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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97화 (69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97화

-네 생일 기념인데 나까지 나와도 되는 거야?

“혼자 떠드는 것도 좋지만 친구랑 만나서 편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서. 어릴 때 이야기도 하고 말이야.”

매번 다른 이벤트를 해주는 새싹들처럼, 생일을 맞아 새싹들은 모르는 자신의 어릴 때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서준이었다.

-어릴 때라……

기억을 더듬듯, 휴대폰 건너 잭 스미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왠지 내 흑역사만 알려지게 될 것 같은데.

“하핫.”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같은 어린아이였어도 많은 삶을 겪어봐서 제법 어른스러웠던 서준과 이번 생이 처음이라 그냥 상꼬맹이였던 잭 중,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올 만한 과거를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근데 너 훈련은?

“괜찮아. 쉬는 날 조정하면 되니까.”

-뭐, 그래. 나야 상관없지. 너튜브에 올릴 거지?

“응.”

-좋아. 그럼 이참에 슈퍼스타 서준 리의 흑역사를 전부 이야기해야겠다!

“그럼 나도 메이저리거 잭 스미스의 흑역사를 꺼내놓을 수밖에. 너희 집에 어릴 때 앨범이 있지?”

잠시 침묵이 오고 갔다.

-……그……서로 적당히 합시다.

서준보다 흑역사가 많은 잭이 먼저 굽히고 들어오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그렇게 수요일 약속이 잡히고.

서준은 얼마 남지 않은 [쉐도우앤나이트] 크랭크인에 대비해 스턴트맨팀과 함께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물론 훈련하기에 앞서 능력을 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필립.”

“넵!”

“머리카락에 뭐가 묻은 것 같아.”

“정말요? 어디요? 이쪽이요?”

서준의 부름에 얼른 달려와, 서준이 손도 대기 전에 양손으로 머리를 마구잡이로 털어서 엉망진창으로 헝클어버리는 필립 윤은 정말이지…… ‘개’ 같았다.

“음. 여기.”

강아지를 키워본 적은 없지만 이런 느낌일까.

잠시 필립 윤을 바라보던 서준이 작게 웃고는 손을 뻗어 필립 윤의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무언가를 떼는 척, [(선)봄느티나무의 흉내 내기]의 씨앗을 심었다.

흉내 내고 싶은 목표의 정보들과 본인의 노력을 양분 삼아 효과를 발휘하는 [(선)봄느티나무의 흉내 내기].

김재연에게 했던 수법 그대로 필립 윤에게 써먹는 서준이었다.

[(선)봄느티나무의 흉내 내기가 발동됩니다.]

[목표: 윌리엄 리 / 동화율: 13/100]

필립 윤이 그동안 공부해 둔 정보 덕분인지 벌써 머리 위에 뿅! 하고 새싹이 자라났다. 이 새싹이 자라 봄느티나무가 되면 ‘윌리엄 리’의 분위기를 흉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질감 없이 진 나트라를 대신했던 재연이 형처럼, 필립도 윌리엄을 연기할 수 있겠지.’

물론 능력이 효과를 발휘하는 부분은 ‘윌리엄 리의 분위기’뿐이고, 자세나 움직임은 필립 윤 본인이 열심히 공부해야겠지만 말이다.

“형. 이제 없어요?”

“응. 이제 됐어.”

이제부터는 온전히 필립 윤의 노력에 달렸다.

그렇게 안전을 위해 충분히 몸을 푸는 스트레칭 시간이 끝나고,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개별 연습을 먼저 할 거야. 합은 나중에 맞추고.”

트레이너 에이든이 말에 서준과 필립 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립은 준이 하는 모습을 최대한 관찰하고 따라 하는 형식으로 하자. 그렇다고 보고만 있지는 말고 모르는 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물어보고.”

“넵! 알겠습니다! 저 메모할 것도 들고 왔어요.”

“나한테도 편하게 물어봐.”

“네엡!”

활기가 넘치는 필립 윤에 서준과 에이든이 잠시 웃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메모지를 손에 든 필립 윤의 표정도 새삼 진지해졌다.

“준도 아시다시피, 진 나트라 때랑은 분위기를 180도 바꿔야 해. 빌런이랑 히어로니까 말이야.”

“네.”

“일단 네 ‘윌리엄 리’를 먼저 보자.”

에이든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에이든과 필립 윤에게서 조금 떨어져 섰다.

윌리엄 리.

