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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96화 (69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96화

“잘됐네요!”

서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진 나트라’가 아니라 다른 역할이지만 김재연과 함께 촬영하게 되어서 기뻤다.

‘물론 직접 맞붙는 장면은 별로 없을 테지만.’

서준 자신이 직접 액션 장면을 연기하는 만큼, 빌런을 연기할 배우인 커크 로렌스도 직접 액션 장면을 연기할 테니, [쉐도우맨3] 때 트레이닝 센터에서 에반과 리첼, 스왈린과 함께 합을 맞춘 것처럼 커크 로렌스 배우와도 훈련하게 될 터였다.

‘그리고 위험한 장면에서만 스턴트맨이 촬영하겠지.’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재연이 형과 맞서는 장면은 거의 없을 게 분명했다.

‘음. 아예 없으려나.’

그건 좀 아쉽네, 하고 생각하는 서준을 알았는지, 조나단 감독이 설명을 덧붙였다.

“로렌스 배우는 액션 장면은 최소한으로 촬영하기로 계약했어. 그래서 빌런과 싸우는 장면은 대부분 재연이 대신할 예정이야.”

……?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그에 조나단 감독과 무술감독이 작게 웃고 말았다.

배우인데?

연기인데?

최소한으로 한다고?

하는 의문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립영화 판에서 이런저런 배우들을 만나본 조나단 감독이 말했다.

“준이 만난 배우들이 연기에 유난히 열정적이었던 거지. 이런 배우들도 있어.”

누구보다 많은, 개성 강한 배우들을 겪었던 무술감독도 덧붙였다.

“오히려 자신이 못하는 걸 확실하게 파악하고 이야기하는 쪽이 좋지. 괜히 어정쩡하게 촬영 중에 못 하겠다고 하는 게 더 민폐야.”

확실히.

처음 만나본 유형의 배우라 잠시 당황했던 서준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커크 로렌스 배우, 연기 잘하시더라고요.”

커크 로렌스의 작품들을 살펴본 서준의 말에, 그를 캐스팅한 조나단 감독은 자신이 칭찬을 받은 것처럼 빙그레 웃었다.

“그치? 무뚝뚝한 편이지만 성격은 나쁘지 않아서 촬영하기 괜찮을 거야. 촬영 시간도 잘 지키고.”

“심술부리는 일도 없고. 그 정도면 무난하지.”

“그렇죠.”

조나단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무술감독과 김재연.

그 모습에 생각보다 할리우드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든 서준이었다.

“하하. 하여튼 그렇게 돼서 액션장면은 나랑 연기하게 될 거야. 잘 부탁해, 서준아.”

커크 로렌스와의 액션 연기도 재미있었겠지만, 김재연과의 액션 연기도 괜찮을 것 같았다. [쉐도우맨3] 때 합을 맞춰본 경험도 있으니까 말이다.

‘재연이 형이라면 좀 더 격렬하게 해도 괜찮겠다!’

커크 로렌스를 생각해서 적당히 해야겠다고 생각해 두었던 액션 연기의 한계치를 쫘아악 올린 서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재연이 형!”

“그, 그래.”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은 김재연이었다.

“저도! 저도 잘 부탁합니다!!”

중요한 대화 속에서 조용히 있던 필립 윤이 드디어 끼어들 틈을 찾아내고는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하하호호.

서로를 바라보는 배우와 두 스턴트맨, 그리고 감독과 무술 감독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어쩐지 멋진 장면들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 * *

한 시간 후.

“……죽을 것 같아요……!”

하하호호 하던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앓는 소리만 들려왔다. 필립 윤은 완전히 지친 상태였고, 김재연은 그나마 괜찮은 상태였다.

“그래요?”

물을 마시던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같은 훈련을 받고도 멀쩡한 서준을, 필립 윤은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게 슈퍼스타……!”

“아니, 준만 이런 거야. 준만.”

손을 내저은 김재연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예전에도 대단했는데 어른이 되니까 더 대단해졌네.”

“하하하.”

십 대 소년의 체력도 굉장했지만, 이십 대 청년의 체력도 정말 대단했다. 아니, 옆에서 헥헥거리는 같은 이십 대 필립 윤을 보면 서준이 특별한 거였다.

“저기 봐봐. 트레이너들도 보고 있잖아.”

김재연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시선을 많이 받는 직업이다 보니 그다지 신경을 쓰진 않았던 시선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선의 의미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왠지 테스트 해보고 싶다,라는 눈빛이라고 생각되는 건 착각일까요, 형?”

이글이글 타오르는 트레이너들의 눈빛에 서준이 김재연에게 물었다.

