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16화
제이가 나타나자마자, 테이블에 올라와 제이에게 툭툭 잽을 날리는 맥의 철부지 파트너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역시 아버지의 그림자의 영향을 받았나?’
하지만 이것만으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자아를 가진 그림자’라는 게 나트라 행성에서도 동화 속 이야기로 내려올 정도로 극히 드문 일이었으니까.
“그럼 먼저, 언제부터 그림자 친구가 있었는지 기억하니?”
“네. 물론이죠.”
윌리엄이 웃으며 대답했다.
“일곱 살 때부터예요.”
“일곱 살…….”
예상보다도 어릴 때라, 맥은 놀라고 말았다.
진 나트라, 아니, 윌리엄을 집으로 돌려보냈을 때쯤의 나이도 그쯤이었다.
‘설마. 그때부터?’
“뭔가 계기 같은 게 있었어? 어떤 물건을 만졌다거나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났다거나…….”
윌리엄은 잠시의 고민도 없이 쉐도우맨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제가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서 거의 2년 동안의 기억을 잃었거든요.”
!!
맥은 저도 모르게 나올 뻔한 숨을 삼켰다.
‘알고 있었구나.’
부모님이 이야기해 주신 걸까?
어쩌면 2년의, 기억 속 빈 공간의 이질감을 윌리엄이 먼저 알아차렸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교통사고라니.
현시대에는 가장 적당한 핑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부터 제이가 같이 있었어요.”
윌리엄이 시선을 아래로 내려 따뜻한 눈빛으로, 파트너와 놀아주고 있는 제이를 바라보았다.
“같이 놀기도 했고 같이 자기도 했어요. 무서워서 자기 힘들거나 무서운 꿈을 꿀 때는 어렸던 저를 달래줬고 공부를 하거나 숙제가 있을 때는 부모님처럼 살펴봐줬어요. 가끔 싸울 때도 있었지만.”
윌리엄이 웃으며 말했다.
“일곱살 때부터 지금까지 제 곁에 있어준 오랜 친구예요.”
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렇게 오래되었으면 나 말고 제이에 대해 아는 사람이 또 있니?”
“아뇨. 맥 말고는 없어요. 어렸을 때는 엄마 아빠한테 말했지만…… 제 상상의 친구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제이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요.”
목이 타는지 윌리엄은 앞에 놓인 음료를 조금 마셨다.
잠시 기다려 준 맥이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윌리엄. 그림자를 조종할 수 있니? 네 의지대로 말이야.”
파트너가 가끔 사고를 치기는 하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그림자를 조종할 수 있는 쉐도우맨처럼 말이다.
그에 윌리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런 건 못 해요. 제이는 제이의 의지대로 움직여요.”
“그렇구나. 알았어.”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윌리엄은 진지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맥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제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맥이 잠시 멈칫했다.
자신이야 윌리엄에게 친밀감을 가지고 있으니 편하게 대하고 있지만, 아무리 자신이 슈퍼히어로라고 하더라도 윌리엄이 너무 솔직하게 풀어놓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인 것 같았는데 말이다.
“음. 윌리엄.”
“네.”
윌리엄이 맥을 바라보았다.
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내가 쉐도우맨이라고 해도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일곱 살 때부터 숨겨온 이야기잖아.”
그에 윌리엄이 웃었다.
“쉐도우맨이라서 말하는 거예요. 정말 팬이거든요. 그리고…… 궁금했거든요.”
조금 붉게 충혈된 두 눈동자와 테이블 위에서 꼼지락대는 두 손. 그리고 억지로 위로 끌어올리는 듯한 떨리는 입꼬리.
오늘 처음 보는 감정이 담긴 미소를 지은 윌리엄이 쉐도우맨을 바라보았다.
“쉐도우맨.”
그러고는 슈퍼히어로 쉐도우맨에 대한 팬심, 그 아래에 숨겨져 있던 본래의 마음을 토해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아주 무거운 의문이었다.
“저는 누구죠?”
Who am I?
그 질문에 쉐도우맨은 눈을 부릅떴다.
눈가까지 붉게 물든 소년, 윌리엄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어렸을 때의 저는 제이, 그러니까 살아서 움직이는 그림자 친구가 엄마 아빠도, 친구들에게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이를 소개하고 같이 놀고 그림에도 그렸죠. 하지만 제이는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 때문에 엄마아빠는 제이를 제 상상 속의 친구라고만 생각했어요.”
윌리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안에 든 감정은 가볍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죠.”
그건 조금 전 이야기했던 밝고 귀여웠던 이야기의 뒷면.
달의 뒷면처럼 어두운 감정이 가득했다.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저처럼 그림자가 움직이는 사람은.”
눈을 부릅 뜬 맥은 그대로 멈춰 버린 듯했다.
“엄마 아빠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마저도! 그 누구의 그림자도 제이처럼 움직이지 않았어요.”
윌리엄의 감정을 토내해는 듯한 목소리에 맥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래서 그림자에 대해 공부했어요. 그리고 알게 됐죠. 원래 그림자라는 건, 그저 빛이 물체를 통과하지 못해 만들어지는 그늘이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제이처럼 자아를 가지지 못하는 자연적 현상이라는 걸.”
윌리엄이 두 손을 마주 잡고, 새하얗게 변한 정도로 꽉 쥐었다.
“오직 나만! 오직 내 그림자만 이렇다는 걸…….”
그때의 놀랍고도 서러웠던 감정이 떠오르는지, 꽉 쥔 윌리엄의 두 손이 덜덜 떨렸다. 그 손을 그림자 친구, 제이가 토닥여주었다. 그에 윌리엄이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며, 울컥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죄송해요. 이런 이야기를 누구에게 한 적이 없어서…… 감정이 격해졌어요.”
