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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35화 (73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35화

[쉐도우앤나이트]의 촬영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큰 사고도 없었고 대본을 수정해야 하는 일도 없었던 데다가, 찍는 장면마다 조나단 감독의 마음에 쏙 들었다.

“어때, 준?”

물론, 주연배우이자 ‘숨겨진 보스’ 같은 서준의 마음에도 쏙 들어야 했지만.

“좋아요.”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조나단 감독이 들뜬 표정을 지었다.

마린사 사장이 와서 좋다고 말해도 저것보다는 덜 기뻐할 것 같은 얼굴이라고, 커크 로렌스는 생각했다.

오늘 촬영이 모두 끝난 커크 로렌스였지만 어쩐지 촬영장에서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럼 다음은 스턴트 촬영하겠습니다!”

매튜 조감독이 활기 넘치게 외쳤다.

서준 리의 뛰어난 액션 연기 실력 때문에 없을 것 같았던 스턴트 촬영이 있을 예정이었다.

‘……이것만 보고 가자.’

지금까지는 서준의 연기를 보느라, 어쩐지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발을 뗄 수가 없었지만, 스턴트맨의 (서준 리보다) 부족한 연기를 보면 이런 알 수 없는 감정도 순식간에 사라질 터였다.

앳된 얼굴로 ‘나이트 진’의 히어로슈트를 입고 있는 스턴트맨, 필립 윤을 보며 커크 로렌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으아아아! 긴장돼요!”

“센터에서 하던 대로만 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어, 제가 어떻게 했었죠?”

내가 어떻게 했지!?

진심으로 되묻는 필립 윤의 얼굴에, 무술 감독이 이마를 짚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서준과 조나단 감독, 그리고 오늘 촬영은 없지만 필립 윤을 위해 온 김재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편하게 해, 필립. 네가 나이트 진이 된 윌리엄이라고 생각하고, 연습한 대로만 하면 될 거야.”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필립 윤의 머리 위, [(선)봄느티나무의 흉내 내기]의 동화율이 그새 1% 늘어 91%가 되었으니, 필립 윤만 집중한다면 멋진 장면이 나올 터였다.

“제가 나이트 진이 된 윌리엄이라고요……?”

필립 윤의 머릿속으로 그동안 서준이 보여주었던 ‘윌리엄 리’와 ‘나이트 진’의 연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냥 캐릭터 그 자체인 것 같았던 연기.

이 세상 어딘가에서 살고 있던 ‘윌리엄 리’를 데려와 촬영장에 세운 것 같은 모습들.

“……절대 못 할 것 같은데요?”

서준을 바라보며 흔들리는 필립 윤의 눈동자에, 조나단 감독과 김재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도 그런 연기까지는 바라지는 않으니까. 연습한 대로만 해.”

“내가 진 나트라 스턴트를 할 때도 그런 연기까지는 안 했어.”

후우-

선배, 김재연의 말에 마음이 놓인 필립 윤이었다.

“그럼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매튜 조감독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촬영장으로 향했다. ‘나이트 진’의 복장을 입고 마스크로 하관을 가린 필립 윤의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 보면 비슷한 것 같은데…… 준보다는 부족해 보이지?”

“그래도 뭐, 스턴트 장면은 금방 지나가니까 괜찮을 거야.”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커크 로렌스도 촬영장을 바라보았다.

와이어를 점검하고 몸을 푸는 필립 윤.

곧 ‘레디’라고 외치는 조나단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필립 윤이 검은색 장갑을 낀 두 손을 꽉 쥐었다 폈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잖아!’

트레이닝 센터에서도, 촬영장에서도 서준이 형의 연기를 열심히 보고 흉내 내고 따라 했다.

완벽하게 흉내 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짧게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라도 마치 ‘서준 리’가 직접 연기했다고 믿을 정도로 닮은 모습을,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고개를 드니, 서준이 형이 보였다.

‘잘할 거야.’

웃으며 입 모양으로 말하는 서준에, 필립 윤은 저도 모르게 헤벌레 웃고 말았다.

“필립! 표정!”

“아, 넵!”

조나단 감독의 외침에 바로 집중했다.