“맞을걸? 예전에 서준이 네가 테스트했던 기록이 있잖아. 그게 센터의 전설로 남아 있거든.”

“전설요? 그게 뭐예요?”

눈을 반짝이며 묻는 필립 윤에게 김재연이 설명해 주었다.

“준이 열다섯, 그러니까 미국 나이로는 열 네 살에 센터에서 테스트를 받았는데 만점 나왔던 적이 있어. 성인 기준으로 만점이었지.”

“우와아아!”

“하하하.”

트레이너들과 필립 윤의 한층 더 강렬해진 눈빛에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김재연이 말을 이었다.

“어릴 때도 그랬으니 성인이 된 지금은 얼마나 나올지 궁금한 거겠지. 그사이에 센터의 테스트랑 기계도 한층 섬세해졌거든.”

“그래서 테스트 한번 어때, 준?”

귀에 익은 목소리에 서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쉐도우맨3] 훈련 당시 서준의 트레이너를 맡았던 에이든이 서 있었다.

“에이든! 오랜만이에요.”

“오늘 온다고 이야기는 들었는데 외근 때문에 조금 늦었어. 근데 오자마자 여기저기서 난리지 뭐야.”

서준이 내민 손을 마주 잡고 위아래로 흔든 에이든이 웃으며 세 사람을 살펴보았다.

여유로운 서준과 지쳐서 앉아 있는 두 스턴트맨. 딱 봐도 상황을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어때, 테스트.”

“으음.”

딱히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서준에게 에이든이 당근을 내밀었다.

“이번에 결과가 괜찮으면 무술감독님께 액션 장면 더 소화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줄게.”

“할게요!”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늘다니!

몇 번이고 테스트할 수 있었다.

단번에 승낙하는 서준에 에이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연기하게 해준다고 함부로 사인하면 안 된다. 준.”

“아하하하. 네. 알고 있어요.”

“좀 쉬었다 갈래? 아니면 바로 갈래?”

그말에 읏차읏차 몸을 움직여본 서준이 대답했다.

“지금 가도 될 것 같아요.”

그에 고개를 끄덕인 에이든이 서준과 함께 걸어가며 테스트에 대해 설명했다. 기운을 차린 김재연과 필립 윤도 그 뒤를 따라갔다.

“서준이 형. 또 만점 나오는 거 아니에요?”

훈련하다 보니 어느새 형동생 하게 된 서준과 필립이었다.

“글쎄. 기계가 바뀌어서 좀 어렵지 않을까? 이번에는 점수가 아니라 ABC 등급으로 나오잖아.”

“아, 그랬죠. 저 B였어요.”

“B도 높은 점수지.”

그정도니 ‘윌리엄 리’역의 스턴트맨을 맡을 수 있었을 터였다.

“서준이 형이라면 전부 A+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럼 네 촬영분이 적어질 텐데 괜찮겠어?”

배우가 촬영할 분량이 는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스턴트맨이 촬영할 수 있는 장면이 줄어든다는 이야기였다.

“괜찮아요! 저보다 서준이 형이 더 많이 나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찐팬이네.

진심 어린 필립의 눈빛에 김재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네 사람은 트레이닝 센터 본관 테스트실로 향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매니저 최태우와 조나단 감독도 곧 나타났다.

“테스트 자료를 한국에 보내도 될까요?”

“네. 괜찮습니다.”

최태우가 열심히 매니저 일을 하는 사이, 서준의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먼저 근력.”

근력부터 민첩성, 유연성, 지구력 등 다양한 부분의 테스트가 이어지면서 트레이너 에이든과 테스트를 체크하는 직원들의 입은 닫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 서준이가 잘하는 거죠?”

테스트를 하는 서준이 너무나도 쉽게 쉽게 하는 모습이라, 테스트가 의외로 쉬운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던 터라, 제대로 판단이 되지 않은 최태우가 김재연에게 물었다.

“엄청 잘하는 겁니다.”

김재연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했고 필립 윤은 그저 입을 쩌억 벌리고만 있었다.

테스트 중 잠시 쉬는 시간.

중간 결과지를 본 에이든이 매니저 최태우에게 물었다.

“매니저님.”

“네?”

“준이 군대에 갔었다는 건 들었는데.”

“네.”

“……혹시 그게 한국군 특수부대였습니까?”

“……예?”

……뭐라구요?

표정으로 절대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대신한 슈퍼스타의 매니저에게 에이든이 중간 결과지를 내밀었다.

“후우. 기계를 바꾼 후에 이런 결과는 처음 봐서 그렇습니다.”

에이든만이 아니라 직원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자, 최태우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결과지를 바라보았다.

중간 결과지는 A+로 도배되어 있었다.

