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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22화 (72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22화

딱 봐도 윌리엄을 납치한 범인인 것 같은 남자는 초췌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몸의 반 이상이 슬라임화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꿈틀꿈틀-

남자의 몸에 붙어 있는 검녹색의 촉수들이 길어졌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남자가 촉수를 조종하는 것인지, 촉수가 자아를 가진 것인지 불분명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남자든 촉수든, 쉐도우맨과 윌리엄에게 적대감을 가졌다는 것.

“……네놈들이……!”

남자의 으르렁거림과 함께, 촉수들의 끝이 창날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십수 개의 촉수들이 내리꽂을 듯 허공으로 떠올랐다.

“피해 있어, 윌리엄. 제이, 부탁한다.”

쉐도우맨이 그림자 속에서 기다란 무기를 꺼냈다. 파트너도 어둠 속에 숨어든 사자처럼 빈틈을 노리기 위해 몸을 움츠렸다.

“네.”

끄덕.

윌리엄은 자신들이 쉐도우맨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제이는 윌리엄을 보호하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윌리엄이 갇혀있던 장소는 제법 넓었고 버려진 크고 작은 쓰레기들 덕분에 몸을 숨길 곳도 꽤 많았다.

윌리엄이 조심스럽게 한 걸음 뒤로 움직이려던 것이 신호탄이 되어버린 듯,

콰아앙!

큰 소리와 함께 쉐도우맨이 든 무기와 검녹색의 촉수가 부딪쳤다.

실체가 없는 그림자로 만든 무기와 조금 전까지도 끈적한 점액성 물질이었던 촉수는 마치 딱딱한 물체들이 강한 힘으로 부딪친 것처럼, 번쩍이는 불티들을 만들어내며 강하게 맞붙기 시작했다.

쾅! 콰아앙!!

그사이 윌리엄은 재빠르게 달려가 녹슨 드럼통 뒤로 몸을 숨겼고, 제이는 윌리엄에게 다가오는 자잘한 촉수들을 쳐냈다. 파트너도 먼저 제이와 함께 윌리엄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급했는지 숨까지 가빠졌다.

드럼통 뒤에 몸을 숨긴 윌리엄은 가빠진 숨을 가라앉히면서도 빌런과 쉐도우맨의 전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분명 일반인의 눈으로는 자세히 보기 힘든 속도인데도, 윌리엄에게는 어떻게 막고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신기할 정도로 잘 보였다.

‘직접 싸울 수는 없지만.’

촉망받는 운동선수인 데다가 그림자 친구까지 있는 윌리엄이지만, 체력이나 반사신경 등 냉정히 판단해 보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후우.

조금 아쉬움이 섞인 숨을 내쉰 윌리엄은 자신을 공격하던 촉수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파트너에게 말했다.

“파트너. 이제 쉐도우맨에게 가도 될 것 같아. 도와줘서 고마워.”

별말씀을!

어쩐지 그런 발랄한 대답이 들려온 것 같은 춤사위(?)와 함께, 파트너가 그림자 속으로 쏙 사라졌다.

콰앙!!

곧 쉐도우맨에게 합류한 파트너가 빌런의 촉수들과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씩 밀리던 쉐도우맨이 파트너의 합류로 강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쉐도우맨과 빌런의 전투는 과격해졌다.

검녹색의 촉수가 녹슨 철근을 들어 쉐도우맨에게 날리자 날이 선 쉐도우맨의 무기가 그 철근을 반으로 가르기도 했고, 가시처럼 찔러오는 검녹색의 촉수들을 파트너가 강하게 내려쳐 부서뜨리기도 했다.

윌리엄이 잡혀 있던 곳이 제법 넓기는 했지만, 히어로와 빌런이 신경 쓰지 않고 싸울 정도로 넓지는 않았다. 점점 싸우는 반경이 넓어졌다.

