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689화 (68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89화

막이 완전히 내려오자 ‘성녕대군’에서 ‘이서준’으로 돌아온 서준이 아쟁에서 두 손을 뗐다.

발동하고 있던 능력들도 거둬들였다. 한복을 입은 서준과 잘 어울리던 태백 구미호의 아홉 개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다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마이크가 제대로 꺼졌는지 확인까지 한 서준이 웃으며 옆자리에 앉은 연주자들에게 말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웃으며 말하는 서준에, 그제서야 연주자들도 뻣뻣하게 세우고 있던 허리의 힘을 풀고 으아아아, 신음을 내뱉을 수가 있었다.

“윽, 몸이 뻐근해요.”

“나도. 으으윽!”

뚝뚝 뼈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다지 오래 앉아 있지는 않았지만 잔뜩 긴장하고 연주하다 보니 그대로 굳어버린 탓이었다.

“스트레칭해. 스트레칭.”

조금 전 공연이 정말 마지막이었다는 걸 아는 연주자들이 읏차,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하거나 악기를 정리했다. 스태프들도 무대 위로 올라와 정리를 도와주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연주했던 서준도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그사이 안다호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손에는 물병과 아쟁을 보관할 가방이 들려 있었다.

“밖은 어때요, 다호 형?”

물병을 받아 든 서준이 뚜껑을 열며 물었다.

“괜찮아. 안내직원이 많으니까 사고 날 일은 없을 거야.”

서준이 물을 마시는 사이, 아쟁을 가방에 챙겨 넣으며 안다호가 대답했다.

“준비한 선물도 다 확인했고. 비상용도 많이 준비해 놨으니까 모자라진 않을 거야.”

선물.

서준이 하하 웃었다.

“다들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아직 서준의 서프라이즈는 끝나지 않았다.

* * *

팬미팅장의 여러 출구로 새싹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송유정과 임예나, 강태영도 있었다.

“오늘 감정 소모가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울고 웃고 다시 통곡하고.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도 이렇게 극적이진 않을 거다.

“맞아요.”

“그래도 재미있었죠?”

그건 그렇다.

임예나의 말에 송유정과 강태영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쿠키영상……이라고 해야 하나? 마지막도 좋았지.”

“진짜 성녕대군마마가 또 나오실 줄이야……!”

최애의 재등장에 강태영은 정말 기뻤다.

그렇게 세 새싹이 밖으로 나가, 각자의 길로 흩어질 때까지 오늘 팬미팅에 대해 이야기하려는데, 출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 나눠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옷을 보아하니 새싹들은 아니었고, 팬미팅 스태프들과 코코아엔터 직원들인 것 같았다.

“서준이가 준비한 선물인가 봐!”

“저번에도 받았었지.”

“그랬죠.”

선물을 주지 않아도 오늘 감동으로 가득했던 팬미팅으로 마음이 푸근해진 새싹들이었지만, 그렇다고 서준이 준비한 선물을 안 받고 갈 생각은 없었다.

“포토카드일려나?”

“이번 팬미팅 연습한 거 사진으로 찍었어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어른 성녕대군마마……!”

두근두근.

질서정연하게 한 줄로 선 새싹들이 눈을 빛내며 스태프들이 나눠주는 종이가방을 바라보았다. 중앙에 초록색 새싹이 그려진 종이가방마저도 너무 귀여워 보였다.

“근데 저분들은 왜 안 가시죠?”

“……그러게요?”

일찍 팬미팅장을 나와, 먼저 서준의 선물을 받았을 새싹들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었다.

다른 새싹들의 이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안내직원들이 조심스럽게 안내하고, ‘새싹답게’ 그 말을 잘 들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새싹들이었지만, 어쩐지 넋이라도 나간 듯 영혼 없는 움직임이었다.

뭔가…….

송유정과 임예나, 강태영이 침을 꼴깍 삼켰다. 만화처럼 머리 위로 초록빛 새싹 안테나가 나타나 빙글빙글 돌았다. 새싹의 직감이 곤두섰다.

뭔가…… 아직 큰 게 남아 있는 듯했다.

“다음 새싹분.”

“넵!”

긴장감 반, 설렘 반.

손까지 번쩍 든 송유정의 모습에 코코아엔터 직원이 빙그레 웃고는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건네주었다. 그 뒤에 서 있던 임예나와 강태영도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종이가방을 받았다.

“괜찮으시면 저쪽으로 이동해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나 새싹. 착한 새싹.

