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83화
[오늘부터 사흘 동안 배우 이서준 팬미팅!]
-으아아아악!! 진짜 기대된다!!!
-지금 부산. 기차 타고 있음.
-어제 한국 도착해서 숙소에 있습니다!!
-팬미팅 오후인데 오늘 새벽부터 심장이 떨리고 있다아아악!
=222 잠도 제대로 못 잔 듯.
=나도 서준이 팬미팅은 처음이라ㅠ 너무 기대돼서 못 잤음ㅠㅠ
=소풍 가기 전날 애들도 아니고…… 나도 그래ㅋㅋㅋ
=ㅋㅋㅋㅋㅋㅋ
-……부럽다. 위에 다들 티켓팅 성공했나 봐.
=222 좋겟다ㅠㅠ
=333 빨리 후기 올려줬으면.
네가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할 거라는 어떤 책의 구절처럼, 새싹들이 팬미팅이 시작하기 전부터, 아니, 팬미팅 공지가 올라왔을 때부터 행복해하는 사이.
“연극 소품 체크 부탁드립니다!”
코코아엔터의 직원들과 스태프들은 슈퍼스타의 팬미팅을 실수 없이 성공시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어제까지 몇 날 며칠에 걸쳐 철저하게 준비를 해 놓은 상태이긴 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모르는 거였다. 하룻밤 사이에 뭔가 문제가 생겼거나 미처 생각지도 못한 실수가 있을 수도 있으니 철저히 확인해야 했다.
“의상 확인 모두 끝났습니다.”
“그럼…….”
그 확인 절차의 중심에 한 남자가 있었다.
체크리스트를 확인한 남자가 지시를 내리는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가수팀 직원들이 속닥거렸다.
“안 이사님도 오셨어?”
“서준 배우님 팬미팅이잖아요.”
그에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수팀의 신입 직원들까지 알고 있는 팔불출 안다호 이사였다.
그렇게 배우팀 안다호 이사가 직접 지휘하는 아래, 서준의 팬미팅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연주자들도 리허설 시간에 맞춰 오도록 연락…….”
안다호가 또 다른 지시를 내릴 무렵, 관계자용 출입구 근처가 웅성웅성거렸다.
‘문제가 생겼나.’
안다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오랜만에 열리는 서준의 팬미팅이라 그 어느 때보다 실수 없이 성공시키고 싶었는데, 벌써부터 문제가 생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호 형! 저 왔어요!”
하지만 곧 주름이 생겼던 미간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서준아.”
놀라는 스태프들 속에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서준 때문이었다.
서준의 옆에는 리허설 시간에 맞춰 서준을 데리고 올 예정이었던 최태우 매니저가 어쩔 수 없었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출연자들이 도착하는 시간은 리허설 한 시간 전으로, 아직 몇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도저히 집에서는 못 기다릴 것 같아서요!”
작품을 볼 때처럼, 연기를 할 때처럼 무지무지 설렌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서준을 본 안다호가 웃고 말았다. 이른 시간부터 들떠 있던 게 새싹들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어요? 다호 형?”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서준에 안다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통이라면 대기실에서 대기시키는 게 낫겠지만.’
상기된 얼굴로 팬미팅장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는 서준을 보아하니, 얌전히 기다릴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스태프들을 도와주겠지.’
아역 때부터 연기만 해온 배우가 괜히 일을 망칠까 봐 당황하던 스태프들은 익숙한 모습으로, 몇몇 부분에서는 자신보다 더 능숙하게, 일을 돕는 서준의 모습에 눈을 끔벅이고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울 게 분명했다.
‘그러는 사이에 다들 서준이의 일코에 익숙해져서 이것저것 부려 먹겠지.’
일 잘하는 스태프가 들어온 것처럼.
예전에 출연했던 [워킹맨!]에서도 그랬듯이 말이다.
안다호라면 그런 서준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아직 서준에게 익숙하지 않은 최태우에게는 아직 무리인 일이었다.
