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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32화 (73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32화

“컷! 오케이!”

조나단 감독의 외침이 시원스럽다.

그에 윌리엄의 일상복(운동화와 청바지, 셔츠)을 입고 연기하던 배우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쿠키를 나눠주며 친절한 미소를 짓던 서준 리로 돌아온 것이었다.

서준 리는 언제나 그랬듯, 모니터링을 위해 조나단 감독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모니터를 보며 조나단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와…….”

조용히 현장을 장악하던 배우의 분위기가 사그라지자,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보고 있던 사람들도 정신을 차렸다.

“진짜 대단하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며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리자, 다른 사람들도 그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놀람과 감탄을 참을 수 없었는지, 옆에 있던 사람들과 조곤조곤 떠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 ‘조곤조곤’ 여러 무리가 되니 촬영장은 시끌벅적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의상은 분명히 윌리엄 옷이었는데, 진 나트라가 보이더라.”

“그러니까요. 나이트 진을 연기할 때도 같은 옷인데 분위기가 전혀 다르고!”

“난 그림자도 본 것 같은데?”

“분위기 차이가 너무 확실하게 보여서 진짜 넋 놓고 봤어!”

누군가(아마도 [쉐도우맨 시리즈]의 빅팬일 듯한)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진심이 가득 담긴 감상을 내뱉었다.

“으아아아……! 이건 영화로 봤어야 하는 건데……!”

아무래도 현실에서는 영화 속같이 ‘그림자가 스며들어 히어로 슈트를 만들어주는 모습’을 실현하기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윌리엄의 일상복’을 입고 찍고, ‘진 나트라의 제복’을 입고 촬영하고, 마지막으로 ‘나이트 진의 히어로슈트’를 입고 찍은 후, 그 장면들을 모아 편집하고 합성해야 했다.

때문에 촬영장에서는 이 장면이 ‘완벽하게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에 다들 그 의견에 동의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때 반대 의견이 나왔다.

“아니지. 그러니까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는 거잖아. 진 나트라 제복 버전이랑 나이트 진 히어로슈트 버전으로.”

“바스트샷 촬영도 있고, 클로즈업샷 촬영도 있고.”

“게다가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죠!”

……아하!

“그건 좋을지도.”

“영화는 개봉하면 보면 되는 거니까요.”

응응.

사람 마음은 어찌나 갈대 같은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은 이내 눈을 반짝이며 잠시 후에 있을 촬영을 기대했다.

그만큼 서준 리의 연기가 충격적이고 인상 깊었다는 거다.

“근데 이야기가 길어지네요. 감독님하고 준.”

NG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오케이 사인이 나지 않을 때면 몰라도, 이렇게 시원스럽게 오케이 사인이 나올 때면, 조나단 감독과 서준은 촬영분을 본 다음 씨익 웃고는 다음 촬영을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확실히 마음이 잘 맞는 감독과 배우라는 생각이 들고는 했는데.

지금은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었다.

“윌리엄이 히어로로서 각성하는 장면이잖아.”

필립 윤의 말에 김재연이 웃으며 말했다.

“히어로 영화에서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니까 말이야.”

각성.

새로운 히어로가 나타나는 장면이며, 기존의 히어로가 더욱더 큰 힘을 얻게 되는 장면.

그리고 앞으로 이 슈퍼히어로가 어떠한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활동해 나갈지를 간접적으로 관객들에게 알릴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다른 장면들보다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윌리엄은 특이한 상황이잖아.”

[쉐도우앤나이트]의 각성 장면은 특히 중요했다. 보통의 히어로 영화보다도 더욱더.

왜냐하면 ‘윌리엄 리’는 예전 [쉐도우맨 시리즈]에서 빌런이었던 ‘진 나트라’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기억을 잃은 상태라서 조금 애매하기는 하지만, 다른 어떤 히어로 영화의 각성 장면보다도 신경 쓸 수밖에 없지.”

“그렇군요.”

김재연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서준과 조나단 감독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더욱 멋있어 보였다. 눈이 반짝반짝해진 필립 윤에 김재연이 작게 웃었다.

