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725화 (72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25화

누군가.

앉아 있었다.

윌리엄은 그 사실을 알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맥……!”

그러나 그 물기에 젖은 부름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제대로 보니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자였다.

“아…….”

기대했던 만큼 밀려오는 절망감에 윌리엄은 눈을 질끔 감았다. 모든 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토닥토닥.

눈을 뜨고 아래를 보니, 제이가 발을 토닥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에 윌리엄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이다.

쉐도우맨은 구조되어 어디서 치료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퍼스트라면…… 슈퍼히어로들이라면 분명히 쉐도우맨을 구해서…….

“윌리엄 리.”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윌리엄이 고개를 들었다.

‘윌리엄 리?’ 하고 본인이 맞는지 물어보는 어투가 아니었다. 자신임을 확신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윌리엄을 부른 사람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벤치에 앉아있던 여자였다. 어느샌가 걸어와 윌리엄의 앞에 서 있었다.

“이런 일로 만나게 되어 유감입니다.”

여자가 입을 열었다. 딱딱한듯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어쩐지 윌리엄에게 조금 친근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지구 방위 기관, 퍼스트의 국장 테일러 워런이라고 합니다.”

윌리엄의 눈이 다시 한번 커졌다.

* * *

“컷! 오케이!”

풀샷 촬영이 끝났다.

그 외침에 스태프들 움직이기 시작했다. ‘윌리엄 리’와 ‘테일러 워런’의 감정이 잘 드러날 클로즈업 촬영을 위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촬영하던 카메라와 빛을 비추던 조명을 세트장 안으로 옮겨야 했다.

그사이 서준 리와 소피아 켈리는 물을 마시며 목을 축였다.

“이렇게 같이 촬영하게 돼서 기뻐요.”

“나도 그래. 에반이랑 리첼이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소피아 켈리가 질린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리첼은 상상이 가는데, 에반도 그랬어요?”

‘우리 준은 말이야!’ 하고 외치며 즐겁게 이야기했을 리첼 힐의 모습은 상상이 가는데, 차분한 에반 블록이 자신에 대해 자랑을 하는 모습은 조금 상상하기 어려웠다.

“리첼처럼 방방 뛰지는 않았지만, 연기나 촬영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꼭 네 이야기를 하더라. 거기에 데이비스랑 와이엇까지 합류하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소피아 켈리에 서준이 빵 터지고 말았다.

‘레드본’과 [생존자들]에서 ‘레이먼드 위시’ 역을 맡았던 데이비스 가렛.

‘그린윙’과 [오버 더 레인보우1]에서 ‘사기꾼’ 역을 맡았던 와이엇 카터.

함께 촬영한 적 있는 두 배우까지 그렇게 칭찬하고 다닌다니, 어쩐지 쑥스러워졌다.

“이제 나도 그 자리에 합류할 수 있겠네. 아주 열심히 칭찬해 줄게.”

“……그러지 마세요. 소피아.”

붉어진 얼굴을 가리며 민망해하는 서준에, 소피아 켈리와 분장을 수정하러 온 스타일리스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퍼스트 국장……님이요?”

“예.”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윌리엄이 눈을 번쩍였다.

“쉐도우맨! 쉐도우맨은 어떻게 됐나요? 구하셨죠? 다른 히어로분들이 구하신 거죠? 그리고 지금은 퍼스트에서 치료 중인 거죠? 그렇죠? ……그런 거죠?”

그렇다고 말해달라는, 간절한 표정의 소년의 모습에, 테일러 워런이 옅게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진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쉐도우맨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네?”

윌리엄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삐- 하고 귀를 찢는 이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어젯밤 전투가 벌어졌던 배에서는 더 이상의 생체반응이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테일러 워런은 차분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 목소리에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히어로에 대한 존경과 쉐도우맨 말고도 죽어간 동료들에 대한 익숙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배는 그대로 침몰했고 지금 퍼스트에서 인양 중에 있습니다. 온전한 시신,을 찾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일일이 뒤져야 하는 상황이라서 시간이 조금 걸릴 예정입니다.”