‘그럼 눈에 띄는 곳에 놔두는 게 낫겠군.’
괜히 구석진 곳까지 들어갔다가 사고가 일어나는 것보다는 눈에 띄는 곳에 두는 게 나았다. 서준이 안다호의 생각을 알았다면, 자기가 아직 여덟 살짜리 꼬마처럼 보이냐고 그 정도 분별력은 있다며 탄식했을 터였다.
“그럼 무대 확인 좀 부탁해도 될까?”
“맡겨만 주세요!”
안다호의 생각도 모른 채, 서준은 희희낙락 모두가 잘 볼 수 있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스타의 등장에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던 스태프들의 시선이 서준의 뒤를 따라갔다.
아직 아무것도 없는, 그저 서준이 서 있는 것뿐인데 무대 위의 공기가 변한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는 힘이 서준에게 있었다.
“후우.”
무대 중앙에 서서 텅 빈 관객석을 둘러본 서준이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확인 차 몇 번 와봤던 팬미팅장이지만 역시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관객석을 가득 채울 새싹들이라니.
일반 관객들이 있을 때도 들뜨긴 했지만, 새싹들이 온다니 더욱 가슴이 뛰었다. 좀 더 좋은 무대를, 좀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예정된 시간보다 빠르게 오게 되었다.
‘태우 형에겐 미안하지만…….’
제 고집에 난감해했을 최태우를 떠올린 서준이 볼을 긁적이다, 이내 무대 확인을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서준이가 빨리 출발하자고 해서…….”
최태우가 아직 준비 중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안다호와 배우팀의 일 처리를 아는 서준은 이미 팬미팅 준비가 완벽하게 끝나고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만큼 서로 오래 알고 지낸 시간이었다.
“괜찮습니다. 어땠을지 알 것 같네요.”
안다호가 웃으며 말했다.
서준이 하겠다고 하면 자신마저도 두 손 들고 마니까 말이다.
“근데 괜찮을까요? 서준이가 확인해도…….”
무대 위를 돌아다니며 무언가(아마도 동선이나 연주자 배치 등)를 확인하는 서준을 보며 최태우가 물었다. 그 말에 안다호가 웃고 말았다.
“무대에 관해서는 서준이보다 전문가는 없을 겁니다.”
무대 위의 조명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걸 본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명 괜찮네요.”
음악 공연과 새싹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무대를 비추는 조명의 개수와 움직임은 단순했고, 조명을 자주 바꿔야 하는 연극 [거울]도 이미 그 타이밍이 잘 알려져 있어서 따로 손댈 게 없었다.
-조명 체크.
조명감독이 밝게 웃었다.
-마이크 확인하겠습니다.
“네.”
다음은 마이크 체크 시간.
1팀 직원이 무대 위의 서준에게 마이크를 전해주었다.
[아아-]
스피커를 통해 서준의 목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이게 이야기할 때 마이크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울림은 적지만 음량은 커서 뒤쪽까지 확실하게 들릴 것 같았다.
이후, 연극 [거울]에 쓸 핀마이크들도 하나하나 확인하고 비상용까지 확실히 점검했다.
“누나. 악기용 마이크도 지금 한번 체크해 봐도 될까요?”
“악기용도?”
1팀 직원이 서준의 말에 눈을 끔벅였다.
악기 소리를 담아내는 마이크라 사람 목소리와는 울림에 차이가 있어, 리허설 전에 연주자들이 오면 확인하려고 했다.
“네.”
“그래. 바이올린이랑 피아노 마이크는 서준이 네가 직접 체크해야 하긴 하니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하는 서준이, 직접 마이크를 확인하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다른 악기들 마이크도요.”
“알았어.”
팬미팅 준비에 열심인 서준이 귀여워, 1팀 직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서준의 앞에 악기용 마이크들이 준비되었다. 마이크마다 해당 악기의 이름이 붙여져 있어 구분하기 쉬웠다.
