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34화
“음. 역시 차이는 모르겠네.”
짧게 검을 휘둘러보고는 어깨를 으쓱인 조나단 감독이 서준을 데리고 세트장으로 향했다.
오늘 촬영할 장면은, 각성한 장소에서 빌런이 있는 곳까지 나이트 진이 달려가는 장면이었다.
“당연히 방해도 있을 예정이야.”
“그렇겠죠.”
‘나이트 진’이 빌런이 있는 야외 결혼식장까지 달려가는 동안, 빌런이 착하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 테니까 말이다.
사방에서 검녹색의 촉수들이 찔러올 예정이고 일부러 촉수로 꿰뚫은 전투기나 나무, 벤치 같은 것들을 ‘나이트 진’에게 날릴 예정이기도 했다.
‘나이트 진’은 그런 공격들을 피하면서 이동해야 했다.
“그림자들이 도와주는 장면도 넣어야 하고. 아, 여기 방패 디자인.”
조나단 감독이 디자인이 그려진 종이를 서준에게 내밀었다.
“이건 제이 버전이고 이건 파트너 버전이야.”
서준이 종이에 그려진 컨셉아트들을 살펴보았다.
제이 버전의 방패는 반듯한 모양에 대칭되는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파트너 버전의 방패는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삐죽빼죽한 모양이었다. 딱 봐도 어떤 방패를 어떤 그림자가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두 그림자의 성격을 잘 표현한 것 같았다.
“잘 어울리네요.”
“내가 좀 까다롭게 굴었거든.”
조나단 감독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저한테 엄격하다고 한 거예요?”
“준 너만큼은 아니었어. 두 번 만에 오케이했다고.”
그림자 방패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고, 다시 배우와 감독은 세트장을 돌아보았다.
더 볼륨의 스크린으로 공원이 나오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내리쬐는 햇살. 정말로 공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커다란 배경화면이었다. 물론 편집 후에는 모두 불타오를 예정이었지만.
그 이외의 장소는 모두 초록색 크로마키로 뒤덮여 있었다. 바닥도 빠짐없이 전부.
“여긴 나중에 CG로 공중 장면을 넣을 거야.”
“네.”
조나단 감독이 바닥을 가리키며 말하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공중 씬을 찍으려고 했다가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긴 했다.
‘뭐, 할리우드에는 진짜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비행기 날개에 오르거나 하는 배우들도 있지만.’
서준도 못할 건 없었다.
오히려 능력이 있으니, 그 배우들보다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도 빠짐없이 세트장의 안전을 체크하고 있는 태우 형은 물론이고, 미국 지인들과 한국에 있을 다호 형과 1팀, 그리고 친구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접게 된다.
걱정이 가득한 표정와 눈빛은 무한환생자도 이겨내기 어려운 공격이었다.
“저긴 트레이닝 센터에서 연습한 거. 할 수 있지?”
조나단 감독이 세트장 한쪽에 설치된, 마치 한국 예능에서 볼 법한, 점점 높아지는 징검다리와 툭 튀어나온 철봉 같은 것을 가리켰다. 그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장치도 되어 있잖아요.”
그 아래에 푹신한 안전장치도 준비되어 있어 문제는 없었다.
“하긴, 삼촌 집에서 본 운동신경이면 뭐…….”
“하하하.”
“그래도 힘들 것 같으면 말해. 필립도 와 있으니까.”
“아, 필립이 왔어요?”
“넵! 저 여기 있습니다!”
불러주길 기다렸다는 듯, 멀리서 기웃기웃거리던 ‘나이트 진’의 스턴트맨 필립 윤이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필립 윤의 머리 위를 보았다. 멋지게 자란 봄느티나무가 보였다.
[목표: 윌리엄 리 / 동화율: 90%]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숫자였다.
* * *
“레디, 액션!”
그림자로 만든 검을 든 나이트 진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림자……!”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이트 진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상체의 대부분이 검녹색의 기생 생물 ‘아로도’에게 삼켜진 빌런도 고개를 들어 나이트 진을 바라보았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끓어오르는 증오와 분노로 가득한 눈동자와 차분하게 가라앉아 신념으로 빛나는 눈동자.
