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95화
“준!”
주차장에 차를 대고 트레이닝 센터 본관으로 향하니, 어쩐지 조나단이 활짝 웃는 얼굴로 두 팔을 흔들며 격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보통 조나단이 있으면 라이언 감독님이 있을 때가 많아서 그런지, 서준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라이언 감독을 찾아 저절로 조나단 윌의 주변을 움직였다.
‘안 계시네?’
어제 집에서 만나서 조나단만 보낸 건가, 생각하다 아차 했다.
‘이제 감독은 조나단이지.’
마냥 해맑게 웃는 조나단 윌의 얼굴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중학생 조나단 윌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놉시스를 쓸 때도 그랬지만, 그 허둥지둥하던 중학생이 자라 함께 작품을 하게 됐다는 게 신기하고 낯설었다.
‘촬영을 시작하면 더 그렇겠지.’
작품도 [쉐도우맨]의 뒤를 잇는 이야기라서 그런가.
라이언 윌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이 카메라 뒤에서 ‘레디, 액션!’을 외친다는 게 어색할 것 같았다.
“일찍 왔네? 훈련시간은 오후 아니었어?”
밝게 웃는 조나단 윌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금방 익숙해질 터였다. [쉐도우앤나이트]에 대한 조나단 윌 감독의 열정과 실력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저랑 같이 연기하실 스턴트맨분도 만나야 하고 오랜만에 온 거라 몸 좀 풀려고요.”
“한국에서 자주 운동했다고 하지 않았어?”
[쉐도우앤나이트]팀이 대관한 훈련장으로 향하면서 서준과 조나단 윌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태우와 킹즈 에이전시 직원이 그 뒤를 따랐다.
“그래도 액션 연기랑은 느낌이 다르거든요. 최대한 많은 액션씬을 연기하려면 연습해야죠.”
서준이 트레이닝 센터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랜만에 온 곳이지만 크게 바뀐 부분은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액션씬 전부를 제가 할 연기할 생각은 없으니까 감독님이 잘 체크해 주세요. 괜히 무리하게 찍다가 다치면 큰일이잖아요.”
믿음직스러운 서준의 말에 조나단 윌의 마음이 든든해졌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속이 울렁거렸다. 순식간에 새하얗다 못해 시퍼렇게 변한 조나단 윌의 얼굴에 서준이 눈을 끔뻑였다.
“괜찮아요? 조나단?”
뒤에서 따라오는 매니저와 에이전시 직원에게는 들리지 않게, 조나단 윌이 속삭였다.
“……아니. 죽을 것 같아.”
어제는 라이언 삼촌도 있고, 에반과 리첼이 있어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뭐랄까.
라이언 삼촌에게는 듬직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고, 에반과 리첼은 라이언 삼촌의 배우라는 느낌이라서 친하긴 해도 속마음까지 털어놓는 건 어색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준은 이제 내 배우니까!’
앞으로의 시리즈에서도 함께할 테니까!
서준과 투닥거리면서 시놉시스를 함께 만든 경험도 있어서 그런가.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편했다.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기도 했고.
“마린사에서는 제작비는 넘칠 만큼 줄 테니까 내 마음대로 촬영하라고 하지, 무술감독님이랑 미술감독님이랑 음악감독님도 결정할 자료를 한가득 들고 오지, 배우들도 결정해야 하고……!”
아주 죽겠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조나단 윌에 서준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전부 이전 영화들 찍으면서 해봤던 일이잖아요. 편하게 결정해요. 조나단.”
“스케일이 다르잖아. 스케일이…….”
자신보다 어리지만 믿음직스러운 슈퍼스타에게 징징거리는 신인 감독에, 슈퍼스타가 웃으며 말했다.
“조나단이라면 잘할 거예요.”
이렇게 엄살을 부려도 촬영에 들어가면 잘할 거다.
음.
잘하게 할 거다.
* * *
“여기가 우리가 대관한 A2관이야.”
새파랗던 조나단 감독의 얼굴색도 대관한 훈련장(A2)과 가까워지면서 천천히 돌아왔다. 부담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고 그냥 평온함을 연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라이언 삼촌이 어떤 상황에서도 감독은 당황하면 안 된다고 했거든.”
“아하.”
그 조언을 그대로 습득해서 실행하는 보니, 조나단 윌은 천생 감독인 듯했다.
‘마린사에서도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보통 제작사에서 ‘절대로, 꼭 흥행해야 하는 시리즈’를 맡은 신인 감독에게 참견이나 간섭을 하지 않고, ‘제작비는 넘칠 만큼 줄 테니까 내 마음대로 촬영하라고 하지.’라고는 말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조나단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아무래도 프리프로덕션(촬영 전 준비 작업)에서 훌륭하게 감독의 역할을 수행한 것 같았다.
