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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26화 (72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26화

“아로도…….”

윌리엄이 사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윌리엄을 바라보던 테일러 국장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외계 전문가분에게 들은 설명으로는 이렇습니다.”

그 설명과 함께 또 다른 영상이 테이블 위에 떠올랐다.

물론 촬영 후 CG로 처리될 예정이기 때문에 진짜 영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미리 어디에 어떤 영상이 나타날 건지를 표시해 둔 점들 덕분에 서준과 소피아 켈리의 시선이 어긋나는 일은 없었다.

“두 사람 다 CG 촬영을 많이 해봐서 자연스럽네요.”

“그러게.”

처음이라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보며 연기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겠지만, [쉐도우맨 시리즈]에 출연했던 서준 리와 [어셈블] 등의 슈퍼히어로 시리즈에 출연했던 소피아 켈리의 연기는 영상이 떠 있는 듯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정말로 스태프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상을 보고 있는 듯이.

그렇게 스태프들과 엑스트라들이 감탄하고 있는 사이에도 두 배우의 연기는 계속되었다.

“숙주와 접촉한 아로도는 숙주의 몸 안으로 흡수되어,”

간단한 애니메이션으로, 보석 형태였던 ‘아로도’가 사람의 손에 닿아 흡수되는 장면이 나타났다. 흡수된 검녹색의 기생 생물, 아로도는 손가락 끝에서 팔과 목, 얼굴을 거쳐 천천히 뇌까지 향했다. 마치 검녹색의 핏줄을 따라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숙주의 정신에까지 침범한다고 합니다.”

마침내 숙주의 뇌에 닿은 아로도.

빠르게 뇌가 검녹색으로 물든 숙주는 곧 몸 전체가 검녹색으로 오염되었다.

윌리엄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그 영상을 바라보았다.

‘그림자 친구’라는 특별한 능력이 있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슈퍼히어로와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일반인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침착한 모습이었다.

기이한 일이지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아는 테일러 국장은 가벼운 한숨을 삼키며 다시 설명을 이어갈 뿐이었다.

“정신세계에 침범한 아로도는 먼저 숙주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흡수합니다.”

“부정적인 에너지라면?”

“슬픔, 고통, 미움, 외로움, 분노, 불안, 걱정…… 그런 류의 감정을 말하죠.”

윌리엄이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감정이…… 에너지가 될 수 있나요?”

감정.

그건 그저 사람이나 동물 등, 생물체가 느끼는 기분이 아닌가.

그게 생물체가 움직이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된다고?

이런 곳에서 ‘윌리엄 리’라는 소년이 일반인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느낀 테일러 국장이 답했다.

“외계 생물체니까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에너지원으로 쓰고는 합니다. 지구에도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마법이 있고 초능력이 있고…… 그림자가 있죠.”

테일러 국장의 말에 제이가 대답하듯 불쑥 나타났다.

제이의 등장에 그제서야 굳어 있던 표정을 조금이나마 풀고 희미하게 웃은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부정적인 감정 에너지를 흡수하면 어떻게 되죠? 새로운 숙주의 몸으로 이동하나요?”

“비슷합니다.”

다음으로 나타난 사진은 윌리엄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비젯이 추락한 야구장의 사진.

순간 자신을 구하러 왔던 쉐도우맨이 떠올라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목이 메였다. 슬픔을 참으려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무는 윌리엄을 잠깐 본 테일러 국장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로도는 숙주의 정신세계에서 숙주가 최근, 가장 행복하고 즐거워했을 때의 기억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이 가득했던 장소를 파괴하죠.”

가장 효과적으로 부정적 감정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저희 비젯의 요원이 최근 가장 행복해했던 기억이 바로,”

“……야구장이었군요.”

“그렇습니다.”

윌리엄의 낮은 목소리에 테일러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야구장에서 생성된 부정적인 감정 에너지를 흡수한 아로도는 야구장에서 또 다른 숙주의 몸으로 이동했습니다.”

