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85화
콩쿠르나 연주회처럼 완벽하게 차려입기보다는, 일상복처럼 가볍게 입은 서준과 수빈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고는, 길다란 활로 바이올린의 현을 내리그으며 연주를 시작했다.
♬
연주의 시작과 함께, 무대 뒤 스크린에 파스텔톤의 동화 같은 그림으로 두 마리의 새가 나타났다. 하나는 파란색의 큰 새, 나머지 하나는 노란색의 어린 새였다.
서준이 연주하자 파랑새가 푸드득 큰 날개를 움직였다. 수빈이 연주하자 노란 새가 파닥 조그마한 날개를 움직였다.
푸드득푸드득.
파닥파닥.
작은 새는 큰 새를 따라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 귀여운 모습에 팬미팅장 여기저기서 작은 웃음소리들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이 곡을 수십 수백 번은 들었던 새싹들은 알 수 있었다. 너튜브에 올라왔던 연주 영상보다 스피커로 들려오는 선율이 훨씬 좋다는 것을.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너튜브 채널[JUN]에 올라온 영상이라서 안 본 새싹이 없었다.
내 배우가 작곡하고 직접 연주한 곡이라 기본적으로 애정을 갖고 있긴 했지만, 누가 들어도 곡이 참 좋고 귀여운 곡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몇 년 전의 일.
촬영된 영상이 아니라 바로 앞에서 연주를 듣고 있다는 점도 있었지만, 수빈의 실력이 많이 는 상태였다. 물론 원래 대단했던 서준도 실력이 조금 늘었다.
‘크으. 역시 내 배우님!’
끝이 보이지 않는 실력이다.
물론 그게 바이올린이라는 게 조금 웃겼지만.
‘연기는 더 잘하니까!’
팬미팅 시작부터 ‘성녕대군마마 강림’이라는 공격(?)에 당한 새싹들은,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주 감성이 충만한 상태였다. 거기에 내 배우와의 즐거운 대화까지.
아주 몸과 마음이 말랑말랑해진 상태로 연주에 푹 빠져 있었다.
♪
마침내 파랑새와 노란 새가 서로 정답게 하늘을 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의 연주가 끝났다.
짝짝짝!!!
와아아아!!!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커다란 함성과 박수 소리에, 열심히 연주해서 가쁘게 쉬었던 숨을 진정하려던 수빈이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귀여운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새싹들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웃음과 함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팬미팅장이 떠나가라 들리는 이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
자신과 서준이 형에게 전해지는 찬사에, 수빈이는 양 뺨을 붉게 물들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가족이나 지인들, 친구들에게 듣는 박수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관객들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 수빈이를 보니, 수빈이도 무대를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속삭였다.
“수빈아. 인사하자.”
“응!”
김수빈이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 군과 함께한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배우 이서준과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이 관객석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와아아아!!
한 번 더, 커다란 박수가 무대 위로 쏟아져 내렸다.
* * *
수빈이가 무대를 떠나고 바이올린을 테이블 위에 놓아둔 서준이 의자에 앉았다.
“이번 무대 어땠어요?”
-좋았어! 서준아!
-귀여웠어요!!
한바탕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긴 하죠. 이걸 작곡했을 때 수빈이가 2학년이었거든요. 지금은 벌써 중학생이래요. 정말 애들은 빨리 큰다니까요.”
-서준이 네가 할 이야기는 아닌데!
-맞아! 작품 나올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깜짝깜짝 놀라는지 알아?
-초등학생 때부터 봤는데 벌써 어른이야!
새싹들의 아우성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네. 저도 남 말 할 처지가 아니었네요. 그래도 이제 다 컸으니 작품 나올 때마다 놀라시진 않을 거예요.”
팬미팅장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럼 다음 질문은 뭐가 있는지 읽어볼까요?”
미리 모아둔 새싹들의 질문지들 중 랜덤으로 뽑아 대답하는 시간을 가진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얼른 갈아입고 올게요!”
-네에엑!!!
서준이 다음 이벤트를 위해 옷을 갈아입는 동안, 새싹들이 심심하지 않게 (물론 오늘 처음 본 옆자리의 새싹과 ‘성녕대군마마’와 ‘형아미’를 보여준 서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느라 심심할 틈도 없었지만) 스크린에 영상이 나타났다.