점점 조나단 윌 감독과의 촬영이 기대가 되는 서준이었다.
* * *
“오늘 온다고 했죠? 으아아아! 저 서준 리 같은 스타는 처음 봐요!”
아침부터 들떠 있는 스턴트맨, 필립 윤을 보며, 쉐도우맨, 그러니까 에반 블록의 스턴트맨인 케빈과 다른 스턴트맨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하고 엑스트라가 아닌, 첫 주연 배우의 대역을 맡았던 그 날의 추억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무려 사건 사고가 펑펑 터지는 할리우드가 아닌가.
“……에반이나 준만큼 성실하고 성격 좋은 배우도 드물지.”
“리첼도요.”
“운도 좋은 녀석.”
와와! 하고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훈련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온몸을 다해 기뻐하는 필립 윤을 보며 다들 웃고 말았다.
“이제 훈련 시작하자.”
“넵!”
무술감독의 말에 스턴트맨들은 짧은 쉬는 시간을 만끽하고 다시 훈련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위험한 장면들을 직접 소화해 내는 이들이니만큼 안전을 위해서도 멋진 장면을 위해서도 훈련이 가장 중요했다.
으아아아! 돌아다니던 필립 윤도 어느새 진정하고 담당 트레이너와 함께 줄자를 들고 몸의 이곳저곳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일단 준이 오면 다시 살펴볼 테지만, 에이전시에서 보내준 자료랑은 비슷해졌어.”
“다행이네요! 식단 조절한다고 힘들었는데!”
아무래도 스턴트맨의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본체 배우와의 체격을 맞추는 일이었다. [쉐도우맨3]에서 멋진 스턴트맨 연기를 보여주었던 김재연도 이제 서준 리와 체격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체되지 않았나.
‘그렇게 멋진 액션을 보여줬는데…….’
비정한 세계에 저절로 침이 꿀꺽 삼켜진 필립 윤이었다.
“촬영 끝날 때까지 조절해야 돼. 필립.”
“넵! 알겠습니다.”
바짝 기합이 들어간 필립 윤에 코치가 웃으며 오늘 할 훈련에 대해 설명하려던 때, 훈련장의 문이 열렸다.
A2훈련장은 마린사에서 대관한 훈련장이라서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필립 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아, 훈련 중이셨어요?”
“아니. 이제 막 하려던 참이었어.”
조나단 윌 감독의 말에 [쉐도우맨 시리즈]를 함께 해온 무술감독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잠시 시간 괜찮을까요? 준이 도착해서요.”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무술감독에 활짝 웃은 조나단 감독이 옆으로 비켜났다.
그리고 슈퍼스타가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서준 리입니다.”
오랜만에 서준을 보는 케빈과 스턴트맨들도, 처음 만나는 필립 윤과 신입 스턴트맨들도 번쩍번쩍한 스타의 아우라에 와우- 하고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 * *
“필립 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악!”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민 서준이 90도, 아니, 폴더블폰처럼 180도로 다리에 상체를 붙일 듯 허리를 접어 인사하는 필립 윤의 모습에 눈을 끔벅이다가 킹즈 에이전시 직원을 바라보았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면서요?’
마치 기합을 받는 듯한 필립 윤의 자세에, 킹즈 에이전시 직원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음.
보고서로 서로의 현황을 주고받는 나라 이모네처럼, 아니, 그보다 가정교육이 빡센 집인가 보다.
“반가워요. 서준 리예요.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윤.”
“제가 한 살 어립니다! 편하게 필립이라고 불러주십쇼!”
……너 한국계 미국인이라며.
분명히 영어로 말하고 있는데 왜 존댓말이 들리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나이까지 따지고.
“네. 그럴게요.”
“말도 편하게……!”
“그만해. 이 자식아.”
무술감독이 필립 윤의 등을 짝! 쳤다. 아픔에 필립 윤이 몸을 비틀었다. 그 모습에 서준은 웃음을 터뜨렸고 최태우는 ‘필립 윤: 독특. 주의 필요.’라고 메모했다.
그사이, 조나단 감독과 트레이너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준 리와 필립 윤의 체격을 비교해 살펴보고 있었다.
“필립의 상체 쪽을 좀 더 보강하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
“에이전시에서 준 치수와는 비슷했는데……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달라서 그런 느낌이 드는 걸 수도 있습니다.”
“으음. 그럼 훈련복을 입어보고 다시 살펴봐야겠네요.”
역시 할리우드.
개성이 넘치는 곳이었다.