그에 어째서인지 검녹색의 슬라임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남아 있는 남자의 몸을 빠르게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림자!”
또 한 번, 발작과도 같은 빌런의 울부짖음과 함께, 사방에서 나이트 진을 향해 검녹색의 촉수들이 화살처럼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쾅-! 콰아앙!
화살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정도의 빠른 속도와 엄청난 크기, 굉장한 파괴력이었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던 공원 바닥이 촉수들의 공격에 부서지고, 그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나이트 진은 그 시멘트 조각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검으로 튕겨냈다.
‘검’이라는 건, 나이트 진, 아니, 윌리엄이 기억하기에는 어린 시절 장난감으로 놀았던 것 빼면, 일평생 잡아보지도 않은 것인데, 신기할 정도로 그 움직임이 막힘없이 부드러웠다.
“계승 덕분인가?”
자연스럽게 검을 움직이는 몸에 나이트 진은 의아한 듯 눈을 끔뻑였다.
“……아니면, 날아오는 건 쳐내야 하는 야구 타자로서의 본능?”
그렇다기엔 배트를 잡는 방법과 검을 잡는 방법부터가 달랐지만.
잠시 나이트 진이 한눈을 파는 사이, 제이와 파트너가 빠르게 그림자를 부풀려 방패를 만들어내 나이트 진에게로 오는 촉수들과 파편들을 막아냈다.
반듯한 무늬가 새겨진 제이의 방패와 삐죽빼죽 불규칙한 파트너의 방패.
서로 다른 모습이었지만, 나이트 진을 지키려는 마음은 같았다.
“!!”
“알았어. 집중할게.”
두 그림자의 잔소리(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에, 일단 고민은 뒤로 미뤄둔 나이트 진은 다시 앞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추락한 전투기들과 나무들이 불타오르고 있어서, 더 이상 지상으로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제이!”
나이트 진의 의지에 맞춰, 제이가 빠르게 그림자로 계단을 만들어냈다.
위로 솟구치는 그림자들을 밟으며 달려나가는 나이트 진. 빌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림자 계단을 향해 날카로운 검녹색 촉수들을 찔러댔다.
“아!”
촉수들의 공격에 밟을 곳이 없어진 나이트 진이 당황하는데, 눈앞에 파트너가 만들어낸 삐죽한 가시가 빠르게 나타났다. 마치 철봉 같은 가시. 나이트 진은 곧바로 왼손을 뻗어 가시를 잡고 한 바퀴 빙글- 돌아 가시 위에 착지했다.
“고마워, 파트너.”
별말씀을.
확실히 임기응변에는 쉐도우맨과 함께했던 파트너가 강했다.
그림자 가시 위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은 나이트 진이 빌런이 서 있는 성당 앞을 바라보았다. 공원 여기저기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빌런을 막지 못하면 저 불길이 지구 전체를 뒤덮을 터였다.
검을 든 오른손을 꽈악 쥔 나이트 진이 가시 위를 힘차게 박차고 튀어 나갔다. 검은색 망토가 그 뒤를 따르는 그림자처럼 펄럭였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 * *
“컷! 오케이!”
CG 작업 이후, 뾰족한 그림자 가시로 만들어질 초록색 크로마키 철봉에서 한쪽 무릎을 굽히고 쭈그려 앉아 있던 서준이 컷 사인에 검은색 망토를 펄럭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오……!
물론 그렇게 높지도 않았고 너비도 발을 딛고 설 정도로 넉넉했지만, 기다란 철봉에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복장도 히어로슈트라서 더욱 그랬다.
“근데 진짜 왼손으로만 잡고 도네.”
두 손으로 잡고 매달려 있기도 힘들 텐데, 잘도 오른손으로는 검을 들고 왼손으로는 철봉을 잡고 한 바퀴 도는 배우였다.
“그래서 더 멋있는 것 같아요!”
“그건 맞지만…… 응?”