“허억! 중학생 서준이!!”
“서준이 학교생활인가 봐!”
이제는 볼 수 없는 중학생 서준이 친구들과 놀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친구들끼리 찍은 영상인 것 같았다.
새싹들이 눈을 반짝이며 영상을 보고 있을 때, 서준은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피곤하진 않고?”
“괜찮아요.”
안다호의 물음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새싹들의 반응을 보면 오히려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서준이 무대 위로 나타났다. 조금 전과 같은 캐주얼한 복장이었지만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안경……!”
송유정과 임예나가 심장을 부여잡았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안경을 쓰고 나타난 서준이었다.
“최고다……!”
다른 새싹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끙끙 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사이 강태영과 몇몇 새싹은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준이 안경을 매만지며 말했다.
“제가 밖을 돌아다닐 때 가끔 안경을 쓰는데, 새싹분들 앞에서 쓰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헉! 그랬구나!
이로써 서준의 프로페셔널한 일코의 비밀이 하나 밝혀졌……
“근데 안경을 써도 저렇게 잘생겼는데 왜 못 알아보죠?”
“그러게요?”
스크린으로 보이는 안경을 쓴 서준은 여전히 빛나고 있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은 서준의 일코였다.
“이번에 여러분께 들려드릴 곡은 ‘포 마이 프렌드’입니다.”
오오오!!
[오버 더 레인보우2: 포 마이 프렌드]의 OST이기도 한 곡으로, 첫 부분은 우울하지만 중반부터는 따뜻하고 다정한 음색이 매력적인 곡이었다.
이번에도 서준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것 같았다.
안경을 낀 서준이 바이올린에 턱을 괴고 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빠르게 내려그었다. 마치 긴박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처럼.
‘레디, 액션.’
그리고 동시에 연기를 시작했다.
스크린에 비친, 안경을 쓴 그의 표정이 그리움으로 가득 찼다.
“……고주원……!”
단순한 변화였지만 강태영과 새싹들은 그게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좀비 영화 [이스케이프]의 주인공 중 하나인 ‘고주원’이 거기에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좀비 사태’ 이후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고주원이.
마치 기억을 떠올리듯, 어른이 된 고주원은 연주를 시작했다.
편곡된 [포 마이 프렌드]는 원곡보다 빨랐다.
마치 좀비에게 쫓기는 것처럼, 누군가를 다급하게 찾는 것처럼. 저절로 친구들을 찾아 병실을 나서는 고주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랬었다.
어렸던 고주원은 그렇게 친구들을 찾았었다.
그러다 곡 분위기가 바뀌었다.
원곡에서는 친구들의 손을 잡고 우울에서 벗어나는 다정이 흘러넘치는 부분이었지만, [고주원의 포 마이 프렌드]는 비장했다.
격정적이며 심장을 고동치게 만드는 선율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새싹들의 심장을 강하게 두드렸다. 저절로 [이스케이프] 속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좀비가 된 친구들을 찾아내고 슬퍼하다가 이내 일어나는 고주원.
센터 1층에 있을 친구들을 시체라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스프링클러를 작동시키기 위해, 뒤에서 다가오는 좀비들도 무시한 채 불이 붙은 화살을 쏘는 고주원.
[나의 친구를 위해]
연주의 마지막 부분이 다가오면서 또 한 번 분위기가 바뀌었다.
마치 추모곡처럼.
이제 어른이 된 고주원의 마음은 단단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떠나보낸 친구들이 그리웠다. 그런 친구들을 추억하고 애도하는 듯, 다정과 슬픔이 가득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빠르게 뛰던 새싹들의 심장도 그에 따라 천천히 느려졌다.
곧 ‘어른 고주원’의 바이올린 연주가 멈추었고, 여운을 느끼듯 팬미팅장은 조용해졌다.
마냥 어리기만 했던 고주원의 날 것 같은 감정이 아니라 성숙해진 어른 고주원의 다듬어진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렇게 잠시.
팬들과 함께 ‘고주원’의 감정을 느끼고 있던 서준은 속으로 ‘컷!’을 외치며 ‘자신’으로 돌아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어떠셨어요? 고주원 같았나요?”
