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41화
“하…… 좋았다…….”
LA 여행 겸 블루문의 콘서트에 참가했던 블루문의 한국인 팬, 김선영은 터덜터덜 걸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은 한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2층 침대(커튼으로 가려져 있다.)가 세 개 있는 6인실을 써야 했지만, 청소 상태도 좋았고 숙식비에 포함되어 있는 아침 식사도 꽤 괜찮게 나왔다. 여행이며 콘서트며, 아주 중요한 곳에 돈을 쏟아부어 빈털터리인 김선영에게는 호텔 못지않은 곳이었다.
거기에 좋은 점은 다른 한국인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때때로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게 나쁜 점으로 작용하긴 했지만, 이번에 알게 된 언니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선영아, 배고프지? 저녁 사 왔어.”
“같이 먹자.”
테이블 위, 포장된 음식들과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는 두 사람에 김선영이 눈을 글썽였다.
“언니들! 최고!!”
역시 좋은 언니들이었다.
격렬한 응원으로 지친 몸에 음식이 들어가니 생기가 차올랐다. 김선영이 신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특히 마지막 앵콜 무대가 장난 아니었다니까요!”
“그래?”
“어땠는데?”
친절한 언니들의 정체는, 한국은 물론이고 할리우드에서도 활약 중인 배우 이서준의 팬, ‘이서준 투어(LA뿐이지만)’를 하러 온 새싹, 송유정과 임예나였다.
“오빠들 무대를 직접 본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는데!”
“알지. 알지.”
전직 아이돌 팬이었던, 공개방송도 가봤던 송유정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 팬 한 길만 걷고 있는 임예나는 부러워하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앵콜 무대는 진짜, 진짜 말도 못 할 정도로 좋았어요. 진짜 몇 분 동안 천국에 갔다 온 기분이랄까. 제 뒤에 앉아있던 남팬분들도 엄청 감탄한 얼굴이었다니까요!”
리액션이 좋은 두 언니의 반응에, 김선영은 마치 날개를 파닥거리는 펭귄처럼 좋아하며 인생 첫 콘서트 후기를 이야기했다.
알바비를 탈탈 털어서 왔다는 파릇파릇한 대학생의 모습을 두 명의 직장인은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마음 한편에서는 눈물이 흐르는 걸까.
‘서준이도 콘서트 해줬으면…….’
그 극악의 경쟁률을 뚫고 두 번의 팬미팅도, 연극 [MOEB-436]도 본 두 새싹이었지만, 더더더 많이 서준을 봤으면 하는 게 팬의 마음이었다.
“근데 그 두 사람, 모자를 계속 쓰고 있어서 잘 봤을까 싶어요. 그런 무대를 불편하게 봐야 했다니…….”
김선영이 안타까운 듯 말했다.
“뭐, 개인마다 사정이 있으니까.”
“아! 그리고 그 두 분 아는 사이였나 봐요. 잠깐 쉬는 타임마다 뭔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되게 전문적이었어요.”
그에 송유정이 감탄했다.
“와, 콘서트 두 자리 티켓팅하는 거 힘들었을 텐데 대단하네.”
“그러니까요. 전 한자리 티켓팅하는 것도 진짜 힘들었는데 말이죠. 이선좌 볼까 봐 얼마나 쫄았는지 몰라요.”
긴장하며 티켓팅했던 기억을 떠올린 김선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LA음대와 ‘그레이 바이니’가 연주했던 공원에 갈 예정인 임예나가 눈을 반짝였다.
“LA음대 학생들일까?”
오래된 일이기는 했지만, [오버 더 레인보우1]의 ‘버스킹 일화’로 LA음대생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좋은 상태였다.
“그런 것치고는 두 사람 나이 차이가 좀 있는 것 같았어요.”
김선영은 어쩌다가 흘긋 보게 된 두 남팬을 떠올렸다.
“동양인분은 이십 대 정도였고 백인분은 삼십 대쯤? 물론 외국인인 데다가 모자도 쓰고 있어서 잘못 본 걸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럼 교수랑 제자?”
“교수랑…… 제자가…… 같이 콘서트를 갔다고?”
그 말에, 현 대학생인 블루문 팬과 대학 시절을 겪어본 두 새싹이 소름이 돋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건 아니겠지.”
“절대 아닐 거예요! 사이도 엄청 좋아 보였는걸요!”
물론 사이 좋은 교수와 제자도 있겠지만…… 상상이 안 된달까.
세 사람은 문득 떠오르는 교수들의 얼굴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음악을 다시 시작하려고 음대에 입학한 직장인이 아닐까?”
