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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03화 (70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03화

[쉐도우&나이트]의 첫 촬영날.

아침부터 서준은 마치 소풍 가는 아이처럼 마음이 들떴다.

곧 20주년을 향해가는 어마어마한 경력을 가진 서준이지만, 매번 새로운 작품을 촬영할 때마다 마치 처음 촬영하는 것처럼 들떠버리고 만다.

‘그 설렘이 좋지.’

아침 식사를 하던 서준이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특히, 이번 영화는 다른 작품들보다 더욱 설렜다.

자신이 연기를 시작했던 작품이자 아역 시절을 함께 보낸 [쉐도우맨 시리즈]를 잇는, 앞으로 함께할 시리즈 영화의 시작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하자.’

서준이 들뜬 마음으로 그렇게 다짐하며 든든하게 배를 채우는 동안, 서준보다 더 긴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매니저 최태우였다.

이런 대단한 촬영에 정말 자신만 가도 되는 것인지, 부족한 자신 때문에 촬영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밥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넋이 나간 듯, 헛손질을 하는 최태우의 모습에 서준이 물었다.

“괜찮아요, 태우 형?”

“어, 어? 응. 미안…… 내가 더 긴장하고 있네.”

정작 촬영하는 배우보다 매니저가 긴장하고 있는 꼴이라니.

마음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 서포트해 주기는커녕 못난 모습만 보여주는 것 같아 최태우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긴장할 것 없어요, 태우 형. 오버 더 레인보우2 촬영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땐 안 이사님이 계셨으니까…….”

“이번에는 조나단하고 에반이 있잖아요. 다른 분들도요.”

서준의 말에 최태우는 서준이 액션 트레이닝 센터에서 훈련하는 한 달 동안 이 숙소를 제집처럼 들락날락거리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정말 제집처럼 드나들다 보니, 최태우와도 제법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조나단이 감독이니까 크게 걱정할 건 없을 거예요.”

그 말에 서준과 함께 이히히!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으아아아!!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시놉시스를 쓰던 조나단 윌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준과 함께 라이언 감독에게 혼나던 모습도.

“음.”

조나단 감독님께는 좀 죄송한 말이지만, 어쩐지 마음속에 쌓여 있던 걱정이라는 커다란 돌들이 산산조각 나서 사라진 기분이었다.

훨씬 나아진 최태우의 표정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 * *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서준과 최태우가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스튜디오로 향했다. [쉐도우앤나이트]의 첫 촬영은 실내 스튜디오의 세트장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서준과 최태우는 세트장으로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스태프들을 지나쳐, 배우들과 감독이 사용하는 입구를 통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서 있는 보안요원들이 듬직했다.

“리 배우의 대기실은 이쪽입니다. 다른 배우분들은 바로 옆방을 사용하고…….”

진지한 표정의 최태우는 스태프의 목소리에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기울이며 질문을 해댔다.

“화장실은 외부인과 함께 사용합니까? 안전은 어떻죠? 외부인의 출입은 어떻게 막습니까? 출입증에 다른 종류도 있습니까?”

눈을 번뜩이는 매니저의 모습에 안내하던 스태프는 식은땀을 흘리며 열심히 대답했다.

아침에 심각한 얼굴로 걱정하던 모습과 달리, 잘하는 최태우의 모습에 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서 걱정하고 있을 다호 형에게, 태우 형은 아주 잘하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내야겠다.

대기실을 들어가기 전, 조나단 감독과 인사를 할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던 찰나, 서준은 반가운 얼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활짝 웃었다. 오늘 만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오자마자 마주칠 줄 몰랐다.

“오랜만이에요. 멜리사!”

“오! 안녕, 준!”

상대방도 서준을 알아보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반갑게 인사했다.

멜리사 월튼.

[쉐도우맨1] 촬영 당시 윌리엄 리의 엄마 역할로 만났던 배우였다.

물론 그 후에도 종종 만나긴 했다. [쉐도우맨2]의 촬영과 함께 진행했던 [쉐도우맨3]의 마지막 장면(어린 모습의 윌리엄 리가 나오는 장면)을 비밀리에 찍기도 했고.

“얼마 전에 생일이었지? 생일 축하해. 선물도 가져왔는데 나중에 줄게.”

“고마워요.”

멜리사 월튼이 활짝 웃으며 말하자 서준도 웃으며 답했다.

“그 조그맣던 애가 이렇게 대단한 배우가 될 줄이야…….”

자신보다 훌쩍 커버린 서준 리를 살펴보며 멜리사 월튼이 탄성을 흘리며 추억을 더듬었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물론 라이언 감독에게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그저 나트라의 이상웜홀 공격에 당하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짧은 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까지 과몰입하게 만들었던 꼬마 배우, 서준 리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하긴 그럴 만한 연기력이긴 했지.”

그 촬영이 계기가 되어 자신이 이렇게 멋진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았나, 싶은 멜리사 월튼이었다.

“하하하.”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멜리사 월튼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멜리사 월튼에게 서준 리가 특별한 배우이듯, 서준에게도 멜리사 월튼은 특별한 배우였다. [쉐도우맨1] 촬영 당시에는 초록색 쫄쫄이 옷을 입고 ‘이상웜홀 역’을 연기했던, 지금은 배우로 열심히 활동 중인 배런 포드도.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서준과 가장 처음으로, 함께 연기한 배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꿈 같았던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촬영장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의 설렘, 촬영 직전의 들뜸, ‘레디, 액션!’을 외치는 라이언 감독님의 목소리와 빛나던 카메라 렌즈, 멜리사의 연기와 어린 자신을 번쩍 들어 올리던 배런까지.

평생 잊지 못할 순간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던 서준이 진심을 가득 담아 말했다.

“다시 함께 촬영하게 돼서 기뻐요. 멜리사.”