윌리엄은 경기를 구경하러 왔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같은 학교 학생들, 상대팀 학교 학생들, 스카우트들, 근처에서 야구경기를 한다고 구경하러 왔던 동네 사람들, 관광객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아로도는 이곳저곳에서 같은 짓을 반복했습니다.”

테일러 국장이 수십 개의 영상을 띄웠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무너지고는 백화점, 공항, 놀이동산 등에서 사람들이 대피하는 영상들.

그것 또한 윌리엄이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요즘 뉴스에서 나오고 있던 뉴욕의 사건사고들.

“그럼 이 사고들이 다……?”

“네. 그렇습니다. 아로도의 짓입니다.”

테일러 국장에게로 향해 있던 윌리엄의 시선이 테이블 위 영상들로 향했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급하게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이 모든 게 외계 생물체 때문이라니…….

윌리엄은 차갑게 식어가던 쉐도우맨의 체온을 느꼈던 두 손을 꽉 쥐었다.

그런 윌리엄의 모습을 보던 테일러 국장이 새로운 영상을 띄웠다.

“이건……?”

“외계전문가가 보내준 영상입니다.”

영상 속 동그란 구체는 푸른 지구가 아니라 다른 행성인 것 같았다.

붉은 보석 같은 행성이 불길한 검녹색으로 천천히 물들어가는 모습이 윌리엄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말로는 부정적 에너지를 충분히 흡수한 아로도는 자신의 몸을 분열한다고 합니다.”

분열……!

윌리엄의 눈이 커졌다.

“분열한 아로도들은 끊임없이 부정적 에너지를 흡수하고 분열한다고 합니다. 그 행성에 살고 있는, 감정이 있는 생명체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말이죠.”

어느새 검녹색밖에 보이지 않는, 붉었던 행성을 보며, 윌리엄은 저도 모르게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럼 지구도…….”

“네. 분열하기 전에 막지 않으면 저렇게 변할 겁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회사에 있을 부모님과 학교에 있을 친구들, 그리고 반갑게 인사하던 이웃주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두가 사라진다.

……쉐도우맨처럼.

그런데 어째서일까.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불안정하게 뛰던 심장이, 갑자기 차분해졌다.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찼던 머릿속도 누군가 깔끔하게 정리한 듯 깨끗해졌다.

‘언제나 침착하셔야 합니다. -님.’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제가 뭘 하면 되죠?”

윌리엄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침착하다 못해 냉철한 목소리였다. 그건 민간인인 소년이 낼 수 없는, 많은 일을 겪어본 자에게서나 나올 법한 차분함이었다.

잠시 그런 윌리엄을 바라보던 테일러 국장이 입을 열었다.

“미끼가 되어주십시오. 윌리엄 리.”

* * *

“컷! 오케이!”

클로즈업샷 촬영을 하기 전, 잠시 쉬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서준 리와 소피아 켈리 두 사람 다 훌륭한 배우들이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촬영을 이어나갔기 때문이었다.

“수고하셨어요.”

“고마워. 준도 고생했어.”

소피아 켈리가 옆자리에 앉자 서준이 생수병을 건네주었다. 소피아 켈리가 목을 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근데 나 엄청 욕먹는 거 아니야? 윌리엄 미끼 만들었다고? 테일러 국장이 원래 지구를 위해서라면 이것저것 다 써먹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말이지. 윌리엄은 민간인에다가 미성년자잖아.”

“하하하.”

시놉시스를 쓴 장본인 중 하나인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저야말로 원망 엄청 들을 것 같아요. 쉐도우맨을 죽게 만들었잖아요.”

매니저가 준 간식을 서준에게 건네준 소피아 켈리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원망도 못할 것 같은데. 우리 준이 이럴 리가 없어…… 하고 말이야. 오히려 조나단 감독님이 위험한 거 아닐까?”

음.

샌드위치를 한 입 먹은 서준이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어쩌면 개봉과 동시에 목숨이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조나단 감독이 끼어들었다.

