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680화 (68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80화

딩-

의자에 앉은 서준이 새하얀 건반을 눌렀다. 바이올린과 다른 느낌의 소리가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음.’

서준이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새하얀 건반과 새까만 건반을 차례대로 누르며 두 손을 풀었다.

아무래도 가수팀에서 빌려 온 전자피아노라서 그런지 좋은 소리를 내긴 했지만, 확실히 가수팀에서 사용하는 그랜드 피아노보다는 소리가 부족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걸 여기까지 올릴 수는 없지.’

뭐, 서준이 그러고 싶다면야 8층 연습실까지 올려줄 매니저들과 1팀이었지만.

팬미팅이 끝나면 또 옮겨야 하니, 전자피아노로 연습하고 간간이 내려가 그랜드피아노를 사용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었다.

서준은 작게 웃으며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굿모닝]을 천천히 연주하기 시작했다.

* * *

연습 중 잠시 시간을 내달라는 말에 10층 회의실로 간 서준은 회의실에 자리 잡은 사람들에 눈을 끔벅였다.

사장 서은찬, 홍보팀장 김수련, 가수팀 이사 김상진, 배우팀 이사 안다호까지.

“……코코아엔터 팔아요?”

“아니!?”

서준의 말에 사장 서은찬이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고, 다른 세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이만한 직책들에 투자자인 서준까지 모인 회의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건 아니고 서준이 네 팬미팅 때문에.”

서은찬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의 일이니 안다호 이사는 기본이고, 아무래도 이런 행사를 자주 해본 가수팀의 도움을 받기 위해 김상진 이사도 참여한 것 같았다.

그럼 사장님하고 홍보팀장님은 왜?

의아해하는 서준의 눈빛에 김수련이 웃으며 말했다.

“팬미팅 DVD를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싶어서 말이야.”

“팬미팅 DVD요?”

“응. 예전에 했던 팬미팅 영상도 있으니까 같이 판매하는 게 어떻겠냐는 거지.”

“포토카드 같은 것도 넣어서 말이야.”

사장 서은찬과 홍보팀장 김수련이 열정적으로 어필했다.

팬미팅 DVD.

연기에 관련된 영상이라면 단번에 승낙했을 서준이지만 팬미팅 DVD는 조금 고민이 됐다. 서준이 안다호를 바라보았다.

“다호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뭐, 서준이 네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긴 하지만…….”

안다호는 서준이 팬미팅에서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이벤트들을 떠올렸다. 음.

“이번 팬미팅에서 보여줄 공연들을 생각하면, DVD를 판매하지 않으면 그 얌전한 새싹분들이라도 회사로 쳐들어오지 않을까 싶긴 해.”

“그렇다니까!”

“나 같아도 쳐들어온다!”

김수련과 서은찬의 열정적인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해요.”

“오케이!”

짐을 내려놓았다는 듯, 편안한 얼굴을 하는 김수련 팀장과 서은찬 사장에 김상진 이사가 웃고 말았다. 소속 연예인한테 이렇게 쩔쩔매는 곳도 여기밖에 없을 거다.

“그럼 연습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여기서 더?”

한 달가량 남은 팬미팅 때문에 지금도 하루 종일 연습하고 있는데?

안다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서준이 네 체력은 잘 알지만 쉬엄쉬엄해.”

숙모 김수련과 삼촌 서은찬도 덧붙였다.

“그래. 연습하는 건 좋지만 너무 무리하면 안 돼.”

“너 무리하면 나 누나한테 죽어.”

가수들의 팬미팅이나 콘서트 같은, 이런 행사를 많이 지휘해 본 가수팀 김상진 이사도 조언했다.

“연습도 중요하지만 팬미팅날까지 컨디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해. 서준아.”

진심이 듬뿍 담긴 말들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네. 무리 안 할게요. 걱정 마세요.”

그리고 서준과 네 사람은 본격적인 회의를 시작했다.

* * *

[마린사, 비밀병기를 꺼내 들다?!]

[영화 ‘매드해터’의 쿠키영상으로 나타난 S와 N! 다음 시리즈의 예고인가?]

[배우 교체 루머에 마린사와 코코아엔터 묵묵부답!]

[시즌 1과 시즌 2를 잇는 새로운 히어로의 등장!?]

[진 나트라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일까!]

“진 나트라 시리즈……!”

으아아아!

차 안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는 자신의 배우를 보며 매니저 주용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태영아. 좀 있으면 인터뷰 시작한다니까.”

“잠깐만, 형! 딱 5분만!”

[매드해터]를 보고 난 이후부터 계속 관련된 기사들만 찾아보고 있는 배우의 모습에 주용진이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팬미팅 티ㅋ…….”

“갑니다! 가요!”

이번에도 매니저만 성공해 버린 티켓팅에, 배우는 눈물을 머금고 얼른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인터뷰 현장을 바라보았다. 아직 촬영 준비로 스태프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직 멀었잖아…….”

