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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23화 (72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23화

기우뚱-

새롭게 발을 디딘 세계에 넋을 놓고 있던 윌리엄이 정신을 차렸다. 조금 전보다 선명해진 감각이 윌리엄과 쉐도우맨이 갇혀 있는 곳이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면, 몇 배로 강해진 제이라면.

윌리엄은 반짝이는 눈동자로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는 쉐도우맨을 바라보았다. 마주 잡았던 손을 내려 더욱 강하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쉐도우맨을 끌어안았다.

“쉐도우맨! 같이 탈출해요!”

할 수 있을 거다.

무사히 빠져나가 퍼스트에 쉐도우맨의 치료를 맡기고, 자신은 걱정하고 있을 부모님께 돌아가고.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갈 거고, 쉐도우맨도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을 위해…….

“……그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구나.”

희망에 찬 윌리엄의 생각이 쉐도우맨의 목소리에 끊겼다.

“……네?”

쉐도우맨을 바라보는 윌리엄의 눈동자가 작게 떨렸다.

어리고 검은 눈동자에 불안이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하자, 쉐도우맨은 쓰게 웃고 말았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콜록- 하고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내 버렸다. 폐까지 다친 모양인지 숨소리도 거칠었다.

피의 냄새와 녹슨 철의 냄새와 바닷물의 비릿내가 뒤섞여 윌리엄의 섬세해진 감각으로 파고들었다. 불행의 냄새였다.

“아직…… 네가 다루기엔 어려운 힘이야…….”

계승된 힘은 마치 없던 날개가 새롭게 생긴 것 같은 느낌.

예전부터 가족이나 스승의 아래에서 수련했던 나트라인들도 다루기 어려울진대, 이제 막 ‘계승’을 받은 지구인 윌리엄으로서는 더더욱 어려울 게 당연했다.

“그, 그럼 쉐도우맨이, 쉐도우맨이 도와주시면 되잖아요……!”

불행이 한 걸음 다가온 것 같은 기분에, 윌리엄은 쉐도우맨을 잡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마치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듯이.

쉐도우맨의 피에 젖은 손이, 윌리엄의 간절함이 담긴 손을 사과하듯, 달래는 듯 토닥였다.

“……미안하다. 그러기엔 힘이 부족해.”

조금 전 남자와의 전투는 치열했고, 쉐도우맨과 이제는 사라진 파트너의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았다.

밖과 이어진 통로라고는 달빛이 비치는 자그마한 구멍뿐.

윌리엄과 쉐도우맨이 모두 탈출하기에는 에너지가 부족했다.

기우뚱-

불행이 한 걸음 더 윌리엄과 쉐도우맨에게로 걸어왔다.

두 사람의 몸이 좀 더 옆으로 기울었다. 이제 바닷물이 쉐도우맨과 윌리엄의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쉐도우맨이 미소를 지었다.

그에 윌리엄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제가,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윌리엄은 무언가를 직감한 듯 쉐도우맨을 강하게 붙잡았다. 마치 엄마아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어린아이처럼 강하고 간절하게.

후우-

거친 숨을 내쉰 쉐도우맨은 이럴 때면 촐랑대며 나타났던 파트너를 떠올리고는 쓰게 웃고 말았다. 조용하고도 고요한 빈자리가 더없이 슬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게 눈앞에 있는 윌리엄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전…… 전 안 갈 거예요! 쉐도우맨과 함께가 아니라면 절대로……!”

윌리엄이 절실하게 외쳤다.

아무리 쉐도우맨이라도, 윌리엄 자신의 그림자를 조종할 수는 없었다.

윌리엄은 쉐도우맨이 함께 탈출하자고 하지 않는 이상 그림자를 조종할 생각이 단 한 톨도 없었다.

“그러니까 같이 탈출해요! 쉐도우맨!”

토닥토닥-

불안정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는 쉐도우맨이 윌리엄의 덜덜 떨리는 손을 토닥였다. 온기가 가득한 손이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들었다.

“……윌리엄.”

멋진 야구선수가 되렴.

하고 말하려던 쉐도우맨이 입을 다물었다.

아니.

쉐도우맨은 윌리엄이 꼭 멋지고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지 않아도 좋았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지내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평범하고 행복하고 즐겁게.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진 나트라, 그 아이가 가장 원했던 것처럼.

그에 윌리엄이 불안한 표정으로 눈을 글썽이며 외쳤다.

“저 혼자서는 안 간다니까요! 절대로 안 갈 거예요!”

