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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37화 (73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37화

“후후후…….”

커다란 창. 그 앞에 놓여진 커다란 책상에 앉아 있는 남자가 낮게 웃었다.

뒤가 통창으로 되어 있는 터라, 역광 때문에 그림자가 져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흐흐흐-. 남자의 낮은 웃음도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웃으니 악당 보스 같네요. 사장님.”

페일런 박은 책상에 놓인 자료를 보며 즐겁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마린사의 사장, 리처드 보윈을 바라보았다.

영화 관련 회사라서 사장님까지 물들어버린 걸까.

리처드 보윈 사장의 웃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 악당들의 보스 같은 모습이었다.

리처드 보윈 사장 뒤로 펼쳐진 배경이, LA의 화창한 날씨가 아니었다면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오늘도 날씨가 좋네.’

상사가 딴생각 중이니, 보고하러 온 부하도 창밖을 보며 멍 때리고 있었다.

“크흠.”

정신을 차린 리처드 사장이 헛기침을 했다.

마침 새하얀 구름에 해가 가려졌다. 역광도 사라졌기 때문에 악당 보스의 집무실 같았던 사무실도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쉐도우앤나이트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고?”

“네. 일정대로 어제부로 모든 촬영이 끝났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지만, 리처드 사장의 입가는 여전히 꿈틀대고 있었다. [쉐도우앤나이트]를 시작으로 펼쳐질 마린의 제2의 전성기가 떠올라,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 대단한 성과 중 일부분은 현 사장인 자신에게 돌아오겠지!

한 문장만 말해도 입가를 움찔움찔 떨며 기쁨을 참으려고 하는 리처드 사장의 모습에, 페일런 박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함께 해온 시간이 얼마던가.

그런 리처드 사장을 무시하고(?) 계속 보고를 이어가는 페일런 박이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CG 작업과 편집 작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촬영하면서 미리 중요한 사항들을 정리해 전달했기 때문에 배경이나 사소한 작업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군요. 물론 이후 조나단 감독님의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그에 정신을 차린 리처드 사장이 물었다.

“조나단 감독은?”

“휴가를 보내고 모레 복귀하실 예정입니다.”

“그래. 푹 쉬셔야지.”

그래야 더 좋은 편집을 할 수 있지……!

후후후후- 하고 웃는 리처드 보윈의 모습은 역광이 없더라도 충분히 악덕 사장처럼 보였다.

“그럼 개봉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

룰루랄라, 콧노래라도 부를 것처럼 즐거운 표정의 리처드 보윈 사장이 책상 위에 놓여진 파인패드를 들고 달력 어플을 켜 휙휙 넘겼다. 달력에는 중요한 영화제나 시상식, 라이벌이 될 만한 영화의 예상 개봉일 등이 적혀 있었다.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내년 2월에 있을 아카데미 시상식.

오늘 처음으로 리처드 보윈 사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오스카는 힘들겠지?”

“아무래도 그렇겠죠.”

페일런 박이 어깨를 으쓱였다.

상업 영화 중에서도 유난히 ‘상업적’인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시각효과 부분에서는 노미네이트될 확률이 있지만 말입니다.”

“그건 뭐. 빼는 게 이상하지.”

CG를 그렇게 여기저기, 화려하게 사용하는데, 노미네이트가 안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실제로 수상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슈퍼히어로 영화라는 장르의 한계였다.

“그럼 오스카는 힘 좀 빼고 진행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뭐, 시도라도 해봐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2월의 달력이 지나고 5월, 8월 달력이 보였다.

2월 베를린, 5월 칸, 8월 베니스.

“3대 영화제는 넘기자.”

이 영화제들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싹쓸이했던 [오버 더 레인보우1]도 못 받았지 않았나.

“작품성이 뭐라고.”

투덜거리던 리처드 보윈 사장이 달력을 앞으로 넘겼다.

그렇게 넘기다 멈춘 달력의 날짜는 10월.

“역시 WTV 시상식이 좋겠지?”

페일런 박이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쪽이 가장 좋죠. 게다가 심사 방식이 투표라, 대중들의 반응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상식인 만큼, 작품이 얼마만큼 인기가 있는지 알 수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다음 작품들도 문제없이 제작할 수 있겠지.”