마치 학창시절, 엄마가 ‘너 지각이야!’ 하고 깜짝 놀라서 일어났더니 7시인 느낌이랄까.

어차피 일어날 때였지만, 억울한 기분이 드는 느낌.

하지만 매니저의 말대로 거의 마무리되는 상황이었는지, 금세 인터뷰 자리가 마련되었다. 타이밍이 좋았다.

‘용진이 형, 최고!’

‘그럼 제발 말 좀 들어, 인마.’

엄지를 들어 올리는 배우에 매니저 주용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본격적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강태영 배우. 이번에 새 드라마에 출연하셨다죠?”

리포터의 말에 이제 곧 방영될 드라마를 홍보하러 나온 배우, 강태영이 카메라를 보고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네! 예전에 [봄이 돌아왔다]를 함께 촬영했던 공희찬 피디님과 유청아 작가님과 또 한 번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로코가 아니라 스릴러라고 들었는데요.”

“네. 범죄자들을 쫓는 형사의 이야기입니다. 범죄자 역할을 하시는 배우분들이 정말로 연기를 잘하셔서 저도 형사 역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연쇄살인범으로 등장하는 배우분의 연기력이 진짜 대단하거든요!”

“그러고 보니 범죄자 역을 맡으신 배우분들이 누군지는 아직 한 분도 알려지지 않았죠? 궁금한데 한 분만 말해주실 수 있나요?”

“안돼요. 피디님한테 혼나요.”

보이지 않는 강아지 귀가 축 늘어진 것 같은 강태영의 모습에 인터뷰어가 웃음을 터뜨렸다. 강태영도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연기력으로 유명한 강태영 배우가 그렇게 말하니 정말 기대되는데요.”

“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배우들의 깜짝 놀랄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 드라마 ‘괴물’ 많은 시청 바랍니다!”

그렇게 훈훈하게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이건 드라마와 상관없는 이야기인데요. 혹시 이번에 열리는 이서준 배우의 팬미팅에 가시나요?”

“네! 갑니다! 첫날 가요!”

해맑은 배우의 모습에 매니저 주용진이 마른 세수를 했다.

‘……뭐, 이미 이런 질문이 나올 정도로 알려지긴 했지.’

그랬다.

강태영은 이미 연예계에도,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새싹이었다.

* * *

“스케줄 끝!”

“바로 집으로 가?”

“어! 가서 영화객 님 매드해터 리뷰 봐야 해! 쿠키영상 이야기도 한다니까 꼭 봐야돼!”

……그래.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운전대를 잡은 주용진이 강태영의 집으로 향했다.

“형도 보고 갈래?”

“……그래.”

조금 망설이던 주용진이 대답했다. 그도 궁금하긴 했다.

그렇게 함께 영화객의 리뷰를 보기로 한 강태영과 주용진은 늦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TV에 너튜브를 연결했다.

“그건 뭐야?”

“채팅하려고!”

어느새 노트북까지 준비한 강태영에 주용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공지된 시간에 맞춰, 영화객의 라이브가 시작되었다.

[매드해터]의 리뷰 방송답게 앞부분은 [매드해터]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간간이 채팅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쿠키영상 리뷰는 언제 함?’, ‘쿠키영상 리뷰나 해라!’라는 등의 어그로를 처리하기도 했다.

“오. 그런 의미가 있었나 보네.”

“다시 봐야겠다.”

영화객의 리뷰를 역시 재미있었다.

그렇게 [매드해터]의 리뷰가 끝나고 [쿠키영상]의 리뷰가 시작되었다. 강태영의 눈이 빛났다.

-히

-이즈

>커밍!

-우어어어어어!!!

-그 애가 오고 있어!

-우리 애가 오고 있어!

-진 나트라가 온다!

>윌리엄 리가 온다!!

혼돈의 도가니가 따로 없었다. 그중에는 강태영의 댓글도 있었다.

-오늘도 고인물들이ㅋㅋㅋ

강태영의 닉네임 ‘새싹0310호’를 알고 있는 주용진이 짜게 식은 눈으로, 영화객 방송의 고인물 중 하나인 자신의 배우를 바라보았다. 팬들은 얘의 이런 모습을 알까 싶었다.

[자자. 진정하시고 이제 쿠키영상에 대해 파헤쳐 봅시다.]

-두근두근

-이런 거 참 좋더라. 숨겨놓은 의미 찾기.

-222 영화객은 그 이상을 알아내서 좋은.

[먼저 저희가 가장 궁금해하는 건 이번 쿠키영상이 도대체 왜 만들어졌느냐! 입니다. 두 가지 가설이 있는데요. 하나는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걸 보여주는 ‘쉐도우맨 시리즈의 비하인드 영상’이라는 것.]

-쉐도우맨도 나트라에 자주 들를 정도로 편안해졌다는 거지.

-공원도 평화롭고.

-윌리엄도 그 공원을 뛰고 있는 걸 보면 평범한 삶을 살게 된 거고ㅠㅠ

>행복해진 윌리엄 너무 좋아ㅠㅠㅠ

-근데 거기서 끝나면 안 좋음.