먼저 바이올린 소리를 스피커로 옮겨줄 마이크.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맞출 거라는 직원들과 스태프들의 생각과 달리,
[아아-]
서준은 목소리로 음향을 확인했다.
“……저래도 돼?”
“나도 몰라. 근데 그레이잖아.”
“아하.”
의아해하던 스태프들이 그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이건 조금만 내려주세요. 조금만 더요. 네. 괜찮네요. 다음 마이크 체크하겠습니다.]
그렇게 서준이 목소리로 음향을 확인한 것은 바이올린만이 아니었다. 피아노도, 연주자들이 연주할 악기의 마이크들도, 서준은 신중하게 하나하나 맞춰나갔다. 지시가 확실해 마이크를 확인하는 속도도 빨랐다.
그 이상하고도 신기한 광경을 보며 코코아엔터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악기를 다루는 일이 많은 가수팀 직원들이 희한하다는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래서는 큰일 날 텐데?”
“그러게 말이야.”
악기 음향 하나 잘못 맞췄다가는 연주할 때 그 악기 소리만 관객들에게 크게 들릴 수도 있었다. 밴드 연주에서 드럼 소리만 크게 들리면 큰일 아닌가.
“……이래도 괜찮습니까?”
“다른 악기는 조금 걱정되긴 하는데, 잘못해도 리허설 전에 다시 바꾸면 되니까요.”
“근데 서준이는 다른 악기 마이크들도 잘 맞출 것 같단 말이죠.”
“맞아요! 저번에 단체로 연습하는 걸 봤는데 엄청 잘하더라구요!”
이서준에 대한 무한한 믿음.
가수팀 직원들이 짜게 식은 눈으로 1팀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안다호 이사 못지않게 1팀 직원들도 팔불출인 모양이었다.
“우리 일만 늘어나는 거 아닌지 몰라.”
“그러게.”
하아.
힘든 리허설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가수팀 직원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흘러, 리허설 시간이 되었다.
“미리 맞춰뒀다고요?”
“아, 이서준 배우가…….”
도착한 연주자 중 누구 하나 서준이 미리 맞춰두었다는 마이크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 가수팀 직원들의 의아함이 더욱 쌓였다.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리허설 연주에 가수팀 직원들은 입을 쩌억 벌리고 말았다.
“이서준 배우…… 설마 절대음감이었어?”
♬
서준의 목소리로만 맞춘 마이크들을 통해,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악기의 소리들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 * *
팬미팅 시작 시간이 다가오면서 팬미팅장 인근은 새싹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안녕하세요!”
“꺄아아! 반가워요!”
SNS로만 연락하던 친구를 만나 십년지기 친구(10년 이상 메시지를 주고받긴 했다)처럼 반가워하기도 하고.
“이거 받아가세요!”
“앗, 잠시만요. 저도 있어요. 여기!”
“감사합니다!”
서로 직접 만든 굿즈들와 과자를 나누기도 하고.
“……진짜 우연이네요.”
“그러게요.”
저번 팬미팅 때 우연히 만난 새싹과 다시 만나기도 했다.
“이거 이야기하면 아무도 안 믿을걸요.”
강태영과 송유정, 임예나가 그렇게 말하고는 서로를 바라보다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모자와 목도리로 얼굴을 숨기긴 했지만, 서준이의 굿즈를 찾아 헤매면서 송유정과 임예나를 만나게 된 강태영이었다.
“설마 자리도?”
서준과 코코아엔터, 그리고 [새싹부터]에서 준비한 푸드트럭들에서 나눠준 따뜻한 간식들을 먹으며 서로의 티켓을 확인해 본 세 새싹이 이야, 하고 감탄했다.
“이러다가 다음 팬미팅에서도 또 만나겠는데요?”
“그러게요. 진짜 옆자리였다니…….”
“오늘도 열심히 서준이 이야기하죠!”