* * *

“아무래도 좀 더 선악의 분위기가 대비됐으면 하는데…… 더 강하게 할 수 있지, 준?”

조나단 감독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해볼게요.”

가벼운 대답이었지만, 아주 믿음직스러웠다.

그렇게 ‘윌리엄의 일상복’을 입은 서준 리의 두 번째 촬영이 시작되었다.

카메라와 조명 등 촬영 장비가 다시 옮겨지는 동안, 서준은 촬영장을 둘러보았다.

부서진 차 뒷문에서 내려 그저 길을 따라 쭉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빌런’의 공격은 ‘그림자’가 막아줄 테니(CG작업), 자신은 그저 걸어가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쉬운 장면이지만…….’

걸어가는 동안 서준은 여러 가지를 표현해야 했다.

윌리엄의 마음, 슬금슬금 나타나는 진 나트라의 흔적, 제이와 파트너에게 두 발이 잡힌 모습, 제이와 파트너와의 대화, 그리고 마침내 히어로, 나이트 진으로 각성하는 모습까지.

받아주는 상대역도 없이, 혼자서 해야 하는 어렵고 중요한 장면이었지만.

‘그래서 재미있지!’

서준이 씨익 웃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조감독의 외침의 뒤를 이어, 조나단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디,”

후우- 숨을 내쉰 서준은,

“액션!”

분노에 사로잡힌 소년이 되었다.

소년은 차에서 나와 빌런을 향해 걸어갔다.

쉐도우맨을 잃은 윌리엄과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던 진 나트라의 감정이 뒤섞여, 부정적인 감정이 소년의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하급)이 발동됩니다.]

[(악)마셰드의 그림자술(하급)이 발동됩니다.]

‘조나단은 더 강하게 하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두 능력의 등급을 올려 중하급으로 발동할 수는 없었다.

‘그건 너무 마기가 강하니까.’

그래서 서준은 대신,

[마인의 기초호흡(최하급)이 발동됩니다.]

또 하나의 능력을 발동했다. 적당히 +α가 되어줄 터였다.

순간.

촬영장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공기에 무게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아까보다 무섭네…….”

“그러게요.”

왠지 말을 나누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그런 스태프들과 달리, 조나단 감독는 눈알을 번뜩이며 모니터와 촬영장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역시 준……!

어떤 장면이든, 어떤 연기든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였다.

“이게 힘…….”

소년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제임스 촬영감독이 직접 잡은 카메라가 배우를 따라 움직였다.

첫 촬영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보니 주변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이 사라진 듯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풀벌레의 소리, 나뭇잎들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 야외 세트장인데도 불구하고 통제 불가능한 바람, 그리고 저 높은 곳에 있는 태양마저도.

모든 것이 ‘소년’을 연기하는 배우의 아래에 있는 것 같았다.

제임스 촬영감독은 카메라를 고쳐잡았다.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이 공간의 분위기를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이 어두운 그림자가 소년의 아래에서 일렁였다.

그에 예민한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비벼야 했다.

잠시, 그런 무거운 분위기가 사그라들었다.

‘제이’와 ‘파트너’를 발견한 소년은 잠시 분노를 가라앉힌 듯했다.

“용납할 수 없어.”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지만.

소년의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적당한 마기가 촬영장을 휩쓸었다.

모두 숨을 죽였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침묵한 듯했다.

그 오싹함에 몸을 떨면서도 환희를 느끼던 조나단 감독은 이 분위기가 부디, 필름 속에 담기길 간절히 기도했다.

- You are Hero -

- Knight JIN -

CG로 삽입될 문장들을 ‘소년’이 읽을 적당한 시간을 남긴 후, 서준은 악의 능력들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새로운 능력을 발동했다.

[(선) 중급천사의 부채(중급)이 발동됩니다.]

촬영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마기가 순식간에 부채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졌다. 푸하-. 조용히 멈춰 있던 숨을 내뱉은 스태프들도 있었다.