‘연습한 대로만, 잘하자.’

나는 윌리엄 리.

나이트 진이 된 윌리엄 리.

필립 윤의 머리 위, 서준만이 볼 수 있는 풍성한 봄느티나무가 흔들렸다. 그 흔들림과 함께 나뭇잎들이 떨어졌고, 그 안에는 가짜이긴 하지만 선명한 선기가 담겨 있었다.

‘윌리엄 리’의 아우라를 닮은 선기였다.

“액션!”

그 외침과 함께, 필립 윤에게 설치되어 있던 와이어가 빠르게 당겨졌다.

* * *

“……컷! 오케이!”

조나단 감독의 외침과 함께, 여기저기서 와……. 하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준이랑 조금 비슷하지 않았어?”

“준보다는 윌리엄이랑 비슷했죠.”

“그게 그거지, 뭐.”

“아니죠! 준이랑 윌리엄은 분위기부터가 차이가 난다고요!”

[쉐도우맨 시리즈]의 빅팬이자, 새싹인 어떤 스태프의 열렬한 주장은 차치하고.

별생각 없이 보고 있던 커크 로렌스마저 놀랄 정도로 필립 윤의 액션 씬은 대단했다. 무엇보다도 조금 부족하지만 분명 ‘윌리엄 리’ 특유의 아우라를 보여주었던 것이.

‘스턴트맨이라고 들었는데…….’

배우 지망이었던 걸까.

와이어에 매달려 천천히 내려오는 필립 윤을 바라보며 커크 로렌스는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후.

필립 윤은 커크 로렌스를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다시 찍어도 될까요, 감독님?”

모두를 놀라게 했던 멋진 스턴트 연기를 보여주었던 필립 윤이 조나단 감독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왜?’

그리고 오케이 사인을 내렸던 조나단 감독도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그에 서준과 김재연, 그리고 무술 감독과 촬영감독까지 모니터 앞에 모여, 조금 전 촬영했던 장면을 보며 부족한 점과 잘했던 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가 진행되는 기나긴 시간 속에서 1분도 안 되는, 짧게 지나가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었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그런 의문이 나올 정도로, 일평생 ‘촬영은 일’이었던 커크 로렌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특히, 서준 리.

서준 리는 지상에서나마 직접 시범을 보여주며, 필립 윤이 보다 쉽게 연기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런 건 계약서에 쓰여 있지 않을 텐데도 말이다.

커크 로렌스는 어쩐지 그 모습이 반짝인다고 생각했다.

서준 리를 중심으로, 감독도, 스턴트맨도, 스태프들도, 촬영장도.

그날.

한 장면만 보고 가겠다고 생각했던 커크 로렌스는, 촬영이 모두 끝날 때까지 촬영장에 남아 있었다.

* * *

“왠지 남은 촬영도 다 잘될 것 같은 기분이에요!”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마치 상사에게 보고하듯, 라이언 윌 감독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조나단 윌이었다.

“큰 사고도 없고, 스턴트맨들의 액션도 좋았어요. 다들 평소보다 날아다닌다고 해야 할까, 그런 분위기였어요.”

그건 아마도 [(선)오크 제사장의 기도] 덕분일 터였다.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서준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서준과 함께 초대받은 매니저 최태우는 조나단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태우가 봐도 촬영은 그 어떤 작품의 촬영보다 술술 풀리고 있었다.

“이럴 때 방심하면 큰 사고가 터지는 거다.”

라이언 감독의 조언에 조나단 감독과 서준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태우도 슬금슬금 풀어지려던 마음을 다시금 꽉 조여 맸다.

“조심. 또 조심할게요.”

조나단 감독의 말에 라이언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조언도 얻으며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는 도중, 조나단 감독이 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커크가 좀 이상하더라고요.”

“커크 로렌스 배우가?”

라이언 감독이 되물었다.

커크 로렌스.

연기를 일로만 생각하는 배우.

만난 적은 없지만, 조나단에게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조언을 구하는 조나단 감독에게, 라이언 감독은 딱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언제나 연기나 작품에 열정적인 배우만 캐스팅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열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식게 마련이기도 하고.’