“나도 그래.”

서준과 멜리사 월튼이 서로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이들이 있었다.

서준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만나러 온 조나단 윌 감독과 제임스 랜던 촬영감독이었다. 이 두 사람도 [쉐도우맨1]부터 함께 해왔다.

“감동적이네. 무명 시절 엑스트라로 만났던 두 배우가 이제는 이름만 대도 알 정도로 유명해져서 만난 거잖아.”

“그러게요.”

“감독도 그렇고.”

씨익 웃으며 말하는 제임스 촬영감독에 조나단 윌 감독이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새로운 목소리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서준과 멜리사 월튼이 뒤를 돌아보았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조나단 감독님!”

멜리사와 서준이 감독님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조나단 윌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어쩐지 어색하다.

“조나단이라도 불러도 되는데…….”

서준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제 촬영하잖아요. 감독님이라고 불러야죠.”

“맞아.”

“그건 그렇지.”

진지한 서준과 멜리사와 달리, 어쩐지 제임스 촬영감독의 말은 놀림이 섞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라이언 삼촌의 친구로, 거의 삼촌 조카처럼 지내온 제임스 촬영감독을 잠시 째려본 조나단 감독이 말했다.

“그래도 평상시에는 조나단이라고 불러줘, 준. 멜리사도요.”

“알았어요. 조나단.”

“그럴게.”

하하호호.

전前 [쉐도우맨]팀이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도착한 윌리엄 리의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성환 조’와 조감독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쉐도우앤나이트]의 전권을 쥐고 있는 조나단 윌 감독님에 촬영을 총괄하는 제임스 랜던 촬영감독님, 할리우드 배우 멜리사 월튼과 슈퍼스타 서준 리까지.

그냥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오는 인물들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끼어들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머뭇거리는 두 사람을 알아챈 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서준의 인사에 다른 사람들도 두 사람이 온 것을 알아차렸다.

“오! 매튜, 왔어? 오셨어요, 조?”

조나단 감독이 활짝 웃으며 조감독과 조성환 배우를 소개했다.

“이쪽은 조감독인 매튜 리히스, 그리고 이쪽은 윌리엄의 아버지를 연기해 줄 성환 조 배우입니다.”

“반갑습니다! 조감독 매튜 리히스입니다.”

“안녕하세요. 성환 조입니다.”

떨림과 긴장이 얼굴에 조금 드러난 조감독과 달리, 조성환은 침착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배우 조성환.

한국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것도 아니었고, 김종호처럼 오스카 시상식 같은 큰 행사에서 상을 받은 적도 없는 배우였지만,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역할을 제법 맡고 있는 한국계 배우였다. 연기력도 훌륭했다.

“촬영 잘 부탁드려요. 이서준 배우.”

조성환이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할리우드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이어온 만큼, 여기 있는 이서준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꼭 인사를 하고 싶었다.

예전까지만 해도 비슷비슷하던 동양인들의 역할이 점점 다양하게 변하기 시작한 것도 이 배우의 영향 덕분이리라.

내밀어진 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서준이 얼른 조성환의 손을 마주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배우라면 기본적으로 호감도가 반 이상 차 있는 서준이 활짝 웃으며 말하자, 분위기는 금세 풀어져 떠들썩해졌다.

“감독님. 이제 촬영장 확인해야 할 시간입니다.”

“아.”

연신 시계를 살펴보던 매튜 조감독의 말에 조나단 감독이 아차, 하고는 시간을 살폈다. 조감독의 말대로 이제 촬영팀은 촬영 장비의 설치가 완료된 세트장을 확인하고 배우들은 분장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그럼 잠시 후에 촬영장에서 보죠.”

조나단 감독과 제임스 촬영감독, 조감독이 떠나고, 배우들도 의상을 갈아입고 분장을 하기 위해 각자의 대기실로 향했다.

* * *

“카메라 체크!”

“조명 체크!”

촬영장을 몇 번이고 확인한 조나단 윌 감독은 조금 멍한 얼굴로 세트장을 바라보았다.

실내 스튜디오의 세트장은 가정집의 모습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윌리엄 리의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미국인이라서 그런지 보통의 미국 가정집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여기저기 한국에서 사 온 듯한 소품들이 놓여 있어 눈길을 끌었다.

“……정말 촬영하네.”

처음 감독 제안을 받았을 때도, 시놉시스를 준에게 보냈을 때도, 준과 티격태격 회의하며(?) 시놉시스를 썼을 때도, 준 없이 대본을 썼을 때도, 배우들을 캐스팅했을 때도, 만들어진 세트장들을 확인할 때도.

매번 촬영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지금처럼 이렇게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심장이 떨려서 숨도 못 쉴 것 같았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잘할 거예요.”

!

혼잣말에 들려온 대답에 조나단 감독은 놀란 얼굴로 옆을 바라보았다. 캐주얼한 의상으로 갈아입은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촬영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 그렇지.”

물론 조나단 윌은 감독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해야 할 일은 많겠지만, 열심히 일하는 스태프들과 멋진 연기를 보여줄 배우들이 있으니 멋지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준도 있으니까.’

언제나처럼 순하게 웃고 있는 이 배우가 촬영에 시작하면 어떻게 변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조나단 감독은 어쩐지 긴장이 풀리고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저거 경복궁 모형 맞죠, 조나단?”

“맞아. 쉐도우맨3에서의 전투가 떠오르면 좋을 것 같아서 넣어봤어.”

“한국 관객분들이 보면 좋아하겠는데요? 소품 찾는 재미도 있고요.”

흥미가 가득한 표정으로 세트장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배우와 열심히 설명하는 감독.

그런 둘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걱정할 필요 없겠는데?”

제임스 촬영감독의 말에 라이언 감독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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