‘진 나트라’ 때의 기억을 모두 잃고, 2년 동안의 기억이 없는 상태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히어로가 되는 소년.

빌런이었던 진 나트라와는 달리, 그 ‘선善’을 표현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선기를 단련해오며 ‘선의 도서관’을 먼저 열었던 서준에게 아주 쉬운 일이었다.

‘선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착함, 온화함, 자비로움, 인자함, 자애로움, 관대함, 순함 등.

그럼 히어로인 ‘윌리엄 리’에게 어울리는 ‘선’은 무엇일까.

착함도 좋았고 온화함도 좋았다. 인자함과 자애로움은 고등학생인 ‘윌리엄 리’에게는 아직 조금 벅찬 마음가짐일 터였다.

하지만 그 모든 ‘선’의 바탕에 있어야 할 마음이 있었다.

굽혀지지 않는 강인함.

모두를 구하려는 마음.

히어로의 기본적인 마음가짐 말이다.

“……와아압……!”

순식간에 바뀌는 배우 서준 리의 분위기.

저도 모르게 나오던 감탄에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은 필립 윤이었다. 눈동자에는 여전히 놀람과 감동이 가득했다.

‘이게 배우 서준 리구나.’

이런 배우의 스턴트맨을 맡게 되다니.

새삼 실감이 되어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면서도 어쩐지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오케이. 괜히 걱정했네. 역시 연기는 준한테 맡겨두는 게 베스트야.”

에이든의 말에 평범한 모습으로 되돌아온 서준이 하하 웃었다.

“그럼 액션 쪽을 살펴보자. 검술이나 체술은 진 나트라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정이지?”

“네. 기억은 잃었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다. 그런 느낌이에요.”

“그럼 진 나트라의 검술은 빌런답게 거칠었으니까 히어로인 윌리엄은 조금 더 격식 있고 예의 바른 느낌으로 하는 게 좋으려나?”

에이든의 의견에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래도 스토리상 분위기가 격렬해져서 그렇지, 진 나트라 쪽이 더 격식 있었다고 생각해요. 나트라의 기사들에게 배웠던 기억도 있고 몸에 익숙한 것도 있으니까요.”

필립 윤은 한마디라도 놓칠까 싶어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윌리엄은 기억을 잃은 상태니까, 검술이나 체술이 왠지 모르게 몸에 익숙하면서도 ‘이걸 내가 어떻게 알고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조금 어색한 것 같은 느낌이 남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음. 몸과 기억의 차이라…….”

서준의 설명에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훈련하자.”

에이든이 검을 대신할 기다란 봉을 가지고 와 서준과 필립 윤에게 건네주었다.

“진 나트라가 했던 검술은 기억하지? 그것부터 복습해 보고 훈련해 보자.”

“네.”

“필립은 준을 보고 최대한 따라 해보려고 노력해 봐.”

검술은 서준이 미국에 오기 전부터 배워서 익숙할 필립 윤이지만, 김재연이 그랬듯 배우 서준 리가 연기하는 ‘특유의 분위기’를 따라 하는 건 어려울 터였다. 아주 열심히 노력해야 할 터였다.

“넵!”

봉을 가볍게 이리저리 움직여 본 서준이 씩씩하게 대답하는 필립 윤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목표: 윌리엄 리 / 동화율: 17/100]

그새 동화율이 4나 올라있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 *

며칠 후.

순조로운 훈련상황에 개별 훈련이 줄어들고 단체훈련이 진행되었다.

“뭐, 단체라고 해봤자 우리만 하는 훈련이지만.”

“하하하.”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재연의 말에 서준이 웃고, 필립 윤이 눈을 빛냈다.

[목표: 윌리엄 리 / 동화율: 47/100]

필립 윤의 머리 위, 어린 봄느티나무가 자라나 있었다. 그 짧은 개인훈련 동안에도 참 열심히 했나 보다. 이 상태라면 필립 윤이 촬영에 투입되기 전 90%까지 도달해, 풍성한 봄느티나무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움직이면서…….”

트레이너 에이든이 개인훈련을 하는 동안 무술감독과 함께 짜온 장면들을 설명했다.

지금은 연습에 불과하지만 찰나의 실수가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서준과 김재연, 필립 윤 모두 집중했다.

“그럼 시작해 보자.”

그렇게 단체훈련이 시작되었다.

* * *

탁! 타악-!