안내직원의 말에 따라 이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 장소로 향하는 새싹들이었다.

“집에 가서 보면 되겠지만……”

“너무 궁금해!!”

두 사람의 말에 강태영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세 새싹이 조심스럽게 종이가방을 열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프린팅된 붉은 꽃 그림.

……붉은 꽃……그림……?

같은 방식으로 포장되어 있는지, 그 그림을 본 세 새싹이 동시에 입을 틀어막았다.

……도련님?!

“……허억!”

너무 놀라 잠깐 숨 쉬는 걸 잊었다.

“화의 도련님 그림…… 맞죠?!”

“네, 네. 맞아요! 저 미술관에 가서 봤어요! 여기 서명도 무명이라고 적혀 있어요!”

붉은 꽃 그림 아래, 검은색 붓글씨로 적힌 한글이 보였다.

[무명]

“……미쳤어!”

송유정과 임예나, 강태영이 다시 입을 틀어막았다. 저절로 독립영화 [화]가 떠올랐다. 벌벌 떨리는 두 팔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했던 도련님이었는데……!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나 봐!”

“그러게!”

정말로 독립영화 [화]에 나온 도련님의, 무명화가의 동백꽃 그림이었다.

팬미팅장에서 다 쏟아냈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왜 먼저 나간 새싹들이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서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밑에 또 뭐가 있어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강태영의 말에, 비슷한 표정을 한 송유정과 임예나가 종이가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포장된 다른 선물들 위, 동백꽃 그림 아래에 또 하나의 엽서 크기만 한 종이가 있었다. 이 종이는 뒤집혀 있어서 흰색밖에 보이지 않았다.

훌쩍이며 종이를 꺼내 뒤집어보는 세 사람.

다시 한번 눈물이 펑 터졌다.

분홍색 꽃잎의, 아름답게 피어난 무궁화.

그리고 [무명]이라고 적힌 서명.

도련님이 그린 또 하나의 꽃, 무궁화가 그 종이 안에 담겨 있었다.

흐윽…… 흐으윽…….

곧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를 울음소리가 팬미팅장을 가득 채웠다.

* * *

“……그…….”

운전하던 매니저 주용진이 잠시 신호에 걸렸을 때, 백미러로 뒷자리에 앉은 자신의 배우를 바라보았다. 초록색 새싹이 그려진 종이가방을 품에 안고 훌쩍대는 강태영의 모습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팬미팅에 너무 감동받아서 그런 건가 싶기도 했는데, 그러기엔 눈이 너무 붕어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저건 어지간히 대성통곡을 하지 않으면 안 나올 얼굴인데…….’

그렇게 좋아하는 이서준 배우의 팬미팅에서 대성통곡을 할 일이 있나, 싶은 주용진이었다.

“설마 팬미팅장에 못 들어갔어?”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니. 들어갔어. 흐윽.”

그럼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몇 년 전 있었던 이서준의 팬미팅 때처럼.

“그럼 왜 우는데.”

추측하기도 어려워 대놓고 물어보는 주용진에, 강태영이 훌쩍이다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서준이가 너무 멋져서……!”

에라이.

주용진은 괜히 걱정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새싹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너 이서준 팬미팅 갔다며? 얼굴이 왜 그래?”

“헤헤. 그게 있지! 서준이가, 서준이가…… 너무…… 흐윽!”

“?!?!”

팬미팅에 다녀온다고 했던 새싹들이, 퉁퉁 부은 붕어 눈으로 종이봉투를 소중하게 껴안고는 웃다가 우는 모습에 놀라는 가족들이었다.

* * *

서준의 팬미팅이 끝났다.

곧 [새싹부터]가 팬미팅 후기가 촤르륵 올라오기 시작했다. 팬미팅에 다녀온 새싹들은 이 흥분과 벅참을 다른 새싹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었다.

“궁금하긴 한데…….”

[새싹부터]를 둘러보던 영화객이 덜덜덜 다리를 떨었다. 영화객도 그 흥분과 벅참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공지가 마음에 걸렸다.

[공지: 팬미팅 가시는 새싹분들은 스포일러 조심하세요.]

[공지: 팬미팅 후기에 (스포) 표시 부탁드립니다.]

영화객이 턱을 긁적였다.

“아니, 왜 팬미팅 후기에 이런 공지를 쓰지?”

