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98화
서준의 생일을 며칠 앞둔 수요일 아침.
잭 스미스가 서준의 숙소에 도착했다.
“어서 와, 잭!”
아침부터 빛나는 친구의 외모에 잭 스미스가 감탄을 숨기지 않으며 친구와 친구의 매니저에게 인사했다.
“안녕, 준.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어서 오세요. 스미스 선수.”
“편하게 잭이라고 부르세요.”
잭은 [오버 더 레인보우2] LA 촬영 때 짧게 만났던 최태우 매니저와 인사를 나누고는 서준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킁킁.
준이 요리한 게 분명한 맛있는 냄새가 여기서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침 안 먹고 왔지?”
본능적으로 킁킁거리는 잭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 배고파 죽을 것 같아.”
하하.
서준과 최태우는 웃으며 잭과 함께 다이닝룸으로 향했다. 다이닝룸의 식탁에는 서준과 최태우가 준비한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더 있으니까 편하게 먹어.”
그렇게 아침을 먹으며 서준과 잭은 오늘 어디를 갈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충 전화통화로 어디에 갈지 이야기는 해뒀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변동이 있을 수도 있으니, 몇 군데 더 계획에 넣어둘 예정이었다.
“그리고 씨 세이브 센터에도 들르자.”
우리와 로키는 없겠지만 서준에게도 새싹들에게도 그날을 추억하기 좋은 장소일 터였다.
‘배와 센터에 새겨놓은 능력에 마나를 충전하기도 해야 하고.’
서준의 말에 잭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에도 가자. 다락방에 재미있는 게 많더라.”
매니저인 최태우는 따라가지는 않을 예정이었지만(경호원들은 뒤를 따라간다.), 서준이 어디에 갈 예정인지는 확실하게 메모해 두었다.
“촬영은 언제부터 하는 거야?”
잭의 물음에 서준이 답했다.
“나 혼자 찍는 건 어제부터 하고 있었는데, 너랑 같이 찍는 건 차에서부터 하려고.”
생일축하에 대한 감사 인사와 브이로그에 대한 설명 같은 건 어제저녁 혼자 찍어두었던 서준이었다.
“촬영팀은?”
“? 없어. 너랑 나뿐이야.”
고개를 갸웃했다가 대답하는 서준에 잭 스미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촬영이라고 해서 카메라맨이라도 붙을 줄 알았는데…… 직접 찍는 거야?”
“응. 편집도 내가 할 거야.”
“고생하겠네.”
스타의 친구로 지내다 보면 이것저것 듣는 게 많은데, 편집이 힘들다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그 말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새싹분들 보여줄 거니까 열심히 해야지. 아, 차 운전석이랑 조수석에 카메라 있는 거 기억해 둬, 잭. 촬영하면서 운전하는 건 위험하니까 미리 설치해 뒀거든.”
“알았어.”
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친 서준과 잭은 간단히 짐을 챙긴 후 숙소 주차장에 준비되어 있는 자동차로 향했다. LA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차량 중 하나였다.
잭 스미스가 운전석과 조수석에 붙어 있는 카메라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작은 카메라이긴 한데, 저걸로 계속 촬영된다니 조금 이상한 느낌이네.”
“나도 그래.”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예능에는 많이 나오는데 내가 예능은 별로 안 찍어봤거든.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글쎄. 난 너처럼 카메라를 신경 쓰진 않아서.”
카메라는 그저 카메라일 뿐.
어깨를 으쓱이는 잭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운전은 내가 할까?”
“내가 할게. 넌 풍경 같은 거 보여주는 게 어때?”
“그럼 그럴까?”
잭 스미스가 운전석에, 서준이 조수석에 앉았다. 서준의 손에는 어제저녁 촬영했던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촬영 시작한다?”
“그래.”
야구 경기나 인터뷰 때문에 제법 카메라에 익숙한 잭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다른 사람을 연기해야 하는 영화 촬영도 아니고 경기 때처럼 카메라는 신경 안 쓰고 평소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니까 마음이 편했다.
‘실수를 해도 편집은 준이 한다니까.’
알아서 잘라내겠지.
조금 긴장했었는데 어깨가 가벼워졌다.
짝!
하고 편집점을 잡기 위해 서준이 손뼉을 쳤다. 그리고 며칠 후, 자신의 생일날 이 영상을 볼 새싹들을 향해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새싹 여러분! 이서준입니다!”
* * *
“준! 잭! 어서 오세요!”
