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74화
다른 곳이라고 안 그렇겠느냐마는, 연말연초에 더욱 바빠지는 곳이 있었다.
“시상식 준비는 어떻게 됐어?! 옷 겹치면 안 돼!”
그 해 어떤 배우 가장 인기 있었고 어떤 드라마가 가장 화제였으며 어떤 새로운 얼굴이 스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한 해의 성적을 결산하는 행사인 시상식 준비에.
“내년에 공희찬 피디 새 작품 찍는다며?”
“네. 이번에도 유청아 작가님이랑 같이 작업한답니다. 주인공도 인기 배우로 벌써 확정이래요!”
“그럼 시청률은 보장된 건데……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어?”
새로운 해를 맞이하여 각 방송국에 편성되는 드라마들에 대해 알아보고.
“이번에 새 예능 런칭할 것 같다던데, 예능감 좋은 애들 있어?”
새롭게 시작하거나 개편되는 예능 프로그램에 소속된 배우나 가수, 개그맨을 넣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연애하는 애들 없지!? 다른 땐 몰라도 새해에는 조심하자!?!”
1월 1일마다 터지는 연애설을 경계하며 으르렁거렸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는 직원들과 달리, 유난히 한가한 곳이 있었다.
바로 아이돌 데뷔팀이었다.
“원래는 우리도 바빴어야 했는데 말이죠…….”
“뭐, 일정이 밀렸으니까 어쩔 수 없지.”
한가하다 못해 느긋해서, 눈치가 보여 선배와 막내 직원은 초췌해진 다른 팀 직원들의 부탁으로 생명수(커피)를 사기 위해 회사 밖으로 나왔다.
회사와 가까운 카페로 들어가자마자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두 직원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거 내년까지 가겠는데요?”
11월에 데뷔할 예정이었던 걸그룹의 데뷔를 미루게 한 원인인 바이올린의 선율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뭐, 예상했잖아.”
막내의 말에 선배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해탈한 얼굴이었다.
그렇긴 하다.
10년 전, 음원차트를 장악했던 [오버 더 레인보우1]의 위력을 몰랐던 건지, 아니면 대중가요도 아니고 사람들이 거의 듣지 않는 바이올린 곡이라고 생각한 건지, 용감하게 데뷔한 그룹들이 있었다.
“컴백하는 선배그룹들이 아예 없어서 무주공산이라고 생각했겠지. 초대형 폭탄이 떨어질지도 모르고 말이야.”
웬만한 소속사들은 [오버 더 레인보우2] 공개 소식에 일제히 컴백을 미루었다. 두 직원이 소속되어 있는 소속사도 마찬가지였다.
“맞아요. 찍소리도 못 하고 사라진 걸 보면 일정을 미룬 게 답이긴 했어요.”
먼저 온 손님이 많은지 주문한 음료들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두 직원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덩달아 카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굿 애프터눈]도 감상하게 되었다.
“곡이 좋긴 좋아.”
“맞아요. 계속 듣게 되더라고요. 아, 그거 아세요? 굿모닝을 아침에 들으면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대요. 그래서 모닝콜로 쓰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네. 너튜버 영화객도 굿모닝으로 모닝콜을 바꾼 뒤에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게 됐대요.”
[오버 더 레인보우] 덕분에 유명해진 너튜버 영화객을 선배 직원도 알고 있었다.
“그냥 프리랜서라서 잘 일어나지는 거 아니야? 정해진 출근 시간 없이 언제든 일어나 작업하면 되는 프리랜서니까.”
오늘도 새벽같이 피곤한 몸을 일으켜 힘겹게 출근한(일은 없어도 출근은 힘들다) 선배의 말에 막내 직원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거 듣고 굿모닝을 듣고 일어난 지 이틀 됐는데 진짜 좋아요. 아침이 기분 좋아진다니까요? 선배님도 한번 해보세요!”
불신 어린 눈빛이 막내에게로 향했다.
아침이 기분 좋아진다니, 영 믿음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진짜 노래 제목 따라가는 음악인가 봐요. 굿 애프터눈이랑 굿 이브닝도 그렇잖아요. 막 활기 넘치고 저녁에 들으면 좋고.”
“그럼 굿나잇은 밤에 잘 때 들으면 좋게?”
……오!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듯한 막내가 선배를 보며 감탄했다.
“그건 생각 못 했는데!”
아무래도 [굿나잇]이 나온 영화 장면과 음원 공개와 함께 덧붙여진 곡 설명이, ‘[자장가]의 답장’, ‘죽은 이가 보낸 답장’ 등 조금 무거운 설명이다 보니, 좋은 곡이긴 하지만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그런 사람들이 좋을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다.
뭐랄까.
슬픔을 위로하는 곡 같은?
“오늘 자기 전에 들어봐야겠어요!”
해맑은 막내를 바라보는 선배의 눈빛이 짜게 식었다.
