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33화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중급)이 발동합니다.]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중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중하급)이 발동합니다.]
그리고 약하게 발동된 능력을 다시 원래대로.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중급)이 발동합니다.]
점점 더 강렬하게.
마치 웅장한 곡의 클라이맥스 부분을 연주하는 것처럼, 서준에게서 흘러나오는 선기가 점점 더 강해지며 ‘나이트 진’의 각성에 임팩트를 새겨넣었다.
더욱이,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서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등급이 상승되었던 풀샷 컷보다, 서준의 의지대로 등급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지금이 더 퀄리티가 좋았다.
“컷! 오케이!”
조나단 감독의 목소리가 밝았다.
배우 서준 리는 장담한 대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며, 바스트샷을 찍으면서도 풀샷과 같은, 아니, 더 큰 임팩트를 주며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서 탄성과 박수가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그에 가볍게 인사한 서준도 즐겁게 웃었다.
‘이런 식으로도 쓸 수 있었네!’
지금까지는 촬영을 함께하는 배우들이나 스태프들, 그리고 작품을 볼 관객들에게 영향을 줄까 봐 ‘마기’가 사용되는 악의 능력들의 등급만 줄였었는데, 이렇게 선의 능력에도 이용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앞으로도 이 방법을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이 정도의 임팩트를 작품에 남기려면 주인공 역할에다가 어울리는 장면이 있어야겠지만.’
주인공도 아니고, 딱히 강렬한 장면도 아닌데 썼다가는 작품의 균형이 깨지니까 말이다.
자신의 존재감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전체적인 작품의 균형이 더 중요한 서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좋네.’
연기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에, 서준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 * *
“클로즈업 샷 촬영 준비하겠습니다!”
매튜 조감독의 외침에 카메라와 조명이 세트장 위로 이동했다. 오늘의 마지막 촬영인 클로즈업 샷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그사이 앞서 ‘나이트 진의 히어로슈트’를 입고 풀샷과 바스트샷을 촬영한 서준은 배우 대기 의자에 앉아, 코부터 목까지의 하관을 가린 검은 마스크를 내리고 생수로 목을 축였다.
서준에게 시원한 생수를 건네준 최태우는 그런 서준의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 모습에 앉아 있던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호 형이 촬영하라고 했어요?”
“응.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하시더라.”
각 잡힌 제복을 입고 망토까지 두른 ‘나이트 진’(지금은 서준이지만)이 의자에 앉아 편하게 쉬고 있는 모습이라니. 앞으로 생길 나이트 진의 팬들이라면 정말로 보고 싶은 모습일 터였다.
“그럼 멋지게 찍어주세요. 매니저님.”
“알겠습니다. 배우님.”
찡긋 웃으며 말하는 서준에, 최태우도 웃으며 답했다.
그러고는 매니저가 아니라 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촤라라라락! 셔터를 눌러댔다.
그렇게 잠깐의 준비 시간이 지나고, 클로즈업 샷 촬영이 시작되었다.
다시 마스크를 코까지 올린 서준은 촬영장 위로 향했다.
기다랗고 넓은 망토가 움직임에 방해가 될 법도 한데, ‘진 나트라의 제복’ 입고 연기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서준은 아주 자연스럽게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걸어갔다.
그에 망토를 펄럭이게 만들기 위해 대형, 소형 선풍기들을 준비해 왔던(오늘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스태프들이 이마를 긁적였다.
“아직 촬영 시작도 안 했는데……바람까지 도와주네.”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날씨까지 도와주는 클로즈업 샷 촬영이 시작되었다.
“레디, 액션!”
조나단 감독의 목소리에, 제임스 랜던 촬영감독과 다른 카메라맨들이 든 카메라 렌즈에 히어로슈트를 입은 ‘나이트 진’의 모습이 담겼다.
뚜벅- 뚜벅-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가는 두 발. 각 잡힌 제복 바지.
검을 잡은 듯한 오른손. 휘날리는 망토가 고정된 어깨의 견장.
길쭉한 목부터 코까지 이어진 마스크. 하관이 가려졌지만 그래서 더 조각 같은 외모.
“가자. 제이. 파트너.”
그리고 신념으로 빛나는 검은색 눈동자와 바람에 자잘하게 날리는 검은 머리카락까지.
