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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75화 (67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75화

놀라는 것도 잠시.

흔들리던 눈으로 알림이 뜬 허공을 바라보던 서준은 이내 진정했다.

등급이 상승하고 변화된 능력들이 모두 선의 선향이라는 점도 진정하는데 도움이 됐지만, 뭐만 하면 등급이 상승하는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때문이기도 했다.

‘연습실에 가서 자세히 알아보자.’

그전에 간식파티가 열렸던 테이블을 치우려는데, 그 잠깐 사이에 테이블이 깨끗해져 있었다. 직원들이 일하러 가면서도 각자 마시던 음료와 간식들을 주섬주섬 챙겨가기도 했고, 최태우가 빠르게 치운 덕분이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도 간식을 놓지 않는 형, 누나들의 모습에 작게 웃은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 그럼 연습실에 가 볼게요.”

“그래~”

“같이 갈까?”

“아뇨. 괜찮아요. 형. 나중에 다호 형 오면 알려주세요.”

최태우에게 그렇게 말하고, 1팀 사무실을 나가려던 서준이 아, 하고 잠깐 멈춰 섰다. 직원들이 빼꼼 고개를 들고 서준을 바라보았다.

“저런 후기글 중에 몇 개만 연습실로 보내주실 수 있어요?”

아무래도 능력 변화의 원인 중 하나가 저 후기들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알았어.”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1팀 직원들을 뒤로 하고 서준은 연습실로 향했다. 그리고 연습실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폭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 * *

생의 도서관.

밤마다 들르는 터라 낮에 오는 일은 잘 없는 곳이었다.

“여긴 낮이랑 밤이 없긴 하지만.”

선의 도서관이든 악의 도서관이든, 언제나 조명이 켜져 있는 것처럼 밝은 곳이었다.

서준은 걸음을 옮겨 선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제 사용이 끝나 책장에 꽂혀 있는 네 개의 삶의 책들을 꺼내 살펴보았다.

등급이 상승한 [(선)디테마스의 울음소리](굿모닝), [(선)모드잇꽃의 꽃잎](굿나잇).

능력이 변형된 [(선)티아프의 빛 가루](굿 애프터눈), [(선)플록스의 불꽃](굿 이브닝).

알림대로 네 가지 능력 모두 강해져 있었다.

등급이 상승한 두 능력은 크게, 능력이 변형된 두 능력은 작게.

그것 말고 다른 건 그대로였다.

“왜지?”

지금까지 등급이 상승하거나 변화한 능력들을 살펴보면 그 능력이 바라는 것, ‘꿈’을 이루어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변화한 네 가지 능력들을 딱히 그런 ‘꿈’이 없었다.

“그리고 이건 또 변화가 없고.”

변화한 네 가지 능력과 함께 사용했던 [(선)이름 없는 사제의 찬가(중급)]는 예전 그대로였다.

하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서준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시야 안에 수많은 책꽂이와 거기에 꽂힌 삶의 책들이 보였다. 모두 전생의 ‘나’였다.

생의 도서관.

‘내’가 만든 곳이긴 하지만 참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더 이상 알아낼 것도 없어 서준은 눈을 떴다.

때마침 메시지로 부탁했던 후기들이 도착해 있었다.

>ㅠㅠㅠㅠㅠ

>이거 정마류ㅠㅠㅠ

>꼭 읽어ㅠㅠ서준아ㅠㅠ

>[제목: 이서준 배우님. 정말 감사합니다.]

고개를 갸웃한 서준이 1팀 직원들의 눈물과 함께 보내준 링크를 클릭했다.

* * *

어두컴컴한 방.

빈틈 하나 없이 이불로 감쌌음에도 거실에서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병장님이 이서준 배우였다니…… 상담은 무리겠네.”

“응. 카페 사람들도 다 아쉬워하더라. 유능한 상담가를 찾았다고 좋아했는데 말이야.”

아빠와 동생의 목소리였다.

다른 감정은 없이 오로지 걱정만으로 가득한 목소리였지만, 짜증이 났다.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둘 것이지. 그러자 마음이 단번에 바뀐다. 아니지. 모두 나를 위한 건데……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

죄책감이 쌓여갔다.

“다른 병원은 찾아봤어?”

“근데 병원도 언니가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효과가 있는 거라서…….”