“125번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마침 나온 커피를 두 손 가득 든 두 사람이 카페 밖으로 나왔다.
크리스마스가 이틀 남은 추운 겨울이라서 그런지 찬바람에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 올해 데뷔한 걸그룹 ‘앰버’의 광고판이 보였다. 카페에서 들려온 음악에, 앰버까지 보게 되니 한 회사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연기대상에 코코아엔터 배우들도 많이 나오겠죠?”
“그렇겠지. 올해 활동도 대단했으니까.”
이서준 급은 아니지만, 코코아엔터에 소속된 다른 배우들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작년은 물론이고 올해도 작품성이 훌륭하고 시청률까지 좋은 드라마들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역시 코코아엔터!”
“……넌 어디 직원이냐.”
“하.하.하.”
입사한 지 1년도 안 된 막내직원이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는 화제를 돌리듯 말했다.
“근데 걸그룹도 나왔으니까 보이그룹도 나올 차례 아니에요?”
화제를 돌린 게 맞나 싶게도 코코아엔터의 이야기였지만.
“블루문이 데뷔한 지도 내년이면 5년인데 말이죠.”
“안 그래도 그런 소문이 돌더라고.”
알음알음 코코아엔터에서 블루문 다음으로 새 보이그룹을 데뷔시킨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우린 걸그룹이라서. 보통 걸그룹과 보이그룹은 타켓층이 다르잖아요.”
“……글쎄.”
뭣도 모르는 똥강아지를 보듯 해맑은 막내를 바라보던 선배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코코아엔터 소속 연예인들은 보통이 아니니까 문제였다.
그날 밤.
늦게까지 데뷔조 연습생들의 영상을 살펴보던 선배직원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었다.
직장인은 필수로 가지고 있는 불면증을 그도 가지고 있었다. 한참을 누워있다가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니, 이러다가는 밤을 꼬박 새우고 출근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오늘 자기 전에 들어봐야겠어요!
하던 막내의 말이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믿음이 가진 않지만.
“……잠은 자야겠지.”
이제 밤샐 체력도 없고, 건강도 걱정되는 나이였다.
선배는 겸사겸사 모닝콜로 [굿모닝]을 설정해 두고 ([오버 더 레인보우2]을 감명 깊게 보고 음원을 모두 다운로드했다. 기념티켓도 있다) 음량을 조절해 [굿나잇]을 켜 놓아두었다.
잠시 ‘그레이 바이니 버전’과 ‘이서준 버전’ 중에서 고민하다 선택한 이서준이 연주하는 [굿나잇]. 밝은 다른 곡들과 다르게 느릿하고 차분하지만 따뜻한 바이올린의 선율이 휴대폰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선배는 생각했다.
‘몸이 나른해지기는 하지만 이런 게 효과가 있게ㅆ…….’
그리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 * *
새해를 며칠 앞두고 코코아엔터, 배우 이서준 전담 1팀 사무실에 배우님이 나타났다.
“다들 크리스마스 잘 지내셨어요?”
“서준아…… 솔로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아하하하.”
1팀 직원의 말에 서준과 다른 직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가족들이랑 파티를 했을 수도 있죠. 미국에서는 가족들이랑 지내는 게 보통이래요.”
어렸을 적, 잭 스미스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던 것을 떠올리며 서준이 말했다. 그에 직원이 더더욱 울상을 지었다.
“부모님은 데이트하러 가셨어.”
“아…….”
이런.
부모님도 커플이셨지.
근데 왜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 걸까.
어깨를 부들부들 떠는 서준과 동료들에 직원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말했다.
“……그냥 웃으세요.”
으하하핳!
그에 1팀 사무실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서준이가 간식 사 왔으니까 먹고 합시다!”
“네에!”
부팀장의 말에 다들 일하던 것을 잠깐 멈추고 서준이 사 온 간식들을 먹기 위해 테이블로 모였다. 각자 취향에 맞춘 음료며 빵, 케이크까지. 테이블 가득 올라온 간식들에 모두 밝게 웃었다.
“다른 팀들은 다 바쁘던데 1팀은 어때요?”
자기 몫의 오렌지주스와 케이크를 먹으며 서준이 물었다.
“우리 팀은 올해 네 활동이 오버레2 뿐이니까 할 일은 별로 없는데, 다른 팀들은 이제 곧 시상식이니까 엄청 바쁘지. 상 꽤 받을지도 모르거든.”
상이라는 이야기에 서준의 얼굴이 밝아졌다.
‘첫 생’의 경험으로, 그리고 ‘현생’의 경험으로 배우들에게 상이라는 게 얼마나 뜻깊은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오! 잘됐네요. 드라마 재미있었어요. 다들 연기도 잘했구요.”
“안 이사님도 같이 고른 작품들이니까.”
이 자리에 없는 안다호의 이야기가 나왔다.
서준 못지않게 안다호의 작품 고르는 눈도 높은 확률을 자랑했다.
“다호 형도 많이 바쁘죠?”