* * *
잠시 훈련이 미뤄진 사이, 스턴트맨들도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필립이랑 체격이 비슷하다고 해서 얼굴은 몰라도 뒷모습은 비슷할 줄 알았는데, 전혀 느낌이 다르네. 재연이 대단하긴 했어.”
“그건 그래. 쉐도우맨3에서도 이질감이 없었잖아. 준의 연기력을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일이지.”
“키만 컸으면 재연이 또 맡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움에 스턴트맨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재연…… 잘 살고 있을까?”
“그러니까 말이야. 일은 구했을까 모르겠네…….”
선배들의 우울함에 덩달아 새롭게 고용된 스턴트맨들도 냉혹한 세계에 걱정 어린 얼굴이 되었다.
“나 안 잘렸거든요?”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모여있던 케빈과 스턴트맨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막 훈련장 입구로 들어온 듯한 남자가 있었다.
[쉐도우맨3]에서 진 나트라의 대역을 맡았던,
김재연이었다.
“으하하하. 재연, 왔어?”
우울한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케빈과 스턴트맨들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신입 스턴트맨들의 눈동자는 크게 요동쳤다. 아니, 어, 서준 리의 스턴트맨은 필립 윤이 아니었어? 왜 재연 킴이 여기에?
김재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 없을 때마다 잘린 사람 취급하는 거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어요?”
“왜, 재미있잖아.”
“맞아. 이 이야기할 때마다 필립이랑 신입들이 쪼는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다고.”
정말 이 사람들이?
김재연의 날카로운 눈빛에 다들 어깨를 으쓱였다. 그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김재연이 물었다.
“근데 다들 훈련 안 하고 여기서 뭐 해요?”
“감독님이랑 준이 왔거든. 저쪽에서 필립이랑 무술감독님이랑 이야기하고 있어.”
케빈의 말에 김재연이 조나단 감독과 무술감독, 그리고 서준 리와 필립 윤이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비슷한 키와 체격의 남자가 둘.
“뒷모습은 똑 닮았네요.”
김재연의 말에 케빈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누가 누군지는 확실히 알 것 같지?”
그건 그렇다.
뒷모습만 보면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보이지만, 아우라 자체가 달랐으니까 말이다.
“재연 너라면 조금 헷갈렸을 것 같은데 말이야.”
하핫.
김재연이 웃었다.
“칭찬 고마워요. 그래도 이제 저도 여기서 훈련하니까 놀리는 건 그만 해요. 케빈.”
“에이. 아쉽네.”
“전 감독님께 인사드리고 올게요.”
“그래.”
떠나는 김재연의 모습에 신입 스턴트맨들이 선배들에게 우르르 몰려들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댔다.
* * *
‘그래도 좋은 사람 같네.’
태영이 형과는 다른 쪽으로 ‘개’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앞으로 함께 훈련하고 촬영하기에는 괜찮을 것 같았다.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뭐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열정적인 필립 윤의 모습을 보면, 재연이 형에게 썼던 [(선)봄느티나무의 흉내 내기]도 아주 잘 활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대상자의 노력에 따라서 동화율이 올라가니까 말이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좋다.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시킬 건 없고. 훈련 같이 열심히 해요. 아니, 하자. 필립.”
“! 넵!”
필립 윤의 눈동자가 더욱더 초롱초롱해졌다.
가장 합이 잘 맞아야 하는 배우와 스턴트맨의 분위기가 좋으니, 다른 사람들도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하하호호 웃으며 앞으로의 훈련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감독님. 저 왔습니다.”
귀에 익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재연이 형?”
“안녕. 서준아.”
김재연이 거기에 있었다.
‘헉! 재연이 형이래! 안녕, 서준아래!!’ 배경음악처럼 들리는 필립 윤의 목소리는 뒤로하고.
서준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제 스턴트맨은 필립 아니에요? 조나단?”
“아, 말하지 않았나요?”
“저희 쪽에 전해진 정보는 없습니다.”
조나단 감독의 시선에 킹즈에이전시 직원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실수로 전달하지 못한 정보가 있다는 게 안다호 이사에게 들어가면 큰일 난다.
“바빠서 전달 못 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미안, 준.”
조나단 윌 감독이 ‘책임자답게’ 정중히 사과하고는(어쩐지 라이언 감독에게 이 모습을 전해주고 싶은 서준과 무술감독이었다.) 설명했다.
“준도 알다시피 재연이 액션 연기를 정말 잘하잖아. 윌리엄 리는 체격 때문에 아쉽게 할 수 없었지만,”
조나단 감독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신 빌런 배우의 대역을 맡게 됐어.”
……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으로 변한 상황에, 서준이 탄성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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