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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04화 (70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04화

신나게 세트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서준은 익숙한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라이언 감독이 거기에 있었다.

“라이언 감독님!”

“어? 삼촌!”

서준을 따라 뒤를 돌아본 조나단 감독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오오. 날 도와주러 오신 건…….

“구경하러 왔다.”

아니구나.

하긴 그럴 리가 없지.

표정부터가 진짜 구경하러 왔으니 참견은 전혀 안 하겠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쩐지 마음이 든든해진 조나단 감독이었다.

조나단 감독이 히죽히죽 웃고 있을 때, 분장을 끝낸 멜리사 월튼과 조성환이 촬영장에 도착했다.

“오랜만이에요, 라이언 감독님!”

멜리사 월튼이 제 배우 생활에 조언을 해주었던 라이언 감독을 보며 활짝 웃었다. 라이언 감독도 단역이었으나 [쉐도우맨 시리즈]에서 빠질 수 없었던 역할이었던 멜리사 월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른 제안도 많았을 텐데, 여기서 볼 줄은 몰랐습니다. 멜리사.”

아무래도 비중이 적다 보니, 작품의 주연도 몇 번 한 적 있는 멜리사 월튼이라 캐스팅이 조금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조나단은 훌륭히 멜리사 월튼을 캐스팅했다. 거기엔 배우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을 터였다.

그에 멜리사 월튼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윌리엄의 엄마는 저뿐인걸요!”

그말에 서준과 조나단 감독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습니다. 라이언 윌 감독님.”

또 다른 유명인의 등장에 심장이 조금 떨리고 있는 조성환과 악수한 라이언 감독은 조금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윌리엄의 아버지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윌리엄의 어머니는 라이언 윌 감독이 캐스팅한 배우가 그대로 이어졌지만, [쉐도우앤나이트]에서 처음 등장하는 윌리엄의 아버지는 조나단 윌 감독이 직접 캐스팅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자신의 손을 떠나 새롭게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묵직해지는 라이언 감독이었다.

그렇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라이언 감독은 자신이 했던 말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촬영에 방해되지 않게 향한 곳은 서준 리의 매니저, 태우 최의 옆.

라이언 감독은 최태우와 인사를 나누고 촬영장 쪽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감독과 기존의 배우들과 새로운 배우가 세트장과 대본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과연 어떤 영화가 만들어질지…….’

기대가 된다.

[쉐도우앤나이트]의 시놉시스도, 대본도, 연습 장면도 최대한 보지 않았던 라이언 감독은 마치 어렸을 적, [쉐도우맨] 코믹스를 볼 때처럼 흥미롭고 기대감이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 * *

“라이언 감독님이 오셔서 마음이 가볍긴 한데 어쩐지 긴장도 되네요.”

“나도.”

“저도 좀.”

한 스태프의 말에 다른 스태프들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에는 [쉐도우맨 시리즈]를 함께한 스태프들도 있었다.

라이언 감독과 친분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긴장하고 있었다.

“뭐랄까. 조별과제를 하는데 교수님이 보러 오신 느낌?”

“맞아요. 그것도 보통 교수님이 아니라 이 분야의 권위자나 다름없는 그런 교수님이요.”

“그래서 의지는 엄청 되는데, 반대로 과제한 게 글자 하나까지 털릴 것 같은 느낌도 들지.”

상상만 해도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에 마지막으로 확인을 끝낸 고참 스태프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마린사에서 안 온 게 어디야. 어제 고사에 참석해서 안 올 것 같던데.”

“……오셨는데요?”

그말에 모두 놀란 표정으로 스튜디오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들어온 페일런 박(현 마린사 부사장)이 조나단 감독과 배우들과 인사를 나누고, 라이언 감독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 번 더 확인할까?”

“……넵.”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다시 지시대로 설치되어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러 참새 떼처럼 흩어지는 스태프들이었다.

* * *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매튜 조감독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스태프들이 움직였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층 가정집으로 꾸며진 세트장 위로 조명이 비치고 카메라가 이동했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조나단 윌 감독이 조금 굳은 얼굴로 화면과 세트장을 번갈아 바라보며 자신이 생각했던 모습과 같은지 확인했다.

“어때, 괜찮아?”

“네, 넵!”