몇 번이고 촬영한 장면들이라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다들 감탄한 표정으로 세트장 위 서준 리를 바라보았다.
오죽하면 촬영이 끝난 배우들도, 일이 끝난 스태프들과 스턴트맨들도 여전히 남아 서준 리가 연기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중에는 ‘일은 일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촬영 시간에 딱 맞게 출근하고 촬영이 끝나자마자 퇴근하는 커크 로렌스 배우도 있었다.
서준의 단독 촬영 전에 이미 퇴근을 했어야 하는 커크 로렌스였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남아 서준이 연기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다른 장면도 아니고 같은 장면이 몇 번이고 반복되고 있는 촬영을.
‘……왜지?’
자신으로서도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딱히 다른 배우의 연기를 관심 있게 볼 정도로 연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이렇게 촬영 장면을 볼 정도로 쉐도우맨이나 진 나트라의 팬도 아니었다.
커크 로렌스는 그런 자신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누군가 시야를 가리자, 몇 걸음 옆으로 옮겨 시야를 확보했다. 서준 리는 NG 없이 원테이크에 촬영을 끝내서 한 번 놓치면 끝이었다.
‘……음.’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생소해진 커크 로렌스는 민망한 듯 턱을 긁적였다.
‘쿠키 때문인가.’
그래.
촬영 전 나누어줬던 아몬드 쿠키 때문일지도 몰랐다.
‘쿠키를 받았으니, 촬영이 끝나는 건 봐야 예의겠지.’
언제부터 할리우드에 그런 예의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커크 로렌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서준 리를 바라보았다.
아니, 빌런보다 더 빌런 같은 진 나트라를.
평범하지만 밝은 윌리엄을.
그리고 히어로다운 나이트 진을.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를 모두 완벽하게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에, 커크 로렌스의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 * *
“으아! 끝났다!”
“오렌지주스 줄까?”
“네. 고마워요. 태우 형.”
인터넷으로 중간고사를 치고, 리포트까지 끝낸 서준이 만세를 부르듯 두 팔을 번쩍 들었다가 테이블에 널브러졌다. 흐느적흐느적거리는 게 마치 흐물흐물한 슬라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슈퍼스타의 모습에 최태우가 웃으며 시원한 오렌지주스 한 잔을 테이블 위에 놓아주었다. 이럴 때 보면 평범한 대학생 같았다.
“기말고사는 괜찮겠어?”
“그땐 촬영 끝났을 테니까 괜찮아요.”
[쉐도우앤나이트] 촬영 스케줄표에 따르면, 5월 말에 모든 촬영이 끝날 예정이었다. 지금 촬영 속도로 보면 그것보다 일찍 끝나면 일찍 끝났지, 늦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5월.
오렌지주스를 마시던 서준이 시무룩해졌다.
“이제 촬영이 한 달도 안 남았다니. 그동안 참 재미있었는데. 아쉬워요.”
“그래도 촬영이 안 끝나면 영화가 안 나오잖아.”
“그건 그래요.”
서준에 대해 아주 잘 파악해 버린 최태우의 말에 시무룩해져 있던 서준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촬영도 좋았지만, 감독의 손에 편집되고 CG 작업까지 끝낸 영화를 보는 것도, 그 영화를 보고 감탄하고 감동하고 경악하는 관객들을 보는 것도 좋았다.
“이번에도 반응 엄청 나겠죠?”
“여러 의미에서 엄청 나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매니저에, 혼돈과 파괴와 절망이 가득한 시놉시스에 한몫한 배우가 아하하 웃었다.
“아, 소품팀에서 물건 왔어. 내일 아침까지 평가해 달래.”
“그래요?”
그에 눈을 빛낸 서준이 오렌지주스를 왈칵왈칵 마셔 버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에 체하겠다……! 하고 바라보던 최태우가 이내 웃고는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상자.
서준이 최태우가 미리 뜯어놓은 상자를 열었다. 거기에는 종이 완충재로 포장된 검은색 검이 놓여져 있었다.
나이트 진의 주 무기가 될 검이었다.
영화가 나온 이후, 장난감이나 피규어로 판매할 예정이라 디자인도 좋았다.
‘문제는…….’