분노에 사로잡혀 선을 넘어버리기 직전이었던 소년은 ‘윌리엄’으로 돌아와,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제이’와 ‘파트너’과 대화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현장을 차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적아 구분 없는 분노에 날뛰려던 조금 전과 달리, 신념이 가득한 눈동자였다.

“제이, 파트너.”

[(선)엘프의 기초 호흡(최하급)이 발동됩니다.]

조금 전보다 강하게.

서준은 적당히 조절했던 마기와 달리,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선기는 마음껏 뿜어냈다.

“지금이야말로 나이트 진이 나설 때겠지?”

윌리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중하급)가 발동됩니다.]

서준의 눈에는 선명하게, 그리고 일부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희미하게 보이는 그림자가 서준의 발밑에서 일렁였다.

[(선)오래된 에고소드의 가르침(중급)이 발동됩니다.]

윌리엄, 아니, ‘나이트 진’이 그림자 속에서 검을 꺼내는 장면에서, 서준은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로 만든 검을 꺼내 들었다.

물론 사람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허공을 쥐고 있는 서준의 손이 매우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가자. 제이. 파트너.”

사람들을 지키러.

말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나이트 진의 표정이, 눈동자가 대신 그 마음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익숙해져 있던 서준은 연기는 그대로 계속 이어가며(아직 컷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속으로는 ‘아, 또?’ 하고 말았다.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가 중하급에서 중급으로 상승합니다.]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중급)]

깊고 어두운 숲에서 살아가는 다크엘프입니다.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습니다.

다른 이를 구하려고 할 때, 더욱 강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능력의 등급이 중하급에서 중급으로 상승했다.

‘음.’

등급 상승의 이유는 차치하고.

이제 놀라지도 않는 서준은, 이게 연기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하는 생각부터 했다.

일단, 자신이 내뿜는 선기가 강렬해졌을 거다. 그리고 타이밍도 좋았다.

‘딱 각성 장면에서 상승했네.’

서준은 카메라에 촬영된 자신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컷!! 오케이!!”

예상치 못한 사고가 서준에게만 잠시 있었지만 잘 찍힌 듯, 조금 전보다 더 즐거워하는 듯한 조나단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에 뭐야, 준?! 엄청 좋았어!!”

“하하. 그래요?”

촬영장에서 나와 모니터링을 하러 가는 서준을, 입을 틀어막고 감격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격렬한 반응에 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이것 봐!”

조나단 감독이 얼른 조금 전 촬영했던 것을 보여주었다. 서준의 예상대로 마지막에서 ‘나이트 진’의 아우라가 강렬해졌다.

조나단 감독이 신나게 손짓 발짓을 하며 이야기했다.

“아까 찍은 것보다 훨씬 좋아! 막 단계적으로 아우라가 짙어지는데, 이 느낌을 배경음악에 반영하면 좋을 것 같지 않아? 천천히 강해지던 선율이 빰! 하고 터지는 느낌으로! 어떻게 이렇게 한 거야?!”

“우연히 그렇게 된 거예요.”

능력의 등급 상승은 진짜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이유는 대강 알 것 같았다.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의 주인은, 마을을 지키는 다크엘프 전사였다.

‘공격해온 몬스터들을 막지 못하고 마을이 멸망해 버렸지만.’

피투성이의 몸으로 마지막까지 마을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몇 번이고 일어서던 다크엘프 전사의 삶이었다.

그러니 비록 연기였지만, 다른 생명을 구하려고 하려는 서준의 마음이 강해지자, 이번에야말로 다른 이들을 지키라고 등급이 상승한 게 아닐까 싶었다.

“아, 그래?”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서준이 조나단 감독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럼 다시 못하는 거야?”

현재 서준이 입고 있는 의상은 ‘윌리엄의 의상’이었는데, 각성할 때는 ‘나이트 진의 히어로슈트’를 입고 다시 찍어야 했다.

우연이었다면 다시 찍기는 힘들겠지, 하고 아쉬워하는 조나단 감독의 표정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감독님. 처음은 우연이었지만, 연기해 본 이상 다시 할 수 있으니까요.”

오오오!

주저하지 않고 말하는 베테랑 배우에, 감독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저도 모르게 짝짝짝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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