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720화 (72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20화

“컷! NG!”

조나단 감독이 외쳤다.

그에 몸을 뒤로 돌려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서준과 모자로 반쯤 가려진 얼굴로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던 커크 로렌스의 얼굴이 풀어졌다.

“비명이 빨랐어요. 조금만 더 늦게…….”

NG는 두 배우의 연기가 아니라 엑스트라 배우 때문이었다.

주의를 받는 엑스트라 배우들을 보던 서준은 고개를 돌려 커크 로렌스를 바라보았다.

조나단 감독과 마린사가 캐스팅한 배우라서 그런지, 짧은 장면을 촬영했을 뿐이었지만 연기력이 좋았다. 물론 서준이 봤던 작품들 속에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던 배우였기에 별로 걱정하지는 않았다.

‘다 비슷비슷한 캐릭터이긴 했지만.’

게다가 다시 한번 진행되는 촬영에도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버스에서 내려가는 커크 로렌스의 모습을 보니, 에반이나 조나단의 말대로 성격도 괜찮은 편인 것 같았고.

‘친해지고 싶은데.’

‘배우’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리낌 없이 말을 건넬 수는 없었다. 자신이 친해지고 싶은 거지, 커크 로렌스 배우는 다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일만 하러 온 직장인 타입이라.’

물론 서준도 연기를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작사의 막대한 투자, 수많은 스태프들, 감독과 배우들, 작품에 맞춰 만들어진 세트장, 엄청난 홍보비 등. 작품의 흥행에 달려 있는 돈이나 사람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래서 더 책임감을 갖고, 한 장면 한 장면 열심히 연기했다.

하지만 그 기본바탕에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가득 깔려 있었다.

서준의 주변도 그랬다. 각자 연기 스타일은 다르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가득한 배우들이 있었다.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하루 이틀이라도 신나게 떠들 수 있는.

‘로렌스 배우는 어떨까?’

회사에 다녀본 적은 없지만, 회사에 관련된 대본들이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게시글은 꽤 보았다.

회사 일은 회사에서만.

그게 직장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동의하는 문장이 아닐까 싶었다.

‘로렌스 배우도 그러려나.’

연기에 대한 열정이 없는 배우라니.

물론 모든 배우가 연기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서준도 생각하지 않았다. 수많은 배우들이 있는 만큼 각자의 생각도 다를 테니까.

‘그래도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데…….’

서준은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커크 로렌스 배우를 살폈다. 처음 본 직장동료가 마구 들이대면 부담스러울 테니까 말이다.

그런 서준의 조심스러운 눈빛이, 커크 로렌스는 아주 잘 느껴졌다.

‘에반에게서 듣긴 했는데…….’

오늘 첫 촬영인 서준 리와는 달리, 에반 블록과는 몇 번 촬영을 했던 커크 로렌스였다.

가끔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마다 빠지지 않았던 이야기가 바로 서준 리 배우에 대한 이야기였다.

에반 블록 자신도 가끔 매너리즘을 겪을 때가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연기에 대한 애정이 식은 적 없었던 배우, 서준 리.

‘배우도 엄청 좋아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을 보며 씨익 웃는 에반 블록의 모습이 떠오른 커크 로렌스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군.’

슬쩍슬쩍 비치는, 친해지고 싶다는 서준의 눈빛이 커크 로렌스를 더욱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매튜 조감독의 외침으로 촬영이 재개되었다.

그에 커크 로렌스에게로 가끔 향하던 서준 리의 눈빛이 바뀌었다. 분위기도 그랬다. 처음 보는 사람이 봐도, ‘아, 저 배우는 연기에 엄청 열중하는구나!’라고 감탄할 법한 모습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반짝반짝 빛난다는 게 저런 건가 싶었다.

연기에 대한 애정.

모자를 눌러쓰고 후드까지 뒤집어쓴 커크 로렌스는 서준 리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는 없는 부분이라 신기했다.

“레디,”

그래도 지금은 일에 집중할 때였다.

“액션!”

맡은 일은 열심히 하는 커크 로렌스였다.

* * *

다음 촬영은 같은 장면의 바스트샷 촬영이었다.