“……시신이라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쉐도우맨이, 쉐도우맨이 이렇게 죽었을 리가 없어요……!”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 있는 윌리엄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제 품에서 식어가던 체온을.

막을 틈도 없이 흘러나오던 붉은 피를.

자신에게 무언가를 넘겨주고 약해져 버린,

쉐도우맨, 맥을.

“……아니야…….”

윌리엄은 덜덜 떨리는 두 손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테일러 워런을 간절히 바라보았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제발 아니라고 말해달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윌리엄 리를 보던 테일러 워런은 한숨을 삼켰다. 그러나 진실은 감출 수 없는 법이었다.

“유감입니다. 리.”

아아…….

이런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오늘 공원에 온 것이 아니었다.

윌리엄은 언제나처럼 자신을 반겨주던 맥을 보기 위해, 살아 있는 맥을 보기 위해 온 것이었다.

비틀-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충격에, 이별을 겪어보지 못한 윌리엄이 비틀거렸다. 국장이기 전, 퍼스트 요원으로서 탑급인 테일러 워런이 반사적으로 부축하기도 전에, 그림자가 쭉 늘어나 윌리엄의 몸을 부축했다.

자신의 그림자 친구, 제이였다.

그에 윌리엄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쉐도우맨과 파트너가 떠올라 눈을 질끈 감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로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주었던 두 존재였다.

“쉐도우맨…… 맥…… 파트너…….”

그런 윌리엄의 모습에 테일러 워런이 잠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가 표정을 고쳤다. 아직 퍼스트의 국장에게는 본론이 남아 있었다.

“윌리엄 리.”

테일러 워런이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에 윌리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 * *

다음 촬영은 ‘퍼스트’에서의 촬영이었다.

“이게 비젯이구나!”

서준이 들뜬 얼굴로 말했다.

“나트라 우주선은 많이 봤는데, 퍼스트 제트기는 처음 봤어요.”

“하긴 퍼스트 본부도 저번에 구경한 게 처음이었다며.”

“네, 맞아요. 와, 근데 진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태우 형?”

“그러게. 역시 할리우드.”

서준과 최태우가 오오! 감탄하며 ‘퍼스트의 제트기’를 구경했다.

마치 놀이공원에 온 아이처럼 설레는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서준 리의 모습에, 퍼스트 요원 역을 맡은 배우들이 신기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음. 대본상으로는 이제부터 촬영할 장면, 꽤 진지한 장면 아니었어요?”

“저렇게 들떠 있는데 몰입이 되려나?”

“그러게요. 곧 촬영인데 감정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여러 작품을 촬영하면서, 진지한 장면이나 감정적인 장면을 촬영할 때는 촬영 전부터 몰입하는 배우들을 봐왔던 그들은 서준 리의 모습에 의문을 가졌다.

그에 소피아 켈리가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래 보여도 촬영 들어가면 완전히 바뀐다니까. 다들 준의 연기 보고 감탄하느라 대사 잊지 않게 조심해.”

이제 소피아 켈리도 에반 블록이나 리첼 힐, 데이비스 가렛이나 와이엇 카터처럼 준에 대해 자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소피아 켈리의 말처럼, 서준 리는 ‘액션!’이라는 감독의 외침과 함께 완벽하게 ‘윌리엄 리’를 연기했다.

* * *

하늘을 날던 제트기가 천천히 지상으로 착륙했다.

열린 제트기의 입구에서 퍼스트의 국장, 테일러 워런과 민간인으로 보이는 소년 한 명이 내렸다. 윌리엄 리였다.

“이건…… 야구장에 추락한 비행기랑 비슷하게 생긴 것 같은데, 맞나요?”

윌리엄이 자신이 내린 제트기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때는 너무 놀라서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는데 이것과 비슷한 비행기였던 것 같았다.

“네. 같은 제트기가 맞습니다. 비젯이라는 퍼스트의 제트기죠.”

그에 윌리엄이 놀라 물었다.

“어째서 퍼스트의 제트기가 추락한 거죠?”