-네에에!!!
정말로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이름도 한 번 언급하지 않고 안경만 썼을 뿐인데도 ‘고주원’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역시 서준이……!”
“미쳤다. 진짜.”
“우리 서준이가 최고다!”
“여러분, 우리 서준이 좀 보세요. 이런 연기력을 가진 배우가 어디 있어요…….”
가슴이 너무 벅차서 속마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은 새싹들이었다.
* * *
팬미팅 1부에 예정된 이벤트가 하나둘 진행되었다.
서준이 뽑는 좌석 번호에 따라 선물을 나눠주는 이벤트도 있었는데, 기뻐하는 새싹들을 보니 자신마저 기뻐진 서준이었다.
“1부 마지막 순서인데요.”
아아아-
아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와 반짝이는 응원봉들에 서준이 하핫 웃었다.
“저도 아쉬워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싶거든요.”
그러게 말이다.
새싹들과 굿즈를 교환하고 팬미팅장에 들어와 성녕대군마마를 보고 놀랐던 게 10분 전 같은데 벌써 1부가 끝날 시간이라니.
“2부도 빛처럼 지나가겠다.”
“그러게.”
송유정과 임예나가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2부도 열심히 준비했으니 기대해 주세요.”
-네에에에!!!
유난히 큰 대답에 서준이 웃고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바이올린을 들었다.
“1부 마지막으로 들려드릴 곡은 굿모닝입니다.”
오오오!
이 정도면 알아차렸달까.
평범한 [굿모닝]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새싹들이 눈을 반짝였다. 그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다들 짐작하신 것 같네요. 이번에는 이현우가 여러분에게 들려 드리는 곡입니다.”
오오옥……?!
반사적으로 감탄하려던 새싹들이 멈칫했다. 조금 전까지 반짝이던 눈동자들이 진도 8의 지진에 직격당한 듯 위아래로 요동쳤다.
……이현우?
[생존자들]의 이현우?
“……개봉판일까요? 감독판일까요?”
“굿모닝이 밝은 노래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서준이가 편곡한 걸 보면…… 지옥에서 맞이하는 굿모닝일 수도 있어요.”
“으아아아…….”
멈칫한 새싹들 중 하나인 임예나의 물음에 강태영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송유정은 신음만 내뱉고 있었다. 팬미팅장에 때아닌 긴장감이 맴돌았다.
-가, 감독판 이현우예요?!
한 용감한 새싹이 큰소리로 외쳤다. 긴장감이 흐르는 새싹들의 모습에 잠시, 으음하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시간을 끌던 서준이 대답했다.
“아니요. 개봉판의 이현우입니다. 다행이죠?”
와아아악!!
뒤늦게 함성이 쏟아졌다. 묘하게 안도감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에 작게 웃은 서준이 바이올린을 들어 올렸다.
“생존자들 이후, 이현우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요? 다른 건 몰라도, 저는 가족을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아요. PTSD도 겪었겠지만, 레이먼드 위시, 신시아 린드버그, 잭슨 밀러, 그리고 이안 위시가 있으니 괜찮았을 거예요.”
크으.
서준의 입에서 나온 세 어른과 이안 위시의 이름에 새싹들은 [생존자들-개봉판]의 감동이 다시금 떠올랐다.
누구보다도 힘든 경험을 겪고, 그걸 이겨낸 사람이 맞이하는 아침은 어떤 느낌일까.
그렇게 ‘어른이 된 이현우’의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었다.
원곡도 밝고 사랑이 가득 담긴 [굿모닝]이었으나, 이현우가 연주하는 [굿모닝]은 정말로 축복처럼 느껴지는 선율이었다.
황홀하고 가슴이 벅찬.
아무도 없는 어둠 속.
품 안에서 식어가던 이안의 체온.
살려주세요……
제발…… 우리 좀……!
그때.
<생존자 발견.>
그렇게 말하던 구조대원의 목소리와 함께 치워진 돌덩이 사이로 비치던 햇빛이, 바이올린 소리로 변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평생 잊지 못할 그때의 광경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매일 아침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한, 어른 이현우의 연주에 새싹들은 마음이 뻐근해지고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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