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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36화 (73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36화

탕!

검은색 검과 초록색 봉이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이후 편집으로 삽입할 커다란 효과음을 넣을 예정이었지만, 지금은 두 개의 물건이 부딪히는 작은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타앙!

하지만 그런 작은 소리임에도, 넓은 촬영장을 채우는 박력이 있었다.

배우 서준 리와 스턴트맨 재연 킴.

한때 함께 ‘진 나트라’를 연기했던 두 사람이 지금은 적으로 만나 거칠게 싸우고 있었다.

와우…….

슈퍼히어로 영화를 찍으면서 웬만한 액션 연기에는 익숙해져 있는 스태프들도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감탄을 흘리는 상황이었다.

“……연기지만 엄청나네요.”

“합이 잘 맞아서 더 그렇게 보이는 거다.”

“확실히 같은 액션이라도 다른 사람들이 한다면 박력이나 스피드는 분명 떨어질 것 같긴 해요. 오! 방금 보셨어요?!”

아는 사람이 더 잘 보이는 법.

필립 윤과 무술감독은 보다 분석적으로 배우와 스턴트맨의 액션 장면을 바라보았다. 물론, 사이사이 감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CG 작업을 할 때를 위해, 센서들이 붙어 있는 쫙 달라붙은 옷을 입은 김재연이 빠르게 움직이며 오른손으로 잡고 있던 초록색 봉(영화 속에서는 촉수로 변할)을 휘둘렀다.

휙-!

서준이 초록색 봉을 피해 몸을 숙이자, 어깨에 매달려 있던 검은 망토도 구겨짐 없이 멋지게 흔들리며 곱게 아래로 내려앉았다.

“……망토라는 게 저렇게 움직이는 게 아닐 텐데…….”

의상팀 스태프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깨의 견장에만 매달려 있는 길다랗고 넓은 망토는 분명히 불편하기 그지없을 텐데, 서준 리는 과격한 액션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망토까지 한몸인 마냥 움직이고 있었다.

감탄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배우 서준 리와 스턴트맨 재연 킴은 감정 연기도 잊지 않았다.

기생 생물 ‘아로도’에게 완전히 잠식당한 빌런 역의 김재연은, 생명체가 공격받으면 당연히 반격하는 생존 본능과 ‘제프 맥케이’의 의식이 아직 남아 있다는 듯 분노를 섞어 표현했다.

그리고 서준 리는 눈을 빛내며 ‘아로도’가 분열하기 전에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나이트 진’을 연기했다. 그러면서 할 수 있다면 잡아먹힌 ‘제프 맥케이’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도 함께 드러냈다.

타앙!!

그런 ‘나이트 진’의 머뭇거림에 ‘아로도’의 공격이 제대로 먹혔다. 타이밍에 맞춰 서준에게 달려 있던 와이어가 살짝 뒤로 당겨졌다.

마치 공격에 당한 듯, 뒤로 튕겨져나간 서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조나단 감독이 아쉬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면 롱테이크로 찍어도 멋있을 것 같은데…… 아쉽네.”

끊김없이 길게 촬영하는 롱테이크.

현장감을 더욱 살려주는 방법이라 느와르 같은 영화 속에서 전투 장면을 멋지게 묘사할 때, 사용되는 촬영 기법이었다.

물론, [쉐도우앤나이트]에서는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죠. 촉수가 늘어나거나 그림자가 움직여 공격을 막아내는 장면을 표현하기에는 불가능하니까요.”

조나단 감독의 말에 매튜 조감독이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입맛을 쩝 다신 조나단 감독이 ‘컷! 오케이!’를 외쳤다.

그래도 짧게 짧게 컷을 외쳐야 하는 현재의 촬영에 좋은 점이 있다면,

“좀 더 빠르게 움직여도 될 것 같아요, 무술감독님.”

“그럼 구르는 동작을 넣어볼까?”

“그것보다는 위에서 내려찍는 장면을 한 번 더 넣는 건…….”

현장에서 즉석으로 새로운 액션 장면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안전에 제일 민감한 배우가 적극적으로 나서니 무술 감독도, 스턴트맨들도 신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배우가 하기 어렵다면, 스턴트맨(필립 윤)이 대신할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안전제일입니다……!”