서준의 말에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살펴볼 배우들이 엄청 늘었으니까.”
“그래도 좀 있다 들어오실 거라니까 기다렸다가 올라가 봐.”
“네. 그럴게요.”
서준은 즐겁게 1팀 직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에는 서준이 군대에 있을 동안 1팀에 들어온 직원들도 있었는데, 서준이 전역하고 나서 자주 들린 덕분인지 제법 편안하게 대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막내직원이 입을 열자, 시선이 모였다.
“요새 희한한 글들이 올라오더라구요.”
“희한한 글?”
서준과 1팀 직원들, 최태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네.”
“문제가 될 만한 글이에요?”
물론 그런 글은 보자마자 보고할 테니 아니겠지만.
그 생각처럼 막내직원이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문제라기에는 조금 애매한 게…… 불면증 카페에 올라오는 글이라서요.”
……불면증 카페?
다들 눈만 끔벅일 정도로 의외인 곳이었다.
잠시 갸웃하던 서준만 아하, 하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굿나잇 때문이구나.’
서준의 추측대로였다.
“굿나잇이 불면증에 좋다는 이야기들이 많더라고요.”
“……굿나잇이…… 불면증에요?”
눈을 끔벅이며 조금 의아해하던 1팀 직원들이 이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서준이니까.”
“그러게요. 먹방의 다른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그리고 아예 없었던 일도 아닌 게, 옛날에는 고양이를 재우는 노래도 있었잖아요.”
“아, 저 그 노래 알아요. 고양이에게 효과 있는 뭔가가 있다고 들었어요.”
납득이 너무 빠르다.
최태우와 신입직원들만이 조금 의아해하다가 선배들이 늘어놓는 이야기에 이내 이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가 아니죠. 형, 누나.
서준이 웃고 말았다.
“굿나잇이 나른한 게 잠 오기 좋은 곡이긴 하죠.”
“굿모닝도 아침에 듣기 좋은 곡이잖아요. 영화객 님도 모닝콜로 잘 쓰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아, 저도 그 방송 봤어요. 그거 보고 저도 모닝콜로 쓰고 있거든요. 서준이 연주랑 그레이 연주랑 바꿔가면서요.”
“저도요!”
모닝콜은 설정해놨는데 자장가까지는 미처 생각 못했다면서 다들 오늘부터 [굿나잇]을 틀어놓고 자야겠다고 즐겁게 이야기했다.
“근데 글은 얼마나 올라왔어요?”
“잠시만요.”
그 물음에 막내직원이 노트북을 들고 와 불면증 카페에 접속했다. 스크린이 내려오고 빔프로젝터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서준과 직원들은 야금야금 간식과 음료를 먹으며 기다렸다.
“일단…… 이 정도로요.”
……?
열심히 움직이던 서준과 1팀 직원들의 손이 그대로 멈추었다.
[굿나잇 후기글]이라는 게시판에 수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제목부터 눈물과 감격, 벅참이 가득한 게시글들이 스크린에 가득했다.
-몇 년 만에 정말로 푹 잤습니다ㅠㅠㅠ
-베개에 머리 대고 진짜 1분 안에 잠들었어요ㅠ
-이런 게 평범한 잠이군요ㅠ처음 알았습니다ㅠㅠ
-이렇게 머릿속이 개운해진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ㅠㅠ
-내성 때문에 수면제도 효과가 없었는데ㅠ정말로 감사합니다ㅠㅠ
그리고 게시글마다 [굿나잇]을 작곡하고 연주해 준 서준에게 감사하는 문장은 꼭 들어가 있었다.
“……이렇게 많아요?”
“이것뿐만이 아니에요. 굿모닝이랑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과 관련된 글들도 많이 있어요.”
막내직원이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에 따라 [굿모닝],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나잇]에 대한 후기글들이 나타났는데, 특히 [굿모닝]과 [굿나잇]에 대한 글들이 많았다.
“……이야…….”
감탄하던 1팀 직원들이 어느새 손에서 간식을 놓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쩐지 연말연초 조금 시끌벅적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외국 후기도 있겠죠?”
“한국에서만 해도 이 정도인데 더 많지 않을까요?”
“기사는 아직 안 올라온 것 같은데…….”
직원들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이, 매니저 최태우는 서준을 살폈다.
놀란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보는 모습에 서준이 감동 받았다고 생각한 최태우는 작게 웃으며 조용히 테이블을 정리했다.
‘……아니,’
최태우의 생각대로 서준은 놀랐다.
하지만 감동은 아니었다.
[(선)디테마스의 울음소리의 등급이 중하급에서 중급으로 상승합니다.]
[(선)티아프의 빛 가루(중하급)의 능력이 변형됩니다.]
[(선)플록스의 불꽃(중하급)의 능력이 변형됩니다.]
[(선)모드잇꽃의 꽃잎의 등급이 중하급에서 중급으로 상승합니다.]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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