게다가 이미 다녀온 새싹들까지,

[서준이 팬미팅 후기ㅠㅠ(스포)]

[진짜 가길 잘했어요ㅠㅠㅠ(스포)]

[서준이가 준 선물 개봉!!(스포)]

[팬미팅 가시는 새싹분들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가길 바랍니다!(스포)]

이런 식으로 글을 적으니, 16일, 17일 팬미팅의 피켓팅을 성공한 새싹들은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스포일러가 있어도 볼까 말까, 고민하던 영화객은 이내 팬미팅을 기다리고 있는 새싹들이 모인 임시게시판으로 향했다.

-후기 보고 싶은데 안 보고 싶어요ㅠㅠㅠ

=22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죠?ㅠㅠ

=뭔가 스포일러를 보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서준이 영화가 개봉할 때와 같지 않아요?

=22 놀라움이 가득한 내용일 것 같은 분위기죠.

=33 이스케이프에서 에반 배우하고 리첼 배우가 등장할 때 같은!

그러니까 말이다.

“모르고 보는 쪽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단 말이지.”

-스포없는 후기 찾아왔어요! (링크)

“오!”

영화객이 얼른 클릭했다.

낚시글일 위험성도 있었지만, ‘새싹’은 믿을 수 있었다.

[제목: 서준이 팬미팅 첫날 후기입니다! (스포없음)]

진짜…… 상상 이상입니다.

아뇨. 상상도 못 했어요ㅠㅠ 세상에……!X1000 만 외쳤습니다.

더 말하는 거 자체가 스포일러라서 말 못 하지만, 진짜 서준이 팬미팅 가시는 분은 스포일러 안 보고 가시는 거 추천합니다!!

바이올린 연주랑 연극도 하구요.(이건 저번 팬미팅에서도 했으니 스포일러 아니겠……죠?)

팬미팅이 끝나면 선물도 나눠줍니다!

저희는 2월 15일 팬미팅이라서 초콜릿을 받았어요! 전날이 밸런타인 데이라서 그런가 봐요!(서준이가 준 초콜릿!!) 16일, 17일 팬미팅에도 줄 것 같아요!

서준이가 직접 쓴 편지(물론 프린팅입니다)도 있구요. 팬미팅 공연 때 입은 의상(중요!) 입고 찍은 포토카드들도 있고! 그 이외에도 선물이 가득합니다ㅠㅠ

이번 팬미팅 완전 좋아요ㅠㅠ

진짜 못 봤으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겁니다. 진짜로요ㅠㅠ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DVD로 판매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구요! 전 꼭 살 겁니다!!

+)휴지 챙겨가세요ㅠㅠ

++)보다 보면 한 사람이 아주 원망스러워질 겁니다……으득.

-스포 없는 후기 감사합니다ㅠㅠ

=22 바이올린/연극/포토카드라니! 기대돼요ㅠㅠ

-저 팬미팅 다녀온 새싹인데 최대한 스포없이 잘 적으셨네욬ㅋㅋ

=22 저기 적혀 있는 ‘한 사람’도 중요한 포인트임ㅋㅋ

=으득에서 진심이 느껴진다ㅋㅋㅋ

“원망스러워지는 한 사람이라…… 누군진 몰라도 나중에 리뷰할 때 언급해야겠네.”

하고, 그 ‘한 사람’이 자신인지 모르는 영화객은 잊어버리지 않게 잘 메모해 두었다.

* * *

티켓팅에 성공한 새싹들이 행복한 고민을 하는 사이, 아깝게 실패해 버리고만 새싹들은 아무 제약 없이(왜 눈물이……) 스포일러가 가득한 팬미팅 후기들을 읽고 다녔다. 그리고 피눈물을 흘렸다.

-어른이 된 성녕대군마마라니! 이번 팬미팅은 꼭 보러 갔어야 했는데!

-세상에. 현우가!! 우리 현우가! 바이올린을!

-주원아아악!!

-가람이는 살아 있어! 살아 있다고!!

-진아. 진아ㅠㅠ

=솔직히 진 나트라는 무서웠음.

=그래도 피아노 치는 진이라니ㅠㅠ

-나도 서준이가 피아노 치는 거 보고 싶어ㅠ

-콬아!! 도련님 그림 나도 줘어어어!!

=22 동백꽃! 무궁화! 미쳤나 봐!

-이번 팬미팅은 꼭 성공했어야 했다……(피눈물)

그리고 이서준의 팬미팅 후기는, 언제나 그렇듯 [새싹부터]를 벗어나 다른 사이트까지 흘러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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