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17화
“레디, 액션!”
퍼스트 내 연구실.
국장 테일러 워런의 눈을 피해, 친분이 있는 연구원에게 검사를 맡긴 맥이 물었다.
“기억상실일 때 말입니다. 잃어버린 기억이 현재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까?”
윌리엄의 가족에 대한 불안은, 온전히 ‘윌리엄 리’만의 걱정이 아닌 ‘진 나트라’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맥과 벨 나트라는 추측했다.
“경우에 따라 다르죠.”
쉐도우맨의 팬인 연구원은, 맥은 봐도 모르는 기계들을 이리저리 만져대며 대답했다.
윌리엄 가족의 친자 검사와 더불어, 맥(나트라인)의 신체 정보를 바탕으로 윌리엄에 대한 검사도 진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다중인격 중에 다른 인격체로 변하면 알레르기가 사라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알레르기가요?”
“네. 같은 몸이라고 해도, 인격이 달라지면 알레르기도 없어지는 거죠.”
기억에 따라 몸 상태가 달라진다니.
신기한 이야기였다.
“반대로 심장이나 장기를 이식했을 때, 심장의 전 주인의 기억이 남아있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그건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맥의 말에 연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기억상실에 걸렸다고 해도 정말로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몇몇 조각들이 남아서 현재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죠. 그게 사소한 버릇이든, 트라우마든요.”
트라우마.
맥은 저도 모르게 나올 것 같은 한숨을 삼켰다.
* * *
오늘은 서준과 멜리사 월튼, 조성환의 촬영 일정이 있었다.
촬영 시작 전 마지막 체크만 남은 상황이라, 조나단 감독도, 매튜 조감독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촬영할 준비를 끝낸 세 배우는 조금 떨어진 곳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게 한예대 수업이구나.”
“뭐라고 하시는 거야?”
“영화 대본 분석 중이에요.”
화제는 서준의 대학 수업이었다.
“학교 수업도 듣고 촬영도 하고. 되게 성실하네. 준은.”
“그러게요.”
멜리사 월튼의 말에 조성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봤던 작품들과, 함께 촬영하면서 느낀 연기력을 생각해 보면 더 배울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이렇게 수업을 듣는 서준이 대단해 보였다.
하하.
두 배우의 칭찬에 서준이 쑥스러운 듯 웃었다.
“배우분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간단하게 대본 리딩도 하던 중, 매튜 조감독이 세 배우에게 찾아왔다. 이제 촬영 준비가 끝났나 보다.
윌리엄 가족의 이층집.
세트장 위로 올라간 세 배우를 향해 조명과 카메라들이 움직였다.
카메라와 이어진 모니터 화면에 세 배우의 모습이 나타났다. 잠시 눈을 데굴 굴려 화면을 확인한 조나단 감독이 입을 열었다.
“레디,”
그 목소리에 대학 수업을 듣는 이서준은 사라지고,
“액션!”
고등학생 윌리엄 리가 나타났다.
맥과의 만남 이후, 윌리엄은 하루하루를 기대와 희망, 걱정과 근심을 오가며 지내고 있었다. 눈에 띌 정도로 들떠 있다가 금세 꼬리를 축 내린 강아지처럼 시무룩해지기도 하고, 다시 꼬리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강아지처럼 보이기를 반복했다.
저녁식사 시간.
평소의 차분하고 밝던 윌리엄과는 다른 모습에 부모님이 의아해했다.
“무슨 고민 있니, 윌리엄?”
“아뇨. 그냥…… 이제 몇 달 후면 졸업하잖아요. 앞으로의 일들도 고민되고…… 그래서요.”
양심이 콕콕 찔리지만, 좋은 핑곗거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에 엄마 아빠는 이해한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엄마 아빠한테 말하렴.”
“야구를 해도 되고 대학을 가도 돼. 다른 것들도 괜찮고.”
“물론 위험한 것만 아니면 말이야.”
스카우트들이 보러 올 정도의 실력을 가진 윌리엄인데도, 두 사람은 진심으로 윌리엄이 새로운 길을 선택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런 부모님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님이 윌리엄은 정말로 좋았다.
