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724화 (72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24화

촬영 준비에 방해가 되지 않게 촬영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배우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쌀쌀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그러게요.”

멜리사 월튼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조금 날씨가 추워도 서준은 괜찮지만 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을 터였다.

‘특히 태우 형이.’

어쩐지 일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다호 형의 팔불출적인 면까지 닮아가는 듯해 웃음이 나오는 서준이었다.

* * *

싸아아아-

어두운 밤.

누군가의 슬픔을 아는 듯, 비가 내렸다.

밝은 빛을 내뿜는 가로등을 지나쳐, 집들과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이용해 이동하던 유난히 새까만 그림자는 사람이 거의 오지 않을 듯한 풀숲에서 이동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솟아올랐다.

빛이 비치지 않는 잔디밭 위.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새까만 구체가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싸아아아-

비와 함께, 그 그림자 구체는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사방으로 활짝 펼쳐졌다. 그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윌리엄이었다.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윌리엄에게로 차가운 빗방울들이 떨어졌다.

여기까지 오는 데 모든 힘을 다했는지,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는 그림자 우산을 만들어 윌리엄에게 씌워주던 제이는 빗방울조차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제이와 달리, 윌리엄은 차가운 비에 자신의 머리카락과 옷을 잔뜩 적시고 있어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낡고 부서진, 고철 덩어리 쓰레기들로 가득하던 풍경이 아니라,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느껴졌던 녹슨 철근의 냄새와 바다 비릿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피 냄새마저도.

윌리엄은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부축하던 사이 묻었던 쉐도우맨의 피가, 비에 씻겨져 사라지고 있었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제이!”

윌리엄이 몸을 숙여 바닥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제이를 불렀다.

“제이! 돌아가야 해!”

당장 돌아가야 했다.

당장 돌아가서 쉐도우맨을 구해야 했다.

“제이!! 제발!!”

철벅-

윌리엄은 젖어있는 바닥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무릎을 꿇고 몸을 웅크렸다. 그렇게 바닥에 있는 제이와 가까워진 윌리엄은 자신의 그림자 친구에게 부탁했다. 소년의 평생, 이렇게 간절한 적이 없었다.

“지금 당장 가야 해!”

하지만 윌리엄의 간절한 모습에도, 아이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제이는 시무룩한 모습으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제발……가야 한다고…….”

제이의 생각이 전해졌다.

그건 ‘계승’으로 제이와 이어져 있는 윌리엄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지금 제이에게는, 그리고 자신에게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막을 우산을 만들 힘조차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쉐도우맨이 있는 폐선까지 이동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안 돼…….”

구할 수 없다.

나의 영웅을.

쉐도우맨을.

바닥에 주저앉은 윌리엄은 넋이 나간 듯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비로 내려간 체온 탓인지 아니면 현재의 상황 때문인지, 창백해진 윌리엄의 얼굴 위로 빗방울이 흘러내렸다.

그건 마치 눈물처럼 보였다.

* * *

“컷! 오케이!”

조나단 감독의 컷과 함께, 살수차에서 뿜어져 나오던 물이 멈추었다.

그에 이번 장면만큼은 넋 놓고 보지 못하고 안절부절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매니저 최태우가 두 손에 폭신한 수건들을 한가득 들고 자신의 배우에게로 달려갔다.

“윌리엄……!”

소리 없이 강렬했던 서준의 감정 연기에, 입을 틀어막고 훌쩍이고 있는 스태프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괜찮아, 서준아? 춥진 않고?/”

“/네. 괜찮아요./”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저도 모르게 한국어가 나오고 있는 최태우에 서준이 웃으며 답했다. 최태우가 서준의 옷을 흥건히 적신 물을 대충이나마 닦아주고 서준도 최태우에게서 받은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털며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이동했다.

물론 사람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능력, [(선)선소나무 꽃의 꽃가루-중급]을 해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선)선소나무 꽃의 꽃가루-중급]

신선들이 키우는 선소나무의 꽃에서 나온 꽃가루입니다.