윌리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입술과 턱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쉐도우맨은 그런 윌리엄이 안타까운 듯 쓰게 웃었다. 그러나 쉐도우맨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쉐도우맨, 맥이 아주 작게 속삭였다.

“……부탁한다. 아버지의 그림자…….”

희미한 달빛 아래.

‘계승’을 받은 검은색 그림자가 불꽃처럼 일렁였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그림자에, 윌리엄이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이? 왜 그래?!”

아니.

그 순간만큼은 윌리엄의 그림자 친구, 제이가 아니었다.

아들을 구하려는 아버지, 튤 나트라의 그림자였다.

불꽃처럼 일렁이던 검은 그림자가 아래에서 위쪽으로 올라와, 마치 휘감는 것처럼 윌리엄을 감쌌다.

“잠, 잠깐만! 제이! 쉐도우맨이! 쉐도우맨도 같이!!”

쉐도우맨과 자신의 틈새로 파고드는 검은색 그림자에, 윌리엄이 다급한 얼굴로 외쳤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혼자서만 탈출하게 될 것 같았다.

“제이!!”

왜지?!

왜 제이가 내 말을 듣지 않는 거지!?

쉐도우맨이 한 무언가(계승)로 한 몸 같아진 그림자가, 지금은 전혀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윌리엄이 이 사태의 원인일 쉐도우맨을 보며 외쳤다.

“쉐도우맨! 같이 가요! 제발! 제발 같이……!!”

이어지려던 윌리엄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검은색 그림자가 윌리엄의 머리끝까지 감쌌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윌리엄이 인식할 틈도 없이 빠르게 아래로, 마치 물속으로 잠수하는 것처럼 그림자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림자 이동.

전선을 통해 이동하는 전기처럼, 건물이나 다른 사람들의 이어진 그림자들을 통해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는 쉐도우맨의 이동 방법이었다.

“후우-”

윌리엄이 사라지고 나서야, 쉐도우맨은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고통에 힘든 듯 숨을 내쉬었다. 윌리엄이 걱정할까 봐 티 내지 못하고 있었다.

고요한 주변.

바닷물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놓쳐 버린 남자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퍼스트가 있으니 또다시 윌리엄에게 손을 대지는 못할 터였다. 제 소식을 들을 아버지와 벨도 걱정되었다. 죄송하고 미안할 뿐이었다.

“윌리엄…….”

부디, 오래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메이저리그 경기……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아버지와 벨도 불러서 함께.

쓰레기 더미에 등을 기댄, 피투성이의 쉐도우맨이 아쉬운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부터 무거웠던 눈꺼풀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아주 천천히,

온기가 깃든 숨이 잦아들었다.

* * *

“컷! 오케이!”

조나단 감독의 외침이 들렸다.

클로즈업 샷까지 이번 씬의 모든 촬영이 끝났지만, 촬영장은 조용했다.

“흐읍.”

“쉐도우맨……!”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촬영하고 있는 장면인데 말이다. 그중에서도 [쉐도우맨]의 찐팬들은 숨죽이고 우느라 눈을 퉁퉁 부었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힌 상태였다.

그런 분위기를 만든 두 배우, 서준 리와 에반 블록은 컷 소리가 들리자마자 몰입에서 빠져나온 상태였다.

세트장 아래에 만들어진 공간에 숨어 있던 서준은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를 멈추고 언제 슬퍼했냐는 듯 멀쩡한 얼굴로 일어났고, 피투성이 분장으로 눈을 감고 있던 에반 블록도 생생한 얼굴로 번쩍 눈을 떴다.

“타이밍 괜찮았죠?”

“그래. 모니터링하러 가자.”

그러고는 팔팔한 모습으로 세트장에서 내려와 조나단 감독이 있는 모니터 쪽으로 향했다.

그런 두 배우의 모습이, 영화 속에 푹 빠져 있던 스태프들을 현실로 이끌고 왔다.

“이거 영화관 폭발하는 거 아니야?”

“조나단 감독님…… 위험할지도.”

스태프들은 [쉐도우앤나이트]가 개봉한 이후에 대해 걱정했다. 특히 이런 대본을 쓴 조나단 윌 감독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지금도 [쉐도우맨] 찐팬인 스태프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근데 시놉시스, 준도 같이 만들었대.”

푸쉬쉭-

그 말에 이글이글 타오르던 찐팬들의 머리에 찬물이 쏟아진 것 같았다. 다들 마치 배신당한 것 같은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준! 너마저……!