“……그럴게요.”
뜨거운 것이 가슴 속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그건 감격이기도 했고, 불안이기도 했다. 윌리엄은 자신이 엄마 아빠의 친자식이기를 정말로 간절히 바랐다.
“……저 먼저 올라가 볼게요.”
눈물을 찔끔 나올 것 같아, 윌리엄은 얼른 2층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오르는데, 거실에서 도란도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진실을 알게 되면 저곳에 자신의 자리가 없을까 봐 씁쓸해졌다.
서준 리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결과를 아는 관객들도 충분히 ‘윌리엄의 고민’에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서준의 표정 연기는 섬세했고 그 안에 담긴 감정도 확실하게 전해졌다.
반의 확신과 반의 불안.
대사 없이도 전해지는 감정이, 보고 있던 스태프들마저 울컥하게 만들었다.
“어쩐지 진 나트라가 어땠을지 알 것 같네.”
“그러게요.”
어린 진 나트라가 나트라 행성에서 살던 당시.
어떤 고민을 했을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얼마나 불안해하고 주눅이 들고, 외로워했을지.
지금의 ‘윌리엄’을 보면 조금이나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억은 잃었지만, ‘진 나트라’와 ‘윌리엄 리’는 같은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진 나트라는 더 어렸었죠…….”
한 스태프의 울적한 말에 다른 스태프들이 입을 다물었다. [쉐도우앤나이트]의 스태프들 중 [쉐도우맨 시리즈]의 팬이 아닌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진……!”
과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입을 틀어막고 촬영장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방에 들어와, 방문을 닫은 윌리엄이 터벅터벅 침대로 걸어가 걸터앉았다. 환한 불빛을 받아 생긴 그림자가 윌리엄을 따라 움직였다.
“어떻게 생각해, 제이? 내가 진짜 엄마 아빠의 친아들일까?”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하급)이 발동합니다.]
길게 늘어난 그림자가 윌리엄의 앞에 나타나, 침대 옆 서랍 위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낡은 곰인형 두 개와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액자에 넣어져 올려져 있었다.
윌리엄이 손을 뻗어 액자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제이가 윌리엄의 어깨에 걸터앉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액자 안 사진.
서로 닮은 세 가족이 활짝 웃고 있었다. 그에 윌리엄도 미소를 지었다.
“닮았지?”
끄덕.
제이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수긍했다.
그에 윌리엄이 작게 웃었다.
“어릴 때부터 불안할 때마다 너한테 이렇게 물었는데…… 매번 대답이 똑같네.”
액자 속, 부모님의 얼굴을 만지는 윌리엄의 손길이 조심스럽고 다정했다. 그런 윌리엄을 안심시키려는 듯, 어깨에 올라가 있던 제이가 윌리엄의 얼굴에 몸을 기댔다.
잠시 그렇게 사진들을 보고 있는데, 윌리엄의 휴대폰이 울렸다.
친구인가 싶어, 사진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드는 윌리엄. 화면에 나타난 이름에 그대로 멈춰 버렸다.
[맥 브라운]
윌리엄의 얼굴 위에 놀람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많은 감정이 지나갔다. 기대와 두려움, 설렘과 염려, 긴장과 불안.
휴대폰을 들고 있던 윌리엄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제이가 응원하듯 윌리엄의 손을 감쌌다.
“후우.”
윌리엄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림자일 뿐이라 제이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그 접촉만으로도 팔딱거리던 심장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고마워, 제이.”
별말씀을.
어깨를 으쓱한 것 같은 제이가 휴대폰을 가리켰다.
윌리엄은 각오한 표정으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화면을 누르는 손가락이 조금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윌리엄?
“네, 네. 저예요. 맥.”
낮고 다정한 목소리에, 허리를 반듯하게 세워 앉은 윌리엄이 얼른 대답했다.
-저녁이긴 한데, 결과가 나와서 말해주려고 연락했어. 네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맥의 말에 제이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윌리엄이 얼마나 이 연락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전화에 집중하느라, 그런 제이를 보지 못한 윌리엄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맥의 목소리에 웃음이 서려 있는 건 착각일까.
