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10화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조감독 매튜의 목소리에 촬영장이 조용해졌다.
일반 관객들 역할을 맡은 엑스트라들부터, 주요 배역을 맡은 배우들까지 모두 조나단 감독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우우웅-
야구장 위를 나는 촬영용 드론이 찍는 화면과 다른 카메라들이 촬영하는 화면을 살펴보던 조나단 감독이 외쳤다.
“레디, 액션!”
* * *
팡! 팡!
윌리엄의 아빠가 들고 있는 막대풍선 두 개를 부딪쳤다. 큰 소리에 야구장 건물로 들어가려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건 어디서 구한 거야?”
“한국에서! 역시 야구 경기할 때는 막대풍선 아니겠어?”
아빠의 말에 엄마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쉬더니, 이내 웃고 말았다. 아빠의 들뜬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 나도 저거 갖고 싶어!”
팡팡 소리를 내는 길다란 막대풍선이 멋있어 보였는지, 부모님을 따라 야구경기를 보러온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안에서 팔지 않을까?”
야구장의 건물을 가리키며 아이의 아빠가 말했다.
경기장과 관객석만 덩그러니 있는 작은 야구장과 달리, 이번 베이런 고등학교가 시합하는 야구장은 작지만 스낵코너와 기념품 상점도 있는 건물이 있는 야구장이었다. 이 작고 새하얀 건물을 통과해야 관객석에 앉을 수 있었다.
“꼬마야. 이거 줄까?”
“어머. 그래도 될까요?”
“하하하.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윌리엄의 아빠가 들고 있던 가방을 열자, 아직 풍선이 되지 못한 막대풍선 쪼가리들이 가득했다. 눈을 반짝이는 꼬마와 가족에게 두 개씩 나누어주며 아빠가 말했다.
“베이런 고등학교에 4번 타자가 저희 아들이거든요. 응원 부탁드립니다.”
“오! 그럼요!”
“꼬마야. 4번 타자가 나오면 응원해 줘.”
“네!”
다 계획이 있었던 모양이다.
막대풍선으로 금세 꼬마들과 그 가족들로, 베이런 고교 4번 타자의 응원단을 만들어버린 아빠의 모습에 엄마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여보. 이제 들어가야지.”
“그래!”
윌리엄의 엄마 아빠가 즐거운 걸음으로 야구장으로 향했다.
건물 안은 간식거리나 기념품을 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부부는 거기에 신경 쓰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형광등이 켜져 있는 길죽한 통로를 통해 다시 밖으로 나가면,
---!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함께 잔디밭과 흙바닥으로 이루어진 드넓은 야구경기장이 나타난다.
그냥 야구경기장에 와도 들뜨는 기분인데 아들의 시합이라니, 부부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타자석 근처에 앉자.”
“응.”
타자인 아들, 윌리엄을 보려면 그곳이 가장 적절했다.
윌리엄의 엄마 아빠가 막대풍선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나눠 드릴게요. 베이런 고교 응원 부탁드립니다. 부탁해. 꼬마야.’, ‘네!!’) 관객석으로 이동하는 사이, 카메라는 새로운 인물을 비추고 있었다.
“시끌벅적한데?”
쉐도우맨, 맥이었다.
활기가 넘치는 야구장의 풍경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띤 맥도 타자석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평화로운 날이었다.
* * *
“플레이볼!”
심판의 목소리가 들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팡! 팡!
타자석 근처 관객석에서 막대풍선을 든 응원단이 보였다.
베이런 고교 벤치에 앉아 있던 윌리엄은 그 가운데서 신나게 응원하고 있는 엄마 아빠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전광판에 4회 말까지의 결과가 나타났다.
[0-0]
팽팽하다.
“저쪽 투수가 잘하긴 해.”
“LA에서 왔다고 했지? 우리 학교로 오지…….”
친구들의 말에 벤치에 앉아 있던 윌리엄이 마운드에 서서 모자를 매만지고 있는 투수를 바라보았다. 프로라고 해도 될 법한 큼지막한 체격에 솜씨도 그에 못지않았다. 오늘 온 스카우트들이 눈을 번쩍이고 있을 거라는 예상이 들었다.
따앙!
공과 배트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운 좋게 1루로 진출한 앞 선수.
출루를 했는데도 상대편 투수는 어깨만 으쓱일 뿐 별다른 흔들림이 보이지 않는다.
“적이지만…… 대단하네.”
“투수한텐 저런 마인드가 필요한 법이지.”
