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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13화 (71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13화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고개를 돌린 덕분에, 윌리엄은 맥이 뿜어낸 물을 맞지 않을 수 있었다.

“콜록콜록!”

하지만 사레까지는 막지 못한 맥이 기침을 했다. 이어폰으로 벨 나트라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어쩌다 들킨 거야! 맥!

나도 몰라!

자신의 앞에서 눈을 빛내고 서 있는 윌리엄만 없었더라면 맥은 그렇게 소리쳤을 거다.

레드본처럼 아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활동하는 히어로가 있는가 하면, 쉐도우맨처럼 철저하게 정체를 감추고 활동하는 히어로가 있었다.

그렇게 활동한 지가 몇 년인가.

‘들킬 일은 없을 텐데…….’

맥은 흘깃, 기침을 하는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뭔가 알아차리고 물어본 건가, 아니면 그냥 체격이나 목소리 같은 게 비슷해 보여서 찔러본 건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

혼란스러운 건 벨 나트라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다른 사람이라면 시크릿 아이덴티티를 들켜도 괜찮았다. 입이 가벼운 일반인도, 정체를 알면 주변인을 공격할 적도 괜찮았다.

‘하지만 윌리엄은…… 안 돼.’

-진은 안 돼!

윌리엄의, 진 나트라의 상실된 기억이 어떤 계기로 되살아날 줄 몰랐다.

기침 몇 번 하는 사이, 맥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 ‘어셈블’과 함께 빌런과 싸울 때보다도, 죽음이 눈앞에 있었을 때보다 더 빨리!

하지만, 불행히도 해결방법은 찾지 못했다.

“괜찮으세요?”

상냥한 윌리엄의 물음에 기침을 멈춘 맥이 대답했다.

“그, 그래.”

어쩔 수 없다.

그냥 아니라고 잡아떼는 수밖에.

-확실한 증거도 없으니까! 그냥 아니라고 해!

벨 나트라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이런 대화를 원한 게 아니었는데…….’

조금 전 어떤 대화를 나눌까, 즐겁게 고민했던 맥은 어쩐지 눈물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먼저 눈앞에 서 있는 윌리엄에게 변명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맥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려고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미안.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라 깜짝 놀랐어. 쉐도우맨이면 퍼스트의 슈퍼 히어로를 말하는 거지? 야구장 사고 때 나타난. 글쎄, 나도 그 야구장에 있었지만…….”

-멍청아! 야구장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벨 나트라의 비명과도 같은 말에 맥은 아차 싶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있었지만! 빨리 대피할 수 있어서 쉐도우맨은 보지 못했어. 히어로를 만날 수 있는 게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라서 나도 좀 아쉽더라. 그래도 다치지 않고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 아, 그러고 보니 너 홈런을 쳤던 베이런 고등학교의 4번 타자 맞지?”

-갑자기 그 이야기는 또 왜 하는 건데?!

화제 전환! 화제 전환!

윌리엄의 관심사인 야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서 쉐도우맨에 대한 건 잊게 하는 거였다.

“정말 아쉽게 됐어. 멋진 경기였는데. 상대 고등학교랑 다시 경기를 한다며……?”

조급한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던 맥은 아무 반응이 없는 윌리엄에 말을 멈추었다. 우리 착한 윌리엄이라면 뭐라도 대답해 줄 텐데, 이상했다.

그제서야 윌리엄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본 맥은 생각했다.

……근데 윌리엄?

왜 고개가 아래로 향해 있는 거니……?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맥은 천천히 윌리엄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내렸다.

아래로.

아래로.

왠지,

엄청나게,

어마어마하게,

불길했다.

윌리엄의 시선을 따라 향한 곳은 맥의 두 발이 놓인 곳이었다.

정확히는, 맥의 새까만 그림자.

보통이라면 태양의 빛에 따라서, 그림자 주인의 움직임에 따라서 가만히 고정되어 있어야 할 그림자가,

쿡- 쿡-

장난을 치듯 윌리엄의 발밑에 있는 그림자를 이리저리 찔러대고 있었다.

……야!

