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714화 (71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14화

“…….”

맥은 윌리엄의 설명을 들으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윌리엄이 자신을 소개해 준 것을 들은 듯, 윌리엄의 그림자 친구 ‘제이’는 손(?)을 삐죽 빼서 휙휙- 휘젓듯 인사를 했다. 그사이에도 자신의 ‘파트너’는 자신과 같이 자아를 가진 그림자가 신기하고 반가운 듯 여전히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그에 인사를 하던 제이는, 다른 손(?)을 쭉 빼서 그런 파트너의 장난을 막기도 하고 반대로 찌르기도 하면서 놀아주었다. 무척이나 능숙한 솜씨였다.

……이건 꿈인가?

쉐도우맨이라는 정체를 들켰을 때부터, 아니, 윌리엄을 봤을 때부터 자신은 꿈을 꾸는 중이 아니었을까?

-뭐야? 제이라니, 그림자 친구라니?! 설마…… 지금 진의, 아니, 윌리엄에게 나트라인의 능력이 남아 있는 거야? 게다가 자아까지 생겨서!?

벨 나트라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맥이 이어폰을 툭툭 두드렸다. 임무 중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용하는, YES를 뜻하는 신호였다.

아무래도 윌리엄이 바로 옆에 있으니 한마디라도 조심하게 된다.

전혀 상상도 못한 상황이라서, 뭘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하기에도 바빠, 실수로 중요한 사실(특히 진 나트라의 이야기)을 저도 모르게 뱉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오…… 미친……!

그래.

그게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이다.

-아니, 그게 왜 남아 있어?! 타임스톤을 쓰면 그림자가 사라진다며! 완전한 지구인이 된다며?!

벨 나트라의 말에 마음속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맥은 어떤 리액션도 하지 못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윌리엄이 눈을 반짝이며 맥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맥의 표정, 손의 움직임, 목소리…… 그게 무엇이든 윌리엄은 놓치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그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눈빛이었다.

맥이 그게 어디서 본 눈빛인가 생각에 잠기려고 할 때, 이어폰으로 벨 나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맥. 일단 자리를 피해. 대처 방법을 생각하고 움직이는 편이 낫겠어.

툭툭.

이어폰을 두드리며 동의를 표한 맥이 아쉬운 표정으로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복잡한 건 복잡한 거고, 윌리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는데 이렇게 떠나게 되서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그저 평범한 대화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정말 몰랐다.

한숨을 삼킨 맥이 입을 열었다.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가 봐야 할 것 같아.”

“아, 네!”

윌리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맥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어폰을 두드릴 때부터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역시 쉐도우맨!’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 아니, 지구의 운명이 걸린 아주아주 중요한 일이지 않을까.

윌리엄의 반응에 작게 웃은 맥이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내밀었다.

“연락처 좀 가르쳐 줄래, 리?”

“윌리엄이라고 불러주세요, 쉐도우…… 아니, 브라운!”

“나도 맥이라고 불러줘.”

그렇게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한 두 사람.

너무나도 충격적인 상황에 맥이 영혼이 탈출한 듯한 걸음으로 먼저 자리를 뜨고, 윌리엄 또한 멍한 표정으로 그런 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앉아 있기를 한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벤치 아래의 그림자에서 손을 쭉 뻗은 제이가 토닥토닥 윌리엄의 종아리를 두드렸다.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윌리엄이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살피고는, 운동화끈을 묶는 것처럼 허리를 숙여 벤치 아래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 제이.”

어쩐지 벅차오른 듯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였다.

“쉐도우맨을 만나게 해줘서.”

별말씀을.

말하지는 못하는 그림자 친구, 제이지만 상냥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싱긋 웃은 윌리엄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컷! 오케이!”

조나단 감독의 외침이 들렸다.

그에 캐릭터에서 빠져나온 서준과 에반 블록이 촬영장에서 내려오고,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서준과 에반 블록이 조나단 감독이 있는 모니터 쪽으로 향했다.