제임스 촬영감독의 물음에 몸을 들썩거린 조나단 감독이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그런 조나단 감독의 모습에, 이제 막 세트장 위로 올라가는 멜리사 월튼과 조성환을 따라 이동하려고 하던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라이언 감독님 때문에 긴장한 것 같지는 않고.’

페일런 박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으니, 긴장의 원인은 아닐 것 같았다.

‘첫 촬영이라서 그런가.’

서준의 생각대로 조나단 감독의 머릿속은 첫 촬영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린사의 영화이며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두 손이 땀으로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잘해야 했다.

‘내 첫 상업영화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떠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촬영을 위해 애써준 스태프들이나 여러 감독님들, 그리고 배우들과 스턴트맨들, 큰 제작비를 투자한 마린사와 기다리고 있을 팬들.

‘……그리고 시놉시스까지 기꺼이 도와준 준까지.’

그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잘하고 싶었다.

조나단 윌 감독의 어깨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긴장한 것이 멀리 서 있던 라이언 감독과 페일런 박에게까지 느껴졌다. 페일런 박이 ‘괜찮을까요?’ 하고 라이언 감독에게 물으려던 순간 먼저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긴장 풀어요. 조나단.”

배우 서준 리였다.

“우리, 시놉시스 엄청 열심히 만들었잖아요.”

서준이 씨익 웃었다.

“그게 이제 영상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조나단의 손으로요.”

두근.

긴장으로 굳어 있던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이야기했던 것들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우리의, 아니, 조나단의 쉐도우맨과 윌리엄 리를요.”

두근두근.

천천히 뛰던 조나단 윌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조나단은 평소대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나머지는 저희 배우들에게 맡기고요. 납득되는 장면이라면 조나단이 기대한 그 이상의 연기를 보여줄 테니까요.”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배우가 거짓 한 점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게 얼마나 믿음직스러운지, 이 배우와 함께 촬영하지 않은 감독들은 절대 모를 터였다.

“……그래.”

납득되는 장면이라는 조건을 건 게 참 준다워 하하, 하고 웃음이 나오고만 조나단 윌 감독이었다. 그 덕분에 몸과 머리가 가벼워진 것 같았다.

“고마워, 준.”

“별말씀을요.”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그럼 멋진 연기 부탁할게, 준. 멜리사와 조도 잘 부탁드립니다.”

조나단 감독의 말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멜리사 월튼과 조성환이 미소를 지었다.

서준과 두 배우가 세트장 위로 올라갔다.

모니터 화면에 세 배우의 모습이 보였다. 배경과 의상과 배우가 어우러져 화면에 비치는 윌리엄 가족의 모습은 조나단 윌 감독이 생각하던 그대로였다.

긴장감이 사라지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준의 말대로 이제 자신이 열심히 구상하고 회의하고 써 내려갔던 ‘세상’을 만들 시간이었다.

아마도 라이언 삼촌도 이랬겠지?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느끼며 조나단 윌 감독이 외쳤다.

“레디,”

* * *

세트장으로, 아예 이층집 한 채를 지어놓은 마린사의 스케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은 서준은 윌리엄 리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윌리엄의 집.

조금 전 구경했지만 역시 조금 생소하면서도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미술팀에서 열심히 만들어둔 액자 속 윌리엄 리의 사진들(서은혜 이민준 제공)도 그렇고 여기저기 흠집이 난 것 같은 벽들도 그렇고. 여기저기 정말로 누군가의 가족이 살고 있는 흔적들로 가득했다.

‘그게 윌리엄의 가족이지.’

윌리엄 리.

그리고 엄마 아빠.

생사조차 모르고 지냈던 아이가 돌아왔다. 2년 동안의 기억을 몽땅 잊어버린 채. 그러나 엄마 아빠는 그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리며 하늘에 감사했을 터였다.

그런 부모님의 밑에서 윌리엄은 어떻게 자랐을까.

이제 서준은 ‘그’ 윌리엄 리를 연기해야 했다.

조나단과 함께 회의(?)를 하며 떠올렸던 윌리엄 리를 떠올렸다. 어쩐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좋아.’

머릿속으로 대본을 되새긴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레디,”

타이밍 좋게 조나단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나단 감독도 긴장감 대신 설렘으로 가득한 목소리였다.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서준도 같은 마음이었다.

“액션!”

이제 윌리엄 리가 될 시간이었다.

* * *

뉴욕의 한 주택가.

어디에서나 볼 법한 이층집은 평일 아침이라서 그런지 시끌벅적했다.