고개를 끄덕이던 무술감독이 익숙한 목소리에 옆을 바라보았다. 스턴트맨 필립 윤이 눈을 반짝이며 철봉에서 가벼운 몸짓으로 내려오는 서준 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배우가 액션 씬까지 전부 해버리면 스턴트맨은 출연할 장면이 없어지니까 말이다.
“괜찮아요! 서준이 형이 다 해도 괜찮아요! 물론 다치면 안 되겠지만! 형이 하고 싶다면 하는 거죠!”
“……그래.”
진심으로 말하는 새싹 필립 윤에, 무술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그렇게 두 그림자의 도움을 받으며 나이트 진은 빌런이 있을 야외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쉬운 길은 아니었다.
기생 생물 ‘아로도’는 점점 강해져 가는지 공격하는 촉수의 양도, 무게도 늘었고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림자 계단을 이용하며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촉수의 공격에 마치 서커스를 하듯 몸을 이리저리 굴려야 했다.
게다가,
콰아아앙!!
하늘에서 떨어지는 전투기들을 피하는데도 신경이 쏠려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제이, 조종사는?”
빠르게 뻗어진 그림자 제이가 불타오르는 전투기 안을 살폈다. 추락 직전 탈출했는지 다행히도 사람은 없었다. 그 생각이 전해지자 파트너가 만들어낸 그림자 가시 위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있던 나이트 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네.”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는 시간 안에 빌런을 막지 못할 것 같았다.
지상에서 공격하던 퍼스트 요원들에게 향하는 빌런의 공격을 막아주고, 추락하는 전투기 아래에 있던 요원들을 구해주느라 온전히 빌런에게만 집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으음……”
하관을 가린 마스크 위.
신념이 가득하던 나이트 진의 검은 눈동자가 처음으로 갈 곳을 잃은 채 데굴데굴 굴렀다. 마치 야단을 맞을 것을 알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하지만 이내 두 눈을 꾹 감았다가 뜬 나이트 진은 자신의 오른쪽 귀에 있던, 꺼놓은 통신기를 눌렀다.
-……
“…….”
잠시 침묵이 오고 갔다.
콰아앙!!
하지만 그 무거운 침묵을 알 리 없는 빌런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오른손은 통신기의 버튼을 누르느라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는 나이트 진 대신, 제이와 파트너가 빌런의 공격을 막고, 촤아악-! 촉수를 베어냈다.
그사이 눈치를 보던 나이트 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리저리 뛰고 구르며 촉수들을 피하느라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죄송해요. 국장님!”
-아뇨. 괜찮습니다.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더 좋은 쪽으로 해결된 것 같네요.
예상했던 게 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나이트 진은 일단 본론부터 말하기로 했다.
“죄송하지만……!”
콰아앙!!
통신 도중에도 또 하나의 전투기가 뒤집힌 채로 아래로 떨어졌다. 나이트 진의 쪽이었다.
커다란 망치처럼, 바닥으로 내려쳐 진 커다란 전투기에 나이트 진은 그대로 깔려 버렸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촉수가 엔진을 관통했는지, 전투기는 다시 한번 콰아앙! 큰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윌리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테일러 국장이 소리쳤다.
-괜찮아요!
통신기로 나이트 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끊김도, 힘든 구석도 하나 없는 목소리는 그 말대로 괜찮아 보였다.
들썩들썩-
화염에 휩싸인 전투기가 흔들렸다. 그리고 곧 전투기 아래에서 마치 검은색 알 같은 것이 천천히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저도, 조종사분도 무사합니다.”
그림자로 된 방패가 사라지면서, 기절한 퍼스트 조종사를 들쳐 맨 나이트 진이 모습이 나타났다. 두 사람 다 다치기는커녕 불에 그슬린 자국도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테일러 국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닥에 기절한 퍼스트 조종사를 조심히 내려놓은 나이트 진이 오른손으로 통신기를 누르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전투기와 퍼스트 요원분들을 뒤로 물려주셨으면 합니다.”
예의바르고 정중하지만, 거절은 받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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