“전 반대했어요. 다 준이 한 거예요.”

“그래도 끝에는 동의했잖아요. 조나단도.”

그러니까 대본도 나오고 이렇게 영화도 찍은 거 아닌가.

서준의 말에 조나단 감독이 말했다.

“전 반대했어요. 다 준이 한 거예요.”

“……조나단?”

“전 반대했어요! 다 준이 한 거예요!”

난 아무 잘못 없어! 살려줘!

그런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

고장난 조나단 감독의 모습에 소피아 켈리가 빵 터지고 말았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있던 서준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조나단 감독이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과 목소리로 말했다.

“난 이렇게 인터뷰할 거야.”

“음. 그럼 저도 ‘조나단 감독님도 동의했어요.’라고…….”

“전부 준이 한 거예요!”

살아남기 위한 조나단 감독의 외침에, 서준이 웃으며 농담으로 말했다.

“그럼 마린에서 시킨 거라고 해요, 우리.”

“! 그러면 되겠네!”

……되겠어요?

진심이 가득한 조나단 감독의 외침에 서준과 소피아 켈리가 눈을 깜빡이다 웃음을 터뜨렸다.

이러다 애꿎은 마린사만 멱살 잡히게 생겼다.

* * *

퍼스트는 친절하게도 윌리엄을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새까만 차에서 내린 윌리엄은 운전기사님에게 인사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늘도 평소처럼 평범하고 행복한, 어쩌면 조금 지루할지도 모르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 친절한 이웃의 집들이 보였다.

“다녀왔습니다.”

집은 조용했다.

전혀 상상도 못 한 이야기들을 들어서 그런가. 퍼스트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아직 부모님이 퇴근할 시간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부모님.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잠시 바라보던 윌리엄이 2층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침대에 걸터앉아 퍼스트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려보았다.

외계 기생 생물, 아로도.

검녹색으로 물든 붉은 행성.

현재 아로도의 숙주인 빌런.

그리고,

“쉐도우맨…….”

애써 피하고 싶었던 생각이 윌리엄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퍼스트 국장님의 말들이 떠올랐다. 돌아오지 않았다, 잡히지 않는 생체 신호, 그리고 시신.

울컥-

올라오는 절망과 슬픔에 윌리엄은 몸을 웅크려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울었는데도 눈물은 마르질 않았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퍼스트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니 도저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몸을 웅크리고 숨을 죽이고 울고 있는데,

포옥-

오른팔에 폭신폭신한 것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익숙한 감촉이었다.

“제이…….”

윌리엄이 물기 섞인 목소리로 그림자 친구를 불렀다.

그림자 친구 제이는 어렸을 때부터 윌리엄이 울 거나 슬퍼할 때마다 곰인형 ‘진’을 움직여 달래주고는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고마워.”

친구의 위로에, 윌리엄은 붉어진 눈가로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제이가 볼록 튀어나와 고개를 갸우뚱했다. 동시에 곰인형이 윌리엄의 오른팔을 껴안는 것이 느껴졌다. 윌리엄의 고개도 제이와 같은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제이는 여기 있는데?

윌리엄과 제이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향했다.

곰인형이 있었다.

“……윌?”

그건 곰인형 ‘진’이 아니었다. 곰인형 ‘진’과 나란히 장식되어 있던 낡은 곰인형 ‘윌’이었다. 참고로 풀네임은 ‘윌리엄’이었다.

아무튼.

그 낡은 곰인형 ‘윌’이 움직이고 있었다.

“제이, 네가 움직이는 거야?”

절레절레.

제이가 고개를 저었다. 윌리엄도 알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제이는 곰인형 ‘진’만 움직였을 뿐, 곰인형 ‘윌’을 움직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

그때, 곰인형 ‘윌’의 그림자에서 새까만 것이 튀어 올라왔다.

안녕!

하고 발랄하게 춤을 추는 그림자.

윌리엄은 눈을 크게 뜨며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파트너!!”

쉐도우맨의 그림자, 파트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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