리처드 보윈 사장이 10월에 체크된 WTV 시상식을 보며 말했다.

“그럼 이걸 노려보자고.”

리처드 보윈과 페일런 박이 마주 보며 웃었다.

흐흐흐-.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정말 악당의 보스와 부하 같았다.

* * *

페일런 박의 이야기에 [쉐도우앤나이트]의 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년 WTV 시상식에 맞춰 쉐도우앤나이트의 개봉을 내년으로…….”

“뭐?”

“예?”

페일런 박과 담당자가 눈을 끔벅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올해 시상식이 있는데, 왜 내년으로 미루는 거지?”

“……올해 시상식은 이제 몇 달 안 남았습니다만?”

지금은 6월.

10월이면 이제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대중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그보다 빨리 개봉해야 했다. 늦어도 9월 하순.

“CG 작업도, 편집 작업도 오늘 시작했습니다만?”

약 3개월 정도의 시간만이 남아 있었다.

당황한 담당자가 얼른 말을 이었다.

“제시간에 모두 끝내기는 힘듭니다. 제시간 안에 끝내도 퀄리티가 나쁠 거고요.”

담당자의 타당한 주장에 페일런 박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돈을 쓰면 되지.”

“……예?”

“실력 있는 CG팀을 모두 불러. 일할 수 있는 편집팀도 모두 부르고. 필요하면 돈을 더 쓰면 될 일이야.”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페일런 박에 담당자가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그에 페일런 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설명을 해야 한다니.

‘리처드 사장님과는 이런 설명이 없어도 잘 통했는데 말이야.’

여러모로 쿵짝이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 * *

-쉐도우앤나이트 9월 말에 개봉할 계획이래!!

“아, 그래요?”

휴대폰 건너.

비명처럼 들려오는 조나단의 목소리에 서준이 영혼 없이 대답했다.

-반응이 왜 그래? 9월 말이라니까! 이제 3개월하고도 몇 주밖에 안 남았다고!!

“그거야…… 제 일은 다 끝났으니까요?”

촬영을 모두 끝낸 배우의 맞는 말에, 휴대폰 건너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편집을 총괄해야 하는 조나단 감독이 암담한 앞날에,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자학하는 소리였다.

-시놉시스 때부터 대본에, 촬영에, 편집까지 몸이 갈리는 날밖에 없는 것 같은 기분이야…….

“그게 감독의 일이니까 어쩔 수 없죠.”

-……준, 네가 주된 원인인 것 같은데?

하하하.

‘시놉시스’와 ‘촬영’에서 조나단 감독을 맷돌로 갈듯, 직접 곱게 갈았던 서준은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그래도 빠르긴 하네요. 11월이나 12월에 개봉할 줄 알았는데.”

-WTV 시상식 때문이래. 9월 말에 개봉해서 10월에 WTV 시상식에서 상 받으면 그걸로 홍보해서 마지막까지 관객의 주머니를 쥐어짜 낼 생각이겠지.

“오…….”

역시 마린사.

쏟아부은 돈만큼 거둬들일 생각인 듯했다.

“WTV 시상식이라니,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그러게. 네가 데뷔 후 처음으로 상을 받은 시상식이지?

“네. 맞아요. 주목할 만한 배우상.”

[쉐도우맨2] 때, 받았던 주목할 만한 배우상.

여전히 장식장 제일 위쪽에 놓여 있었다.

“그다음으로 받은 게, 최고의 악당상이랑 최고의 연기상이었죠.”

[쉐도우맨3] 때 받은 상이었다.

[쉐도우맨 시리즈]가 정말로 끝났다는 걸 실감한 날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또 가게 됐네요.”

아직 영화가 개봉하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들뜬다.

이번엔 빌런이 아니라 히어로로서 참석하는 자리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끝났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가게 되었기 때문일까.

‘둘 다일지도.’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마음이 설렜다.

그때 조나단이 말했다.

-이번에도 네가 받겠지?

“아하하. 그렇겠죠.”

겸손으로 아니라고 하기엔, 화려한 전적이 있어 그럴 수도 없는 서준이었다.

사이트가 터질까 봐, 나라별로 투표했던 전 세계 새싹들.