센터의 VIP나 다름없는 두 사람의 등장에 씨 세이브 센터가 들썩거렸다.
LA에 올 때마다 씨 세이브 센터에 들르는 서준은 물론이고, 잭 스미스도 매년 빠지지 않고 기부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LA에서 촬영한다고 들었는데, 언제 오나 했어요.”
“하하하.”
찡긋 웃는 케이트 오하스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항상 먹던 걸로?’
‘항상 먹던 걸로.’
그렇게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는 단골 가게의 직원과 손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쉐앤나 진짜 기대하고 있어요!”
“지금 촬영 중인가요?”
“아직 아닐걸? 크랭크인 기사는 아직 없었잖아요, 그렇죠?”
“네. 아직 촬영은 멀었어요.”
서준이 [쉐도우앤나이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잭 스미스도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려 미국의 3대 스포츠(야구, 풋볼(미식축구), 농구) 중 하나인 야구, 그것도 LA를 대표하는 다저스의 선수가 아닌가.
“이번 홈런도 시원시원했습니다!”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그렇게 떠들썩하던 중, 한 직원이 물었다.
“그런데 준. 그 카메라는 뭐에요?”
“아, 이거요.”
서준이 설명을 하자, 케이트와 직원들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새싹, 그리고 [새싹부터].
무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부해 주는 분들이 아니신가!
조금 전의 시끌벅적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모든 직원들이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얼굴에 진심 어린 미소를 띠었다.
“안녕하세요. 씨 세이브 센터 구조팀장 케이트 오하스라고 합니다. 새싹 여러분들이 기부해 주신 기부금들은…….”
새싹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케이트와 직원들의 모습에 서준과 잭이 소리 없이 웃었다. 이 장면은 꼭 넣어야 할 것 같았다.
* * *
“그럼 이제 점심 먹으러 갈까?”
“그래.”
서준과 잭은 단골식당 중 한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현지인들에게도 여행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음식점이라 너튜브에 방송이 올라간 후에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아 선택한 곳이었다.
넓은 미국 땅이라 이동하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넓고 푸른 바다를 보고 있으니 즐겁기만 했다.
“또 고래가 나타나는 거 아니야?”
“그럴지도.”
잭의 말에 서준이 웃고 말았다.
다행히도 3월의 바다는 평화로웠다.
♬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바다를 보니, 노래를 하던 우리와 그 옆에서 왔다 갔다 하던 로키가 떠오른 서준과 잭이었다.
“몬스터사에서 우리랑 로키 인형도 나왔었다며?”
“응. 지금도 판매하고 있어. 수익금은 다른 해양센터에 기부하고 있고.”
서준의 선한 영향력이 아직까지도 세계 곳곳에 전해지고 있었다.
“인형 하니까 생각난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잭이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이 오랜 친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어렸을 때 말이야. 나 네가 마법사인 줄 알았어. 초능력자나.”
“……오.”
찔리는 게 많은 서준이 한 박자 느리게 반응했다.
그때는 최하급밖에 못 썼던 것 같은데 어디서 그런 낌새를 느꼈을까? 아이 때라서 어른들과 뭔가 다른 걸 느낄 수 있었던 걸까?
조용히 침을 삼킨 서준이 물었다.
“……왜?”
“우리 어렸을 때 스케치북에 그림을 많이 그렸잖아.”
“그랬었지.”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짜리몽땅한 두 다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두 손이 크레파스로 더러워질 때까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건 어느 나라 아이나 똑같지 않을까.
어린 서준과 잭이 신나게 그림을 그릴 때, 부모님이 찍은 사진도 어디 있을 거다.
잭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네가 그린 그림이 며칠 뒤에 인형으로 짠! 변해서 나타나는 거야. 내가 그린 그림은 그대로인데 말이야.”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몇 번이고 네가 그린 그림이 인형으로 변해서 나타나니까 그렇게 생각한 거지.”
* * *
오늘도 변함없이 인형으로 변한 서준의 그림을 보며, 어린 잭 스미스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혹시 준의 스케치북이 마법의 스케치북인가?’
크레파스와 색연필은 네 것 내 것 할 것 없이 함께 사용하니, 정말로 그럴지도 몰랐다.
“준! 스케치북 나랑 바꿔서 그려!”
“? 그래.”
딱히 별생각 없는 어린 서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잭과 스케치북을 바꾸었다.