생물체의 감정을 강화합니다.

“어때요, 조나단 감독님?”

바지까지 축축하게 젖어 앉지는 못하고 서서 모니터링을 한(최태우가 미리 작은 난로를 옆에 두어서 따뜻했다.) 서준이 조나단 감독에게 물었다. 그에 조나단 감독이 씩 웃으며 엄지를 들어 올렸다.

“말해 뭐해.”

“하하하.”

촉촉하게 젖은 서준이 해맑게 웃었다.

그런 서준을 기침이라도 할까 싶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살펴보는 매니저 최태우였다.

“이제 바스트샷 촬영하자. 준.”

“네.”

그말에 최태우가 주섬주섬 짐가방에서 새 수건들을 가져와 대기했다. 막 촬영장으로 향하려던 서준이 그런 최태우의 모습에 웃고 말았다.

“진짜 많이 들고왔네요. 태우 형.”

“몇 번이고 촬영해도 괜찮으니까 편하게 촬영해.”

아직 바스트샷과 클로즈업 샷 촬영이 남아 있는 만큼, 마른 수건도 많았다.

아주 잔뜩 가지고 왔다는 말에 서준과 조나단 감독, 그리고 구경하던 멜리사 월튼과 조성환까지 웃음을 터뜨렸다.

* * *

비가 온다.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루며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와 아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가 창문 밖을 살펴보다가 우산을 쓰고 마당을 지나쳐 대문까지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하며 초조한 듯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또 언제든 아들이 따뜻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물을 준비하고 배가 고플까 싶어 음식도 준비해 두었다.

“윌리엄…….”

버스 사고가 있었을 때부터, 그 안에 윌리엄이 타고 있었고 빌런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부터 부부의 심장은 그대로 멈춰 버린 것만 같았다.

소파에 앉은 엄마가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고, 아빠는 커튼을 활짝 걷어 밖이 훤하게 보이는 창밖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벌써 10년도 지난 지옥 같던 그 날들이 떠올랐다.

새롭게 이사를 해도, 아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도 마치 흉터처럼 남아 있는 그 악몽 같은 시간이 또 한 번 닥쳐올까, 부부의 얼굴에 시름이 쌓여갔다.

아니.

그건 괜찮았다.

자신들이 괴로운 건 괜찮았다.

그러나 윌리엄은 안 된다.

윌리엄만 납치해 갔다는 사실이 부부의 마음에 걸렸다.

10년 전의 일이나 윌리엄이 잊어버린 2년 동안의 일과 연관이 되어 있을 것만 같다는 추측이 들었다.

부부가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그렇지 않으면 미친 듯이 밖으로 뛰쳐나가 길거리를 헤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전혀 정보를 알 수 없는 상황에, 그나마 부부가 이렇게 기다릴 수 있는 것은 퍼스트에서 나온 요원이 윌리엄을 무사히 데려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꼭 데려오겠습니다.’

퍼스트 요원이라고 말한 남자는 단단하고 듬직한 모습과 달리, 어쩐지 부부 못지않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갔다. 이 남자라면 분명 윌리엄을 데려와 줄 거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돌아오면 맞이할 수 있게 집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퍼스트 요원, 아니, 쉐도우맨은 그렇게 말하고는 굳은 얼굴로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이 잊히지 않는 부부였다.

그렇게 1년 같은 1초가 지나갈 때였다.

대문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것이 아빠의 눈에 보였다. 아들을 기다리며 환하게 밝혀놓은 마당의 조명을 받아, 인영의 얼굴이 보였다.

“윌리엄!”

아빠가 벌떡 일어났고 엄마도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부는 허둥지둥 현관으로 향했다. 아빠가 우산을 챙기고 엄마가 커다란 수건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바로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윌리엄이 넋이 나간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윌리엄!”

아빠가 얼른 우산을 윌리엄에게 씌워주고 엄마가 커다란 수건으로 윌리엄을 감쌌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젖는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윌리엄만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어디,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몸이 왜 이렇게 차가워…… 얼른 들어가자.”