바로 옆에 있던 드럼통이 검녹색의 촉수에 들려 쉐도우맨에게로 날아갔다. 쉐도우맨의 검에 산산조각이 난 드럼통을 보며 윌리엄이 속삭였다.

“제이, 뒤로 가야겠어.”

끄덕.

제이의 엄호를 받으며 윌리엄은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런!”

그걸 알아챈 쉐도우맨이 최대한 윌리엄이 있는 쪽으로 영향이 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빌런은 신경 쓰지 않고 공격을 쏟아부었다.

“……네놈들 때문에……!”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면서.

쉐도우맨은 미간을 찌푸리며 빌런의 공격을 튕겨냈다.

그사이 윌리엄은 탈출구를 찾아보았다. 아무래도 여기 있으면 방해가 될 것 같았다.

달빛을 조명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 탈출구는 한 군데밖에 없었다. 윌리엄의 고개가 위로 향했다. 쉐도우맨이 천장에 뚫어놓은 구멍.

“……힘들겠는데.”

천장으로 올라가는 거야 제이를 밟고(?) 올라가면 되지만, 그 아래 빌런이 있었다.

“천장 뚫을 수 있어, 제이?”

절레절레.

다른 곳의 천장을 뚫어보는 건 어떨까 싶어 물어본 윌리엄에, 제이가 시무룩한 모습으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같이 생각해 보자.”

윌리엄이 제이를 토닥토닥 위로해 주었다.

“구멍은 꽤 있는데…….”

윌리엄이 천장을 살펴보았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크다고는 해도 주먹보다 조금 작은 정도였지만 말이다.

쉐도우맨과 파트너가 윌리엄 쪽으로 촉수가 향하지 않게 주의하면서 싸우는 것과 달리, 빌런은 거리낌 없이 창날 같은 촉수들로 사방으로 찔렀기 때문에 생긴 흔적이었다.

“저걸 넓힐 수는 있을 것 같아?”

으음.

콰광!! 커다란 전투음을 배경으로 생각에 잠겼던 제이는 일단 해보겠다고 몸짓했다. 그에 윌리엄이 활짝 웃으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찰박-

“……어……?”

낯설고도 익숙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윌리엄과 제이가 아래로 고개를 내렸다. 어두웠지만 확실히 보였다. 신발 쪽에 물이 고여 있었다.

……!

그제서야 윌리엄은 자신이 추측했던 것을 떠올렸다.

위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출렁이던 구역.

이곳은 물 위였다.

윌리엄은 빠르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빌런의 공격으로 만들어진 구멍들은 천장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낡고 녹슨 벽과 먼지가 쌓인 바닥에도 가득했다. 그 구멍들 중에서 물이 들어오고 있는 구멍들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제이, 쉐도우맨에게 알려줘!”

제이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 전투 중인 파트너에게 닿았다. 그리고 파트너는 쉐도우맨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뭐!?”

물이 차오르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 쉐도우맨이 정신을 가다듬었다. 쉐도우맨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자신이야 금방 탈출할 수 있겠지만 윌리엄은 아무래도 힘들 터였다.

“새로운 탈출구를 만들어야겠어, 파트너.”

윌리엄을 먼저 탈출시켜야겠다.

자신이 뚫은 출구 아래에는 빌런이 있으니, 새로운 탈출구를 만들 생각이었다.

쉐도우맨의 생각에 동의한 파트너가 길게 늘어났다. 윌리엄이 있는 곳의 천장에 구멍을 뚫기 위해 파트너가 떨어지는 사이, 쉐도우맨은 방어태세를 취했다.

찰박-

이제 쉐도우맨의 발아래에서도 물이 느껴졌다.

“와줘서 고마워, 파트너.”

윌리엄의 말에 짧게 촐랑댄 파트너가 천장을 향해 빠르게 솟아올랐다. 그러고는 윌리엄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뚫었다. 바깥까지 확실히 이어졌는지 희미한 달빛이 내려와 윌리엄에게 닿았다.

이제 제이를 밟고 탈출하면 된다.