임예나의 말에 김선영과 송유정이 오오, 감탄했다.
“그럼 정말 대단한 분이셨을지도!”
“그러게. 보통 용기가 아니었을 것 같아.”
한순간 ‘꿈을 포기하지 못해 LA음대에 입학한 직장인’이 되어버린 제이슨 무어였다.
그렇게 세 사람의 저녁 식사 자리는 점점 무르익어갔다.
“그리고 떼창할 때, 뒤에 앉은 남팬분도 노래를 불렀는데 엄청 잘 불렀어요. 주변이 다 노래를 부르느라 시끄러운데도 목소리가 좋아서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됐다니까요. 왠지 오빠들 목소리하고도 어우러지는 것 같고…….”
마치 블루문 멤버처럼 말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 발음도 좋았어요. 한국인이었던 것 같아요.”
“꽤 자세히 살펴봤네. 설마…… 관심의 시작?”
송유정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팬으로 만나 시작하는 커플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얼굴이 새빨개진 김선영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잘생겼어?”
으히히 웃는 임예나에,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김선영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모자에 가려서 잘 안 보이긴 했지만요. 두 분 다 엄청 잘생기신 것 같더라고요.”
“오오오!”
머나먼 이국에서 시작되는 사랑 이야기에, ‘그 남팬’의 정체가 누구인지 짐작도 못 하는 송유정과 임예나가 눈을 반짝였다.
“전화번호라도 교환하지 그랬…….”
어, 하고 말하려던 찰나.
띠링- 하고 휴대폰이 울렸다.
그것도 세 곳에서.
두 새싹과 블루문 팬은 반사적으로 각자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흐뭇하게 웃던 두 언니의 표정과 언니들의 놀림으로 붉어졌던 여동생의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진지한 표정이었다.
알림의 주인공은 코코아엔터 공식 SNS였다.
[코코아엔터]
[블루문의 LA 첫 콘서트를 응원하러 와주신 이서준 배우님과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스 무어 님! 감사합니다!]
#LA첫콘#저녁식사도_함께#쉐도우앤나이트#서준_리#제이슨_무어
그리고 관련된 사진들도 업로드되었다.
콘서트 시작 전, 리허설을 보는 서준과 제이슨 무어.
대기실에서 블루문 멤버들과 만나는 배우와 바이올리니스트.
콘서트 중, 모자를 쓰고 관객석에 앉아 응원봉을 흔들고 있는 두 남팬.
콘서트가 끝난 후, 조금 땀이 흐른 모습으로 블루문과 이야기하는 두 남자.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들.
등등의 사진들.
“……?”
잠시.
아니, 조금 길게 침묵이 이어졌다.
특히 세 사람은 한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콘서트 중에 찍은 것 같은 사진.
“……이거……선영이 너지?”
송유정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 사람을 가리켰다.
블러처리로 팬들의 얼굴은 가려졌지만, 옷차림 등으로 알 수 있었다.
“……네……맞아요.”
김선영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하면서도 왠지 꿈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뒤에 있었다던 남팬들이…… 서준이랑 제이슨 무어였다고?!”
임예나의 비명에 송유정과 김선영도 정신을 차렸다.
……미친.
내(선영이) 뒤에 앉았던 남팬이, 배우 이서준과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였다니.
끄아아악-!!
아니, 정신을 잃은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서준이 노래를 들었다고?! 바로 앞에서?!”
“선영아, 이야기! 이야기 다시 해줘!”
“하나부터 열까지 빠뜨리지 말고!!”
“자리에 앉을 때부터!”
눈을 번뜩이는 두 새싹에, 김선영은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고 친절한 언니들이었는데…….’
지금은 좀 무서웠다.
아무래도 살짝 피어올랐던 분홍색 기류는 얌전히 접어야 할 것 같았다.
뭐, 그 남팬이 배우 이서준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깨끗하게 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공용식당에서 일어난 소란에, 알바생과 관광객들이 하나둘 식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김선영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입을 쩌억 벌리고 말았다.
* * *
[블루문 LA첫콘의 뜻밖의 손님! 배우 이서준과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
[배우 이서준, 쉐앤나 크랭크업 이후 첫 스케줄, 블루문 콘서트 관람!]
[블루문, 미국투어 첫 콘서트부터 화려하게 시작!!]
-뜻밖의 손님이라고 해서 게스트가 온 줄 알았더니, 진짜 ‘손님’이었네?
=그러니까ㅋㅋㅋ 게스트로 참석한 줄 알았더니 관람만 하고 갔어ㅋㅋ
-블루문 팬이 쓴 후기 보면 웃김. 자기 뒤에 앉았는데 몰랐대.