맥은 절망했다.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림자라니. 지구의 상식과 과학으로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뭐, 그냥 나 쉐도우맨이요, 하고 자백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뭐야? 지금 뭐 하고 있는데? 왜 둘 다 말이 없어?

상황을 전혀 모르는 벨 나트라가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자신의 그림자를 쿡쿡 찔러대는 맥의 그림자를 보고 있던 윌리엄이 고개를 들었다. 절망하고 있던 맥도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맞죠? 쉐도우맨!’이라고 말하는 듯, 윌리엄의 검은 눈동자에 서린 확신에 맥은 중얼거렸다.

“……파트너가 사고 쳤어.”

-……오…….

벨 나트라의 탄식이 들려왔다.

“어, 혹시 임무 중이셨어요?”

맥의 혼잣말에 그제서야 무선 이어폰을 발견하고는 당황하는 윌리엄의 모습에 맥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젠 뭐, 윌리엄의 기억을 지우지 않는 이상 돌이키는 건 불가능했다.

퍼스트나 외계의 힘이라면 기억을 지울 수도 있겠지만 그 부작용으로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날지도 모르니, 그냥 여기서 정체를 숨겨달라고 부탁하고 앞으로 만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앞으로는 여기 오는 것도 그만둬야겠군.’

아쉬움을 삼킨 맥이 말했다.

“아니야. 개인적인 연락이야. 음. 옆에 앉을래?”

“그래도 될까요?”

“괜찮아. 할 이야기도 있고.”

윌리엄이 상기된 얼굴로 맥의 옆자리에 앉았다.

맥은 어쩐지 목이 타 물을 마셨다.

이런 대화를 원한 게 아니었는데. 그저 소소하게 오늘 날씨나 야구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맥은 저도 모르게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도 윌리엄의 그림자를 쿡쿡 찌르며 놀고 있는 파트너를 오른발로 꽈악 누르면서.

“맥 브라운이야.”

맥이 손을 내밀었다. 윌리엄이 들뜬 얼굴로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전 윌리엄 리예요.”

-난 벨 나트라!

들리진 않겠지만.

이미 들킨 거, 내 동생 진의 목소리나 열심히 들을 생각이 가득한 벨 나트라가 신나게 대답했다.

윌리엄과 악수를 한 후, 맥이 말했다. 어쩐지 기운이 쭉 빠진 기분이다.

“내가 쉐도우맨이라는 건 비밀로 해줄래?”

“네! 당연하죠!”

윌리엄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빌런이 고문을 해도 말 안 할게요!”

“……아니야. 그럴 때는 다치기 전에 말해.”

-맞아! 그럴 땐 그냥 불어버려, 진!

그래도 뭐.

이렇게 윌리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서 기쁘긴 했다.

“야구장 사고 때 구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맥.”

맥이 쉐도우맨이라는 걸 확인한 윌리엄은 제일 먼저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내 동생 착하기도 하지……!

팔불출 누나는 무시한 맥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맥도 벨 나트라와 같은 마음이었다.

“별말씀을. 너도 다친 곳이 없어서 다행이야. 아이를 구한 것도 잘했고. 하지만 그럴 때는 먼저 대피부터 해야지. 너까지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부모님이 걱정하시잖아.”

어쩌다 보니 잔소리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말해야 앞으로는 무모한 짓은 안 하겠지.’

맥의 말에 윌리엄은 조금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어떻게 날 알아봤는지 물어봐도 될까?”

“제이가 가르쳐 줬어요!”

그 물음에 윌리엄이 불만 있던 표정을 풀고 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쩐지 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반응이었다.

“제이?”

-제이?

쉐도우맨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또 있다는 건가?

-맥 너 사실은 정체 다 알려진 거 아니야?

그러게.

내 시크릿 아이덴티티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음. 그 제이라는 친구는 어떻게 알았대?”

“긴가민가했는데, 야구장에서 만나고 바로 알았대요.”

“야구장?”

맥은 잠시 야구장에서 만났던 인물들을 떠올려봤다.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구한 이들이 너무 많아서 누가 ‘제이’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바로 알았다니…… 뭔가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이라도 있는 건가? 그럼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니야, 맥?