“와. 이게 진짜예요?”

“한두 부문에서 A+은 봤지만…….”

슬쩍 고개를 내밀어 결과지를 본 조나단 감독과 김재연도 탄성을 삼키지 못했다. 필립 윤이 미쳤다! 미쳤어! 를 반복했다.

“잘 나왔어요?”

……응. 엄청.

해맑게 웃으며 묻는 서준에, 다들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코코아엔터, 배우 이서준 전담 1팀 사무실.

서준의 팬미팅 DVD 예약날이 다가오면서 음원 공개로 더더욱 불타오르고 있는 새싹들과 각 작품의 팬들에, 1팀 직원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이트 터지면 안 됩니다. 절대 안 돼요.”

“네엡!”

몇 년 전 포토북 예약도 그랬지만 이번 팬미팅 DVD 예약도 아주 치열할 것 같았다.

“배우님 생일선물 문의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건 매년 하던 대로 합시다!”

거기다 곧 있을 서준의 생일까지 겹치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서준이랑 태우 씨 잘하고 있겠죠?”

그래도 배우 이서준 전담 경력이 몇 년인데.

항상 태풍의 중심이 되는 서준에게 익숙해진 덕분에 잠깐이지만 잡담을 할 여유는 있었다.

“미국 간 지 이제 나흘 됐습니다.”

“그래도 둘만 보내서…… 서준이는 하도 어릴 때부터 봐와서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보이고 태우 씨는 아직 신입처럼 보인달까요.”

“비교할 매니저가 안 이사님이니까요. 누가 매니저로 와도 조금 부족해 보이겠죠.”

응응.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 보고서 올 시간이지 않아요?”

“그러게요.”

LA 시간으로 저녁.

급한 일이 아니라면 이제 곧 최태우에게서 보고서가 올 시간이었다.

격식을 갖춘 건 아니었고 오늘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훈련을 했는지 정도가 적힌 보고서였다.

“왔어요!”

메일함에 보고서가 도착했다.

다들 궁금한 얼굴로 메일을 열어보았다. 그러고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회의 중이던 안다호 이사도 마찬가지였다.

서준의 일이 제1순위인 터라, 최태우에게서 오는 메일은 전부 알림 설정을 해두었다. 회의 중에도 알 수 있게.

띠링-

울리는 소리에 잠시 서은찬 사장과 김상진 이사에게 양해를 구한(두 사람도 궁금해했다.) 안다호가 메일을 읽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왜 웃어?”

“서준이한테 무슨 일 있대요?”

“아뇨. 그게…….”

안다호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액션 트레이닝 센터에서 체력 테스트 실시]

[전 부문 A+ (센터 최초 기록)]

[특이사항: 트레이너 에이든 씨가 ‘특수부대 출신이냐’고 물어봄.]

……특수부대?

“저번 테스트 때는 국가대표였는데, 이번에는 특수부대네요.”

안다호의 설명에 두 사람이 빵 터지고 말았다.

* * *

-너,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오해받았다며?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서준이 귀에서 휴대폰을 떼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잭 스미스.

서준의 오랜 친구가 맞았다. 스턴트맨이나 액션 트레이닝 센터와는 아무 인연도 없는 야구선수인.

“어떻게 알았어?”

-엄마가 너희 부모님에게 들었대.

아하.

그럼 이해가 간다. 엄마 아빠는 다호 형이나 은찬이 삼촌에게서 들었겠지.

-특수부대 출신으로 오해받을 정도라니. 역시 서준 리. 근데 특수부대 출신도 조금 부족한 것 같은데? 연기력까지 보면 잠입요원이나 첩보요원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007같은.

서준의 진면목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인 오랜 친구가 킬킬 웃었다. 서준도 웃음을 터뜨렸다.

“너 수요일에 쉰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고, 겨우 전화한 용건으로 꺼낼 수 있었다.

-응? 어떻게 알았어?

“아저씨가 말씀해 주셨어.”

정보의 출처는 스미스 부부였다.

서준의 대답에 휴대폰 건너 잭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우리 서로의 소식을 부모님한테서 듣네.

“그러게 말이야.”

서준도 웃음을 터뜨렸다. 가족끼리 친하니 소식이 이렇게 전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약속 없으면 같이 놀자고.”

-노는 거야 상관없지만. 그것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잭 스미스의 완벽한 추리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맞아. 이제 곧 내 생일이잖아.”

-어.

“팬분들에게 보여줄 브이로그 찍으려는데 나만 나오면 심심할 것 같으니까, 너도 같이 찍자고.”

3월 10일.

팬미팅 DVD와 더불어 또 하나의 선물이 새싹들에게 전해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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