윌리엄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쟤도 프로로 가지 않을까.
그럼 언젠가 같은 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윌리엄!”
“예.”
감독의 부름에 대답한 윌리엄이 가볍게 몸을 풀고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지금은 적.
온 힘을 다할 생각이었다.
팡! 팡!
타석에 들어서자, 어쩐지 관객석에서 들려오는 응원소리가 더욱 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윌리엄!”
“4번 타자! 파이팅!”
……기분 탓이 아닌가 보다.
유난히 크게 들리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가볍게 미소를 지은 윌리엄이 배트를 들어 올려 자세를 바로잡았다. 미소를 짓고 있던 얼굴이 진지해졌다. 가볍게 상대할 투수가 아니었다.
투수도 앞선 대결로 윌리엄의 실력을 알아차렸는지 제법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우우웅-
촬영용 드론이 하늘 높이 날다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관객석과 외야수들이 있는 넓은 야구경기장을 비추고.
타석과 외야수들이 퍼져 있는 넓은 경기장을 비추고.
타석에 선 윌리엄과 내야수들을 비추고.
그렇게 점점 경기장 아래로 내려오던 드론 카메라가 마운드 위의 투수를 비추었다. 다른 카메라들도 마운드 위로 향했다.
타이밍 좋게 투수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모자를 들어 올렸다.
메이저리거, 잭 스미스였다.
“컷! 오케이!”
조나단 감독의 외침에 으허허허, 하고 이상한 신음을 뱉은 잭 스미스가 기운이 빠진 듯 마운드 위에 주저앉았다. 다가오는 신호에 맞춰 모자를 들어 올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는데, 왜 이렇게 긴장이 됐는지 모르겠다.
“잘했어.”
“다행이네.”
타석에 있던 서준이 마운드까지 와서 잭을 칭찬했다. 오늘 첫 촬영이니 이 정도 격려는 해줘야 했다.
그에 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넌 진짜 윌리엄 같더라. 처음 보는 사람인 줄.”
잭은 조금 전 타석에 서 있던 남자를 떠올렸다.
서준과 이렇게 공을 던지고 배트로 치면서 놀던 게 하루이틀이 아니라서 별 차이 없을 줄 알았는데, 조금 전 촬영 때 타석에 서 있던 타자는 정말로 처음 만나는 상대팀 선수인 것 같았다.
진짜 시합을 하는 것 같은 긴장감이 있었다.
“역시 배우는 다르네.”
“하하하.”
잭의 감탄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 촬영 가겠습니다!”
조감독 매튜의 말에,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던 배우들이 다시 자신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 자세를 바로 했다. 서준과 잭도 각자 타석과 마운드로 향했다.
조용해진 촬영장.
모니터를 바라보던 조나단 감독이 입을 열었다.
“레디,”
스태프들의 지시 아래 관객들의 응원 소리가 들려오고,
“액션!”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타석에 선 윌리엄이 숨을 깊게 내쉬었다.
현재 상황은 투 아웃에 1루 출루.
도루를 시도했지만 투수의 빠른 판단에 막히고 말았다.
파앙!
“스트라이크!”
포수의 글러브 안으로 야구공이 빨려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심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투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가 한 번 더 나오면 4회 경기가 끝나고 만다.
헛스윙을 한 배트를 아래로 내리고 투수를 바라보는 윌리엄의 눈빛이 진해졌다.
공을 던진 자세를 바로 하고 숨을 고르고 있던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의 얼굴도 굳어 있었다.
60피트 6인치(18.44m)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오고 간다.
윌리엄이 아래로 내려두었던 배트를 들어올렸다.
응원하는 가족과 관객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오로지 자신의 숨소리와 심장의 두근거림만이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윌리엄은 자신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투수만을 바라보았다.
투수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을 거다. 자신의 시야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지, 아마 투수는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하여튼.
윌리엄은 투수의 움직임에 따라 배트를 쥔 두 손과 타석에 굳게 서 있는 하체에 힘을 주었다.
투수의 오른팔이 힘껏 뻗어졌다.
새하얀 공이 빠르게 날아오고,
윌리엄은 배트를 힘차게 휘둘렀다.
따앙-!
시원하다 못해 통쾌한 소리가 야구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날아가는 새하얀 공을 보던 투수가 고개를 숙였다.
와아아악!!!
관객들의 환호성이 야구장을 울렸다.