그 때문에 카메라와 조명 등 촬영 장비가 반으로 잘린 버스에 설치되고 있었다.

“크로마키 설치하겠습니다!”

거기엔 초록색 크로마키도 있었다.

‘더 볼륨’이라는, 촬영장을 둘러싼 대형 스크린이 배경을 만들어줘서 버스 밖 배경은 문제없었지만, ‘윌리엄의 그림자, 제이’와 ‘빌런의 검녹색 액체’의 전투를 CG로 만들려면 아무래도 소규모의 크로마키가 필수였다.

그렇게 촬영장이 준비되고 있는 사이, 배우들은 촬영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준비된 의자에 앉아 작업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커크 로렌스도 그랬다.

의자에 앉아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보았다. 대사가 많은 장면이라면 대본을 봤겠지만, 대사가 ‘……YOU……!’밖에 없는 장면이니 따로 볼 것도 없었다.

그에 시선이 저절로 옆으로 향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엑스트라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서준 리가 보였다. 에반 블록이 말했던 ‘배우를 좋아한다.’는 건 엑스트라 배우들에게도 해당하는 모양이었다.

“거기서는 좀 더 감정이 드러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슈퍼스타 서준 리와 잠깐 인사라도 나누기 위해 찾아왔던 몇몇 엑스트라들이었는데, 어느새 ‘배우 서준 리의 연기교실’이 열리게 되었다.

“오. 그렇군요.”

“리! 저도 이번에 독립 영화에 출연하는데…….”

“정말요? 제목이 뭐예요? 나오면 꼭 볼게요.”

가르치는 선생님도, 배우는 학생들도 눈이 반짝반짝하고 입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에 관심이 없던 다른 엑스트라들도, 커크 로렌스도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건지.’

커크 로렌스는 신기하다는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커크 로렌스, 37세.

배우가 된 것은 7년 전.

딱히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고, 그저 평소처럼 웨이터 일을 하다가 근처 식당에 촬영 온 영화 스태프가 급하게 엑스트라를 구한다고 해서 얼떨결에 카메라 앞에 서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카메라에도 제법 잘 나오고 연기도 곧 잘해 금방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그걸로 끝난 줄 알았는데, 그 영화감독의 추천으로 다른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하게 되고 대사도 한 줄 두 줄 생기게 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왜 촬영을 계속 했냐고 묻는다면,

‘돈 때문이지.’

식당 웨이터보다 훨씬 많이 벌더라.

그렇다고 많은 돈을 원한 건 아니었고, 보통 사람들의 이력서에 지원동기를 쓸 때 솔직하게 쓴다면 ‘월급을 많이 줘서요.’라고 쓸 정도의 욕심이랄까.

그렇다 보니 이미지 변신이나 새로운 캐릭터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도 않았고, 연기에 대한 애정도 없어서, 그냥 한 우물만 팠다.

그렇게 계속 비슷한 성격의 캐릭터만 연기하다 보니, 따로 배우지 않아도 그런 성격의 캐릭터 연기만큼은 잘하게 되었다.

‘그게 여기까지 오다니…….’

[쉐도우앤나이트]의 빌런으로 출연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여튼.

그래서 더욱 서준 리가 신기했다.

데뷔한 지 이제 거의 20년이 가까워지지 않았나. 어렸을 때부터 했으면 이제 질릴 만도 할 텐데, 누가 봐도 여전히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저 외침에 즐거워하는 서준 리의 표정도 신기했다.

서준과의 촬영 내내, 자신과는 참 다른 종족이구나, 하고 생각한 커크 로렌스였다.

* * *

“/……와. 미쳤네……./”

“엄청 크네요!”

세트장이 그다지 필요 없었던 [오버 더 레인보우2]가 첫 할리우드 촬영이었던 최태우는 물론이고, 마린사의 스케일에 익숙했던 서준의 입에서도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조나단 감독과 매튜 조감독이 씨익 웃었다.

“미술팀이 고생 좀 했지.”

[쉐도우앤나이트]의 새로운 세트장.