배우 본인보다 배우를 더 아끼는,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슈퍼스타의 매니저가 있긴 했지만.

쉬는 시간을 틈타 옹기종기 모인 배우와 무술감독, 김재연과 필립 윤. 그리고 그 주변을 맴돌며 ‘안전제일!’을 외치고 있는 매니저 최태우.

그 모습을 보던 조나단 감독은 생각했다.

다호 안 매니저가 조용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면, 태우 최 매니저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타입인 것 같다고.

“네. 조심해서 촬영할게요. 태우 형.”

어느 스타일이든, 대답은 잘하는 슈퍼스타였다.

“그럼 공중 돌기를 할까요?”

“/서준아!?/”

대답만 잘하는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휴식 시간 겸 회의 시간이 끝나고,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레디, 액션!”

촤악! 촤아악!!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강렬한 소리가 들렸다.

김재연이 두 개의 밧줄을 양손으로 잡고 바닥을 내리치고 있었다. 그에 두 개의 밧줄이 큰소리를 내며 물결처럼 일렁였다.

‘아로도’의 촉수는 화살이나 창처럼 찔러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채찍처럼 움직이며 공격하기도 했다.

물론 안전을 위해 밧줄의 끝은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때문에 지금까지 그랬든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피하는 척 연기하는 서준이 다칠 일은 없었다.

그런 서준과 김재연의 촬영을 지켜보는 배우가 있었다. 과거였다면 마지막 촬영 날에만 출근했을 배우 커크 로렌스였다.

‘으음.’

오늘도 서준의 촬영을 보러온 커크 로렌스는,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었겠는데…….’ 하고 생각하며 언제나처럼 후회를 곱씹고 있었다.

지금까지 스턴트는 스턴트맨이 제일 잘하니까, 하고 전부 맡겼었다. 일이니까 전문가에게 맡기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나.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이런 게 바로 연기 욕심이라고 하던가.

연기 욕심이라는 게 특별한 사람들, 그러니까 이런저런 일화로 유명한 데이비스 가렛이나 에반 블록, 서준 리 같은 배우들에게만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자신에게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게 십여 년이나 흐른 뒤에 생기게 되다니.

사람의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예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기회도 그렇고…….’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자신에게 연기 욕심이라는 게 있었으면 좀 더 빨리 깨닫게 할 것이지, 서준과의 촬영이 마지막 하나만 남겨둔 상황에서 깨닫게 해주는 건 뭔가.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아예 모르게 하든가…….’

하지만 그러기엔,

“맥케이 씨!”

커크 로렌스가 고개를 들었다.

‘아로도’에게 삼켜진 ‘제프 맥케이’를 구하려고 애쓰는 ‘나이트 진’의 모습이 보였다.

연기지만, 아니, 연기라서 그런가.

촬영장 위에 있는 서준 리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마음이 자제할 수 없이 들끓었다.

삼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감정이 고조되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원망도 생기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커크 로렌스는 고개를 내려 들고 있던 대본을 바라보았다. 적당히 분석했던 이전과 달리, 빽빽한 글씨로 가득한 대본은 자신이 봐도 생경했다.

‘한 장면.’

너무 늦은 것 같지만, 아직 한 장면이 남아 있었다.

저렇게 반짝이는 준과 함께 촬영할 장면이.

‘한 장면만이라도 최선을 다해보자.’

커크 로렌스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 * *

“어서 오렴, 준.”

“안녕하세요!”

따뜻한 분위기의 가정집.

서준은 자신을 반겨주는 스미스 가족을 보고 웃으며 그 안으로 발을 디뎠다.

운좋게도 한창 시즌 중인 잭 스미스의 휴일과 촬영 중인 서준의 휴일이 맞아, 스미스 가족의 집에서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최태우는 편하게 놀라며 먼저 자리를 비켜주었다.

“음식은 어때? 괜찮니?”

“네. 맛있어요.”

숙소에서 한국에서 보내준 반찬과 함께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도 괜찮았지만, 이렇게 스미스 가족과 함께 먹는 가정식도 특유의 분위기와 맛이 있어서 좋았다. 태우 형에게 줄 음식도 포장해 두었다.

서준과 스미스 가족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잭 너 성적 좋더라.”