인성이나 다른 쪽으로 문제가 있는 배우들이 아니라면, 적당히 타협하는 편이 좋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연기나 작품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배우들을 주로 만날 수 있었던 조나단이 특별한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라이언 감독이 눈앞에 앉아 있는 배우를 보았다.

‘준 때문이려나.’

옆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식었던 열정에 불이 붙는달까.

처음 연기한 날로부터 벌써 십여 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연기와 작품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배우였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그걸 보고 자란 조나단도 비슷한 분위기였고.

라이언 감독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네. 촬영이 끝나도 촬영장에 계속 남아 있더라고요. 가끔 촬영이 없는 날에도 오고요.”

커크 로렌스의 계약서에 적어놓았던 ‘출퇴근 시간 보장’이라는 문장이 무색할 정도였다.

“음. 혹시 준이 촬영하는 날이냐?”

“……어? 그러네?”

라이언 감독의 말에 기억을 더듬던 조나단이 눈을 끔벅였다. 서준이 촬영하는 날마다 커크 로렌스가 오고는 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었다.

서준도 눈을 깜빡였다.

“매일 계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촬영하러 갈 때마다 커크 로렌스 배우가 있길래, 촬영장에 매일같이 출근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사실은 그동안 낯을 가린 게 아닐까, 촬영을 참 좋아하는 배우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아니야. 준 네가 오는 날만 와.”

“……왜죠?”

“그러게?”

서준과 조나단 감독이 고개를 갸웃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최태우도 궁금한 눈치였다.

그에 라이언 감독에 작게 웃었다.

어쩐지.

배우 서준 리의 열정에 물들어 버린 배우가 또 하나 생긴 것 같았다.

* * *

검녹색의 슬라임이 빠르게 남자를 뒤덮어갔다.

목에서부터 턱과 입술을 장악하고 코까지.

그리고 뒷목부터 머리카락과 이마까지.

그렇게 얼굴 전체를 뒤덮고, 마지막으로 눈만이 남아 있었다.

나이트 진과 남자, 제프 맥케이의 한쪽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분노가 가득한 눈동자였다.

나이트 진은 안타까운 듯,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저 분노가 기생생물 ‘아로도’의 에너지원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리라.

“제프 맥케이! 분노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그러나 나이트 진의 말은 제프 맥케이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끝내, 남자 제프 맥케이는 기생생물 ‘아로도’에게 머리끝까지 잡아먹히고 만 것이었다.

“컷! 오케이!”

‘기생생물 아로도’에게 잡아먹히는 연기까지 끝낸 커크 로렌스가 촬영장 아래로 내려왔다. 함께 촬영했던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그래. 준 너도 고생했어.”

모니터에 나오는 제 얼굴을 보다가 한 박자 늦게 대답한 커크 로렌스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이제 말도 편하게 하게 되었다.

서준과 함께 촬영장을 나와, 각자의 대기실로 이동한 커크 로렌스는 조금 전 촬영장에서 그리고 모니터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되새겨 보았다.

정말로 빌런이 된 것 같았던 시간.

CG로 처리될 ‘아로도’지만, 정말로 슬라임에게 먹히는 것 같았던 압박감.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던 ‘나이트 진’의 간절한 표정과 눈빛.

그리고 그 눈빛을 보며 더욱 분노하던 자신, 아니, ‘제프 맥케이’.

“이게…… 연기였구나…….”

물론 지금까지 커크 로렌스, 자신이 해온 것도 분명 연기였겠지만, 느껴지는 것이 달랐다. 마치 처음으로 진정한 연기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연기하고 싶다.

또 준과 합을 맞춰, 온 힘을 다해 연기해 보고 싶다.

하지만 그 마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커크 로렌스는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테이블에 이마를 박았다.

얼굴까지 ‘아로도’에게 잡아먹힌 빌런, ‘제프 맥케이’.

단 한 장면을 빼고, 이제부터 커크 로렌스 대신 스턴트맨, 김재연이 모든 연기를 대신할 예정이었다.

“조금이라도 스턴트 훈련을 했다면 한 장면이라도 더 준과 함께 연기할 수 있었는데……!”

자신의 손으로 엄청난 기회를 내팽개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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