그에 정신을 차린 1루에 있던 베이런 고등학교의 선수도 와악! 소리를 지르며 2루로 달려갔고, 윌리엄도 배트를 내려놓은 채 1루로 달려갔다. 그 달리기는 1루에서 끝나지 않았다.
2루.
3루.
그리고 막힘없이 홈까지!
“홈런!!”
홈런이었다.
* * *
“……진짜 홈런이야?”
“홈런 CG로 넣기로 한 거 아니었어?”
저멀리 날아가는 새하얀 야구공에 스태프들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대본상으로 윌리엄이 홈런을 칠 거라고 적혀 있긴 했지만, 진짜로 쳐버릴 줄은 몰랐다.
“공도 엄청 빠르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공도 그렇게 빨랐는데 홈런이라니.
스태프들도 저도 모르게 함성을 지를 뻔했다.
“메이저리그 타자가 저렇게 공을 잘 던질 줄이야.”
“잭 스미스가 수비도 잘하긴 하지.”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훌륭한 선수를 가진 LA다저스의 팬들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잭 스미스하고 서준 리 친구라고 하지 않았어요? 진짜 야구경기 보는 것처럼 살벌하던데요?”
“하긴 긴장감이 장난 아니었지.”
그말대로 진짜 적인 것처럼 살벌하던 투수와 타자의 신경전이 인상 깊었다.
아마 그것 때문에 관객으로 분장한 엑스트라들도 어느새 야구경기에 푹 빠져서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른 것이 분명했다.
스태프들이 속닥거리는 소리에, 서준 리와 잭 스미스의 표정을 떠올린 조나단 감독이 웃었다.
‘잭과 연기 연습한다고 하더니…….’
정말 열심히 시켰나 보다.
* * *
벤치에 있던 베이런 고등학교의 선수들과 코치, 감독이 나와 홈으로 들어오는 윌리엄을 격렬하게 반겼다.
“미친! 윌! 너라면 할 수 있을 줄 알았다니까!”
“홈런! 홈런이라니!!”
“아파! 아프다니까!”
너무 기쁜 나머지 윌리엄의 등과 어깨를 두드리는 친구들.
가볍게 두드리는 거라지만 체격 큰 야구선수들이 아닌가. 손바닥도 크고 두껍고 기본적인 힘도 세서……아팠다.
그래도 기쁜 건 자신도 마찬가지라, 윌리엄은 친구들의 격한 환영을 이리저리 피하면서도(몇 대는 맞았다) 계속 웃음을 터뜨렸다.
“저 자식 멘탈 흔들렸나 본데?”
친구의 외침에 다들 마운드로 시선을 향했다. 상대팀 투수와 코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에 베이런 고교 야구팀의 감독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부터가 진짜니까 다들 집중하자!”
“예!”
하고 윌리엄과 베이런 고등학교 야구팀이 씩씩하게 대답할 때.
마운드에 선 투수가 일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숨을 내쉴 때.
관객석에 앉은 엄마 아빠가 ‘우리 아들이에요!!’ 하고 환호성을 지를 때.
파아아악!!!
검은색 무언가가 야구장 사방에서 기둥처럼 위로 솟아올랐다. 그러고는 그물처럼, 거미줄처럼 서로를 이어붙이기 시작했다.
“저게 뭐ㅈ……?”
하늘을 새까맣게 물들이 그것에 누군가 의문을 같기도 전에, 사람들은 또 다른 것을 발견했다.
“비행기!?”
“아니, 전투기 아니야?!!?”
하늘 저편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그것.
비행기인지 전투기인지 모르겠지만, 그 회색의 비행물체는 이미 공격을 받은 듯 뒤꽁무니에 새까만 연기를 내뿜으며 빠른 속도로 야구장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꺄아아악!!
상황을 이해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빠르게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쪽입니다!!”
이 야구장에서 나가려면 들어왔던 건물을 통해 나가야 했다. 모두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경기장에 있던 선수들도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이 달리는 속도보다 하늘을 날아오던 물체가 더 빨랐다.
쿠과와아앙!!!
굉음이 들렸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색 그물이 최대한 그 비행물체를 막아서려고 했지만 힘겨운 일이었다. 비행물체와 그를 막던 검은색 그물까지 함께 천장이 무너지듯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에 야구장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던 전광판을 시작으로, 경기장을 둘러싸고 있던 철조망을 이은 기둥들과, 광고판 그리고 출입구인 새하얀 건물까지도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빨리 도망쳐라!”
감독님의 외침에 야구팀 친구들과 함께 피하고 있던 윌리엄의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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