같은 생각이었다. 맥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제이라는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네! 저도 꼭 소개해 드리고 싶었어요!”

윌리엄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약속을 잡아야 할 텐데…….”

“아, 괜찮아요. 여기 있거든요.”

“여기?”

맥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쉐도우맨의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던 터라 근처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윌리엄이 자신처럼 무선이어폰으로 통화 중인 것도 아니었다.

“여기 아래요.”

윌리엄이 환하게 웃으며 손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아래?”

맥의 시선이 윌리엄의 손을 따라 아래, 땅바닥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여전히 장난을 치고 있는 맥의 그림자, 파트너가 있었는데(너 나중에 보자.), 윌리엄의 그림자도 거기에 어울리듯 파트너를 툭- 툭- 치고 있었……?

“……아니, 쟨 왜 움직여?”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고만 맥이었다. 얼굴에도 놀람과 경악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물을 마시고 있었다면 아까처럼, 아니, 아까보다도 더 크게 뿜었을 거다.

그에 윌리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제 그림자 친구, 제이예요.”

!!!!

입을 쩌억 벌린 맥은 떨리는 눈으로 다시 윌리엄의 발밑을 보았다.

-뭐? 그림자 친구? 그게 무슨 소리야?!

벨 나트라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따뜻한 햇빛이 비치는 벤치 아래.

자아를 가진 두 그림자가 투닥대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 * *

“컷! 오케이!”

길게 이어지는 촬영에 조나단 감독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배우들이 배우들이라서 그런가 막힘이 없네.”

제임스 촬영감독의 말에 조나단 감독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NG는 아예 없고 따로 지시를 내릴 것도 없네요.”

서준 리와 에반 블록.

길게 이어지고 반복되는 촬영에도 흔들림 하나 없이, 집중력을 잃지 않고 한 테이크 만에 끝내버리는 대단한 배우들이었다.

“제가 너무 대충한 건 아니겠죠? 라이언 삼촌이라면 달랐을까요?”

“아냐. 촬영분은 내가 봐도 오케이 컷이었어. 준과 에반도 다시 찍자고 안 하잖아.”

제임스 촬영감독의 말에, 모니터링하고 있는 두 배우의 모습을 본 조나단 감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깐깐하기 그지없는 서준 리와 에반 블록 모두 만족한 듯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레디, 액션!”

* * *

멍하니 윌리엄의 그림자, 그러니까 ‘제이’를 바라보고 있는 맥에게 윌리엄이 말했다.

“야구장 사고 때도 막무가내로 구하러 간 게 아니라, 제이가 있었으니까 믿고 간 거였어요.”

아이를 안고 있던 윌리엄이 ‘제이!’라고 외치기 직전, 쉐도우맨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쉐도우맨의 정체를 가르쳐 준 것도 제이구요.”

여기서 서준이 홀로 촬영한, 회상 장면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조금 전.

여느 때처럼 윌리엄이 조깅을 하고 있을 때였다.

평상시라면 조용히 있었을 ‘제이’가 그림자를 주욱 늘려 달리고 있던 윌리엄의 발목을 툭툭 친 것이었다.

“응? 무슨 일이야?”

그런 제이의 반응에 의문을 가진 윌리엄이 걸음을 멈추고 그림자 친구와 소통하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주위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운동화끈을 묶는 척하면서 말이다.

그런 윌리엄에게 제이는 그림자를 주욱 늘려 몇 개의 기둥과 그 위를 이은 그물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 윌리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야구장? 쉐도우맨?”

빼꼼 튀어나온 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손으로 가리키듯, 그림자를 조금 늘려 한쪽을 가리켰다. 그 그림자 손(?)을 따라 윌리엄이 고개를 돌렸다. 벤치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생수 뚜껑을 열고 있었다.

윌리엄이 눈을 끔벅였다.

야구장. 쉐도우맨. 남자.

“……설마 저 사람이 쉐도우맨이야, 제이?”

제이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윌리엄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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