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27화
눈물이 쏙 들어갈 정도로 놀란 윌리엄이 외쳤다.
“파트너!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야!?”
그 목소리 안에는 기쁨도 가득했다.
제이도 기쁜 듯, 차분하던 모습은 어디론가 던져 버리고 먼저 파트너를 쿡쿡 찌르며 장난을 쳤다.
자신을 격하게 반겨주는 윌리엄과 제이에, 곰인형 ‘윌’을 침대에 올려둔 파트너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는 그림자를 이리저리 늘렸다가 줄이며 설명했다.
먼저 어떤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윌리엄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쉐도우맨?”
딩동댕!
정답이라는 듯, 동그라미를 그린 파트너가, 마치 그림자 연극처럼 새까만 그림자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윌리엄과 제이는 나란히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상체를 기대고 있는 쉐도우맨과 그를 지탱하고 윌리엄.
동그란 구체, ‘순수한 어둠’이 윌리엄과 쉐도우맨의 손을 통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테일러 국장님께 들었어. 계승이라는 거지?”
윌리엄이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파트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윌리엄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갑자기 파트너가 나타나 기뻐하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파트너가 여기 있다는 이야기는…….’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현실도 그렇다고 보여주며 자신이 직접 보기까지 했지만, 윌리엄은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애써 파트너의 그림자 연극으로 신경을 돌렸다.
파트너는 동그란 구체, ‘순수한 어둠’을 화살표로 가리켰다. 그러고는 그 구체 안에 ‘미니 파트너’를 만들었다.
“……그 안에 있었다고?”
딩동댕!
마치 퀴즈쇼처럼 다시 한번 동그라미를 만든 파트너는, 윌리엄의 침대 위에 철퍼덕 쓰러졌다. 그림자로 베개와 이불까지 만들어 꼼꼼히 덮은 모습이 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는 마치 기지개를 쫘악 켜며 일어나는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어릴 때부터 제이와 함께 놀면서 그림자 연극 해석이라면 자신 있는 윌리엄이 잠시 턱을 매만지더니 입을 열었다.
“계승을 하느라 잠들어 있었는데…… 지금 막 깨어났다는 거지?”
딩동댕!
파트너가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랬구나.”
윌리엄이 제이와 함께 와아아- 즐거워하고 있는 파트너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파트너는 아직 모르고 있는 걸까.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꽉 조여지는 것 같았다.
“파트너.”
응?
파트너가 고개를 갸웃했다.
윌리엄의 마음을 알았는지 제이도 차분해졌다.
“쉐도우맨이…… 맥이…….”
맞아! 맥!
파트너가 느낌표를 머리 위에 띄웠다. 그러고는 윌리엄의 방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맥은 어디 있어? 맥! 맥!
그 순진하고도 천진난만한 파트너의 모습에 윌리엄은 붉어진 눈가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자신보다 더 오랫동안 맥과 함께했던 파트너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윌리엄은 처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맥이 죽어버렸어…….”
……?
움직임을 멈춘 파트너가 고개를 갸웃했다.
“널…… 널 나에게 주고……거기서 죽어버렸어…….”
……죽어? 맥이?
그림자도 숨을 쉰다면 아마 숨 쉬는 것까지 멈추어버리지 않았을까.
파트너는 석상이 된 것처럼 그대로 굳어버렸다.
“미안해…… 미안해. 파트너.”
윌리엄이 입술을 덜덜 떨며 말했다.
“나 때문에…… 맥이…….”
가운데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제이는 미안해하는 윌리엄과 멍한 상태의 파트너를 토닥였다.
멍하니 있던 파트너의 시야에 침대에 놓여진 낡은 곰인형 ‘윌’이 보였다. 그리고 눈앞에서 자신에게 미안해하며 눈물을 참고 있는 윌리엄도.
문득, 파트너의 머릿속에 십여 년 전에 봤던 어린 윌리엄, 아니, 진 나트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아이’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하고 미안해하고 구해주고 싶어 했던 맥의 모습도.
‘윌리엄을 지켜줘, 파트너.’
‘계승’ 직전, 자신에게 전해졌던 맥의 의지도.
