그렇게 로라 웰튼까지 식탁에 자리를 잡자, 웰튼 가족은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이번 싸움 꼭 이기게 해주십쇼.”

웰튼 씨의 말에 따라, 웰튼 부인과 그레이스, 로라 웰튼까지 두 눈을 질끈 감고 기도했다.

마치 전쟁을 앞둔 자들이 기도를 올리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 * *

라운지에 준비된 음료수를 들고 온 최태우가 서준의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누구한테 보낸 거야?”

“그레이스요.”

서준의 대답에 최태우는 뉴욕에 사는 서준의 친구를 떠올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정체도.

“이클립스 작가님의 동생?”

“네. 맞아요.”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라운지에는 서준의 경호원들도 있었지만, 일반인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클립스가 다시 영화화할 예정이라는 건 태우 형도 들었죠?”

“들었지.”

영화 [이클립스]가 망한 지 올해로 4년째.

보통은 이렇게 빠르게 리메이크작을 만들지는 않지만…….

“다시 만들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제작한다며?”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스트셀러니까요.”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있는데 안 만들 나라가 아니었다.

망한 적이 있는데 또 망하지 않겠지, 하는 팬들의 생각도 있었다.

“근데 또 망하게 생겼어요.”

서준이 해탈한 듯 허허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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