그런 스태프들의 눈빛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준과 에반 블록, 조나단 감독은 모니터링에 한창 집중하고 있었다.

서로의 앵글에 침범하지 않고 여러 방향에서 찍은 화면들이 여러 대의 모니터에 떠올랐다. 서준과 에반 블록은 말없이 촬영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그러게. 잘 나왔어.”

옆에서 조마조마해하던 조나단 감독이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매튜 조감독에게 오늘 촬영이 끝났다는 소식을 알렸다.

“수고하셨어요. 에반.”

그리고는 에반 블록과 악수를 했다. 오늘로서 에반 블록은 [쉐도우앤나이트]의 모든 촬영을 끝이 난 것이었다.

에반 블록도 웃으며 조나단 감독의 손을 마주 잡았다.

“조나단도 수고했어. 멋진 영화가 나오길 기대할게.”

“네. 열심히 만들게요!”

조나단 감독이 활짝 웃었다.

조나단 감독과 인사를 나눈 에반 블록은 서준과 함께 분장을 지우기 위해 대기실로 향했다.

“이젠 촬영장에서는 못 보겠네요. 에반.”

‘쉐도우맨’이 나오는 장면을 모두 촬영했으니, 이제 에반 블록과 촬영할 일도 없었다. 아쉬워하는 서준에, 서준과의 촬영이 매번 새롭고 설레며 즐거웠던 에반 블록도 아쉬워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 나도 좀 더 촬영하고 싶었는데…… 시놉시스에 쉐도우맨 분량 좀 더 넣어주지 그랬어?”

“어, 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겁니다.

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고 눈만 데굴 굴리는 서준에, 에반 블록이 웃음을 터뜨렸다. 작품의 완성도에서는 절대로 봐주는 게 없는 서준이었다.

‘그래서 더 좋지.’

민망한 듯 볼을 긁적이는 서준에 에반 블록이 웃으며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집에 자주 놀러 갈게.”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 리첼도 불러서 같이 놀아요.”

“걘 연락하기 전에 먼저 올 것 같지 않아?”

하긴, 리첼이라면 자신과 에반보다 먼저 집에 도착해, 자기 집인 양 소파에서 과자를 먹고 있다가 ‘안녕!’ 하고 인사할 것 같았다.

하하하.

같은 이미지를 떠올린 서준과 에반 블록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두 배우의 모습에 스태프들이 눈물을 찔끔 흘렸다.

“본체들은 저렇게 행복한데……!”

아직도 과몰입 중이었다.

* * *

“읏차!”

“……태우 형. 그걸 다 들고 왔어요?”

이사라도 갈 것처럼 짐 한 보따리를 차에서 내리는 매니저 최태우에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집에서 뭔가 차에 싣는 건 알았지만 진짜 전부 다 들고 내릴 줄은 몰랐다.

“야외촬영이잖아. 필요할 것 같아서.”

“그래도 스튜디오 구역인데.”

오늘 촬영은 스튜디오 구역 내의 야외촬영이었다.

바로 옆에 스튜디오를 쓸 수 있어서 따로 준비할 것도 없었다.

“밤 촬영이잖아. 물도 뿌릴 거고.”

올려다본 하늘이 어두컴컴했다.

노을이 있는 저녁도 아니고 정말로 한밤중의 촬영에, 비 대신 물을 뿌릴 살수차까지 여러 대가 촬영장 근처에 준비되어 있었다.

싸아아-

스태프들이 촬영을 준비하는 사이, 살수차는 연습 삼아 비를 내리고 있었다. 폭우도 아니고 이슬비도 아닌, 적당한 양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차가운 물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걸 봐도 별생각 없는 서준과 달리, 최태우의 얼굴은 걱정이 가득했다. 잘못하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었다.

“이건 수건이고 이건 따뜻한 유자차. 핫팩도 가지고 왔어. 충전용 드라이기도 있고 난로도 작은 걸로…….”

음.

한겨울에 찍어도 될 것 같은 철저한 준비였다.

“그럼 난 짐 좀 풀고 있을게.”

“네.”

최태우가 서준의 대기실과 촬영장으로 필요한 물건을 나눠 옮기는 사이, 서준은 오늘 함께 촬영할 멜리사 월튼, 조성환과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 준.”

오늘 오후, ‘윌리엄을 걱정하며 기다리는 부모님’ 씬을 촬영한 멜리사 월튼과 조성환이 웃으며 서준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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