그날 잭은 공룡을 그렸고 서준도 공룡을 닮은 몬스터, 드레이크(다들 공룡인 줄 알았다.)를 그렸다.
그리고 며칠 후.
잭은 서준의 마법 스케치북에서 공룡 인형이 나타나길 기다렸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잭의 스케치북에 그린 서준의 드레이크가 인형이 되어 나타나 버렸다.
“잭! 이것 봐! 드레이크야! 멋지지!”
“……”
“왜 그래, 잭?”
“으아아앙!!”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어린 잭 스미스였다.
* * *
잭의 이야기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잭도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날 그 이야기를 부모님한테 하니까 엄청 웃으시더라고. 그리고 그때서야 한국에 있는 준의 삼촌이 준의 그림을 보고 만들어주는 인형이라는 걸 알게 됐지.”
“희상이 삼촌 말이지.”
그때의 김희상은 취미 삼아 인형을 만들던 때였다. 그래서 서준이 보낸(정확히는 서은혜와 이민준이 자랑하려고 보낸) 그림을 보고 인형을 만들어 보내 주고는 했었다.
“그 이후로는 내 그림도 인형으로 만들어주셨었잖아.”
“그랬었지.”
그렇게 김희상이 만들고 판매하는 인형이 늘어나면서 ‘몬스터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었다.
“지금도 디자인해?”
“응. 가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서준에, 잭이 웃으며 말했다.
“이거 업로드되면 네가 디자인한 상품들 품절되는 거 아니야? 아니면 몬스터사 사이트가 터지거나.”
“하하하.”
아니라고는 하지 않는 서준이었다.
어쩐지 이마를 짚는 아빠와 희상이 삼촌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 * *
점심을 먹고 향한 곳은 잭의 집이었는데, 집 밖부터 촬영한다면 아무래도 무례한 사람들이 찾아올 수도 있어 다락방만 촬영하기로 했다.
“여기도 오랜만이다.”
서준이 추억을 떠올리며 다락방을 둘러보았다. 들고 있던 카메라로 촬영하며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락방이 아이들의 로망이잖아요. 저도 한국에서는 아파트에서 살아서 다락방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잭의 집에 올 때는 방보다 여기서 더 오래 지냈어요. 친구들하고 이야기도 하고 미국 드라마랑 영화도 보고요.”
이곳에서 잭과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그래도 이젠 창고로 써서 올라올 일이 별로 없어.”
잭의 말대로 아이들의 비밀기지였던 다락방은 여기저기 짐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래도 청소는 하는 모양인지 먼지가 많지는 않았다.
“이건 미리 찾아놓은 네 물건들.”
“오. 이게 여기 있었네?”
잭이 내민 상자에는 예전에 서준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이나 가방, 동화책이나 물건들이 상자에 가득 담겨 있었다. 아기들이 가지고 놀 법한 알록달록하고 작은 장난감들이 귀여워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보면 진짜 너희 집에서 많이 놀긴 했어.”
“거의 너희 집이 우리 집이었고 우리 집이 너희 집이었지.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방학이면 놀러 왔었잖아.”
잭이 바닥에 이것저것 늘어놓았다. 어렸을 때 찍었던 사진들이 있는 앨범도 구경하고 오래된 게임기도 꺼내 ‘나중에 하자.’고 말하며 잘 챙겨두었다.
“그랬었지. 그때 너랑 신나게 놀았는데…….”
서준이 추억을 더듬었다.
TV를 보다가 야구를 하고, 점심 먹고 캐치볼을 하고, 저녁 먹고 야구게임을 하고.
“……왜 야구 한 기억밖에 없지?”
“으하하하.”
서준의 말에 잭이 웃음을 터뜨렸다. 뭔가 의미심장한 웃음소리였다.
“그거 나 때문이야.”
“? 당연한 거 아니야? 네가 야구 하자고 했으니까 했겠지.”
잭이 아니었으면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계속 보고 있었을 거다. 물론 시간제한이 있어서 오래 보지는 못했겠지만. 미디어 교육이 철저했던 엄마 아빠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잭이 웃으며 무언가를 꺼냈다. 알록달록하게 생긴 장난감이었다. 한쪽 면에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는 모습이 스피커인가 싶었다.
“이게 뭐야?”
“장난감 녹음기.”
“……녹음기?”
“어제 찾아보니까 이게 있더라고.”
잭이 어깨를 들썩였다.
몇 번을 생각해봐도 꼬마 준과 꼬마 잭은 참 재미있는 아이들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서준에게 잭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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