그럼 쉐도우맨도 편하게 싸울 수 있을 거다.

한결 마음이 편해진 윌리엄이 쉐도우맨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고 할 때.

파트너가 다시 주인에게로 복귀하려고 할 때.

콰아아앙--!!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커다란 충격음이 들렸다. 그 충격음과 함께 배라고 생각했던 공간도 크게 출렁였다. 물도 더 빠른 속도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았다.

“……쉐도우맨?”

파트너가 촐랑거림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어쩐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윌리엄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먼저 보이는 것은 두 다리를 바닥에 딛고 우뚝 서 있는 빌런과 검녹색 촉수들이 길게 뻗어져 있는 모습. 윌리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

조금 더 왼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검녹색 촉수들을 따라 윌리엄의 고개가 움직였다.

페인트가 벗겨진 벽 아래.

녹슨 철근과 쓰레기로 가득한, 검녹색 촉수들이 창처럼 꽂혀 있는 그곳은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었다.

“아니야…….”

윌리엄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왠지 모르겠지만, 아무 움직임 없이 우뚝 서 있는 빌런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찰박- 어느새 종아리까지 올라온 바닷물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천천히 가라앉는 먼지 사이로, 파트너가 검녹색 촉수들을 뽑아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검녹색의 촉수에 묻어있는 붉은색 피에, 윌리엄은 저도 모르게 그대로 숨을 멈추었다.

“……쉐도우맨!!!”

쓰레기 더미 속.

몸에 검녹색의 촉수들이 꽂힌 쉐도우맨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쉐도우맨!!”

윌리엄은 정신없이 물살을 헤치며 쉐도우맨에게로 달려갔다.

어쩐지 빌런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사이 파트너는 검녹색 촉수를 모두 뽑아내고 지혈하고 있었다.

끄응, 하고 상처를 손으로 누르며 움직이는 쉐도우맨의 모습에 윌리엄은 그제서야 멈추었던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심각하게 다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괜찮으세요?”

윌리엄이 조심스럽게 쉐도우맨의 상체를 일으켜 앉혔다.

쿨럭-

하고 쉐도우맨의 입에서 기침과 함께 피가 나왔다. 아니, 취소. 심각하게 다친 모양이었다. 윌리엄의 눈동자가 걱정으로 물들자, 쉐도우맨이 작게 웃었다.

“괜찮아…….”

피 흘리면서 말하니, 전혀 안 괜찮아 보였다.

“얼른 치료를……!”

하고 윌리엄이 입을 여는 순간.

지금까지 아무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있던 빌런 쪽에서 폭발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세포증식이라도 한 듯, 불길한 검녹색의 점액성 액체가 늘어난 상태로 사방으로 수십 개의 촉수들을 강하게 내리뻗었다. 두께도, 강함도 조금 전 쉐도우맨과 싸울 때보다 두 배 정도 강해진 것 같았다.

마치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검녹색의 촉수들은 배의 이곳저곳을 찔러댔다. 윌리엄과 쉐도우맨 쪽으로도 뻗어왔지만, 파트너와 제이가 만든 방패로 무사히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녹슬고 낡은 배는 무사하지 못했다. 날카로운 촉수들이 뚫은 커다란 구멍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배가 기우뚱, 기울었다. 그와 함께 배 안에 있던 쓰레기들이 한쪽으로 쓸려 내려갔다.

쉐도우맨과 윌리엄도 마찬가지였다. 중력에 따라 기우는 배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위로 날카로운 철근들과 잘린 드럼통 조각들이 쏟아져 내렸다. 쓰레기들을 막기 위해 파트너와 제이가 쉐도우맨과 윌리엄을 둥글게 감쌌다.

윌리엄은 쉐도우맨을 꽉 끌어안았다.

거친 숨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에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짧고도 긴 시간이 흘렀다.