어쩌면 WTV 시상식 관계자들은 [쉐도우앤나이트] 제작 소식을 듣고 이마를 짚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는 이만 쉬러 가 볼게…… 이틀 동안 아주! 열심히! 쉴 거야.

비장감까지 서린 듯한 조나단의 목소리에, 서준은 웃고 말았다.

* * *

[마린사 ‘쉐도우앤나이트’ 크랭크업!]

[마린, ‘쉐도우앤나이트 촬영 종료!’]

[‘쉐앤나’ 개봉은 언제!?]

[블루문, 오늘부터 미국 투어 시작!]

-크랭크업!! 크랭크어업!!

=촬영 종료ㅠㅠ진짜 촬영했구나ㅠㅠ

=22 진짜 촬영했구나. 그 생각밖에 안 듬.

=33 쉐도우맨 시리즈 끝나고 다 끝난 줄 알았는데ㅠㅠ

-쉐도우앤나이트라니…… 우리 진 나트라가 히어로라니……!

=이젠 윌리엄이지.

=진 나트라나 윌리엄이나. 같은 사람이잖아.

=진 나트라랑 윌리엄은 다름.

=? 본체는 같잖아?

=아니지. 기억이 다른 존재를 같다고 할 수 있음?

=그래도 본체는 같으니까 같은 존재지.

=워워. 일단 영화 보고 이야기하자고. 마린의 영화는 어떤 전개로 갈지 모른다.

=22 진 나트라가 쉐도우맨3에서 자기 목숨까지 내거는 거 보면 모름? 상상 그 이상의 전개가 나올지도.

=그건 진짜 충격적이었는데ㅠㅠ

-누구 하나 죽는 거 아님? 엄마나 아빠나ㅠ

=ㅠㅠ안돼ㅠㅠ윌리엄 패밀리ㅠ

=그렇게 되면 윌리엄이 폭주해서 빌런 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언제 개봉하는데?

=내년 아님? CG작업도 해야 하고.

=22 빨라도 올해 말? 내년 초?

=어떻게 기다리냐ㅠㅠ

>박이든: 우린 완전 묻혔어.

>정은성: 아주 깊이 묻혔지.

<ㅋㅋㅋㅋㅋ

[블루문]의 동갑내기 친구들의 메시지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쉐도우앤나이트]의 크랭크업과 날짜가 맞물리는 바람에,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그대로 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블루문의 콘서트에 피해가 가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홍보하기도 했고 티켓팅도 모두 끝났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하더니 금세 매진됐다고 하더라.

>최재원: 서준아. 오늘 콘서트에 오는 거야?

>백이현: 매니저 형 말로는 그렇다던데?

재원이 형과 시훈이 형의 메시지에 서준이 답장을 보냈다.

<네. 맞아요. 응원봉도 샀어요!

<(파란 보름달 모양 블루문 응원봉(2개) 사진)

>김시훈: 오오오!

>김시훈: 어쩐지ㅋㅋ형, 누나들이 들떠 보이더라ㅋㅋㅋ

>정은성: 맨날 보는 우리는 뭐……

>정은성: 이제 지겹다는 거겠죠.

>박이든: ㅋㅋㅋㅋ

>최재원: ㅋㅋㅋㅋㅋ

>백이현: ㅋㅋㅋㅋ

>김시훈: ㅋㅋㅋㅋㅋㅋ

스태프들과 친해 보이는 블루문 멤버들의 모습에, 서준도 웃음을 터뜨렸다.

>최재원: 근데 누구랑 같이 온다고 하지 않았어?

<네. 맞아요. 지금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데리러 온다는 말에, 서준은 얼굴을 가릴 모자도 쓰고 검정색 마스크도 끼고, 블루문 응원봉(2개)와 블루문 멤버들에게 줄 꽃다발을 조심스럽게 넣은 종이가방을 들고, 숙소 앞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박이든: 누군데?

>박이든: 우리도 아는 사람이야?

막 답장을 보내려던 서준의 앞에, 검정색 차가 한 대 섰다.

날카로운 생김새의 차량은 그 차의 주인이 어떤 성격인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선팅된 창문이 내려갔다.

“안에서 기다리지, 밖에서 뭐 해?”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따가운 햇볕에 더울까 싶어 얼른 차 문을 열어주는 남자.

“잘 지냈어요, 제이슨?”

“그래.”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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