톡톡-
파트너가 윌리엄의 무릎을 두드렸다.
“……파트너?”
놀라 고개를 든 윌리엄의 눈앞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윌리엄이었다.
그리고 두 개의 그림자가 마치 방패처럼 윌리엄 앞에 세워져 있었다. 마치 윌리엄을 지키겠다는 듯이.
“……날 지켜주겠다는 거야?”
끄덕.
그리고 파트너는, 그림자 방패 중 하나(아마도 파트너)의 옆에 한 남자의 모습을 만들었다.
쉐도우맨, 맥이었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쉐도우맨, 맥은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 아닌 든든한 모습으로 방패 옆에 서 있었다. 꼭 맥도 윌리엄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처럼.
그에, 윌리엄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컷! 오케이!”
오늘도 멋진 연기를 보여준 서준을 보며, 조나단 감독이 활짝 웃으며 외쳤다.
과몰입해서 ‘파트너……!’, ‘쉐도우맨……!’, ‘윌리엄……!’ 하고 입을 틀어막고 있는 스태프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일부 스태프들에게서는 원망의 눈빛이 느껴지기도 했다.
“준, 진짜 연기 잘하는 것 같지 않아?”
“그러니까요.”
서준 리 혼자서 아무것도 없는 곳을 보며 연기하는 장면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눈앞에 파트너와 파트너가 만들어낸 그림자 연극이 보이는 것 같았다.
“왠지 난 진짜로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물론, 서준이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으로 만든 그림자 연극을 눈으로 직접 본 민감한 스태프들도 있었다. 그런 스태프들이 서준의 연기에 더 과몰입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으허허헝……!”
울면서도 다음 촬영을 위해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보며 작게 웃던 최태우가 서준에게 새로운 생수병을 들어 보였다.
“서준아, 물 더 마실래?”
“괜찮아요. 충분히 마셨어요.”
최태우의 말에 서준이 빈 물병을 보여주었다. 벌써 생수 한 병을 마신 상태였다.
“어쩐지 쉐도우맨이 죽은 뒤로, 계속 슬퍼하고 우는 연기만 하고 있는 것 같네.”
붉어진 눈가를 가라앉히기 위해 아이스팩을 눈 위에 올려두는 서준을 보며 최태우가 말했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영화 시간상으로는 이제 겨우 24시간이 지난 거니까요.”
그건 그렇다.
전날 밤 쉐도우맨이 죽고, 다음 날 퍼스트에 가고 그날 밤 파트너와 만난 거였다.
눈물이 마를 시간이 없는 윌리엄이었다.
“영화 나오면 전부 대성통곡하는 거 아니야? 새싹분들은 이번에도 휴지 꼭 챙기셔야겠는데?”
슬픈 영화는 슬퍼서 울고, 감동적인 영화는 감동적이라서 울고.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서준의 필모그래피에, 서준의 팬인 새싹들은 물론이고 팬까지는 아니지만 서준이 나오는 작품을 믿고 보는 일반인들까지도 휴지를 꼭 가져가게 되었다는 우스갯소리를 떠올린 서준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 * *
“레디, 액션!”
울컥한 마음을 진정시킨 윌리엄이 휴대폰을 들었다. 쉐도우맨의 파트너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테일러 국장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았다.
테일러 국장도 이렇게 빨리 윌리엄에게서 연락이 올 줄은 몰랐을 거다.
그래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신호음 한 번에 휴대폰 너머에서 테일러 국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윌리엄?
“아뇨. 그건 아니에요.”
윌리엄은 어느새 곰인형 ‘윌’과 ‘진’을 가져와 침대 위에서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제이와 파트너를 바라보며 말했다.
‘쉐도우맨의 정체를 알고 난 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긴 하지만…….’
제이와 파트너는 묘하게 그것보다 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윌리엄?
“아, 네. 그게 쉐도우맨의 파트너가 저랑 같이 있다고 알려드리려고 연락드렸어요.”
-……파트너가요?
“네. 아마도 계승할 때, 쉐도우맨의 힘과 함께 넘어온 것 같아요.”
휴대폰 건너편, 침묵이 생겨났다.
