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715화 (71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15화

서준의 촬영이 없는 날.

서준이 숙소에서 한국예대 사이버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하는 사이에도 [쉐도우앤나이트]의 촬영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레디, 액션!”

이제 제법 익숙해진 조나단 감독의 외침 속에서 에반 블록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달이 떠 있는 밤.

쉐도우맨은 아무도 없는 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

놀라고 답답한 마음이, 넓게 트인 도시의 풍경에 조금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맥, 밖이지?

“그래.”

-도청은?

“없어.”

-좋아.

무선이어폰(메이드 인 나트라)으로 벨 나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목소리였다. 맥도 그에 못지않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연락이나 윌리엄의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는 퍼스트 본부에서 하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맥, 자신보다 똑똑한 요원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그건 안 된다.

-윌리엄의 능력을 알면 퍼스트 쪽에서 영입하려고 할 테니까.

“그렇겠지.”

쉐도우맨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퍼스트가 나쁜 곳은 아니다.

지구를 지키려는 것도, 빌런을 무찌르는 것도 모두 지구에 사는 이들을 위해서였다. 부패하지 않은, 대의를 위한 기관이었다. 쉐도우맨도 그래서 퍼스트 소속이 되었고, 벨 나트라도 그래서 퍼스트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윌리엄은 안 돼.”

-맞아. 윌리엄은 충분히…… 괴로워했어.

두 사람은, 퍼스트의 임무가, 슈퍼히어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얼마나 무겁고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윌리엄이 휘말려 들지 않게, 퍼스트와 접촉하지 않고 이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고 있었다.

-일단 난 나트라 행성으로 돌아가는 중이야. 아무래도 왕궁 도서관에 관련된 자료가 많을 테니까.

쉐도우맨은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새까만 우주. 저 어딘가를 벨 나트라의 우주선이 날고 있을 터였다.

“하던 일은? 나트라 행성에서 나올 정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어?”

-무슨 일이든, 내 동생 일보다 중요하겠어?

단호하게 말하는 벨 나트라에, 쉐도우맨이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적당히 마무리됐으니까. 이 정도로 쫓았는데도 안 보이는 걸 보면 나트라 구역 내에는 없는 것 같아.

“그럼 다행이고.”

두 나트라인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왕궁 도서관에 윌리엄, 지구인에 대한 것도 있을까?”

-나도 확답은 못 하겠어. 그림자에 자아가 생기는 것도 극히 드문 일인데…… 지구인과 관련된 정보라니…… 네 파트너에 대한 정보도 어렵게 찾았다니까.

그에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수요일에 윌리엄이랑 만나기로 했으니, 그때 물어볼 질문들 좀 정하자.”

퍼스트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적은 만남으로 최대한 많은 정보를 뽑아내야 했다.

-그래. 일단 그 제이라는 그림자 친구를 언제부터 만났는지 물어보고.

“그림자와 관련된 능력을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도 물어봐야겠지. 누가 더 알고 있는지도.”

-제이의 성격에 대해서도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파트너처럼 사고뭉치면…….

“……아주 큰 일이지.”

내가 뭐!

파트너가 한숨을 쉬는 쉐도우맨의 볼을 쿡쿡쿡 찔러댔다. 쉐도우맨은 그런 파트너를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

“저번에 잠깐 봤을 때는 어른스럽더라고. 파트너랑 놀아주는 느낌이었지, 아마.”

-으음. 어쩌면 아버지 그림자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네. 아, 또 그림자가 나타난 원인에 대해서도 물어봐. 맥 너처럼 펜던트를 만졌다거나 그럴 수도 있으니까.

“펜던트는 이제 지구에 없으니까…… 어쩌면 위험한 물건일지도 모르겠네.”

-그러니까!

그렇게 팔불출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의 이야기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 * *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가 열심히 정보를 찾는 사이.

윌리엄은 변함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조금 특별한 하루하루였다.

“되게 즐거워 보인다? 윌리엄?”

미식축구부 리더, 로건이 윌리엄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물었다. 그에 윌리엄이 웃으며 말했다.

“좋은 일이 있어서.”