맥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뜨거운 것이 목에 걸린 것 같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적, 사실을 알고 제이를 피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때, TV에서 쉐도우맨 당신을 보게 되었죠. 그림자를 조종하는 당신을요.”
윌리엄이 고개를 들었다.
물기로 젖은 윌리엄의 눈과 마주친 맥은, 공원에서 봤던, 그리고 지금도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윌리엄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알아차렸다.
그건 동질감과 안도감.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자신이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쉐도우맨에 대해서 조사하다가 당신의 팬이 됐고, 오래도록 당신과 만나기를 기다려왔어요.”
윌리엄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꼭 묻고 싶었어요.”
윌리엄은 오랜 슬픔과 눈물 속에 잠겨 있었던 질문을, 떨리는 목소리로 뱉어냈다.
“저는 도대체 누구죠?”
일곱 살 때부터 지금까지 참았던 눈물이,
“지구인이 맞나요?”
불안과 함께 터져 나왔다.
“……엄마 아빠의 진짜 아들이 맞아요?”
기억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진 나트라의 트라우마였다.
* * *
“컷! 오케이!”
조나단 감독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와 함께 누가 봐도 따라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슬프고 불안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던 서준이 눈물을 멈추었다.
“서준아. 여기 아이스팩.”
“고마워요, 태우 형.”
카페 세트장에서 내려와 최태우에게 아이스팩을 받은 서준은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조나단 감독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가는 중간중간, 어쩐지 ‘우리 윌리엄이……!’라고 말하는, 과몰입한 스태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서준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은 에반 블록과 나란히 앉아 붉어진 눈가를 가라앉히며 촬영분을 살펴보았다.
캐릭터의 감정이 과한 곳이나 부족한 곳은 없나. 옥에 티나 어설픈 장면은 없나.
두 배우와 감독은 매의 눈으로 촬영분을 살펴보았다.
“괜찮죠?”
“그래.”
두 배우의 만족이 담긴 끄덕임에 조나단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다음 장면 촬영 갑시다.”
“예!”
매튜 조감독이 스태프들에게 외쳤다.
“다음 장면 촬영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스태프들이 정리한 세트장 위로 두 배우가 올라갔다.
곧 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레디, 액션!”
* * *
“……진정하렴. 윌리엄.”
맥이 휴지를 건네주었다.
말간 얼굴이 눈물로 젖어가는 모습을 보니, 일곱 살이라는 그 어린 나이부터 얼마나 마음속으로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지 알 것 같았다.
윌리엄과 엄마 아빠는 누가 봐도 한 핏줄로 이어진 가족이었지만, 자신에게만 있는 ‘그림자 친구, 제이’의 존재가 윌리엄을 불안하게 만든 것일 터였다.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그저 부모님과 함께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 윌리엄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죄송해요.”
눈물을 닦으며 윌리엄이 말했다.
오랫동안 만나고 싶었던, 유일한 이해자를 만나서 그런지 울어버리고 말았다. 민망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속이 시원해진 것도 같았다.
눈물을 그친 윌리엄을 바라보던 맥이 입을 열었다.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니?”
쉐도우맨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만나는 날을 기다려왔을 거다. 그 부탁이 무엇이 됐든 맥은 두 팔을 걷고 도와줄 생각이었다.
진정한 윌리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붉어진 눈가만 아니라면 울었던 것을 전혀 모를 정도로, 빠르게 마음을 다스린 모습이었다.
“제이랑 저를 조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퍼스트에는 일반인이 알지 못하는 정보도 많을 테니까요.”
“……그래. 알았어.”
그래 봤자 결론은 지구인이라고 나오겠지만.
아니, ‘제이’라는 존재가 있는 시점에서 조금 다르게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윌리엄은 가져온 백팩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주섬주섬 투명한 지퍼팩 두 개를 꺼냈다. 지퍼팩에는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유전자 검사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의 머리카락이에요.”
“……뭐?”
“아니면 칫솔 같은 게 필요한가요? 그럼 다음에 만날 때 가져올게요.”
“잠깐만, 윌리엄!”
말간 얼굴로 말하는 윌리엄을, 맥이 다급하게 불렀다.
“유전자 검사라니?”
“제가…….”
윌리엄은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쓰라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모님의 진짜 아들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직접 하고 싶었는데, 당사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 같아서 못 했어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말하는 윌리엄에 맥이 이마를 짚었다.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한국 드라마에서 보고 조사해 봤어요. 다른 게 필요하다면 가지고 올게요. 꼭 부탁드려요, 맥.”
부모님의 친아들임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간절한 윌리엄의 눈동자에, 맥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 *
“여기서 유전자 검사가 나올 줄이야…….”
한국 드라마를 봐왔던(막장 드라마도 봤다. 나름 재미있었다고 한다.) 에반 블록이 모니터링을 하며 웃자, 대본의 바탕이 되는 시놉시스를 쓴 서준과 조나단 윌 감독이 씨익 웃었다.
“윌리엄의 아버지가 한국인이니까, 한국 막장드라마도 종종 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에요.”
서준의 말에 조나단 감독이 덧붙였다.
“한국 드라마에 대한 걸 모른다고 해도, 윌리엄 자신이 부모님의 친아들인 걸 알고 안심해야 하니, 꼭 필요한 장면이기도 하고요.”
에반 블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막장 드라마에 대해 아는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들도 영화의 몰입을 깨지 않고 흥미롭게 볼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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