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93화
“어서 오세요!”
서준이 네 사람을 반겼다. 최태우도 뒤에서 꾸벅 인사를 했다.
“/새 매니저분이시죠? 반가워요. 리첼 힐이에요./”
그런 최태우를 본 리첼 힐이 활짝 웃으며 한국어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만나본 적이 있지만 리첼 힐과 최태우는 첫 대면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매니저 태우 최라고 합니다!”
자연스러운 한국어에 반사적으로 한국어로 답했다가 얼른 영어로 바꿔 말한 최태우는 속으로 리첼 힐의 한국어에 놀라고 말았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영상도 봤다), 정말 한국인처럼 한국어를 한다 싶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요리하고 있었어? 피곤할까 봐 우리가 들고 왔는데.”
서준의 말에 집 안으로 발을 들인 에반 블록이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를 맡고는 손에 든 봉투를 들어 보였다. 리첼 힐과 조나단 윌도 손에 든 푸짐한 봉투를 보여주었다. 그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걸로 간단하게 했어요. 그것도 데워야 하죠? 이리 주세요.”
“/어허!/ 오늘 온 사람은 쉬고 있어. 주방 이쪽이지? 가자! 조나단!”
하고 말한 리첼 힐이 히히 웃으며 조나단 윌까지 끌고 주방으로 향했다. 서준 쪽과 주방 쪽을 번갈아 바라보던 최태우가 안절부절못하다가 리첼 힐과 조나단 윌의 뒤를 쫓았다.
서준이 눈을 끔뻑였다.
“……/어허/는 또 어떻게 알았대요?”
리첼 힐의 입에서 듣는 그 말이 굉장히 낯설었다. 그런 서준의 모습에 에반 블록이 웃으며 말했다.
“/내의원/을 다시 보고 있대.”
아하.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팬미팅에서 지금까지 연기한 배역의 모습으로 연주를 했다고?”
다이닝룸으로 향하며 말하는 라이언 감독에, 에반 블록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셨…… 아, 미국팬분들도 오셨었나 보네요.”
물어보려던 서준이 관객석에 앉아있던 외국인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분들 중에 있던 미국새싹들이 팬미팅 후기를 적었나 보다.
“그것도 있고, 팬카페 들어가 보면 한국팬들 적어놓은 후기를 번역해 놓은 게 많거든. 못 본 사람들은 DVD를 산다고 난리더라. 나도 당연히 살 생각이야.”
미국 [새싹부터]에 가입한 에반 블록이 웃으며 말했다.
“영화객이란 너튜버의 영상도 봤다.”
영화객이 라이언 감독의 말을 들었다면 기겁하지 않았을까, 하고 서준이 생각하는 사이, 라이언 감독의 말이 이어졌다. 흥미로운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진 나트라 버전으로는 피아노 연주를 했다지?”
“이야. 진 나트라 버전이라. 쉐도우맨으로서 정말 궁금한데요? 감독님도 그러시죠?”
“당연한 소리를.”
에반 블록과 라이언 감독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압박감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피아노도 있으니까 저녁 먹고 연주해 드릴까요?”
“그럼 좋지!”
“고맙다. 준.”
“아뇨. 꼭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쉐도우맨 시리즈의 진 나트라잖아요.”
쉐도우맨, 에반 블록과 감독, 라이언 윌이 듣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서준의 말에 에반 블록과 라이언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서준과 최태우가 준비한 요리에, 각자 가져온 요리들까지 데워져 가득 채워진 식탁에서 즐겁게 저녁 식사를 하던 중,
“내 동생의 연주라니! 나도 듣고 싶었어!”
“대본에 참고가 될지도 모르겠네!”
그 이야기를 들은 벨 나트라, 리첼 힐과 [쉐도우앤나이트]의 감독, 조나단 윌이 눈을 반짝인 것도 당연했다.
* * *
서준이 머물고 있는 집에 있는 건 전자피아노였지만 연주하기엔 충분했다.
손님들은 앉아 있으라고 말한 서준과 최태우가 1층으로 전자피아노를 옮기는 사이, 소파에 앉아 리첼 힐이 사 온 후식을 먹던 네 사람은 기대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물론, 라이언 감독은 티가 잘 안 났지만.
“다른 곡도 그렇고 굿 이브닝도 엄청 좋지 않아?”