-……지금 외계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그녀도 나트라인이니 물어보도록 하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윌리엄.
“네.”
아예 음성을 차단한 듯, 휴대폰 건너에선 다시금 침묵이 이어졌다.
윌리엄이 고개를 돌려 제이와 파트너를 보니, 어느새 곰인형들과 함께 손을 마주 잡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강강술래/라도 하는 거야?”
윌리엄이 작게 웃었다.
작은 미소지만 웃는 윌리엄에, 제이가 기뻐했다.
-윌리엄.
“네!”
테일러 국장의 부름에 제이와 파트너를 희미하게 웃으며 바라보던 윌리엄이 얼른 대답했다.
-그녀에게 물어보니, 아무래도 나트라인이 지구인에게 계승한 적이 없다 보니 확실하게 대답을 해줄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몸에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을 거라고 합니다.
“그건 괜찮아요. 그저…… 파트너가 저와 함께 있어도 되는지, 그게 마음에 걸려서요.”
슈퍼히어로의 힘이 아닌가.
자신은 그저 일반인일 뿐인데, 쉐도우맨의 힘을 계승 받고 그의 파트너까지 자신과 함께 있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괜찮습니다.
테일러 국장이 주저 없이 말했다.
-그게 쉐도우맨의 의지니까요.
“……네.”
잠시 울컥한 윌리엄이 작게 대답했다.
-이번 작전만 잘 부탁합니다. 윌리엄.
“네. 걱정 마세요. 최선을 다할게요.”
전화를 끊고 내려놓은 윌리엄의 눈에, 무슨 대화인지 궁금해하는 파트너가 보였다.
“파트너한테도 알려줘야겠네.”
파트너도 함께 움직일 테니, 미리 작전을 알고 있어야 했다. 윌리엄은 파트너에게 ‘미끼 작전’에 대해 설명했다. 파트너는 마치 모범생처럼 집중하는 듯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그 빌런은 이틀에 한 번씩 센트럴파크에 나타난대.”
윌리엄의 추측으로는, 테일러 국장은 이유를 알고 있지만 자신에게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음. 계승 때문에 그런가.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표정 같은 것들이 느껴지고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민감함이 낯설어야 할 텐데, 꽤 익숙한 것 같기도 했다.
“퍼스트에서 감시하고 있다가 빌런이 나타나면 내가 쉐도우맨인 것처럼 그림자로 하늘을 뒤덮어서 빌런의 관심을 끄는 거야. 그 빌런이 쉐도우맨을 엄청 싫어한다고 하더라고.”
살아 있다는 걸 알면, 분명 올 거다.
검은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리고 공격을 퍼붓는 거지.”
안타깝게도 다른 슈퍼히어로들은 임무 중이라 퍼스트 요원들의 공격만이 쏟아지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테일러 국장은 설명했다.
“어때? 이해했어?”
이미 들어서 알고 있던 제이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귀여운 모습에 작게 웃은 윌리엄이 파트너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파트너였다.
“어, 음. 다시 설명해 줄까, 파트너?”
굉장히 쉽게 설명한 것 같은데.
볼을 긁적인 윌리엄이 더욱더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잠깐 동안만 내가 쉐도우맨이 되는 거야.”
갸웃?
파트너는 여전히 윌리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파트너는 쉐도우맨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애가 히어로라…….’
노을이 지는 어느 날.
쉐도우맨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어릴 적, 히어로가 되고 싶었다던 윌리엄의 말을 떠올린 것이었다.
‘그러면 코드네임이 필요하겠네. 뭐가 좋을까.’
맥은 반듯하게 자란 윌리엄 리를 떠올렸다. 그리고 잊혀진 진 나트라를 떠올렸다.
‘……그게 좋겠다. 어때, 파트너? 괜찮지?’
파트너는 벽에 그림자로 글자를 만들어나갔다.
윌리엄은 고개를 들어 필기체로 쓰여지는 알파벳을 바라보았다.
- You -
마치 심장 박동의 파형을 알려주는 그래프처럼,
- are -
검은 선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생겨나는 글자들에, 윌리엄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 Knight 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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