거대하고 낡은 배의 아랫부분 중 일부분이 스튜디오 안에 옮겨져 있었다.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쓰레기들과 상자들. 그리고 폐선답게 낡고 녹슨 철판들은 이곳저곳 찌그러져 있는 데다가 금방이라도 구멍이 날 것처럼 보였다.

“물론 안전에는 문제없습니다.”

손을 들고 질문하려던 매니저 최태우보다 먼저 대답하는 매튜 조감독이었다.

“전부 무겁고 날카로워 보이지만 부딪혀도 다치지 않는 소재로 만들어진 소품들이에요. 물론 몇몇 소품들만 빼고 전부 다 고정되어 있어서 부딪힐 일도 없을 거고요.”

이제는 ‘배우의 안전에 매우 철저한’ 매니저에게도 익숙해져 미리 준비한 것처럼 다다다 대답했다. 그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최태우가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서준과 조나단 감독이 작게 웃었다.

“근데 저 배 옆의 기계는 뭐예요? 고정하는 거예요?”

배의 양쪽에 고정한 듯한 기계가 있었다. 어디서 비슷한 걸 본 것 같기도 했다.

“흐흐. 잠시만.”

잠시 스태프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온 조나단 감독이 신호를 보내자, 곧 작은 소리와 함께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

서준과 최태우가 다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배의 양쪽에 설치된 기계가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마치 파도에 흔들리는 배 같았다.

아.

어디서 봤나 했더니, [생존자들]을 찍을 때 세트장을 흔들리게 하던 기계와 비슷한 것이었다.

“전투 장면에서 이걸 쓰면 더 실감 나겠네요.”

“그치?”

서준의 말에 조나단 감독이 씨익 웃었다.

“배 위에서의 전투 장면에서 써 봤는데, 진짜 좋더라. 현장감도 살고.”

서준이 쉬는 날 찍었을, 쉐도우맨과 빌런의 전투 장면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그리고 이거 물도 들어와. 이것 봐.”

“오오!”

마치 새로 산 장난감을 보여주는 아이처럼 신나게 세트장에 대해 설명하는 조나단 감독과 그에 맞춰 반짝이는 눈으로 세트장 여기저기를 구경하는 서준이었다.

“으음.”

그저 일하러 온 커크 로렌스(분장 때문에 서준보다 일찍 왔다.)는 이해 못 할 장면이기도 했다. 신기하긴 하지만 그냥 세트장 아닌가. ……저렇게 신이 날 일인가?

신이 난 서준과 조나단 감독, 그리고 둘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보는 커크 로렌스를 바라보던 에반 블록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잠시 후.

에반 블록과 커크 로렌스, 그리고 스턴트맨 김재연이 리허설을 하는 사이, 서준이 분장을 끝나고 촬영장에 나타났다. 곧 촬영 준비가 시작되었다.

“어때요, 준? 아픈 곳은 없어요?”

“네. 괜찮아요.”

영화 속에서 빌런의 촉수에 돌돌 묶여 천장에 달랑달랑 매달릴 예정인 서준을 스태프들이 밧줄로 묶어 천장에 매달았다. 아래에 에어 매트도 있고 밧줄도 튼튼한 데다가 와이어 안전장치까지 허리춤에 연결되어 있어 문제는 없었다.

“이렇게 공중에 매달리는 건 처음인데…….”

물론 이번 생에서.

어떤 전생에는 직접 날개를 펼쳐 하늘을 날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고소공포증은 전혀 없는(그렇게 높지도 않았다.) 서준이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그에 따라 몸 전체가 오른쪽 왼쪽으로 흔들렸다.

달랑달랑.

진자의 구슬이나 괘종시계의 시계추가 된 기분이 들었다.

“/서준아! 너무 흔들지 마!/”

“아하하하.”

기겁한 최태우의 외침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해맑은 것만 빼면, 꼭 악당에게 납치당한 왕자님 같네.”

“하하. 진 나트라가 왕자님이긴 하죠.”

에반 블록의 말에, 오늘 커크 로렌스를 대신해 몇몇 액션 장면을 촬영할 김재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서준이 공중에 매달리고, 곧바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레디,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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