“어땠어요, 조나단 감독님?”

“잘 찍혔어. 감정도 좋았고.”

서준의 물음에 조나단 감독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모니터로 방금 찍은 영상을 본 서준과 에반 블록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었던 캐릭터들의 감정이 그대로 화면 속에 담겨져 있었다.

“그런데…….”

조나단 감독이 입을 열자, 서준과 에반 블록이 고개를 갸웃했다.

“두 배우분이 너무 잘 찍어주셔서 시간이 많이 남았어요. 원래는 점심 먹고 클로즈업 샷을 찍으려고 했는데 말이죠.”

방금 전 촬영했던 것은 바스트 샷이었고, 이제 얼굴이나 손, 발과 같은 신체 부위를 확대해서 촬영하는 클로즈업 샷 촬영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클로즈업 샷은 햇빛의 방향을 조명으로 커버할 수 있는 데다가 시간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촬영할 예정이었다.

조나단 감독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준과 에반만 괜찮으면 잠시 쉬었다가 바로 클로즈업 샷 촬영 시작해도 될까요?”

“촬영이 빨리 끝나면 퇴근도 빨라지거든.”

어느새 나타난 제임스 촬영감독이 덧붙인 말에, 서준과 에반 블록이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다.

“그럼 그럴까요, 에반?”

“그래. 감정 잡았을 때 촬영하는 편이 좋긴 하니까.”

서준과 에반 블록의 승낙에, 활짝 웃은 조나단 감독이 조감독에게 말했다.

“잠시 쉬었다가 바로 클로즈업 샷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매튜 조감독의 외침에 스태프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이 클로즈업 샷 촬영만 끝나면 바로 퇴근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퇴근의 힘이란…….”

“하하하.”

웃으며 말하는 에반 블록에, 서준도 웃음을 터뜨렸다.

* * *

“레디, 액션!”

조나단 감독의 목소리와 함께 클로즈업 샷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에 제임스 촬영감독과 카메라맨들은 서준 리와 에반 블록의 얼굴 표정을 중심으로 손과 발 등의 신체 부위를 집중적으로 촬영했고, ‘파트너’와 ‘제이’가 있는 땅바닥까지 빠짐없이 촬영했다.

[쉐도우맨 시리즈]에서 그랬듯, 쉐도우맨의 그림자 ‘파트너’와 윌리엄의 그림자 ‘제이’는 촬영이 끝난 이후, CG 처리를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아무 움직임도 없는, 물체에 햇빛이 가려져서 생기는 ‘진짜 그림자’를 찍어야 했지만 말이다.

당연하게도,

서준 리와 에반 블록도 ‘진짜 그림자’를 보며 연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림자가…….”

존재감이 있는 것 같지?

스태프 중 누군가 작게 혼잣말을 했고, 그 혼잣말을 들은 몇몇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반 블록과 서준 리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서준 리가 혼자 촬영하는 장면에서도 정말로 ‘그림자’가 움직여 서준 리, 아니, 윌리엄의 다리를 툭툭 치고는 맥이 있는 곳을 가리키거나 맥의 그림자와 둘이서 투닥투닥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모습에 놀라서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보면 평범한 그림자일 뿐이었다. 저도 모르게 오싹 소름이 돋았다.

“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몇몇 예민한 감각을 가진 스태프들이 놀라는 사이, 클로즈업 샷 촬영까지 모두 끝났다.

그리고 곧 촬영장은 그 이야기로 떠들썩해졌다.

그림자 유령을 봤다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의 이야기에 못 본 다수의 사람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제이슨 촬영감독님한테 듣기로는 쉐도우맨3 때도 이랬대.”

“아, 저도 들었어요. 촬영장에서 본 그림자의 움직임을 그대로 CG로 표현한 게 쉐도우맨3라면서요?”

“인터뷰도 했었지? 와, 진짜로 보게 될 줄이야.”

“그 유령의 시작이 한국 영화라고 하던데?”

