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82화
“이 부분, 한 번 더 해보죠.”
“네에…….”
서준의 말에 연주자들의 힘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곧 서준이 편곡한 악보를 보면서 연주자들이 다시 한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없던 대답과 달리 악기들의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힘차고 아름다웠다.
오늘 몇 번이고 보고 있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최태우가 1팀에 보고를 하기 위해 연습실 밖으로 나왔다.
아앗!
최태우가 나올 줄 몰랐던 듯, 창문으로 연습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남자 연습생들이 화들짝 놀라며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보였다.
“……너희 여기서 뭐 해?”
“그게…… 뭐 하시는지 궁금해서요.”
아하하핫.
다들 민망한 듯 웃는 사이, 이전 회사에서 최태우가 담당했던 네 명 중 리더였던 연습생이 대답했다.
지금 서준과 연주자들이 있는 곳은 가수팀의 연습실.
8층에 있는 서준의 전용 연습실이 좋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혼자 쓰는 공간이니 고용한 연주자들이 모두 들어가 편하게 연습하기에는 좁았다.
‘단체 연습실도 사용 중이고.’
그래서 빌린 곳이 가수팀의 연습실.
확실히 백댄서들까지 함께 연습하는 장소라서 그런지 넓고, 음악이 한시도 쉬지 않고 흐르는 곳이라 방음이 잘 되어 있기도 했다.
‘그래서 들릴 일도 없을 텐데…….’
최태우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슬금슬금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뭐라도 들릴까, 귀를 기울이는 연습생들의 모습이 참 귀여웠다.
“신기하다. 선배님 저런 악기도 연주할 수 있으셨구나.”
“그러게. 무대에서 공연하는 거 보고 싶다…….”
처음 자신이 서준에게서 이번 공연에 대해 들었을 때랑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에 최태우는 이해가 가서 작게 웃고 말았다. 그러고는 이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너희 다음 달에 데뷔한다며? 연습은?”
다음 달인 3월.
‘버밀리온’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하는 연습생들 중 리더가 말했다.
“쉬는 시간이라서 괜찮아요, 형!”
“괜찮기는.”
낯선 목소리에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아이들이 부르르 떨렸다. 데뷔반 담당 직원이었다.
“안녕하세요.”
최태우와 가볍게 인사한 직원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쉬는 시간이 정말 쉬는 시간인 줄 알아? 얼른 들어가서 잠꼬대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데뷔곡 듣고 있어.”
“네엡!”
아이들이 농부의 손짓에 흩어지는 참새떼처럼 연습실로 도망쳤다. 그 모습에 최태우와 직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 필요한 건 없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연습실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어본 가수팀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데뷔반 연습실로 걸음을 옮겼고, 최태우도 이내 이서준 배우 전담 1팀 사무실로 올라갔다.
“어때요? 연주자들은?”
1팀 직원이 물었다. 다른 직원들도 궁금한 눈치였다.
벌써 연주자들과 함께 모여 연습한 지도 며칠이 지났다.
처음에는 낯선 곳이라 긴장을 하고 있었더라도, 이제 슬슬 익숙해져서 조금 늘어지는 모습을 보이거나 비전공자인 서준의 지시에 불만이 나올 때이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단체 무대에 익숙한 ‘팀’이 아닌, ‘악기별’로 연주자들을 모아서 더욱 걱정이 됐다.
“원래는 팀으로 섭외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너무 규모가 커지는 데다가 따로 리더가 있으면 서준이가 주도하기도 힘들어지죠.”
“뭐, 서준이라면 잘 컨트롤하겠만 말이에요.”
그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때요?”
모두의 시선이 최태우에게로 모였다. 최태우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잘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서준이보다 연주자분들을 걱정해야 하지 않나 싶더라고요.”
“그래요?”
“네. 서준이가 연주자분들의 체력까지 생각하면서 연습을 조절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뭐랄까.”
잠시 비유할 게 없을까, 생각하던 최태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PT 같은 걸 받으면 ‘다섯, 잘하고 있습니다. 회원님. 좀 더 여기에 힘을 줘서…… 네에. 여섯.’ 하고 말하면서 제대로 시간을 안 재는 경우가 있잖습니까.”
“있죠. 10초만 하자고 하더니 사이사이 말하면서 20초로 늘리고는 한다니까요.”
아홉. 이야, 잘하시는데요. 이 상태로 조금 더 유지해 보죠.