“그건 안으로 들어가서 설명하도록 하죠.”

테일러 워런의 말에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퍼스트 본부.

유니폼을 입은 퍼스트 요원들 사이로, 국장 테일러 워런과 윌리엄이 걸음을 옮겼다.

처음 보는 퍼스트 본부와 요원들이 신기할 법도 한데, 윌리엄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굳은 얼굴로 테일러 워런만 따라갔다.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이유가 쉐도우맨과 싸웠던 빌런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복수.

검은색 눈동자가 번뜩였다가,

-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다시금 순해졌다.

테일러 워런이 그런 ‘윌리엄 리’를 잠시 힐긋 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쉐도우맨. 어쩌자고 계승을…….’

윌리엄 리에게서 보이는 ‘잊혀진 빌런, 진 나트라’의 조각에 머리가 아파져 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테일런 워런과 윌리엄이 퍼스트 본부의 가장 중심에 있는 상황실로 들어갔다.

미국의 지도가 떠 있는 커다란 중앙 모니터와 수십 대의 모니터들, 그 앞에 앉아 바쁘게 움직이는 퍼스트 요원들, 그리고 상황실 중간에 있는 투명한 케이스로 봉인된 운석에는 굳어 있던 윌리엄이라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테일러 워런이 투명한 케이스 안에 봉인된 운석을 가리켰다.

“네바다주에 떨어졌다던 운석을 아시나요? 윌리엄?”

“네. NASA로 이동한다고 뉴스에서 봤어요.”

“그게 이 운석입니다.”

놀란 표정으로 운석을 살펴보는 윌리엄에게 테일러 워런은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 운석은 뉴스에 알려진 것보다 몇 주 전, 네바다주에 떨어졌습니다. 대기권에서 이상한 에너지를 감지한 저희 퍼스트는 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몇 주 동안의 검사를 했죠. 그리고 별 이상이 없다는 판단과 함께 뉴스를 내보내고 NASA로 운석을 이동시키기로 했습니다.”

하아-

요원들 중 누군가 한숨을 내뱉은 것 같았다. 테일러 워런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게 문제였죠. 그 이동을 맡았던 것이 바로 야구장에 떨어진 비젯입니다.”

윌리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동하다가요? 왜죠?”

“운석 내부에 생명체와 닿으면 활동을 시작하는 외계의 기생 생물체가 숨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괜찮았다고 하셨잖아요?”

“검사는 굉장히 철저하고 기계적이었습니다. 그 어떤 생명체도 운석에 닿지 않게 특별히 신경 썼죠.”

그게 문제였다.

생명체와 접촉하지 못한 외계 기생 생물이 활동하지 않았고, 기생 생물이 활동하지 않으니 검사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일반 운석으로 판단 내린 저희 퍼스트와 NASA는 그냥 돌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고는 보안의 단계를 내렸습니다. 그때 기생 생물, ‘아로도’가 생명체와 접촉하게 되어…… 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테일러 워런이 손짓하자, 테이블 위로 입체 영상이 떠올랐다.

그건 외계의 기생 생물에 대한 정보였다.

“이건 오늘 새벽, 외계 전문가가 알려준 정보입니다.”

미국의 사건사고들에 대해 들은 벨 나트라가 전해준 정보였다.

아직 벨 나트라에게 쉐도우맨의 비고를 전해주지 못한(새벽까지 쉐도우맨의 생존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테일러 워런이 한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이름은 아로도. 외계의 기생 생물로, 기생한 생명체의 부정적 에너지를 흡수하며 성장합니다.”

검녹색의 보석처럼 생긴 광물의 사진이 나타났다.

“이 광물의 모습은 활동하기 전의 모습이고, 여기 이 모습은 활동할 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테일러 워런의 말과 함께 또 다른 사진이 떴다.

새로운 사진을 보던 윌리엄의 검은 눈동자가 짙어졌다.

아메바나 슬라임처럼 생긴, 검은색과 녹색이 뒤섞인 것 같은 색의 그것은 윌리엄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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