배의 움직임이 멈추자, 파트너와 제이가 그림자를 걷어내며 쓰레기를 이리저리 치웠다. 마치 무너진 공간처럼, 쉐도우맨과 윌리엄은 겨우 몸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에 갇혀 있었다.

빌런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고.

사방은 빛 한 점 없이 어두웠다.

후우-

하지만 그것들보다도 작아진 쉐도우맨의 숨소리가 윌리엄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윌리엄.”

“쉐, 쉐도우맨, 말하지 마세요. 지금 제이에게 부탁해서 도와줄 사람들을 불러오게 할게요!”

약해진 쉐도우맨의 목소리에 윌리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빛이 비치지 않는 공간에서 제이가 힘을 쓰지 못하다는 건 윌리엄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둘 다 나가는 건 힘들 것 같구나…….”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제이랑 파트너가 같이 힘내면……!”

윌리엄의 눈에 맺힌 눈물이 쉐도우맨의 위로 떨어졌다. 직접 만난 건 짧은 기간이었지만, 오랜 시간 윌리엄의 영웅이 되어주었던 쉐도우맨이었다.

이렇게, 이렇게…….

더 이상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조차 괴로워, 윌리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서러움과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파트너…….”

쉐도우맨의 목소리에 파트너가 쓰레기 더미를 헤쳐나갔다. 그리고 바깥과 이어진 틈을 만들어냈다.

반짝.

바깥에서 비친 밝은 달빛이 쉐도우맨과 윌리엄 사이로 내려앉았다.

“……배워놓길 잘했군.”

후우.

숨을 내뱉은 쉐도우맨이 작게 웃었다.

이걸 배워서 언제, 누구에게 쓸 생각이냐며 잔소리하던 가족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식사도 못 했다는 것도.

얼굴이 눈물로 젖은 윌리엄이 보였다.

네가 나 대신 두 사람을 위로해 줬으면 하지만.

“……힘들겠지…….”

윌리엄은 기억을 잊고 있는 편이 더 행복할 테니까 말이다.

“……쉐도우맨?”

의미 모를 말들에 윌리엄이 훌쩍이며 되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후우.

쉐도우맨이 다시 숨을 내뱉었다. 천천히 숨이 가빠졌다. 불안함에 윌리엄이 쉐도우맨의 손을 꼭 붙잡았다. 손안의 온기가 곧 사라질 것 같았다.

좀 더 정식으로 해야겠지만 조건은 충분했다.

필요한 것은 빛과 그림자, 접촉과 주술문.

쉐도우맨이 윌리엄의 손을 마주 잡았다.

“[나의 어둠이-]”

나트라의 오래된 고어(古語)로 된 주술문에, 쉐도우맨의 심장에서 검고 동그란 것이 천천히 올라왔다. 나트라인들이 ‘씨앗’ 또는 ‘순수한 어둠’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검은 구체에, 눈물로 붉어진 윌리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쉐도우맨……이게 무슨……?”

놀라는 윌리엄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쉐도우맨은 주술문을 이어나갔다.

“[너의 빛이 되기를-]”

달빛을 받은 ‘순수한 어둠’이 환하게 빛났다.

마치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Eclipse)처럼 환하게.

그리고 ‘빛나는 순수한 어둠’은 쉐도우맨의 손과 이어진 윌리엄의 손을 따라 이동해, 윌리엄의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두근!

순간, 윌리엄은 심장이 크게 고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건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그저 친구 같았던 제이가, 한 몸으로 이어진 듯한 느낌.

그리고 아주 작았던 힘이 몇 배로 불어나 온몸을 가득 채우는 느낌.

둔했던 감각들이 바짝 세워져 날카로워진 느낌.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디딘 기분이었다.

밀어닥치는 새로운 감각에 당황하는 윌리엄을 보며, 약해진 자신의 힘과 사라진 파트너를 느끼며, 쉐도우맨은 다시 한번 작게 중얼거렸다.

“나의 어둠이, 너의 빛이 되기를.”

계승(繼承/successio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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