십, 십 초 지난 것 같은데요?!
아뇨. 아직 멀었습니다. 조금만 더요.
끄아악!
네, 십!
“그리고 덧붙이잖아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대체 마지막이 몇 번인지…… 다들 산수를 안 배우신 것 같다니까요.”
한 번이라도 PT나 필라테스를 받아본 적 있는 직원들이 기억을 떠올리고는 해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다른 직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이가 지금 그렇게 연습하고 있습니다. 연습시간과 쉬는 시간은 확실히 지키면서요.”
으음.
연습광인 서준이라면…….
어쩐지 예상이 되는 상황에, 웃음이 잦아든 1팀 직원들은 조용히, 마음속으로 끄아악! 외치며 연습하고 있을 연주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그 기도가 통했는지, 가수팀 연습실에 있던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습니다아…….”
“……야, 시계 봐봐. 시계.”
“와. 정확하네.”
아니, 1팀 직원들의 기도가 통한 게 아니라 그저 정해진 연습 시간이 끝났을 뿐이었다.
게다가 짐을 챙기라고 15분이나 일찍 끝내주는 미덕을 보여준 서준이었지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난 한 48시간 지난 줄.”
“저도요.”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 지친 연주자들이 연주하느라 한 자세로만 계속 있어 굳어진 몸을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풀어주었다. 뿌득뿌득 뼈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나도. 차라리 교수님한테 수업을 받는 게 낫겠다.”
바닥으로 쓰러진 연주자가 말했다.
며칠 전 처음 본 사람들도 있었지만 서준과 함께 혹독한(?) 연습을 하다 보니 유대감이 쌓여 금세 친해지게 되었다.
“진짜 효율의 끝이랄까.”
“그렇죠? 막 지쳐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생각할 때 쉬고 이제 슬슬 체력이랑 정신이 돌아온다 싶으면 연습하고…….”
진짜 연습만 하면 영혼이 탈탈 털릴 정도로 힘든데, 묘하게 쉬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영혼이 강제적으로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그렇다.
연습이 끝날 때는 진짜 힘들었는데 어쩐지 따뜻한 바람이 부는 것 같으면서 체력이 회복되는 느낌이랄까.
“연습실이 좋아서 그런가?”
“그럴지도. 들어보니까 막 피톤치드? 그런 재료로 만들었다고 하더라.”
사실은 서준이 사용한 능력 덕분이었지만 다들 코코아엔터 연습실에 감탄했다.
연습실을 둘러보던 연주자들의 시선이 들고 있던 악기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서준에게로 닿았다.
“이서준 배우도 대단해.”
“그쵸? 같이 연습했는데도 엄청 생생하잖아요.”
생각해 보면 서준이 이번 공연의 주인공이라, 가장 많은 파트를 담당하고 있어 누구보다도 오래 연주했을 텐데도 지친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 이 부분에서는 조금…….”
“아, 네!”
지치기는커녕, 연주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실수가 있었던 부분이나 부족했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조언해 주기까지 했다. 지금 수다를 떨고 있던 연주자들도 서준의 조언을 듣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첫날에는 뭔가 싶었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따로 전문가를 데려올 줄 알았는데, 이서준 배우가 지휘봉을 잡은 것이었다.
그렇게 연습이 시작되었다.
자신들이 배우였다면 몰라도, 전공자도 아닌 사람이 하는 조언이 달게 들릴 리는 없었다. 하지만 작곡가이자 편곡가이기도 한 서준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거기에 서준의 연주 실력도 한몫했다.
“바이올린이 아닌데도 그 정도의 실력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감탄만 나왔다.
“처음엔 제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니까요.”
“난 누가 대신 연주한 줄.”
합주를 주도하는 훌륭한 연주 실력과 틀린 부분을 잡아내는 섬세한 귀, 그리고 연주자들의 수준에 맞는 적절한 조언.
서준의 그런 모습은 첫날 연습이 시작한 지 불과 1시간 만에 연주자들의 불만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연습시간을 넘겨 조언을 듣는 시간까지 만들어지게 되었다.
“네. 그렇게요. 잘하시네요!”
“헤헤. 감사합니다.”
조언하는 배우에 쑥스러워하는 전공자.
“……정말 배우 맞지?”
그런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 * *
2월.