엄마의 물음에 대답하는 동생. 아빠가 자기도 모르게 나온 한숨에 놀라 입을 막는 듯한 숨소리가 들렸다.

언니는 이불로 감싼 몸을 더더욱 웅크렸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게. 소리 하나 들리지 않게.

언제부터인지,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우울, 슬픔, 좌절…… 글쎄. 그런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언니의 온몸을 차지하고 있었다.

방구석에 팽개쳐진 약들, 여기저기 치우지 않은 쓰레기들, 언제 입었나 싶은 이곳저곳 널브러져 있는 옷들, 암막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 그리고 예전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 준비를 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먼지가 쌓인 책상과 책장.

마치 언니의 마음속처럼 빛 한 점 들지 않는 엉망진창인 방이었다.

“언니…… 잠은 잘 자고 있지?”

줄어들지 않는 음식을 보며 동생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했다. 한창 즐겁게 놀고 싶을 때일 텐데, 자신에 대한 걱정으로 동생까지 초췌해져 가는 것 같아서. 엄마 아빠에게도 죄송했다.

울컥.

눈물이 나온다.

언니는 오늘도 제어할 수 없는 어둠과 우울에 잠겨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언제 끝날지 모를, 어쩌면 위험한 선택을 해서야 끝날 것 같은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어찌어찌 삶을 이어가고 있을 때, 그 소리가 들렸다.

바이올린 소리였다.

악기에 문외한인 언니가 그 많은 악기 중에 바이올린 소리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 건 이유가 있었다.

“언니, 이거 좋지?”

언니가 방에 틀어박힌 이후로, 동생은 매일같이 방문 앞에 앉아 말을 걸었다.

학교 이야기를 하고, 친구들 이야기를 하고,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유머를 이야기했다. 그게 옳은 방법인지 틀린 방법인지는 몰랐다. 그저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서준 배우가 라디오에서 연주한 바이올린 곡인데 엄청 좋더라. 그래서 언니한테도 들려주려고. 언니, 생각나? 오버 더 레인보우. 우리 옛날에 같이 보러 갔었잖아.”

그래.

그랬었다.

이런 상황이 되기 전, 그런 추억이 언니와 동생에게 있었다.

“그게 벌써 10년이나 지났대. 난 아직도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그래서 이번에 10주년 기념으로 오버 더 레인보우 2편을 촬영할 거래. 이 곡도 2편에 들어갈 예정인데…….”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음악이 중간에 뚝 끊겼다.

언니와 같은 추억을 떠올린 듯, 약간 물기가 섞인 동생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스포일러라면서 여기서 딱 연주를 끝내지 뭐야. 정말 너무하지 않아? 다들 뒷부분이 궁금하다고 댓글 엄청 많이 달았어.”

그러네.

정말 뒷부분이 궁금해지는 연주였다.

그리고,

한 번 더 듣고 싶은 연주였다.

“……예원아…….”

“! 언니!”

오랜만에 들려온 언니의 목소리에 동생이 화들짝 놀라 방문에 찰싹 달라붙었다. 당장에라도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아직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침착. 침착하자.

“……한 번만 더 들려줘.”

“응! 응! 그럴게! 계속 들어도 돼!”

동생이 허둥지둥 휴대폰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또다시 바이올린 선율이 들려온다. 마치 아침 햇살처럼 따뜻한 선율이.

햇빛 한 점 들어올 수 있는 틈이 없는 어두운 방안이지만 어쩐지 차갑게 식어가던 언니의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동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치 조금 전 들었던 언니의 목소리가 자신의 착각인가 싶은 듯했다.

“어, 언니. 이 곡 좋지?”

“……응……좋네…….”

호불호도 없이 말라가던 언니가 처음으로 좋다고 말한 그날 이후로, 동생과 엄마 아빠는 [오버 더 레인보우2]가 하루라도 빨리 공개되길 간절히 기다렸다.

그리고 [오버 더 레인보우2] 공개 날.

가족은 열리지 않은 언니의 방문 앞에 가장 좋은 스피커를 설치했다. 그리고 다 같이 [오버 더 레인보우2: 포 마이 프렌드]를 보기 시작했다.

아직 영화를 볼 정도의 마음은 없는 언니는 언제나처럼 이불 속에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저 들려오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리듯 듣고 있었다.

처음 들려오는 클래식은 연주를 잘한다는 것은 알 것 같았지만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영화 속 대화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영어라서 이해하지 못했다.