-222 진 나트라를 내놔!!

[그렇습니다! 평화롭고 행복한 엔딩 좋아요! 하지만 그러면 이야기가 끝나죠. 이제 진 나트라를 볼 수 없게 된다는 겁니다! 거기서 두번째 가설이 나옵니다. 새로운 시리즈의 예고편이라는 가설이죠!]

강태영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얼마 전 마린사 홈페이지가 갱신됐더라고요. 그리고 새로운 영화가 떴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것!]

[쉐도우 앤 나이트! 힌트라고 생각했던 책 제목에 S와 N밖에 보이지 않아서 쉐도우맨과 나트라를 떠올렸지만 다른 글자들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새 시리즈가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

>으아아아!!!

-진 나트라! 진 나트라!!

-윌리엄 리! 윌리엄 리!

열광적인 영화객과 파도처럼 올라가는 채팅창, 그리고 옆에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강태영까지. 주용진은 조용히 캔맥주를 땄다.

-배우 교체썰도 있던데, 영화객은 어떻게 생각함?

-22 그래서 발소리밖에 안 들려줬다던데?

“넌 괜찮아?”

“응? 뭐가?”

주용진의 말에 강태영이 눈을 끔벅였다. 그에 주용진이 더욱 의아한 표정으로 강태영을 바라보았다. 서준의 팬인 강태영이 ‘배우 교체’라는 말에 평온한 것이 이상했던 것이었다.

“배우 교체 말이야. 나온 게 발소리밖에 없었으니까 배우가 바뀔 수도 있는 거잖아.”

“아. 그거.”

강태영이 웃었다.

“배우 교체 아니야.”

“응?”

“그거 서준이 발소리잖아.”

“……응?”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서준이가 연기하는 발소리랄까?”

“……으응??”

“봐봐. 영화객 님도 설명하시네!”

얼빵한 표정의 주용진이 TV화면을 바라보았다.

[단언하자면, 배우 교체는 없습니다. 이 발소리는 이서준 배우가 연기한 것이거든요.]

-????

-????

>역시! 영화객 님은 알아차리셨군요!

[새싹0310호 님도 아셨군요!]

주용진이 떨리는 눈으로 TV 속 영화객과 옆에 앉아있는 강태영을 번갈아 보았다.

-뭐여? 나만 무슨 소린지 몰라?

-ㄴㄴㄴ나도 몰라;;;;

[설명하자면 이런 겁니다. 사람마다 걷는 방법이 다르거든요. 총총 걷는 사람도 있고 크게 크게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냥 들으면 모르지만 자세히 분석하면 차이점이 드러나죠. 이번 쿠키영상에서도 그렇습니다. 계속 듣다 보니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발소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쉐도우맨2에서 아직 흑화하기 전의 진 나트라의 발소리랑 비슷하죠!

[네. 새싹0310호 님의 말이 맞습니다. 기억을 잃은 윌리엄이지만 몸에 밴 10년 동안의 버릇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트라 왕족의 예법 같은 것이 말이죠. 그리고 그 ‘예법’에는 식사 방법이나 말하는 방법, 그리고 걷고 뛰는 방법 등이 있죠.]

>쉐도우맨3에서는 진 나트라가 흑화해서 발소리도 조금 달라졌지만요! 무겁고 진득하게요!

[네. 그렇습니다. 쉐도우맨3에서는 진짜 최종 빌런처럼 무게감이 있었죠.]

잠시 채팅창이 멈추었다.

영화객과 새싹0310호의 대화를 이해하는 것만 해도 머리가 팽팽 돌았다.

[그러니 기억은 잃었지만 예법은 그대로 몸에 밴, 부모님과 행복하게 자란 윌리엄 리의 발소리는, 아마도 흑화하기 전 튤 나트라와 벨 나트라의 사랑을 받고 지냈던 어린 진 나트라의 발소리와 비슷할 겁니다.]

>물론 어른이 된 윌리엄과는 체격 차이가 있으니까 무게감은 다르겠지만요!

[네. 묵직하면서도 훈련받은 듯한 규칙적인 발소리. 보통 배우라면 따라 할 수 없는 그 발소리가, 이서준 배우가 앞으로도 진 나트라를, 아니, 윌리엄 리의 역할을 계속 맡을 거라는 증거입니다!]

>맞아요!! 모두 걱정 안 하셔도 돼요!!ㅎㅎ

멈췄던 채팅창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둘 뭐냐…….

-엄마. 나 무서워;;;;

-아니, 발소리 가지고 이렇게까지 분석할 일이냐고;;;

-당신은 개입니까?

-진심 영화객 과학수사대 같은 곳에서 일해야 하는 거 아니야?

-22 재능낭비 아님???

-그것보다 전 새싹0310호님이 더 궁금한데요???

-그러게. 도대체 하시는 일이 뭐길래??

-형사 아님?ㅎㄷㄷ

……아니, 배우입니다.

주용진은 실실 웃고 있는 강태영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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