누군가는 사랑하는 스타의 팬미팅을 기다리고, 누군가는 데뷔를 위해 땀을 흘리고, 누군가는 영혼이 탈탈 털릴 정도로 연습하고.
누군가는 학교를 졸업하는 달.
“졸업 축하해. 수빈아.”
“고마워, 서준이 형!”
김수빈이 매실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준이 준 꽃다발을 받아 든 김수빈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이곳은 김수빈의 집.
저녁을 먹기 위해 서준이네와 은수네까지 모두 모였다.
“학교에 가서 축하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서준이 오빠가 오면 우리 학교 뒤집어질걸!”
아쉬워하는 서준에, 5, 6학년만 참여하는 졸업식이라 오늘 쉬는 날이었던 4학년 은수가 말했다.
“맞아. 다들 수빈이랑 사진 찍는다고 난리였는데, 서준이까지 왔으면 진짜 큰일이었을 거야.”
최수희의 말에 서은혜와 이민준이 웃고 말았다.
“알아. 서준이가 졸업할 때도 다들 사진 찍느라 바빴거든.”
“맞아. 그랬지.”
어른들이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 서준과 은수는 수빈이가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을 구경했다.
“얘는 공부를 잘하고, 얘는 블루문 팬이고, 얘는 그림을 잘 그려.”
서준에게 소꿉친구들이 있는 것처럼, 한 동네에 오래 살고 있는 수빈이에게도 아기 때부터 함께 지내온 친구들이 있었다.
수빈이가 아기였을 때 몇 번 본 기억이 있었다. 말랑말랑한 슬라임 인형을 좋아하길래 능력을 써서 선물로 주기도 했다.
‘다들 잠을 잘 자게 됐다는 후기를 희상이 삼촌에게 들었지.’
애들 참 많이 컸다.
아기였을 때라 서준이 놀아준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 다른 사람들이 형 안 오냐고 물어보더라.”
“그래?”
하긴. 수빈이가 BIN이라는 게 밝혀질 때 서준과의 친분도 알려졌으니 졸업식에 오지 않을까, 추측하기도 했을 거다.
“수빈이 넌 괜찮았어?”
아무래도 인기인의 지인은 시달릴 수밖에 없으니, 능력을 썼음에도 걱정이 되는 서준이었다.
서준의 걱정 어린 표정에 수빈이가 어둠 한 점 없이 빙그레 웃었다.
“괜찮아! 친구들이 다 막아줬거든. 나도 교수님이랑 제이슨한테 조언 많이 들었고.”
언제 이렇게 씩씩하게 자랐는지……!
서준이 수빈이의 머리를 엉망이 될 때까지 격하게 쓰다듬어주었다.
“나도!”
은수도 그 사이에 끼었다.
머리를 쓰다듬던 서준의 손길은 어느새 간지럼이 되어버렸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생들이 온몸을 비틀며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3월이 되면 중학생이 되고 5학년이 되는 동생들이었다.
서준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사춘기 늦게 왔으면…….”
으하하하!!
진심이 가득 담긴 서준의 말에 저녁을 준비하던 어른들이 빵 터지고 말았다.
그렇게 놀다 보니 저녁 식사 준비가 모두 끝났다.
넓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세 가족이 하하호호 웃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팬미팅 준비는 잘 돼가?”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서준의 팬미팅에 김희상이 묻자, 서준이 대답했다.
“응. 연습도 다 끝났고 준비도 다 끝났어.”
“수빈이 오빠도 연주하지?”
은수의 말에 고기를 냠냠 먹고 있던 수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과 수빈은 [두 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했다.
“콩쿠르랑은 조금 달라서 긴장되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
“수빈이는 잘할 거야.”
“맞아. 연습도 열심히 했잖아.”
김수련과 엄마 최수희의 말에 수빈이 헤헤 웃었다.
“연극도 한다며?”
“436은 본 팬분들이 좀 있을 것 같아서 거울로 하려고.”
김희상의 물음에 서준이 대답했다.
새로운 연극을 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거울]과 [MOEB-436] 중에서 하나를 할 예정이었는데, 아무래도 [MOEB-436]은 여러 차례 공연을 했다 보니 본 새싹들이 꽤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연극[거울]을 공연하기로 했다.
“팬분들 좋겠네. 공연도 들어보니까 엄청 멋질 것 같던데.”
“그러게 말이야.”
최수희와 김희상의 말에, 서준이 활짝 웃으며 부디, 새싹들도 그렇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