“언니. 지금 어른이 된 그레이가 연주회를 하고 있는데 엄청 멋있어! 레베카랑 조지도 있네! 지금 꽃다발 들고 무대 뒤로 가고 있어! 그레이한테 주려나 봐.”

동생의 설명이 밖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처럼, 사람들의 대화 소리처럼, 새소리처럼 그냥 생활 소음인 듯 언니의 귀를 스쳐 지나갔다.

문득 언니는 슬퍼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상태가 나아지는 데 이 영화가, 이 음악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바보같이…… 내가 힘을 내야 하는 건데.’

하지만 그 힘은 어떻게 내야 하는 건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듯한 지금의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당사자인 언니도 알지 못했다.

그때,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곡이었고 어떤 느낌을 표현한 곡인지도 몰랐지만 그 어떤 곡보다 좋았다.

[굿 애프터눈]이었다.

그 연주에 담긴 서준의 능력, [(선)티아프의 빛 가루]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언니에게 닿았다. 그러고는 마음속 부정적인 감정을 잠재우고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에 우울감으로 가득 차 있던 언니의 머릿속이 조금 깨끗해지고 초록빛이 가득한 공원이 떠올랐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잠잠하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언니는 저도 모르게 연주를 좀 더 잘 듣기 위해 이불을 두른 채로 꿈틀거리며 문 앞으로 다가가 문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좋다.

계속 이 곡만 듣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또다시 대화소리가 들려오고 유명한 클래식 곡이 들려왔다. 물론 연주는 좋았다. 하지만 아쉬웠다.

“언니, 지금은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어.”

“우리도 한번 갈까?”

“바비큐가 생각보다 어렵다고 하던데…….”

동생이 재잘재잘 진행사항을 말해주고 엄마 아빠가 추임새를 넣었다.

그리고 새로운 곡이 들려왔다.

[굿 이브닝]이었다.

대상의 마음속에 있는 애정과 사랑을 2배로 증폭시키는 [(선)플록스의 불꽃]이 언니의 마음 속에 자리를 잡았다.

앞서 생겨났던 긍정적인 마음이 두 배로 불어났다.

꼭 닫힌 방문 건너, 자신을 위해 목을 축일 새도 없이 영화의 줄거리를 이야기해 주는 가족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도 2배로, 아니, 몇 배로 늘어났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묘지에 묻힌 아이가 열여섯 살이래. 그레이의 팬이었대.”

죽은 아이가 잘 자기를 바라는 [자장가]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동생과 엄마 아빠가 숨죽여 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자신이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리라.

그리고 한 곡이 더 들려왔다.

느릿하고 차분한 [굿나잇]이었다.

죽은 존재를 떠오르게 만들고 대상자의 슬픔과 미련의 일부분 없애주는 [(선)모드잇꽃의 꽃잎]이 언니에게 내려앉았다. 그러자 이미 죽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가 괜찮다는 듯 언니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졌다.

“이제 다운록이야! 엄청 많이 변했네!”

동생의 목소리와 함께 밝디밝은 [굿모닝]이 들려왔다.

듣는 이에게 활기찬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선)디테마스의 울음소리]가 마음이 가벼워진 언니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울음을 그친 언니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언제 이렇게 크게 숨을 뱉고 들이마셨는지 모를 정도로 속이 시원해지는 커다란 움직임이었다.

그 이후로 [오버 더 레인보우]와 [포 마이 프렌드]가 들려왔다.

>유원아.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이제 붕어빵 파는데!

>딸기도 제철이라 엄청 맛있음.

>마린사 영화도 1월에 나온대!!

>같이 보러가자!

>티켓은 내가 삼.

친구들이 보낸 메시지가 떠올랐다.

바이올린의 선율에서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불 속에서 나온 언니가 웅크리고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비척비척 창문 앞으로 걸어가 떨리는 두 손으로 두꺼운 암막커튼을 움켜쥐었다.

여전히 무섭다.

여전히 우울하고 공허하다.

여전히 이루 말할 수 없이 막막하다.

‘하지만…….’

입을 꾹 다문 언니가 눈을 부릅뜨고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촤아악-

무거울 거라고 생각했던 암막 커튼이 아주 가볍게, 아주 쉽게 걷혔다.

창밖으로 눈이 내린 풍경이 보였다.

언니가 다시금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이제 다시 살아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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