어쩐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어릴 적부터 홀로 고민해왔던 의문이 풀릴 것 같았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
-먼저 윌리엄 네가 궁금해했던 유전자 검사, 그러니까 친자검사 말인데…….
온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몸을 울리는 심장 소리가 너무 큰 것 같았다. 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윌리엄은 최대한 모든 소리를 죽였다.
들이마시고 내뱉던 숨도 멈추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떨리던 손도 멈추었다. 그대로 얼어버린 것 같았다.
침묵으로 가득 찬 방.
휴대폰 건너 맥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네 친부모님이 맞아. 몇 번이고 검사했으니까 확실해.
쉐도우맨이 단언했다.
한 치의 의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목소리로.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인지할 틈도 없이 펑펑 쏟아졌다.
그 눈물 안에는 일곱 살 때부터 지금까지 윌리엄이 가지고 있던 불안과 걱정, 서러움과 외로움이 모두 담겨 있었다.
자신은 엄마 아빠의 친아들이었다.
두 분을 속이고 있는 게 아니었다.
흐읍. 흐윽…….
소리를 죽인 윌리엄의 울음이 휴대폰 건너 맥에게까지 전해졌다.
-…….
맥은 조용히 그 울음을 들어주었다.
어쩐지, 이렇게 울지도 못했을 진 나트라가 생각나는 것 같았다.
“감, 감사합니다. 맥. 정말로요.”
울음을 그치고 진정한 윌리엄이 다시 한번 감사를 전했다. 그 목소리에는 기쁨만이 남아 있었다.
-아니야. 도움이 됐으면 다행이야.
“정말,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윌리엄이 미소를 지었다.
불안을 날려 버린 완전한 미소였다.
-그리고 제이 말인데.
“네.”
윌리엄이 다시 귀를 기울였다.
제이의 일도 중요했다.
-네가 어릴 때 어떤 일으로 네 그림자 속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어. 그때 이런저런 사건이 많았거든.
“그렇군요.”
휴대폰 건너, 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만약 윌리엄 네가 원한다면 제이를…… 떼어놓을 방법을 찾아볼게.
“……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에 깜짝 놀란 윌리엄이 제이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어깨에서 내려와 두 곰인형 앞에 있는 제이.
제이는 윌리엄이 어렸을 때부터 저렇게 두 개의 곰인형을 바라보고는 했다. 그래서 이름도 곰인형 중 하나인 ‘진’(좀 더 좋아하는 듯했다.)의 이름을 따서 ‘제이’라고 지었다.
-부모님과 달라서 걱정했잖아. 그렇다면…….
“아뇨. 괜찮아요……!”
윌리엄이 맥의 말을 끊고 답했다.
제이에게는 들리지 않게, 하지만 확실한 목소리로.
“제이의 존재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한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긴 시간을 함께 있었던 친구인걸요. 계속 같이 있어도 문제가 없다면 계속 함께 있고 싶어요.”
윌리엄의 말에, 맥은 잠시 생각하는 듯 말을 멈추었다.
-같이 있어도 문제는 없을 거야.
“그럼 이대로도 괜찮아요. 맥.”
-그래, 알았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웃음기가 섞인 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윌리엄도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이만 쉬어. 윌리엄.
“정말 고마워요, 맥.”
전화를 끊은 윌리엄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든 고민이 해결되자 마음이 가벼웠다. 너무너무 가벼워져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을 열고, 타타닥-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올라갈 때와는 전혀 다르게, 생기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윌리엄?”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엄마 아빠.
윌리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 아빠에게 다가가, 꼭 껴안았다. 진짜 자신의 엄마 아빠였다.
“응? 무슨 일 있었어?”
“아뇨. 그냥 우리 가족이 너무 좋아서요.”
갑작스러운 아들의 포옹에, 잠시 놀랐던 엄마 아빠가 하하 웃으며 윌리엄을 마주 앉았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는 엄마 아빠의 손에,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던 윌리엄은 어째선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자신의 그림자 친구, 제이도 손짓으로 불러 껴안았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정말로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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