“네. 저도 거의 매일 듣고 있어요.”
[오버 더 레인보우2]의 [굿 이브닝]
네 사람에게도 익숙한 음악이었다. 서준 리에 대한 애정 때문에 기본적으로 좋아하기도 했지만,
‘곡도 좋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 작곡하고 연주한 곡이라고 해도 자주 들을 정도로, 아니, 오히려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될 정도로 곡들이 정말 좋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굿 이브닝]의 원곡을 되새기던 에반 블록이, 재잘대는 리첼 힐과 조나단 윌의 모습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연주하는 건 진 나트라지만. 다들 후기 봤잖아.”
“그건 그래요. 시간상으로는 지구침공 전날의 진 나트라일 거라고 했죠? 어떤 연주일지 괜히 제가 다 떨리네요.”
조나단 윌은 갈등과 대립, 불화가 가득하던 그 시기의 진 나트라를 떠올렸다. 촬영장에서의 준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 오싹함에 심장이 다 떨린다.
“그러니까 더 기대되는 거지. 이제는 못 만날 아이잖아.”
내 동생…….
하고 벌써 눈물을 글썽이는 리첼 힐에, 커피를 마시던 라이언 윌 감독이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진 나트라.
본래의 모습인 윌리엄 리가 되어 부모님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암시하며 해피엔딩으로 결말지어졌지만.
‘진 나트라에게는 과연 해피엔딩이었을까.’
하지만 이미 끝난 이야기였다.
라이언 윌 감독의 히어로는 ‘쉐도우맨’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히어로가 필요한 법.
설치가 끝난 전자피아노 건반을 눌러보는 배우, 서준 리와 그 옆에서 오오, 하고 감탄을 내뱉는 감독, 조나단 윌을 보며 라이언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연주 시작할게요.”
전자피아노 앞에 앉은 서준이 건반 위에 두 손을 올리고 자세를 바로잡자, 피아노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조나단이 얼른 소파에 앉았다. 최태우도 에반 블록의 부름에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라이언 감독과 에반 블록, 리첼 힐, 조나단 윌이 조용히 눈을 반짝이며 서준을 바라보았다.
진 나트라의 연주라니.
상상도 되지 않았다. 진 나트라가 피아노 연주를 한다는 설정도 없었고.
‘하지만 준이니까.’
걱정은 하나도 없이, 그저 기대감만이 가득했다.
피아노의 첫 음이 울리기 전.
누군가 ‘액션.’을 외친 듯, 서준 리의 분위기가 변했다.
팬미팅장에서처럼 검은 정장을 입고 화장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편안한 복장으로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살갗에 닿는 오싹함이 서준 리에게서 흘러나왔다.
‘아니, 진 나트라지.’
[쉐도우맨 시리즈]를 촬영할 때마다 느끼는 익숙한 압박감과 진득한 어둠을 느끼며 두 배우와 두 감독은 생각했다.
아깝다.
관객들이 이 아우라를 전부 느끼지 못한다는 건.
영상도 훌륭하지만, 서준에게는 필름으로는 전부 담아낼 수는 없는 아우라가 있었다.
‘뭐, 어쩔 수 없지.’
아쉬움은 뒤로하고 네 사람은 서준 리의 지인 특혜를 즐기기로 했다.
♪♬-
그랜드피아노보다는 가벼운 터치의, 그러나 선율은 꼭 닮은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 *
“어떠셨어요?”
“좋더구나. 영화에도 넣어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와아!”
라이언 감독의 진심이 가득한 칭찬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디저트(‘도대체 얼마나 사 온 거야, 리첼?’, ‘먹고 싶은 거 다 사 왔지!’)를 먹으며 다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준, 성녕대군으로도 연주했다며?”
“네. 들어보실래요?”
“/아쟁/이 있어?”
음.
리첼 힐의 입에서 나오는 ‘아쟁’이란 단어에, 어쩐지 국악기까지 공부할 것 같은 새싹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은 서준이었다.
“아뇨. 근데 연습한 걸 찍은 건 있어요.”
“그럼 그거 보자! 나 요즘 내의원 다시 보는 중이야. 성녕대군마마 너무 귀여워!”
“하하하.”
전(前) 성녕대군마마가 웃으며 휴대폰과 TV를 연결했다. 거실에 설치된 커다란 TV 화면으로 의상까지 갖춰 입은 서준과 악공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확실히 성숙해진 느낌이네.”