“그래. 얼른 들어가서……!”

걱정이 가득한 엄마아빠의 말과 표정에 넋이 나가 있던 윌리엄의 젖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 파문은 천천히 얼굴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다. 눈썹이, 눈동자가, 볼이, 입술이, 턱이 저도 모르게 떨리기 시작했다.

“흐윽…….”

“……윌리엄?”

부부가 무슨 소리인가 파악할 틈도 없이, 윌리엄은 엄마 아빠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커다랗게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소중한 것을 잃은 아이처럼 크고 깊게. 속에 있는 것을 모두 토해내듯 울었다.

그런 윌리엄의 모습에 잠시 놀랐던 엄마 아빠는 이내 말없이 윌리엄을 안아주었다.

부모님의 따뜻한 온기에, 자신의 손안에서 식어가던 체온이 떠올라 윌리엄의 울음소리는 더 커져 버리고 말았다.

[(선)선소나무 꽃의 꽃가루를 발동합니다.]

윌리엄의 슬픔과 괴로움, 절망과 한스러움에,

울컥-

스태프들의 감정이 일렁였다. 저절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조나단 감독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런 기류에 휩쓸리지는 않았다. 그저 이 장면을 그대로 담아내려고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컷! 오케이!”

조나단 감독의 외침으로 모두 현실로 돌아왔다.

살수차가 멈추자, 오늘 촬영 내내 그랬듯 서준 리의 매니저가 얼른 수건을 서준 리에게 건넸다. 그리고 서준 리와 함께 촬영하면서 물을 맞았던 멜리사 월튼과 조성환에게도 수건을 나누어주었다.

두 배우가 일렁이는 감정을 진정시키며 수건으로 물을 닦아내는 사이, 최태우도 열심히 서준을 닦아댔다. 아까까지는 분장 때문에 조심스러운 손길로 닦아내야 했는데, 이번 컷으로 오늘 촬영이 모두 끝난지라 마음 놓고 열심히 닦아낼 수 있었다.

“꼭 개가 된 것 같네요.”

“하하.”

머리카락의 물기를 사정없이 수건으로 문지르는 태우 형의 손길에 마치 목욕하고 나온 대형견이 된 것 같았다.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말하는 서준에 조나단 감독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촬영 수고했어, 준. 밤 촬영에다가 물 맞아서 힘들었을 텐데.”

“괜찮아요, 조나단. 같이 짠 시놉시스잖아요.”

웃으면서 말하는 서준에, 철수 준비를 하던 스태프들의 눈이 다시 그렁그렁해졌다. 본체가 제일 나빴다.

“사흘 동안 푹 쉬고 와.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네. 그럴게요.”

아무래도 물을 잔뜩 맞아야 했으니, 컨디션 조절을 위해 사흘간의 휴일을 정해 놓은 상태였다. 물론 조나단 감독과 촬영팀은 다른 배우와 함께 촬영을 계속할 예정이었다.

“휴일 동안 뭐 할 거야?”

조성환의 물음에 서준이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학교 강의 들으려고요.”

“아하.”

“맞아. 준은 아직 대학생이었지.”

어마무시한 서준의 연기력에,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사흘 후.

휴일 동안 쉬기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 서준은 다시 [쉐도우앤나이트]의 촬영을 시작했다.

“레디, 액션!”

납치 사건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온 윌리엄은 며칠 동안 학교를 쉬게 되었다. 걱정하는 부모님을 출근시킨 윌리엄은 제이와 함께 집 밖으로 나왔다.

“가자, 제이.”

목적지는 공원이었다.

있을까, 없을까.

윌리엄은 떨리는 마음으로 맥이 항상 앉아 있던 벤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벤치와 가까워질수록, 기대와 두려움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숨까지 턱 막혀 버릴 것만 같았다.

후우-

걸음을 멈추고 잠시 깊은숨을 내쉰 윌리엄이 벤치 쪽을 바라보았다. 곧 윌리엄의 눈동자가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누군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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