드디어 내일 오후.

쉐도우맨과 만나게 된다.

가슴에 가득 찬 기대감으로 하루하루 시간이 어찌나 느리게 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기다리는 것마저 기쁜 윌리엄이었다.

“주말에 쉐도우맨이랑 만났던 것 때문에 그래?”

“!……아, 뭐. 그렇지?”

깜짝 놀랐다.

로건이 저번 주말에 쉐도우맨과 만났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데 말이다. 아마도 비행기 사고 때를 말하는 거겠지. 일주일 내내 학교가 그 이야기로 가득했으니까 말이다.

‘쉐도우맨과 또 만날 줄은 몰랐지만…….’

흐흐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런 윌리엄을 로건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자신의 친구, 윌리엄은 쉐도우맨 이야기만 나오면 저렇게 좋아한다.

“왜 그렇게 쉐도우맨을 좋아하는 거야? 계기라도 있어?”

“계기라…….”

그 물음에 환하게 웃고 있던 윌리엄이 아래를 바라보았다. 로건이 따라 고개를 숙였다. 보이는 건 두 사람의 신발과 새까만 그림자뿐.

다시 고개를 든 윌리엄이 미소를 지으며 친구에게 말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어.”

어쩐지, 윌리엄의 미소가 조금 무거워 보였다.

* * *

학교에서의 오전 촬영이 끝나고, 오후 촬영은 스튜디오 세트장 촬영이었다.

바로 2층에 있는 윌리엄의 방.

일반적인 남학생의 방이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 윌리엄의 성격과 닮아 있었다.

물론, 책장에 꽂혀 있는 쉐도우맨에 대한 자료집들이나 침대 옆 서랍 위, 엄마 아빠와 찍은 사진들과 함께 놓여 있는 두 개의 곰인형은 인상 깊었지만 말이다.

서준이 서랍 위에 놓여 있는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서준이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함께 찍었던 가족사진들에 멜리사 월튼과 조성환을 합성해 놓은 사진이었다.

“정말 진짜 같네요.”

“미술팀이 열심히 만들었어.”

곰인형도 그랬다.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둘 다 깨끗한 곰인형이었지만 하나는 낡게, 하나는 조금 더 새것 같게 만들어 놓았다.

그에 왠지 집에 있는 몬스터사의 인형들이 생각나는 서준이었다. 그 인형들도 아기 때부터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딱 이런 느낌이었다.

‘이제는 가지고 놀지 않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어릴 때의 추억이 떠올라 미소 짓게 된달까.

‘내 종, 종속들이여. 내 명……령에 따르라.’

……아빠의 흑역사 때문인가.

서준이 작게 웃으며 촬영 준비를 시작했다.

잠시 후.

조나단 감독의 목소리와 함께 촬영이 시작되었다.

“레디,”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중하급이 발동됩니다.]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중하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하급)이 발동합니다.]

서준이 능력을 발동했고, 그림자에 생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액션!”

내일로 다가온 약속에 들뜬 윌리엄은 책장에서 노트들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쉐도우맨]이라는 제목의 노트들은 인터넷 기사나 뉴스, 누군가 쉐도우맨 등 히어로에 대해 분석해 놓은 글들을 프린트해 붙여놓은 일종의 자료집이었다.

“벌써 7권째네.”

어렸을 때부터 만들었던 자료집이 벌써 7권째.

별다른 규칙도 없이 그저 가위로 오리고 붙였던, 어릴 때 만들었던 초반부와 달리,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만든 후반부는 윌리엄 나름대로의 분석도 있었고 정해진 규칙들로 마치 보고서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7권부터 띄엄띄엄 자료집을 읽어보던 윌리엄은 1권을 읽어보았다.

초등학생의 그림으로 쉐도우맨과 그림자가 그려져 있었고, 그 옆에 윌리엄 자신과 그림자 제이가 그려져 있었다.

귀여운 그림에 잠시 웃던 윌리엄은 그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혀 있는 문장을 아무 말 없이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가만히 있길 십여 분.

툭툭-

윌리엄의 팔을 두드리는 누군가가 있었다.