=근데 아는 것도 이상함. 며칠 전에 촬영 끝낸 배우가 콘서트에 온다고는 1도 생각 못 할 듯.
=22 아니, 여기서 이서준이!?
=다시 한번 이서준 일코의 대단함을 느낀다ㅋㅋㅋ
-우리 서준이가 떼창을 했대요ㅠㅠ저 분은 직접 들었대ㅠㅠ
=ㅠㅠ부럽다ㅠㅠ 진짜ㅠ 목소리도 좋았대ㅠ
=‘어쩐지 한 멤버 같다고 느꼈어요.’에 나만 ‘블루문’ 떠올린 거 아니지?
=블루문의 제6의 멤버, 이서준ㅎㅎㅎ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도 잘생겼다고 생각했어요.’ 모자를 뚫고 나오는 서준이의 잘생김.
=나도 하관만이라도 직접 보고 싶다ㅠㅠ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새싹이 있었다는 게 웃김.
=덕계못은 덕계못인데…… 좀 이상한 덕계못ㅋㅋㅋ
=누가 블루문 콘서트에 내 배우가 올 걸 아냐고욬ㅋㅋ
-제이슨 무어는 클래식 공연만 가는 줄 알았는데, 이런 콘서트도 가네.
=22 사진 보면 응원봉 들고 있는데 되게 즐기고 있는 듯ㅋㅋ
=33 외국반응도 비슷함. 안 어울리는데 어울린다고ㅋㅋㅋ다들 놀라고 있음ㅋㅋ
-블루문 콘서트 반응도 좋은데?
=ㅇㅇ후기마다 미쳤다x45345 적혀있음.
=누가 몰래 찍어 올린 영상 봤는데, 뭔가 달라진 것 같긴 하더라.
=22 노래 실력도 춤 실력도 확 는 듯.
=ㄴㄴ 늘었다기보다는 애드리브랄까. 이제 각자의 개성을 잘 표현하게 된 것 같던데.
-ㅠㅠ애들아ㅠ빨리 한국와서 우리도 보여주라ㅠ
=미국투어ㅠㅠ언제 끝나ㅠㅠ
=헐 ㅅㅂ 콬아가 연습 영상 올려줌(링크)
=감사! 압도적 감사ㅠㅠ
=콬아ㅠㅠ이번 여름 새 에어컨 안 필요하니???
-와아.
=와아아.
=미쳤다.
=22 영상 보고 왔는데 그냥 미쳤다 소리밖에 안 나옴.
=연습 영상이 이 정도면 무대는 어떻겠냐고요ㅠㅠ
=콘서트! 콘서트를 가야해!
=음방이라도!!
=일단 애들이 한국에 와야지 가능한ㅠㅠ
-근데 블루문 원래 이랬음?
=실력은 원래 좋았음. 이번에 득음한 거.
=득음ㅋㅋㅋ
=득음보다는 각성이지.
=여기 블루문 달라진 점 분석해 놓은 영상(링크)
=오ㄱㅅ
* * *
그렇게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에서 풀려나(?) 자유가 된 블루문이 순조롭게 미국 투어를 진행하고 있는 사이, 서준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준 넌 콘서트에만 가도 난리네.
“하하하.”
통화 상대는 조나단 윌 감독이었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에서도 K-POP 아이돌의 콘서트에 서준 리와 제이슨 무어가 갔다고 기사가 제법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할리우드 배우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관심을 끈 가수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외국인들도 생겨, 코코아엔터에서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새롭게 각성(?)한 블루문의 연습 영상을 촬영해 공개했다.
또 빠른 시일 내에 제대로 콘서트 무대 중 하나를 촬영해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신이 난 박이든에게 전해 들었다.
친구들이 잘되길 바라며, 서준은 조나단에게 물었다.
“일은 어때요?”
친구들도 친구들이지만, 자신의 일도 중요했다.
-잘되고 있어. 다들 엄청 의욕적이야.
대답하는 조나단 감독의 목소리가 가뿐해, 서준은 미소를 지었다.
-그림자 CG는 쉐도우맨 CG 작업을 맡아본 직원들이 담당할 예정이라 퀄리티가 좋을 거야. 배경이나 전투 장면의 CG도 마린에서 제일 잘하는 팀들을 붙여줬고.
“잘됐네요.”
-그리고 편집도…….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어우러졌던 블루문의 앵콜 무대처럼, [쉐도우&나이트]도 더욱 멋지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서준은 조나단 감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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