임예나의 말에 강태영과 송유정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크으. 덕질친구 너무 좋다.
강태영은 들썩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붕붕- 보이지 않는 꼬리가 헬리콥터처럼 돌아가는 것 같았다.
서준과 친하지만, 덕질친구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서준의 앞에서 네 작품과 연기를 보면 아파트를 부수고 싶다느니, 지구를 뽀개고 싶다느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쉐도우앤나이트 어떤 내용으로 나올 것 같으세요?”
“역시 윌리엄이 히어로로 나오지 않을까요?”
“윌리엄의 방에 곰인형 두 개가 있으면 진짜……!”
크으으……!
추운 바깥에서 열심히 떠들다 팬미팅장 안으로 들어온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팬미팅장 안은 팬들의 열기와 히터로 따뜻했다.
이 분위기 너무 좋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것 같았다.
“응원봉 들고 오셨어요?”
“당연하죠!”
임예나의 물음에 강태영이 가방 속에서 응원봉을 꺼냈다.
“물론 어떤 스노우볼 모형을 가지고 오나 엄청 고민하긴 했지만요. 연주는 꼭 할 것 같아서 오버 더 레인보우랑 가장 좋아하는 내의원 스노우볼을 가지고 왔습니다!”
“저희도요.”
[오버 더 레인보우] 스노우볼과 각자 좋아하는 작품의 스노우볼을 꺼낸 세 새싹이 이히히히 웃었다.
“오늘은 뭐 할까요?”
“연극을 한다면 아무래도 거울을 할 것 같은데…….”
“또 보면 더 좋죠!”
저번 팬미팅에서도 [거울]을 본 세 사람이었지만, 봐도 봐도 좋은 게 최애의 무대 아니겠나.
“게다가 그때는 어릴 때였고 지금은 성인이잖아요!”
“그렇죠! 느낌이 다르죠!”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대화라니!
봐요. 용진이 형. 덕질메이트는 이런 거라구요.
‘뭐, 어쩌라고.’ 하는 매니저 주용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강태영이었다.
그렇게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천천히 팬미팅장이 어두워졌다.
“벌써 시작할 시간인가 봐요.”
“나머지 이야기는 쉬는 시간에 하죠!”
이제 팬미팅에만 집중하겠다는 마음으로 강태영과 송유정, 임예나가 무대를 바라보았다. 다른 새싹들도 같은 마음인 듯 관객석이 동시에 조용해졌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것 같은 고요함.
[딱!]
하고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서준의 노래로 시작했던 저번 팬미팅과 달리, 이번 팬미팅은 공연으로 시작할 모양이었다.
‘뭐지? 뭐지??’
‘새로운 연극인가?’
짐작도 안 가는 공연에 새싹들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오늘 자애로우신 전하의 명으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 무슨 전하?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곡조를 들려 드리기 위해 대군마마와 악공들께서 오셨습니다.]
한 단어에 새싹들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뛰기 시작했다. 마치 달리기라도 한 듯, 너무 뛰어서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미친……!”
“……설마?!”
대군마마.
그 단어에 강태영의 눈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고였다. 아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새싹들이 같은 모습이었다. 정말……정말로……? 중얼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따악-!]
다시 한번 아까와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강태영은 그 소리가 조선시대 연주의 시작을 알리는 악기, 박의 소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 소리와 함께 무대의 막이 올랐다.
새가 날개를 펼친 듯, 양쪽으로 늘어진 악공들의 모습.
그 중앙, 단정하지만 고급스러운 한복을 입고 새의 몸통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아픈 곳 하나 없이 건강하고 의젓한 모습으로, 오른손은 활을 잡고 왼손은 일곱 개의 현 위에 가볍게 올려둔 상태였다.
가야금과 비슷하게 생긴 아쟁을 앞에 두고, 새싹들을 보며 밝게 웃고 있는 남자의 정체는,
[성녕대군마마이십니다.]
어른이 된 성녕대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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