서준과 김재연이 든 기다란 봉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A2훈련장에서 훈련하던 스턴트맨들과 트레이너들이 흥미로운 듯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중에는 잠깐 보러온 조나단 윌 감독도 있었다.

빌런이 공격을 하면 히어로가 막는다.

히어로가 반격을 하면 빌런이 후려친다.

단순한 것 같지만, 슈퍼히어로 영화의 꽃이 될 만큼 화려한 공방들이 오고 갔다.

‘진짜 전투였으면 전부 쓸모없겠지만.’

서준의 손등에 새겨진 능력이 그렇게 전하고 있었다.

[(선)오래된 에고소드의 가르침-중급-이 발동됩니다.]

[(선)오래된 에고소드의 가르침(중급)]

수많은 검사들의 손을 거치면서 영혼을 갖게 된 에고소드입니다.

주인이었던 검사들의 검법과 전투 방법 중 일부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습득 중: 오든제국 기사단 검술

안드로이드로도 태어났었는데, 무기로도 태어난 적이 없었겠는가.

이번 [쉐도우앤나이트]의 촬영을 위해 선의 도서관에 있던 삶의 책들 중 에고무기들의 책을 읽은 서준이었다.

‘검 말고도 창이랑 도끼도 있었고 활도 있었지.’

물론 갑옷이나 방패 같은 방어구도 있었다.

정말 ‘인간’ 빼고는 온갖 생명체로 환생했었더랬다.

아무튼.

에고소드의 책들 중에는 중상급의 능력도, 상급의 능력도 있었지만, 딱히 누군가를 쓰러뜨리기 위한 것은 아니라서 서준은 이 능력을 선택했다.

[(선)오래된 에고소드의 가르침]에 있는 검술 중 하나인 ‘오든제국의 검술’이 ‘진 나트라의 검술’, 그러니까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와 비슷했던 것도 선택의 이유 중 하나였다.

‘데스 나이트가 제국 출신이던데, 그 제국이 오든제국일지도 모르겠네.’

타악!!

미리 이야기된 공방의 순서대로 김재연의 공격을 비껴치며 서준은 다시 훈련에 집중했다.

오오오!

힘 조절을 하고 있겠지만 진지한 서준의 표정만 보면 정말 빌런을 처치하기 위해 있는 힘껏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재연은 진짜 힘든 것 같지만.’

저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은 연기로 나올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CG로 가리기엔 아까운 표정이다, 라고 생각하던 조나단 감독은 다른 사람들처럼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공방에 넋을 놓고 있다가 서준과 김재연의 훈련이 멈추고 나서야 입을 열고 물을 수 있었다.

“……이 장면이 원래 이렇게 화려했어요?”

그 질문에 에이든과 무술감독이 시선을 피하며 하.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뭐, 네가 자율권을 준다길래……할 수 있는 만큼 해봤지. 물론 스토리에는 영향 안 가게 말이야.”

“그래도…….”

“참고로 준의 의견이었어.”

한국 코코아엔터에서만 쓰이던 ‘이서준 실드’가, 바다 건너 미국 트레이닝 센터에서 발동되었다.

무술감독의 말에 조나단 감독이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조나단! 왔어요?”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서준에 조나단 감독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물었다.

“준, 네가 제안했다고 들었는데, 로렌스 배우에게 저런 걸 시킬 생각이었어, 준?”

“아뇨?”

조나단의 질문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로렌스 배우랑 훈련했으면 처음 구성대로 가려고 했어요. 조금 전에 한 건 재연이 형이 너무 잘 받아주셔서 하다 보니 바꾸게 된 거고요. 괜찮지 않았어요, 조나단?”

“……괜찮긴 했지.”

CG 처리도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넋을 놓고 봤을 정도니까 말이다.

‘저기다가 CG까지 넣으면 장난 아니겠지.’

조나단 감독의 말에 서준이 신이 나서 말했다.

“재연이 형이 잘 받아줘서 정말 멋지게 나왔어요. 분위기도 진짜 빌런 같고! 카메라도 찍어도 진짜 멋지게 나올 거예요.”

지친 모습으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필립 윤에게 받은 물을 들이마시고 있던 김재연이 서준의 칭찬 세례에 웃고 말았다. 일개 스턴트맨일 뿐인데도 저렇게 말해주는 게 고마웠다.

“그래서 난이도를 더 높일까 생각 중인데요…….”

“서준아!”

그건 아니지!

칭찬은 칭찬이고, 일단 살고 싶은 김재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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