“으흐흐흐. 내가 좀 하지.”

조무래기 악당같이 웃는 잭에, 스미스 부부와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과장하듯 어깨를 으쓱인 잭이 말을 이었다.

“타자로서 성적이 좋으니까, 이제 투수하라는 말은 안 하시더라.”

“아, 그래서 더 열심히 한 거야?”

“그런 것도 있고. 우승 반지는 껴봐야지!”

이번 시즌에는 꼭 끼고 말 거라며 열정을 불태우는 잭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야구에 대한 이야기로 테이블이 떠들썩해졌다.

다음 화제는 서준의 촬영이었다.

“촬영은 어때, 잘돼 가니?”

“네. 잘돼 가고 있어요.”

마리아 박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요즘은 액션 장면 촬영하고 있어요.”

“준은 스턴트 장면도 직접 하지?”

“위험한 장면 빼고는요. 최대한 제가 하려고 하고 있어요.”

카메오로 출연했던 야구 경기장면만 빼면 아무것도 모르는 스미스 가족이 들뜬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네.”

“다른 히어로도 나올까?”

“비밀이겠지만, 궁금해 죽겠네!”

서준은 말없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에 잭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묘하게 의미심장한 표정인데……?”

뜨끔.

서준이 데굴 눈을 굴렸다. 소꿉친구의 눈에는 보이나 보다.

그래도 배우 지인으로서, 그 이상은 물어보지 않는 스미스 가족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 타임이 되었다.

서준이 사 온 맛있는 케이크와 직접 만든 쿠키들이 접시에 놓였다. 각자 마시고 싶은 음료를 골라 푹신한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 촬영 끝나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거니?”

에릭 스미스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바로 가는 건 아니고 며칠 쉬었다 가려고요. 어차피 학교 강의도 인터넷으로 듣고 있고, 시험도 인터넷으로 쳐서 곧바로 들어갈 필요는 없거든요.”

서준이 찡긋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요.”

“은혜랑 민준이 들으면 좋아하겠네.”

마리아 박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쉬는 날은 뭐 하려고?”

“마침 블루문이 미국에서 투어 중이라서 그거 구경하러 가려고.”

“블루문이라면 너희 회사 아이돌 말하는 거지?”

잭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LA에서 콘서트를 한다고 해서 말이야. 아, 티켓 필요하면 구해드릴게요. 초대석이 있으니까 문제없을 거예요.”

“난 경기 때문에 못 가.”

“알아. 너 말고 아저씨, 아주머니께 여쭤본 거야.”

하하 웃으며 말하는 서준에, 잭이 허어? 하고 반응했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 후, 서준과 잭은 어린아이들처럼 투닥거렸다. 뭐, 투닥거린다기엔 둘 다 나이로보다 덩치로 보나 많이 컸지만.

익숙한 모습에 스미스 부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먼지 난다.”

“조용히 앉아, 잭 스미스. 이서준.”

“넵!”

“옙!”

풀네임으로 부르는 스미스 부부에, 메이저리거도 슈퍼스타도 소파에 바로 앉아 얌전히 음료와 디저트를 먹었다. 물론 테이블 밑, 서로의 발을 툭툭 치며 싸우는 것은 잊지 않았다.

언제나같은 풍경에, 결국 스미스 부부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시간이 흘러, 5월 말.

조나단 감독은 조용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이제 컷 사인이 나와야 했지만,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조나단 윌 감독의 심정을 이해하며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오늘로서 조나단 윌 감독의 첫 상업 영화이자, 영화 스태프로서 난생처음 참여했고,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존경하는 삼촌인 라이언 윌 감독에게서 전해 받은 [쉐도우맨 시리즈]의 후속편 [쉐도우&나이트]의 촬영이 모두 끝난 것이었다.

‘아니.’

여러모로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있던 조나단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히어로 슈트를 입고 있는 서준과 눈이 마주친 것이었다. 조나단의 마음을 짐작한 듯, 마주친 서준의 두 눈이 둥글게 휘었다.

‘끝이 아니지.’

새로운 히어로, 나이트 진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컷! 오케이!!”

그래서 오케이를 외치는 조나단 감독의 목소리에는 힘이 가득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쉐도우&나이트]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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