그에 스태프들의 시선이 한국인 스태프에게로 향했다. 그림자 유령(?)을 못 본 한국인 스태프는 아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네. /악령/이라고 서준 리 배우가 출연한 오컬트 영화가 있는데, 거기에 나온 유령이 서준 리 배우를 따라서 미국까지 왔다는, 그러다 쉐도우맨3에도 출연했다는 소문이 있어요.”

“오…….”

“신기한데?”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재미있어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저 이런 귀신 이야기에 진짜 약해요…….”

“나도.”

진저리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봤냐?”

“네.”

눈을 번뜩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제임스 촬영감독과 조나단 감독이었다.

두 사람은 촬영 당시 나타난 괴이한 현상에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영화 촬영과 연출이 더 중요하다는 듯, 촬영분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조금 전 느꼈던 ‘그림자 유령’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나중에 CG팀에 알려줘야지!’

사실적이었던 [쉐도우맨3] 못지않은 CG가 [쉐도우앤나이트]에서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조나단 감독은 생각했다.

“그런데 쉐도우맨3랑은 전혀 다른 느낌이네. 그땐 진짜 악으로 가득 찬 느낌이었는데 말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악’이나 ‘빌런’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무시무시했던 위압감과 어두운 기운을 가지고 있던 그림자 유령이었는데, 이번 촬영분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일절 없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 유령의 모습을 떠올리던 제임스 촬영감독이 흐음, 침음성을 뱉었다.

“게다가 존재감도 많이 약한 느낌이고.”

[쉐도우맨3] 때의 폭발적인 느낌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에 조나단 감독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잘 어울리죠.”

“그건 그렇지.”

전투 장면도 아니고 그저 벤치에 앉아 평범하게 대화하는 장면이라, [쉐도우맨3] 때와 같은 폭발적인 존재감은 필요하지 않았다.

장면과 딱 어울리는 존재감.

그런 적절한 느낌이 조나단 감독의 마음에 쏙 들었다.

“게다가 윌리엄은 히어로인 만큼 쉐도우맨3의 진 나트라의 그림자처럼 악한 분위기도 필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지금이 딱 적당한 분위기죠.”

유령인지, 준의 연기 때문에 환상이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정말 멋진 영화가 나올 것 같았다.

촬영이 모두 끝나, 분장을 지우고 의상을 갈아입기 위해 에반 블록과 함께 대기실로 향하고 있는 서준을 보는 조나단 감독의 눈이 반짝 빛났다.

* * *

옷을 갈아입은 서준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분장을 지우는 스타일리스트의 손길을 받으며 생각에 잠겼다.

‘하급으로 낮춰도 본 사람들이 꽤 있네.’

조나단도 그렇고, 제임스 촬영감독님도 그렇고.

뒤통수가 따가울 정도로 바라보던 눈길이 떠오른 서준은 작게 웃으며, 스타일리스트가 잠시 멀어진 사이, 발아래를 바라보았다. 검은색 그림자가 유난히 짙어 보였다.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중하급]

깊고 어두운 숲에서 살아가는 다크엘프입니다.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습니다.

이번 촬영을 위해 생의 도서관에서 새롭게 가져온 능력이었다.

[쉐도우맨3] 때 사용했던 능력인 [(악)마셰드의 그림자술-중하급>>하급]은 마기가 가득한 능력이라, ‘윌리엄 리’가 히어로 역인 이번 영화, [쉐도우앤나이트]의 촬영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걸 써볼까 했는데…….’

[악령] 때 사용했던 능력.

라이언 윌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던 [(선)방울 도깨비의 김 서방 놀리기-하급].

하지만 대본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금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급이라서 말이지.’

슈퍼히어로로서의 각성 장면이 있는 만큼, 좀 더 강렬한 분위기의 능력이 필요할 것 같아 [(선)다크엘프의 그림자화-중하급]을 선택한 서준이었다.

딸랑-

어쩐지 아쉬워하는 방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