최태우가 검 손잡이로 손을 뻗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상자에서 검을 꺼낸 서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검을 살펴보았다.
앞뒤로 뒤집어가면서 표면을 살피고, 눈앞까지 올려 균형이 맞는지 체크했다. 그러고는 익숙하게 아무것도 없는 장소로 가 위아래, 좌우로 검을 휘둘러보기까지 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마치 수십 년 경력의 대장장이처럼 능숙하고 꼼꼼했다.
“……어때, 서준아?”
어쩐지 자신이 더 긴장되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든 최태우였다.
“음.”
서준의 몸에 새겨진 [(선)오래된 에고소드의 가르침]이 말했다. 서준도 같은 의견이었다.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무게 중심이 조금 안 맞아요.”
일곱 번째 퇴짜였다.
* * *
“이번에도 퇴짜라니……!”
일곱 번째 퇴짜에, 소품팀 팀장이 작업대에 머리를 박았다. 쿵! 소리가 날 정도였다.
“그래도 이번엔 조금 안 맞는다고 하잖아요. 처음에 준이 ‘이건 못 써요.’라고 말했던 거에 비해서는 훨씬 낫죠.”
크으윽……!
여기저기서 크리티컬 공격에라도 맞은 듯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소품팀이 ‘나이트 진의 주 무기입니다!’ 하고 밝게 웃으며 가져갔던 날.
서준 리 배우는 몇 번 휘둘러보더니,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죄송해요. 이건 못 써요.’
라고 말하고는, 무슨 대장장이나 검을 수십 년 써본 사람처럼 부족한 점에 대해서 줄줄줄 이야기했다.
그에 소품팀은 멍한 표정으로 ‘네, 네. 그렇죠.’밖에 말하지 못했다.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죠.”
“단호했지만요.”
“맞아. 진심이라서 더 충격적이었지.”
그렇게 첫 퇴짜를 맞고.
소품팀의 고생길이 시작되었다.
“그냥, 네 번째에서 쓰라고 할 걸 그랬나?”
네 번째 퇴짜를 맞았을 때는, 서준도 마음에 걸렸는지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요. 이걸로 쓸게요.’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표정은 아쉬움이 가득했었다. 그에 소품팀 팀장은 다시 만들어오겠다고 호기롭게 외쳤다.
“안 되죠! 나이트 진의 무기인데!”
“우리 윌리엄의 무기인데!”
“진 나트라님의 무기인데!!”
팀장의 말에 팀원들이 벌떡 일어났다. 눈동자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러니 중간에 포기할 수가 있겠나.
물론, 서준 리의 팬인 팀장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럼…….”
소품팀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시작해 볼까!”
“무게중심이 조금 문제라고 했죠?”
“다른 건 다 괜찮다는 소리니까…….”
서준이 보내준 간식과 음료수를 감격한 표정으로 먹으며, 회의를 시작했다.
* * *
나이트 진의 각성 장면까지의 촬영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쉐도우앤나이트]의 전투장면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와이어 촬영이나 공중 액션씬 등 기계 장치가 필요한 액션 장면이 많은 만큼, 안전을 위해서도 화려한 액션을 위해서도 대부분의 장면은 실내 세트장에서 촬영할 예정이었다.
대형 스크린 ‘더 볼륨’으로 만들어진 성당과 풍경을 배경으로, 초록색 크로마키가 뒤섞인 촬영장.
그 안으로 나이트 진의 히어로슈트로 갈아입은 서준이 들어서자, 조나단 감독이 신나게 달려와 서준의 손에 들린 검은색 검을 보았다.
“완성된 거야?”
“네. 볼래요?”
조나단 감독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서준에게서 ‘나이트 진의 검’을 건네받았다.
“이게 일곱 번의 퇴짜 끝에 준에게 선택된 검……!”
시놉시스 제작 당시, 서준에게 갈려 나갔던 조나단 감독은 소품팀의 마음을 이해하며 그렁그렁한 눈으로 검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말하니까 제가 엄청 엄격한 사람이 된 것 같잖아요.”
“맞잖아, 엄청 엄격한 사람.”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고는,
“내가 얼마나 갈려 나갔는지 이제 소품팀은 알겠지…….”
신세 한탄을 시작하는 조나단 감독의 모습에, 서준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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