“어른이 됐으니까요.”
중앙에 앉은 성녕대군의 모습을 본 에반 블록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답했다. 그 말에 [내의원]을 정주행 하는 중이라던 리첼 힐이 눈물을 찔끔 흘렸다.
“나 오늘 14화 봤는데……!”
“앗. 그래요?”
“타이밍도 참…….”
놀라는 서준과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에반 블록이었다.
참고로, 다른 편은 몰라도 성녕대군이 등장하는 5화와 성녕대군이 죽는 14화와 마지막 에피소드인 23, 24화는 확실히 기억하는 [내의원] 팬들이었다.
“이렇게 죽은 캐릭터를 다시 등장시킬 때도 있죠, 삼촌?”
“그렇지. 개연성을 잘 넣어야 하겠지만.”
그사이, 두 감독은 감독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지금 다 같이 모여서 연습 촬영분 보고 있습니다.
>네. 서준이 컨디션 관리 잘해주세요.
>아마 신나게 이야기하느라 늦게 잘 겁니다.
최태우는 매니저답게 착실히 보고 하고 있었다.
곧 성녕대군과 악공들이 연주하는 [오버 더 레인보우]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코코아엔터에서 TV와 스피커에 돈을 아낌없이 쓴 덕분인지 좋은 음질의 연주가 흘러나왔다.
‘국악기라서 낯설 것 같은데…….’
서준이 소파에 앉은 외국인 네 명을 바라보았다. 나름 한국과 친숙하긴 했지만 음악은 조금 낯설지 않을까 생각했다.
“좋군.”
“정말 좋다.”
하지만 다들 낯선 선율에도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을 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다른 곡도 있어, 준?”
“네. 보여드릴게요. 잠시만요.”
에반 블록의 물음에 서준은 웃으며 다른 캐릭터의 모습으로 연습한 촬영분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보다 보면 대충 잘 시간이 되겠지?’
연주를 듣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대충 예상해 보면, 늦지 않게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최태우였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이른 판단이었다.
다음으로, [포 마이 프렌드]를 연주하는 ‘고주원’이 나오자 [이스케이프]에 대한 이야기로 거실이 떠들썩해졌다.
“그때 준의 연기 진짜 무서웠는데!”
“처음 좀비 나올 때 문을 부수던 게 준이었죠? 문에 가려져서 아쉬웠어요. 실제로 좀비 연기하는 것도 보고 싶었는데.”
“근데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짧게 나오는 편이라서 준에게 맡기기엔 아깝지.”
리첼의 말에 조나단 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어떤 제작사에서 잠깐 등장하고 말 좀비 역에 준을 쓰겠어요.”
최태우의 시선이 자꾸만 시계로 향했다. 시계의 분침과 시침이 멈출 줄 모르고 빠르게 움직였다.
이대로 놔두면 [이스케이프]라는 화제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떠들 것 같은 배우들과 감독들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남은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제시간에 자기엔 글렀다.
물론 서준의 체력이야 몇 날 며칠을 밤새워도 멀쩡하겠지만, 그걸 모르는 최태우는 애가 탔다.
“그…….”
최태우의 목소리에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던 모두의 고개가 움직였다. 유명한 인물들의 시선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배우 이서준의 매니저 최태우는 용기를 냈다.
“시간이 늦었으니까,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하시는 게 어떠실까요?”
그에 다들 시계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 벌써 이렇게 됐어?”
“시간 엄청 빠르네.”
진짜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서준이 오늘 LA에 도착했다는 사실도 떠오른 듯했다.
“준, 피곤하겠다. 그럼 내일 또 맛있는 거 사 올게!”
“푹 쉬어라.”
리첼 힐과 라이언 감독이 소파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겼다.
“대본 이야기는 내일 하자, 준!”
어쩌다 보니 [쉐도우&나이트]에 관한 이야기는 1도 못한 조나단 감독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코트를 입던 에반 블록이 조나단의 말을 이었다.
“그럼 대본 이야기하면서 리딩도 짧게 할까?”
“네! 좋아요!”
조나단 감독과 에반 블록의 이야기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쉐도우&나이트]
쉐도우맨과 윌리엄 리의 이야기가 펼쳐질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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