제이였다.

그에 윌리엄이 고개를 돌려 제이를 바라보았다.

제이가 그림자를 늘려 책을 덮는 시늉을 하고 백팩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노트북을 가리키며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그림자 연극 같았다.

윌리엄이 웃으며 자료집을 덮었다.

“숙제하라는 거지?”

끄덕.

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쉐도우맨 1권]을 덮은 윌리엄이 책상 옆에 놓아둔 백팩으로 손을 뻗었다.

“제이는 진짜 아빠 같다니까.”

윌리엄의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곧 타닥타닥 노트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다음 날.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수요일 아침.

출근과 등교 전, 식사를 하고 있는 윌리엄 가족은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시선을 돌렸다.

[……백화점에서 폭발이……]

원래는 깔끔하고 세련되었을 백화점 입구에서 새까만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방관들이 뛰어 들어가고, 그을음투성이가 된 손님들이 입과 코를 막고 다급하게 나오는 모습이 화면에 생생하게 나오고 있었다.

TV를 보는 윌리엄 가족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어제 일어난 사고였지만, 가족과 함께 가 봤던 백화점이라 남 일 같지 않았다.

“요새 사고가 많이 일어나네.”

어느새 다른 소식을 전하는 TV에서 시선을 뗀 아빠가 말하자, 엄마와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그제도 공항에서 사고가 있었지?”

“그 전날에는 놀이동산이었고요.”

물론, 윌리엄 가족이 겪었던, 야구장에 소형비행기가 떨어지는 등의 예상치도 못한 커다란 사고는 없었지만, 불이 난다거나 기계가 멈춘다거나 하는 사고가 하루에도 몇 번씩 뉴욕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뉴욕이다 보니,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해도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확실히 빈번해졌지.”

무슨 커다란 사건의 징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 아빠의 얼굴에 불안과 근심 걱정이 쌓여갔다. 저절로 십여 년 전의 악몽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터였다.

“윌리엄, 조심하렴.”

“네. 그럴게요.”

걱정이 가득한 엄마의 얼굴에 윌리엄이 단번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말 거짓은 하나도 없는 진실된 표정이었다.

“저번처럼 위험하게 뛰어들지 말고.”

“하.하.하. 네.”

짐짓 엄한 표정과 목소리 말하는 아빠에, 윌리엄이 어색하게 웃고는 얼른 대답했다.

“엄마 아빠도 조심하세요.”

“그래.”

착하고 성실한 아들의 말에 엄마 아빠가 미소를 지었다.

* * *

그날 오후.

착하고 성실한 아들, 윌리엄은 어쩌면 위험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인물과 만나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쉐도우맨, 맥 브라운이었다.

장소는 맥 브라운의 단골카페.

드나드는 사람이 적은 곳이라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전 퍼스트 본부에 갈 줄 알았어요.”

자신의 추측이 틀렸다는 것을 아쉬워하던 윌리엄이 카페 내부를 둘러보았다.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고, 부드러운 커피 향이 가득한 카페. 쉐도우맨에게서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을 때, 상상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장소였다.

“으음. 거긴…….”

윌리엄의 말에 맥이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벨 나트라와의 대화가 떠오른 탓이었다.

“외부인이 출입하기엔 어려운 곳이지.”

“아하.”

그건 그렇다.

납득하는 윌리엄을 보며 작게 웃은 맥은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어쩌면 빌런의 짓이 아닐까요?”

요즘 일어나는 사고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빌런의 짓이라기엔…… 너무 목적도 없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지. 사고도 소방관과 경찰들로 해결될 정도로 작고.”

“음. 그건 그렇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윌리엄에, 맥이 빙그레 웃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럼 이야기를 나눠볼까? 네 그림자 친구에 대해서 말이야.”

“네! 뭐든지 물어보세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아챈 듯, 윌리엄이 테이블 위에 올려둔 두 팔 아래의 그림자가 꿈틀꿈틀대다가 합쳐졌다. 그리고는 볼록 튀어나와 맥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윌리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제이도 잘 부탁한대요.”

“……참, 예의 바른 친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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