“아직 멀었니?”

“잠시만요! 엄마!”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엄마가 목소리를 높이자 2층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먼저 드세요!”

씩씩한 아들의 목소리에 식탁에 앉아 있던 엄마 아빠가 웃고 말았다.

어느 가정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모습에 보고 있는 사람마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근데 난 왜 눈물이 나지?”

“윌리엄이잖아…….”

[쉐도우맨 시리즈]에서는 확실히 나오지 않았지만, 이 부부가 얼마만큼 사랑하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는지 아는 스태프들이 찔끔 눈물을 흘리며 속닥거렸다.

그사이에도 카메라는 1층 거실만을 향하고 있었다.

아들의 먼저 드시라는 말에도 엄마 아빠는 기다리기로 했다. 바쁜 일이 없다면 아침저녁은 함께 먹는 것이 이 가족의 규칙이었다. 그런 엄마 아빠를 알고 있는 아들의 움직임이 더욱 다급해졌다.

우당탕탕!

2층에서 들려오는 큰소리에 엄마 아빠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 일로 늦잠을 잤대?”

“곧 야구 시합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아빠의 말에 엄마가 대답했다.

다른 고등학교와의 야구 시합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 회의 때문에 바빴나 보네.”

“시합 보러 갈 거지?”

“당연하지! 우리 아들이 4번 타자인데!”

벌써 회사에 휴가신청도 해놨다며 아빠가 신나게 이야기했다. 엄마가 웃으며 냄비의 불을 약하게 켜놓았다.

“그럼 내려올 때까지 뉴스나 볼까?”

아빠가 리모컨을 눌러 TV를 켰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며칠 전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 대한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네바다주에 떨어진 운석에 대한 연구는 먼저 퍼스트(FIRST)에서 진행할 예정이며……]

운석.

그리고 퍼스트(FIRST).

슈퍼 히어로들이 모인 ‘어셈블’이 소속된 지구 방위 기관의 이름에 부부의 얼굴이 굳어졌다.

슈퍼 히어로들과 외계 생명체들이 존재하는 세상이라서, 십여 년 동안 일어난 이런저런 사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뎌지긴 했지만, 여전히 저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어버린다.

“……저긴 가지 마, 여보.”

“걱정하지 마. 서부 쪽이라 갈 일도 없는걸.”

아빠의 말대로 운석이 떨어진 곳은 미국 서부 쪽이었다.

집과 학교, 회사가 위치한 뉴욕과 멀리 떨어진 곳이라서 부부는 물론이고 고등학생인 아들이 갈 일은 절대 없을 터였다.

그때, 2층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얼른 TV를 끄고 엄마는 데우고 있던 냄비에서 국을 퍼 식탁에 올려두었다.

1층만을 찍고 있던 카메라가 계단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치 어떤 장면을 생각나게 하는 구도로 촬영을 이어나갔다.

“쉐도우맨3의 지하신전…… 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페일런 박의 말에 라이언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오마주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뚜벅뚜벅 걸으며 긴장감을 자아냈던 그때의 ‘진 나트라’의 무거운 발걸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실내화를 신고 있는 남자는 가볍지만 어쩐지 기품 있는 발걸음으로 2층 계단을 내려왔다. 고정된 카메라 화면으로 실내화를 신은 두 발, 캐주얼한 바지, 그리고 편하게 입은 상의가 보였다.

아래에서 위로.

조금만 더 있으면 얼굴이 보일 것 같았는데, 카메라는 곧바로 남자의 뒷모습으로 위치를 옮겨갔다.

남자의 한쪽 어깨에 매달린 백팩이 달랑달랑거렸다. 잘 정돈된 머리카락과 큰 키, 그리고 듬직한 뒷모습만 봐도 잘생김이 느껴졌다.

그렇게 남자의 뒷모습을 찍고 있던 카메라가 천천히 옆으로 돌아, 남자의 얼굴을 화면에 담았다.

아무래도 ‘윌리엄 리’와 관객들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니만큼, 강렬한 인상을 위해 서준은 선기를 흘려보냈다.

……!

그러자 반짝이는 서준, 아니, 윌리엄의 외모에 여기저기서 소리 없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아직 안 드셨어요? 먼저 드시라니까요.”

기다려 주신 엄마 아빠가 고마워 빙그레 웃는, 고등학생 윌리엄 리가 거기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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